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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러도 오지 않는 개들, 이런 행동이 원인입니다

[개를 위한 개에 대한 이야기] '이리와' 교육 하며 깨달은 것들... 인간과 다르지 않다

등록 2024.02.23 18:16수정 2024.02.23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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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훈련사로서 가장 큰 깨달음은 훈련 기술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에 있었습니다. 보호자와 반려견, 가까이 있지만 잘 알지 못하는 진짜 그들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기자말]
한 강아지 운동장에 놀러 갔을 때 일이다. 운동장 마감시간이 되어 반려견 줄을 착용하는 상황이었는데, 한편 서부시대 총잡이 영화 같은 장면이 보였다. 10kg쯤 돼 보이는 하얀 믹스견과 보호자가 서로 비장하게(?) 마주하는 것이었다. 잡힐 듯 말듯한 거리에서 멀뚱히 쳐다보는 개와 질려버린 듯한 표정을 한 보호자. 보호자가 개에게 다가가자 정확히 그 거리만큼 다시 개는 멀어진다.

연신 쫓아가던 보호자는 더는 안 되겠다는 듯, 비장의 단어를 꺼낸다. '까까 먹자~' '엄마 간다~'. 미동도 하지 않던 개는 기대감에 차 보호자에게 다가왔다. 결국 진짜 맛있는 '까까(간식)'와 '엄마'를 써서야 그 개에게 줄을 채울 수 있었다. 


언젠가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반려견 이름 중 하나는 '까까 먹자'와 '엄마 간다'가 아닐까 생각해 본 적 있다. 위 상황은 반려견을 키우는 여러 보호자들이 겪는 보편적 상황이라서다. 개들이 보호자 신호에 오지 않으니까 다른 수단을 빌려서 개를 오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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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다가가는 개 사람이 불렀을 때 곧장 달려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속엔 많은 이야기들이 숨겨져있다. ⓒ pixabay

 
팩트 폭행(?)을 해보자면, 그냥 부르는 것보다는 간식을 주겠다는 게 그나마 개를 오게 하는 방법인 것이다. "난 간식보다 못한가 봐요"라며 발을 동동 구르던 보호자 말에 사실 크게 부정할 수 없었던 나를 고백한다. 그다지 틀린 말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른 걸로 유혹을 해야만 보호자에게 오는 개들, 보호자가 그냥 불렀을 땐 오지 않는 개에 대한 고민이 늘고 있다. 불러서 오게 하는 교육, 일명 '리콜' 교육이라 불리는 이 고민은 일부 보호자들에겐 계속되는 숙제이기도 하다. 

리콜(콜링, 콜백 등으로도 불린다) 문제가 고민인 분들, 나아가 내 말을 무시하는 반려견이 고민인 보호자들에게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쓴다.

다 퍼주는 관계는 건강하지 않다 

예전에 리콜 문제로 고민하던 보호자님 댁에 갔을 때, 그 분이 이런 질문을 하신 적 있다.


"선생님, 요즘 개들은 예전 개들보다 더 맛있는 간식, 편안한 잠자리, 재밌는 장난감이 주어지는데도 왜 대체 사람 말을 안 듣는 걸까요?"

10여 년 가까이 훈련사로서 일한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 보면, 이런 고민은 사실 인간 관계에서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반려견 교육에 관심이 있다면, 또 개의 행동을 이해하고 싶다면, 꼭 알아두면 좋은 개념이 바로 '동기(motivation)'다. 학습 심리학에서는 동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행동을 일으키고 유지하는 원인 또는 힘'. 이를 개에게 대입해보면, 개들이 보호자 말을 듣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대의 개들은 동기 자체가 낮거나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왜 현대 개들은 동기가 낮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답은 '너무 잘해줘서'라 생각한다. 현대엔 개들에게 다양한 것들을 과하게 제공하는 경향이 있음을 훈련사로서 느낀다. 개에게 무언가를 해준다는 것이 꼭 나쁜 건 아니지만, 그게 과잉이 되면 보호자와의 소통이 꼬이기 시작한다.

