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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 무덤은 왜 공중에 떠 있을까

[지중해 순례여행] 대항해 시대를 연 관문, 스페인 세비야

등록 2024.02.24 14:36수정 2024.02.26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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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4년 1월 25일부터 스페인을 여행하여 쓴 글입니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지중해 지역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여행기를 통해 소개하고자 합니다.[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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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스페인광장 세비야 도심에 있는 광장으로 세비야 대성당과 함께 세비야를 대표한다. ⓒ 정윤섭

 
스페인에 도착해 지중해 해양문명 로드를 따라 가보기 위해 찾은 곳은 세비야였다. 스페인 남부의 세비야로 가다 보면 차창 밖으로 낮은 구릉성 야산과 들판이 끝없이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들판에는 오렌지와 올리브, 아몬드가 심어진 과수원이 계속 이어진다. 지중해성 기후에 잘 맞는 이 과수들은 스페인에서도 최고 산지다. 식당에 들르면 어디서도 오렌지를 쉽게 먹을 수 있고, 올리브와 식초를 섞어먹는 샐러드는 식사와 함께 먹는 필수음식이다. 빵에 익숙하지 않는 한국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야채로 만들어진 샐러드는 먹을 만하다.

남부의 안달루시아 세비야 지역은 가장 더운 지역답게 지난 여름에는 섭씨 40도를 넘을 정도로 더웠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 영향은 이곳도 심각해 겨울 한낮에도 15도를 웃돌아 반팔을 입은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고 2, 3월경에나 피는 아몬드 나무의 꽃이 1월에 벌써 만발하고 있다.


세비야는 꽤 큰 도시답지 않게 그리 번잡하지 않고 깨끗하게 잘 정비된 전원도시 같은 인상이 든다. 도심에는 세비야 대성당을 비롯해 스페인 광장 등 여러 유적과 공원들이 있어 고도와 현대 도시가 균형 있게 잘 정비돼 있어 한철 휴양지로 선택하면 좋을 것 같은 도시다.

세비야 하면 여러 가지를 떠올릴 수 있지만 그중 대항해 시대의 포문을 열게 한 도시다. 현재 세비야는 바다에서 약 60km 정도 떨어져 있어 내륙처럼 보이지만 세비야의 도심 가운데로는 대서양으로 흘러가는 과달키비르강이 흐른다.

이 강줄기는 오래전에는 바다와도 가까워 항구의 기능을 하게 했다. 과거에는 배들도 작고 세비야를 가로지르는 과달키비르 강의 수심이 깊고 유량도 많아 스페인의 대표적인 무역 항구이자 신대륙 교역의 첫 관문으로서 영화를 누렸다고 한다.

세비야 시내 중심부를 흐르는 과달키비르강에는 지금도 강어귀 선착장에 콜럼버스의 대항해 시대를 기념하는 범선이 정박해 있다. 세비야의 무역항 기능이 사라지면서 대신 세비야의 외항 역할을 했던 카디스와 말라가 같은 바다에 면한 도시들이 새로운 항구로 부상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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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중심을 흐르는 과달키비르강 옛 항구의 영화를 말해주는 범선이 정박해 있고 강줄기가 대서양 까지 이어진다. ⓒ 정윤섭

 
콜럼버스가 지휘하는 세척의 배중 하나인 핀차호의 선원 중 한사람이 1492년 10월 12일 '티에라'(땅) 하고 외쳤다. 그날은 1492년 8월 3일 콜럼버스 일행이 세척의 배를 타고 떠난 이래 자신들이 도착하고자 했던 새로운 땅을 발견한 날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신대륙을 발견한 날이다.

콜럼버스가 찾으러 떠난 곳은 인도였지만 대서양을 건너 새롭게 발견한(?) 땅은 오늘날의 아메리카 대륙 중간쯤에 위치한 바하마 제도의 산살바도르 섬에 도착한 것이다. 당시 콜럼버스는 그들이 상륙한 땅이 신대륙이라는 사실을 알 리 없었고 그저 자신들이 목적했던 인도일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곳에 살았던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신대륙일 리 없었지만 서구 유럽의 입장에서는 어쨌든 새로운 땅이었다. 대항해 시대의 서막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것이 동서양의 운명을 뒤바꾸어 세계사의 흐름을 완전히 서구 중심으로 흘러가게 만들 줄 누가 알았을까?

고대 페니키아의 거점 항구 카디스

세비야로 들어오는 입구에 위치한 항구도시인 카디스는 대서양으로 나아가는 관문 역할을 하는 항구도시다. 기원전 1000년경 멀리 지중해 동부 연안 지금의 레바논 일대에 자리를 잡은 페니키아 인들이 교역을 위해 거점도시로 건설한 곳이라 한다.

고대 페니키아와 그리스, 그리고 로마와 아랍문명, 대항해 시대의 정점에 있었던 항구로 콜럼버스는 카디스 근처에서 두 차례나 신대륙으로 출발했다.

<구약성경> 에스겔 27장에는 페니키아의 교역도시중 하나인 티루스와 스페인이 상품을 사고팔며 무역을 한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페니키아와 무역을 하였던 항구가 카디스가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다.

"너(페니키아)에게는 온갖 물건이 많기 때문에 스페인이 너와 무역을 했다. 그들은 은과 쇠와 주석과 납을 가지고 와서 너의 물품들과 바꾸어 갔다." - 에스겔 27장 12절

또한 <구약성경> 요나서 1장3절에는 요나(선지자)가 여호와의 뜻을 거역하고 스페인 다시스로 도망가려 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


다시스는 스페인에 있었던 고대 항구로 아직까지 정확한 위치가 알려지고 있지 않지만 이곳이 스페인 남부 대서양 연안에 있었다는 것으로 볼 때 카디스라 추측해볼만 하다. 연구자들은 이곳을 안달루시아 남부 타르테소스로 추정하기도 한다. 타르테소스로 추정하는 곳도 카디스와 가까운 곳에 있는 항구다.

