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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전자제품 쓰레기

[수리수리 마수리 ①] 재활용만으로는 한계... 지금 수리권이 필요하다

등록 2024.03.01 13:00수정 2024.03.0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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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기술이 점점 빠르게 발달하면서, 이러한 변화가 탈(脫) 물질화를 가속해 환경문제 해결에 기여할 것이라고 희망을 품는 사람들이 많다. 디지털 전환을 통해 자원과 에너지 이용을 최적화하고 온실가스 배출도 줄일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첨단 친환경 세상'이라는 장밋빛 미래는 환상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전자제품이 만들어지고 막대한 전기를 소모하면서 소비되다가 결국 쓰레기로 버려지는 전 과정을 생각하면 디지털은 더럽고 위험한 산업이다.

기술 발전과 함께 전자제품은 크기가 점점 작아지고 기능은 더 고도화되는 추세다. 이에 따라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자원의 종류도 많아지고 있다. 1960년대 다이얼식 전화기에는 10가지 금속이 사용되었고 1990년대 휴대폰에는 29가지 금속이 들어갔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에는 54가지 금속이 사용된다. 영국 플리머스 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스마트폰 한 대에 사용되는 금속을 조달하려면 10~15㎏의 광물을 캐서 금속으로 제련해야 한다. 스마트폰 한 대의 평균 무게를 200g이라고 한다면 무려 50배 이상 무게의 광물을 채굴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현재 디지털 기술 구현을 위한 각종 기기에는 세계 구리 생산량의 12.5%, 알루미늄 생산량의 7%가 들어간다. 디스플레이·집적회로·반도체·광섬유 등에 들어가는 희소금속의 양도 만만치 않다. 안티모니 41%, 디스프로슘 63%, 갈륨 70%, 저마늄 87%, 터븀 88%, 베릴륨 42%를 이러한 첨단 기기들이 차지하고 있다.

광물을 채굴한 후 금속으로 제련하는 과정은 엄청난 생태계 파괴와 오염물질 배출을 수반한다. 게다가 자원 소비량이 증가하면서 점점 품질이 낮은 광물까지 채굴하게 되었는데, 이러다 보니 광산 쓰레기의 발생량이나 금속 추출에 소비되는 에너지의 양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1900년의 구리 광석 내 구리의 비율은 2%였는데 2000년은 1%로 낮아졌고 2030년이 되면 0.5%로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2030년이 되면 같은 양의 구리를 얻기 위해서 1900년보다 3배 이상 많은 에너지를 투입해야 한다.

광물 내 함유량이 적은 희소금속일수록 오염문제는 더 심각하다. 희토류 1톤을 얻는 데 1만㎥ 내외의 유독가스, 75톤의 산성 폐수, 1톤의 방사성 잔재물이 발생한다. 중국 최대 희토류 광산이 체르노빌 원전 사고 주변 지역보다 훨씬 심하게 방사능으로 오염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뿐 아니라 광물 채굴에 투입되는 노동자, 채굴지 주변 지역 주민의 피해도 문제가 되고 있다. 환경규제 및 인프라가 취약한 중국·아프리카 등에서 주요 자원을 채굴하다 보니 피해가 더 심각한 상황이다.


결국 디지털 기술로 깨끗한 세상을 구현하려면 자원 조달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천연광산 개발이 아니라 재활용을 통해 자원을 공급받는 순환자원 공급망, 즉 도시광산1) 생태계가 구축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위한 전자제품 쓰레기 관리체계는 과연 제대로 작동하고 있을까?

깨끗한 디지털? 더럽고 위험한 최첨단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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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의 수도 아크라의 아그보그블로시 지역의 쓰레기처리장에서 구리를 회수하기 위해 전선을 태우는 젊은이들 ⓒ 위키미디어 커먼스

 
유엔의 〈전 세계 전자제품 쓰레기 모니터링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 세계 전자제품 쓰레기 발생량은 5400만 톤이고 2030년에는 7500만 톤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5년 주기로 1000만 톤씩 쓰레기 발생량이 증가하는 것이다. 전자제품을 어떻게 분류하느냐에 따라 실제 쓰레기 발생량은 훨씬 더 많을 수 있다. 장난감·인형·칫솔 등 다양한 품목에서 전기로 작동하는 제품이 점점 많아지고, 최근에는 전자담배를 넘어 전지가 들어간 일회용 액상담배까지 등장하는 등 제품의 전자화 경향이 빨라지고 있다.