뭘 하지 않아도 항상 먹을 게 풍족하고, 필요 이상 제공되기 때문에 개의 입장에선 아쉬울 게 없는 것이다. 보호자의 말은 가볍게 무시해도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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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밀고 당기기 적당한 밀고 당기기는 서로의 관계를 훨씬 건강하게 한다. 때론, 적절한 밀기와 결핍도 필요한 것이 인간과 반려견 사이의 관계다. ⓒ pixabay

 
이건 인간관계에서도 쉽게 이해 가능한 이야기다. 만약 내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누군가 내게 돈을 충분히 준다면? 항상 칭찬 일색이라면? 동기는 온데간데 사라질 것이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이런 말들에서 볼 수 있듯 말이다.

개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이고 집단 동물'이다.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다양한 현상들이 개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사례가 정말 많다. 

개에게 무조건 주는 삶은 가장 반려견과 보호자 사이의 기본적인 관계를 망가뜨린다. 보호자가 줄 수 있는 보상 자체가 사라져 버리니, 보호자가 부르는 것만으론 부족해진다. 그래서 무조건적 다 주기 보다는 규칙을 정해 보상처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테면 간식을 그냥 주기보단 가벼운 교육이라도 하고 줘야 한다.

자유가 삶에서 우선인 개들 

'삶에서 가장 우선순위가 되는 것은?'이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가정해보자. 건강, 돈, 명예, 가족 등등... 저마다 우선순위는 다를 것이다.

개도 그렇다. 사람들은 개가 본능에 의해서만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개들도 저마다 우선순위가 있다. 당신의 개나, 혹은 주변의 아는 사람의 개중에 장난감을 유독 좋아하는 개가 있다면, 그 개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간식을 먹는지 확인해 보라.

간식을 먹는 개도 있지만, 안 먹는 개가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개라면 무조건 먹을 게 우선인 줄 알겠지만, 어떤 개는 2순위, 아니 3순위 다음까지 밀려나는 개들도 있다. 심지어 먹을 것의 기호도 개들마다 다르다. 

여러 유형 중에 '자유'라는 것이 가장 우선순위인 개들이 있다. 음식으로만 교육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런 유형의 개들에겐 대단히 큰 오류다. 이런 개들은 특히 운동장 같은 곳에서 바로 '자유'를 제공하는 건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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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껏 뛰는 자유 자유 자체가 삶에 가장 중요한 개들이 있다. 그 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파악하는것도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다. ⓒ 최민혁

 
이런 개들은 보호자가 가장 기본적인 교육을 한 다음에 '보상'처럼 자유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테면, 운동장에 들어가자마자 줄을 풀어주는게 아니라, 가볍게 옆에 따라 걷는 산책 교육, 기다리게 하는 교육을 한 뒤에 그것을 잘하면 충분한 칭찬으로 줄을 풀어주는 식이다. 보호자와 함께 하는 재미를 알려준 뒤 줄을 풀어주는 것이다.

이 간단한 5-10분의 과정은 보호자에겐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다. 강아지를 부르는 리콜에도 훨씬 도움이 된다. 이런 식으로 가장 좋아하는 것(운동장 줄 풀어주기)을 나중에 줘서 덜 좋아하는 행동(산책 교육, 기다리기 교육)의 빈도를 늘릴 수 있다. 이를 행동심리학 용어로 '프리맥의 원리(Premack principle)'라고 부른다. 

이 밖에도 개를 불렀을 때 오게 하는 구체적인 스킬들도 여러가지가 있다. 하지만, 이 두가지가 기본이 되지 않으면 개는 대부분 잘 오지 않으며, 이 두가지만 되어도 자연스레 개가 불렀을 때 잘 오게 될 확률이 커진다.

꼭 보호자가 집에 빨리 가기 위해서만 리콜 교육이 필요한 걸까? 아니다. 온전히 서로의 존재 자체가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반려견과의 삶에서 큰 축복이다.

구체적인 훈련 스킬 이전에 중요한 것은 '관계'다. 인간 세상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반려견과 관계에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반려견 #반려견교육 #강아지 #반려견훈련사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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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반려견 훈련사 '최민혁'입니다. 그저 개가 좋아 평생을 개와 가까워지려 하다보니 훈련사란 직업을 갖게 됐고, 그들의 이야기를 이제야 들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려동물이지만, 우리는 그들을 여전히 오해하고 모르고 있습니다. 개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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