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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년 지나도 이해 안 되는 그날... '서울의 봄 2부작'을 기다린다

[황광우의 역사산책 29] 책 <시민군>과 나의 꿈

등록 2024.02.26 09:46수정 2024.02.26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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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군 전옥주 ⓒ 황광우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활약한 시민군 300인의 육성을 모아 만든 책  <시민군>은 자라나는 미래 세대를 위해 만든 책이다. 나는 작가의 주관적 견해를 배제하고, 오직 시민군의 행위와 그들의 격정으로 오월의 이야기를 꾸몄다. 

벌써 44년의 세월이 흘렀다. 나는 해마다 항쟁의 이야기를 모았으나, 항쟁의 전모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2500년 전에 살다간 소크라테스와 공자의 삶과 사상은 10여 년 동안 들여다보면 감을 잡을 수 있다. 그런데 1000년 전의 사건도 아니고, 44년 전 나의 고향에서 발생한 이 사건만큼은 사태의 진실을 온전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서 나는 충격을 받았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서 저런 일이 있었다니...' 더욱 경악할 일은, '저런 국가변란 사태가 있고서도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다'는 사실이었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아직도 광주에서 일어난 일의 전모를 명쾌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가해자들의 음모'를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누가 '그자들'의 완전범죄를 폭로할 것인가? 그래서 우리는 '서울의 봄 2부작'을 간절히 고대한다. 

'서울의 봄 2부작'을 만든다면...

누군가 '서울의 봄 2부작'의 시나리오를 쓴다면 내가 만든 <시민군>은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적어도 항쟁의 전모, 그 절반의 진실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가해자와 피해자, 압제자와 저항자가 있다면 피해자와 저항자의 생각과 감정을 생생하게 기록했다고 자부한다. 

광주민중항쟁은 다가서기에 두렵다. 끔찍하다. 10일간의 서사를 따라가기도 전에 가슴이 막힌다. 오월의 책들은 읽기가 어렵다. 그래서 나는 쉽게 읽을 수 있는 '오월의 이야기' 책을 만들고 싶었다. <시민군>을 읽은 청소년들이 교실에서 친구들 앞에서 "내가 들은 시민군 이야기"를 발표하길 바라는 염원으로 2년의 땀을 흘렸다. 

나의 이 꿈이 실현된다면, 이것이야말로 오월 정신의 계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요, 현재와 미래의 대화이다"라고 카(Carr)는 말하였다. 나의 이 희망이 실현된다면, 이것이야말로 1980년의 과거를 2030년의 미래로 잇는 역사 계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시민군>에는 망월동에 묻힌 영령들의 묘와 비문의 사진 150여 장이 담겨 있다. 해마다 6만여 명이 망월동을 찾는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그 누구도 망월동의 비문을 다 읽은 이는 없을 것이다. 망월동을 찾는 이들을 안내하는 오월 해설사들도 비문을 다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비문은 비석의 뒷면에 쓰여 있고, 수풀로 가려져 있다. 때문에 비문을 온전히 읽는 것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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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철의 묘 ⓒ 황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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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안부의 묘 ⓒ 황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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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애의 묘 ⓒ 황광우

 
"엄마와 못다 한 정에 울고 있을 나의 아들아. 새겨진 그리움을 뉘게 말할소냐"  (최초의 희생자 김경철 비문)

"네 눈 맘에 보고 열어 사랑했던 꽃누린데 이젠 더 목 놓아 울어줄 그리움 가고" (두번째 희생자 김안부의 비문)

"여보 당신은 천사였소.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 (여성 희생자 최미애의 비문)


비문의 생생함을 살리기 위해 나는 책의 전편을 컬러로 인쇄했다. 덕분에 책은 보기에 좋았으나 들고 다니기에 무거운 책이 됐다.

과거의 현재의 대화

광주에는 대안학교 지혜학교가 있다. 나는 그곳 학생들에게 <시민군> 50권을 증정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좋은 일 하려다가 지옥에 간다'는 말이 있는데 옮길 수 없는 무게의 <시민군> 50권을 지혜학교로 배달하는 일은 무척 힘들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내친김에 나는 지혜학교의 학생들에게 시민군의 육성을 직접 들려주고 싶었다. 1980년 5월 당시 도청을 지킨 시민군을 직접 만나도록 주선했다. 

"나는 16세의 청소년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도청에 와 나의 손목을 붙들었습니다. '엄니 나 여기서 죽을라요. 친구가 죽었는디, 어떻게 나갈 수가 있다요?'" (시민군 1)

"사람도 없는데 내가 도청을 버리면 누군가가 도청을 지켜야 할 것이 아니요? 나는 내가 이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시민군 2)

"기동타격대에 지원했어요. 선배들이 어리다고 집에 가래요. '무슨 소리요? 어리다고 왜 총을 못 쏴요?' 나도 싸울 수 있다고 우겨 기어코 기동타격대 대원이 되었죠." (시민군 3)

"친구가 목에 파편을 맞고 쓰러졌어요. 피 흘리는 친구를 업고 식당 앞에서 소리쳤어요. '여기 부상자가 있다.'" (시민군 4)

"오늘 밤 이곳에 있으면 죽는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어요. 저도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디 차마 떠날 수 없었습니다. 끝까지 싸우다 죽자고 말을 해놓고 이대로 떠나는 것은 자존심도 상하고 웬지 뒷통수가 근질근질하더라구요." (시민군 5)
                                               
"군인들이 벌떼같이 시커멓게 총을 쏘고 들어오더군요. 총을 쏘려고 하는데 차마 손가락이 안 당겨지더라구요." (시민군 6)

"주먹밥으로 '최후의 만찬'을 하고 출동하였죠. 도청 정문을 응시하였어요. 내가 총을 쏘자 계엄군이 그러더군요. "저 새끼, 총 쏜다. 조준사격!" 나는 내가 죽은 줄 알았는데 손가락을 움직여 보니까 까닥 하더구만요. 죽더라도 엄마 한번 보고 죽어야지 생각이 듭디다." (시민군 7)


나는 놀랐다. 저 백발의 사나이들이 40년 전엔 모두 고교생이었구나. 과거와 현재는 그렇게 만났고, 현재와 미래는 그렇게 만나고 있었다. 지혜학교는 '미래를 키우는 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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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시민군>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시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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