요나는 마침 스페인으로 가는 배가 있어 배를 얻어 타고 당시 세상의 끝이라고 여긴 지중해 서쪽으로 가려 하였다. 당시 스페인과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콜럼버스와 이사벨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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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대성당 중앙제단 15세기 대항시대를 통해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들어온 금1톤을 이용해 제단을 장식했다고 한다. ⓒ 정윤섭

 
세비야 시내를 흐르는 도심의 강 주변에는 세비야를 상징하는 세비야 대성당과 스페인광장이 있다. 성당과 광장은 유럽 도시의 전형적인 도시형태라 할 수 있는데 시내의 도로변은 높은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이 많다.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은 대항해 시대를 상징하고 있다. 이 시기의 상징적인 인물인 콜럼버스의 무덤이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항해 시대를 통해 여러 식민지에서 축적한 부를 다 쏟아 부어 만든 성당이기도 하다.

크기로 하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일 뿐만 아니라 스페인에서 가장 큰 성당이다. 이렇게 크고 화려한 성당을 지은 것은 15세기 콜럼버스의 대항해 이후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들어온 막대한 자금이 뒷받침 하고 있다.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 성당의 중앙제단은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들어온 금 1톤을 사용해 만들었다고 한다. 온갖 금은으로 치장된 조형물들이 있어 당 시대를 반영한 세비야 성당의 사치스런 일면을 엿  수 있다. 제단을 금으로 바른 탓인지 화려함이 눈부시다. 이것들이 식민지 국가 국민들의 고혈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뛰어난 고딕양식을 보여주는 세비야 대성당은 외부에서부터 그 화려함이 느껴진다. 떡 주무르듯 섬세하게 조각한 건물의 부조는 말할 것도 없지만 건축물의 웅장함은 당시의 뛰어난 건축기술을 보여준다. 아마도 신에 대한 열망이 이런 건축을 가능하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세비야 대성당이 지어진 시대를 상징하며 대항해 시대를 연 인물이 콜럼버스로 세비야 성당에 가면 그를 만날 수 있다. 성당 안에는 스페인의 옛 왕국인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을 상징하는 네 사람이 상여를 메듯 콜럼버스의 관을 메고 있다. 실제 콜럼버스의 유해는 관속에 없고 성당의 지하 묘지에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관이 땅에 놓여 있는 것도 아니고 네 사람이 어깨에 맨 채 그대로 공중에 떠 있다. 이는 1506년 콜럼버스가 죽으면서 남긴 유언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내 시신은 신대륙에 묻어라, 내가 다시는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게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식민지 개척을 위해 네 번의 항해를 떠났지만 그가 원하던 것을 다 얻지 못한 채 54세를 일기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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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대성당 안 콜럼버스 관 콜럼버스 관은 바닥에 있지 않고 공중에 떠있다. 콜럼버스는 자신이 죽으면 신대륙에 묻어달라고 했단다. ⓒ 정윤섭

 
죽어서도 고이 잠들지 못하는 그의 한 때문이었을까, 그의 유해는 남미대륙을 떠돌며 쿠바에 있다가 1898년 쿠바가 독립하자 그의 유골을 세비야 대성당으로 옮기게 돼 이곳에 안치한 것이다.

콜럼버스의 공적은 스페인을 비롯해 서구세계에는 영웅적인 것이었지만 두 번째 항해 때에는 남미의 식민지 국가에서 금 채굴을 위해 원주민을 혹사하고 온갖 부역에 동원했다. 또 이들이 전파한 전염병으로 인해 식민지 문명을 말살한 것은 그가 저지른 죄악이기도 하다.

실제 콜럼버스는 이탈리아 사람이었지만 스페인의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는 것을 보면 대항해 시대가 세계사에 얼마나 큰 전환점이었나를 알 수 있다. 이를 기점으로 스페인뿐만 아니라 서구 유럽이 세계사의 문명을 주도하는 계기를 만들게 된 것이다.

콜럼버스 기념탑은 바르셀로나 항구 근처인 람브라스 거리 중앙 로터리에도 있다. 멀리 대서양을 가리키고 서 있는 콜럼버스가 당시 자신이 이룬 위업을 자랑하고 있는 듯하다.

콜럼버스의 대항해 시대를 가능하게 한 것은 이사벨 여왕이었다. 그녀는 스페인 통일왕국의 초석을 다지고 1492년 이슬람 세력을 다 몰아내 국토회복 운동인 레콩키스타를 완성했으며, 그해 콜럼버스의 대항해를 지원하기로 하는 등 스페인 역사에서 빠져서는 안 될 영웅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대신들과 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콜럼버스의 다소 황당한 대항해 계획을 지원하기로 수락한 것은, 당시 지중해를 벗어나 대서양으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할 수밖에 없었던 국제정세를 잘 읽은 그의 판단력이 한몫 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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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 대항해 시대 기념탑 바르셀로나 람브라스 거리에 있는 이 기념탑에는 콜럼버스, 이사벨라 여왕 등 당시 대항해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들이 부조돼 있다. ⓒ 정윤섭

#세비야 #콜럼버스 #대항해시대 #세비야대성당 #이사벨라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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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를 중심으로 지역의 다양한 소재들을 통해 인문학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 특히 해양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16세기 해남윤씨가의 서남해안 간척과 도서개발>을 주제로 학위를 받은 바 있으며 연구활동과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녹우당> 열화당. 2015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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