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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쌀을 300번 씻어요" IT맨들이 만드는 막걸리

[인터뷰] 유기농 멥쌀과 찹쌀을 써 술을 빚는 수블가 차영태 대표

등록 2024.03.14 10:58수정 2024.03.1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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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사진을 보내오는데 범상치 않았다. 무슨 실험기기 비슷한 게 있었다. 알고 보니 블루투스 온도계였다. 막걸리를 빚을 때 꼭 필요한 온도조절에 사용하는... 도대체 뭐 하던 분이시길래, 하며 작가님이 쓴 사전원고를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연구원 출신이었다. 기흥의 삼성종합기술원. IT업계에서 정년을 다한 뒤 동료와 함께 양조장에 뛰어든 것이다.

인터뷰가 시작된 뒤 또 한 번 놀랐다. 지극정성과 고지식함... 고문헌에 나온 것 이상으로 쌀을 300번 씻어 술을 빚는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 많은 쌀을 모두 손으로 씼었단다. 너무 힘들어서 '우리가 조선시대 노비들보다 못하다'는 생각도 했더란다. 조선시대 노비들은 시키니까 대충 씻고 말았을 수도 있겠지만, 자신들은 정말로 좋아서 자신들 술이니까 지극정성을 다 하기에 그만큼 더 힘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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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발효어워즈 탁주부문 대상을 수상한 수블가의 차영태 대표 ⓒ 수블가

 
"고문헌에는 '백세 침지 대냉' 이 여섯 글자가 나오는데 이게 술 빚는 방법입니다.

백세는 쌀을 100번 씻으라는 거예요. 쌀의 전분 말고 다른 단백질들이 있는데 그게 술에 조금 방해됩니다. 쌀을 깨끗이 씻어서 그런 단백질 같은 걸 없애라는 거고요. 그래서 이렇게 손으로 돌려서 씻으면, 한 100번 이상 씻으면, 맑은 물이 나오는데, 그때까지 씻으라는데, 저희가 해보면 100번 가지고 좀 부족하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는 300번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아주 맑은 물에 밑에 바닥이 다 보이는 것 같은 그런 상태가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저희가 밥을 지어서 술을 하고요.

그 다음에 침지, 침지는 쌀을 한 10시간 정도 하루 밤새 물에 불려두라고 합니다. 이런 것들이 사실 사소하지만, 하다 보면 바쁘기도 하고 마음이 급하기도 하고 4시간만 해도 될 것 같기도 하고... 이래서 안 지키는 게 사람 마음인데 저희는 이런 것들을 다 엄밀히 지켰습니다.

마지막으로 대냉, 대냉이라는 것은 술 빚는 고두밥을 찌고 나면 뜨뜻하게 데워진 것을 차갑게 식히는 것을 말합니다. 식히는 과정도 바람을 불어넣어서 식히는 게 아니고 자연적으로 식도록 하는 게 술 맛에 더 좋다고 그러니까, 한참을 기다려야죠. 그래서 성질 급한 사람들은 못 기다리고 못 합니다. 그런데 이런 기본을 지키는 것이 술 만드는 비법입니다."


이 대목에서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우연히 찾아간 술빚는 술도가에서, 우리네 인생의 가르침을 얻는 느낌이랄까.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몇 수 배운 인터뷰였다. 11일 만난 탁주 발효장인의 이름은 차영태였고, 그가 동료와 함께 운영하는 술도가의 이름은 '수블가'였으며, 용인에서 나오는 유기농 멥쌀과 찹쌀을 써 빚어내는 참발효어워즈 탁주부문 대상수상작의 브랜드 명은 '두두물물'이었다.

퇴직 후 폼나게 와인을 마시다 '전통주'를 보았다


- '두두물물'이라는 브랜드는 어떤 뜻인가요?

"'선가'에서 온 말인데요. 말 뜻이 좀 어렵기는 합니다. 두두물물이라고 그러면 모든 만물이 길이고 진리다... 그래서 저희는 이 술도 모든 효소와 효모에도 다 도가 있고 진리가 있다는 뜻으로 다 조화롭게 잘 돼서 좋은 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 어떻게 이 양조장 일을 하시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저희는 오랫동안 IT일을 해왔던 사람들입니다. 퇴직하기 전에는 바쁘다 보니 술도 어떤 술이 더 좋나 이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고 그저 소맥만 마셨는데요. 퇴직하고 나서 '이제 술도 폼나게 먹어보자' 해서 와인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와인을 시작해서 몇 달 먹었는데, 우연히 우리 전통주를 접하게 됐어요. 그랬더니 그 맛이 전통주가 훨씬 낫더라고요. 이렇게 우리나라에 좋은 술이 있구나, 처음 알았고 '이렇게 좋은 술들을 내가 좀 만들 수 없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통주 제조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여러 군데 있더라고요. 거기 들어가서 한 2년 정도 배웠습니다. 그렇게 배우던 와중에 지금 같이 사업하는 친구가 평생의 직장 동료인데, 술 한 잔 하자고 해서 만났습니다. 제가 별 생각 없이 그동안 빚은 술을 들고 나갔는데, 그 친구가 먹어보더니 깜짝 놀라는 거예요. '이게 도대체 무슨 술이냐, 나도 배울 수 없느냐'. 그래서 제가 배운 곳을 소개해 주었고 그 친구도 교육을 등록했어요. 한 1년 반 정도 지난 다음에 '우리 이렇게 그냥 배우는 것만이 아니라 한번 실제로 양조장을 해보면 어떠냐. 그러면 오히려 더 재미있을 것 같다' 그런 생각에서 양조장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사실 집사람은 퇴직 후에 '그냥 시골에 가서 폼 나게 포도나무 심어서 와인 같은 거 한번 만들어보면 어떠냐'는 생각이었고, 실제 프랑스에 가서 와인도 한번 배워보라고 했는데, 제 생각에 그건 아무래도 현실성이 떨어지고 땅도 많이 필요했어요. 그보다는 탁주, 지금의 전통주가 훨씬 현실성도 있고, 맛을 보니 훨씬 좋게 느껴졌고요."