전자제품 쓰레기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전자제품에는 금·은·구리·알루미늄부터 시작해서 코발트·팔라듐·인듐·게르마늄·안티몬 등에 이르기까지 원소 주기율표 상 69개의 금속이 사용된다. 2019년에 발생한 5400만 톤의 전자제품 쓰레기에서 유가금속2)을 모두 회수하면 그 가치는 570억 달러(76조 원)에 상당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전자제품은 유해물질이 들어있는 위험한 물건이기도 하다. 납·수은 등의 중금속은 물론 전자제품 플라스틱 케이스나 내부 전선 피복 등에도 다양한 화학물질이 첨가되어 있다. 이 때문에 전자제품 쓰레기를 잘못 해체하거나 처리하면 유해물질이 환경에 유출된다. 전자제품 쓰레기의 처리는 제품 내 유가금속을 최대한 회수하는 동시에 이 과정에서 유해물질이 환경에 유출되지 않도록 방지하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제대로 된 재활용 시설이 필요하다. 특히 극소량 첨가되는 희소금속까지 회수하려면 첨단설비가 필수적이다. 전자제품에서 희소금속을 종류별로 회수하는 것은 '음식물 쓰레기에서 양념을 종류별로 추출하는 작업'으로 비유된다. 그만큼 정밀하고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조악한 장비를 써서 손으로 제품을 뜯은 후 철·구리·알루미늄 등 눈에 보이는 금속만 골라내는 방식으로는 제대로 자원 낭비 및 오염물질 관리를 할 수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 세계 전자제품 쓰레기 중 17%만이 제대로 된 설비에서 재활용된다. 83%는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냥 버려졌거나 아프리카 등의 저소득 국가로 수출되었거나 아니면 환경설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 곳에서 재활용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적정하게 재활용된다고 집계된 17%에서도 전자제품 내 함유된 희소금속을 일부만 회수하고 있어 개선의 여지가 많다.

전 세계 전자제품 쓰레기 수출량은 연간 510만 톤인데, 이 중 180만 톤만 적법하게 수출된 양이고 330만 톤은 불법으로 거래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선진국에서 불법 수출된 전자제품 쓰레기의 최종 종착지는 가나 등 아프리카 국가나 인도·파키스탄 등 아시아 국가다. 이들 나라의 사람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전자제품 쓰레기를 해체하는 현장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국제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어린이와 전자폐기물 처리장: 전자폐기물 노출과 어린이 건강〉 보고서를 통해 저소득 국가에서 전자제품 폐기물 재활용 작업에 투입되는 여성과 어린이의 건강 문제를 제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과 어린이들은 구리를 얻기 위해서 옥외에서 전선을 불에 태우고 수작업으로 인쇄회로기판을 녹이거나 전자칩을 강한 산성 용액에 넣어서 유가금속을 추출하는 등 위험하게 재활용 작업을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수은·PCB·납 등 다양한 유독성 위험 화합물에 심각하게 노출된다.

전자제품 쓰레기, 줄이는 게 최선이다

결국 자원 채굴부터 쓰레기 처리까지 전자제품의 전 주기에서 발생하는 환경문제를 해결하려면, 전자제품의 수명을 연장해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쓰레기를 안전하게 재활용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전자제품 소비량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재활용만으로는 원료를 공급하기 어렵고, 전자제품 내 다양한 금속을 모두 재활용을 통해서 회수하기도 어렵다. 또한 불법적 경로로 움직이는 전자제품 쓰레기를 모두 관리하기도 어렵다.

쓰레기 관리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지속해야겠지만, 어차피 재활용하면 되니까 마음껏 소비해도 된다는 식의 재활용만능주의는 지양해야 한다. 애초에 튼튼하게 전자제품을 만들고 고장이 났을 때는 쉽게 수리해서 쓸 수 있게 수리할 권리, 즉 수리권이 확대되어야 한다.

오래 쓰고 다시 쓰는 시민들의 노력과 수리권을 확대하는 제도적 방안이 없다면 지구와 동료 시민들을 아프게 만드는 전자제품 쓰레기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1) 폐가전 또는 산업폐기물에서 금속을 추출해 산업원료로 재공급하는 일
2) 값이 나가는 금속을 통틀어 이르는 말
덧붙이는 글 글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4년 3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전자제품 #쓰레기 #수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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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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