쌀과 누룩만으로 이런 향이 나는가

- 우리 술 빚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술 빚는 데 중요한 요인이 온도 조절입니다. 쌀하고 물하고 누룩하고 섞어서 그것들의 온도를 잘 맞추면 발효를 하면서 술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제 생각에 술맛을 결정하는 것의 95% 정도는 온도인 것 같습니다. (처음에 연습으로) 집에서 술을 빚는 데 적절한 도구가 없으니, 창의력을 발휘해서 종이박스와 단열재로 수제 발효조를 만들고, 그걸로 술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한 50번가량 해서 익숙해지니 그 이후엔 맛있는 술이 되더라고요."

- 본격적으로 친구분과 양조장을 하실 때는 어떻게 하셨나요? 

"실제 양조장은 방을 3개로 만들었어요. 발효실, 숙성실, 그리고 냉장실. (연습에서) 테이프를 붙인 종이박스가 숙성실에 해당하고요. 냉장고는 냉장실에, 그렇게 세 방을 이용해서 온도 조절을 합니다. 온도 조절이 술 빚는 데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데요. 그래서 저희가 술이 되는 전 주기 동안 블루투스 온도계를 활용해 온도를 모니터링합니다. 그런 것들이 좋은 술을 빚는 데 큰 원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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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발효 온도조절에 쓰이는 블루투스 온도계 ⓒ 수블가

 
- 재료는?

"저희의 첫 번째 목표는 '맛있는 술을 만들자'였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구할 수 있는 제일 좋은 쌀을 쓰고자 했습니다. 용인에서 나오는 친환경 쌀, 유기농 멥쌀과 찹쌀로 쓰고 있고요. 아직 유기농 쌀을 쓰고 있습니다만 이제 용인에 유기농 쌀이 거의 없는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

- 예전만큼 농사를 안 짓는 건가요? 아니면 작황 문제인가요?

"용인에 유명한 반도체 단지가 들어서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전에 찹쌀을 재배했던 많은 곳이 반도체 공단에 들어가서 유기농 쌀을 쓸 수가 없게 됐어요. 용인에서 제일 좋은 쌀을 또 구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 쌀도 300번 씻고, 밤새 불리고, 자연 그대로 식히고, 옹기 발효를 고집하고... 그렇게 만든 술은 전라도 여산의 '호산춘'이라는 술을 모델로 했다고 하는데, 그건 어떤 맛일까요?

"비유를 하자면 동치미나 나박김치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치미는 사실 그냥 무만 가지고 하는데 다른 거 안 넣고 잘 발효를 시키면 맑고 청량한 맛이 있습니다. 나박김치도 또 그렇고요. 사실 어려운 건 아니죠. 그냥 시키는 대로, 이전에 하던 대로 하면 될 텐데 사람들이 거기에 재주를 뿌립니다. 쉽게 하려고 사이다를 섞어서 맛을 내기도 하고요. 그래도 잘 만들면 맛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예민한 사람들은 그걸 알아채지요. 저희 술은 재료를 보면 간단하지만 다른 어떤 걸 넣었을 때보다 오히려 훨씬 좋은 맛을 냅니다. 발효의 맛이지요."

- 안 그래도 술을 시음해본 분들이 비슷한 얘기를 하더라고요. 과일 향 있다고 그러셨잖아요. '단맛인데 과일처럼 깔끔한 단맛이 난다. 탁주인데 텁텁하지 않다' 그런 얘기를 해주셨어요.

"와인 만드시는 분은 이런 소리 하시더라고요. 자기는 포도를 가지고 하니까 과일 향이 나는데, 쌀과 누룩만 가지고 어떻게 이런 향이 나느냐고요."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지금의 문화를 즐기고,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이야기를 하며 마실 수 있는 술이 전통주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전통주 맛을 보신 분들이 많지 않은데, 한번 맛을 보시면 '와인이나 사케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한테 더 잘 맞는 면이 있다'라는 것을 알게 되실 겁니다. 그래서 저희 술을 맛보시고 뭔가 부족해서 다시 와인과 사케를 찾으신다면, 그건 우리가 잘못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한 번씩 전통주를 맛보시고 우리 정체성과 자존심을 느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내용은 지난 2024년 3월11일 OBS 라디오 '오늘의 기후' 방송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오늘의 기후'는 지상파 라디오 최초로 기후위기 대응 내용으로 매일 편성되었으며 FM 99.9 MHz OBS 라디오를 통해 오후 5시부터 7시30분까지 2시간 30분 분량으로 매일 방송되고 있습니다. 유튜브 라이브(OBS 라디오 채널)와 팟캐스트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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