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한 악당, 봄 날씨의 두 얼굴

봄(비), (황)사랑, 벚꽃 말고... 우리가 모르는 봄 날씨의 위험성

등록 2024.03.14 16:41수정 2024.03.14 16:41
0
원고료로 응원
"사랑은 봄비처럼 내 마음 적시고, 지울 수 없는 추억을 내게 남기고..."

가수 '임현정'의 노랫말처럼 봄 날씨는 로맨틱한 심상, 포근하고 화사한 대상에 연결되곤 한다. 따스한 햇볕, 온화해진 바람, 겨우내 쌓인 눈을 녹여버릴 봄비까지, 괜스레 맘이 간질간질해진다.

하지만 봄이라고 다 분홍분홍 파스텔 톤이랴. 봄의 위험성을 경고한 반대파도 있으니 바로 가수 '10cm'이다.

"봄이 그렇게도 좋냐 멍청이들아... 몽땅 망해라"

어느 쪽 말이 맞는 것인지는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일 뿐일까. MBTI가 INFJ로 나오는 필자이지만, 잠시 T에 빙의되어 봄 날씨의 어두운 자아를 들춰보려 한다. 여러분도 이 기사를 읽고 나면 봄 날씨가 얼마나 반사회적인 녀석인지 알게 될 것이다.

먼저 산불이다. 대형화된 산불은 태풍 수준의 생명과 재산 피해를 야기한다. 산불은 건조와 강풍의 합작품으로서, '실효습도'를 기준으로 하는 건조특보 발효 시에 대부분의 산불이 발생하며, 강풍을 동반할 때 대형화된다.

봄이 이렇게 건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우리나라로 향하는 공기가 대륙에서 불어오기 때문이다. 어라, 겨울에도 대륙에서 공기가 오지 않던가? 그렇다. 겨울에도 대륙에서 북서풍이 불어와 매우 건조하다. 하지만 겨울에는 수증기가 적은 대신 공기도 매우 차가워 '상대습도'가 봄에 비해 높다. 또한 산지에 겨우내 눈이 내려 쌓여 있는 경우에는 산불이 발생하기 어렵다.


겨울이 끝나고 봄으로 이행하면서 비로소 차이가 발생한다. 우리나라 남쪽으로 지나는 이동성 고기압이 존재감을 가지는 계절이 되며, 흔히 '남고북저 패턴'이라 부르는 남쪽 고기압, 북쪽 저기압 형태의 기압 배치가 나타나고, 이미 온화해진 지면에 의해 건조하고 따뜻해진 중국 내륙의 공기가 고·저기압 사이 좁은 통로로 강제 수송된다. 이렇게 '좁아진' 공기의 길에서 풍속은 강해지고 폭주하는 서풍이 밀려온다.

특히, 건조한 서풍이 태백산맥으로 등 떠밀려 '강제상승'되지만 매우 건조하기 때문에, 고도상승으로 인해 기온이 낮아지는 와중에도 구름이 되지 못한 채 산맥의 정상부에 이른다. 이제 남은 건? 강제적 서풍과 높은 고도의 위치 에너지가 더해진 공기 폭포이다. 주로 강원도 영동을 중심으로 소위 '양강지풍' 또는 '양간지풍'이라 불리는 건조한 강풍이 산맥 정상에서 해안을 향해 쏟아져 내린다.

워낙 건조하고 강한 바람이라, 쌓여있던 눈이 그대로 시선에서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을 정도. 그러니, 여기에 작은 불씨 하나만 더해지면 그대로 대형 산불이 되며, 바람이 강해 산불 진화 헬기의 이륙도 어렵고, 불씨가 천지사방으로 날아다니며 끊임없이 새 산불을 발생시킨다.

이 현상은 단지 영동지방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며, 같은 조건의 바람이 산맥에 수직으로 불어드는 뒤쪽인 '풍하측'에 어디든 발생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2000년에 발생한 초대형 산불로, 강원영동에서 경북북부동해안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대를 일주일 이상 휩쓸고 2명의 사망자와 2만 헥타르가 넘는 피해 면적, 300억 원 이상의 재산 피해를 발생시켰다. 그러니 올 봄에도 이 흉악한 봄 날씨 속에서 잊지 말자, 불 조심!

두 번째 악당은 안개이다. 위에서 열심히 건조한 날씨를 설명해 놓고, 이제와서 수증기가 응결해서 생기는 안개라니 이게 무슨 모순인가 싶지만, 그래서 무섭다.

겨울에는 북서풍이 강하게 불어오기 때문에, 차가운 지면에서 수증기가 응결한다 한들 대규모 안개가 되기 어렵다. 따라서 바람이 약한 날 국지적으로, 혹은 차가운 지면 위에 습한 비가 오게 되는 경우 안개가 발생한다. 반면 여름에는 지면이 차갑지 않아, 습한 수증기가 대규모로 공급될 때 아주 낮은 구름 형태로 안개가 발생한다.

하지만 봄에는 바다와 육지 사이의 미묘한 변화가 그 원인이 된다. 겨우내내 육지는 바다보다 차다. 따라서 육지에서 바다로 바람이 불어 나간다. 그러다 겨울이 끝나는 시기가 오면 낮에는 바다가 밤에는 육지가 상대적으로 차가워지므로, 낮에는 바다에서 해안으로, 밤에는 해안에서 바다로 바람이 부는 해륙풍이 뚜렷해진다.

이때 이동성고기압이 우리나라 남쪽에 위치해 약한 남서풍이 불어오면, 서해안에서는 낮에 해풍과 더해져 습한 공기를 해안으로 불어 넣고, 밤에는 육풍과 상쇄되어 바람이 멈출 것이다. 하늘도 맑아 복사 냉각이 강해지는 모든 조건이 갖춰지면 바다와 가까운 해안을 따라 살인적 안개가 발생하는데, 특히 해상의 교량에서 연쇄추돌 등의 큰 피해가 나타난다. 겨울이 끝나가던 2015년 2월 11일 아침에 발생한 '영종대교 106중 추돌사고'가 대표적인 사례이며, 이 사고로 2명이 사망했다.

세 번째 악당은 너울이다. 주로 동해안과 남해안 동부에서 봄부터 초여름에 많이 나타나는데, 풍파(바람에 의한 파도)와 달리 먼 해상에서는 물결이 높지 않아, 그 위험성이 간과된다는 데에 진정한 위험성이 있다.

한겨울 시베리아에서 그대로 남쪽으로 쏟아져 내려오던 대륙고기압의 기세는 봄이 되며 차츰 꺾여 만주를 통해 동해로 확장하게 된다. 이 고기압의 시계 방향 회전으로 인해 형성된 지속적 동풍이, 해수면을 동해안으로 밀어붙여 너울을 발생시킨다. 주기가 8초 이상인 긴 파장을 가지기 때문에, 얼핏 잔잔해보이는 해수면의 너울이 해안으로 깊숙이 밀고 들어온다.

특히 늦봄이 되면 상대적으로 차가운 수면 위에서 오호츠크해 기단이 발달하기 시작한다. 이 공기 덩어리의 자체적 출렁거림이 그 하부의 해수면을 일렁이게 하여, 주기가 10초를 넘는 매우 긴 파장의 너울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이 경우 바람도 없이 좋은 봄 날씨에서, 그야말로 '뜬금 없는' 너울이 해안을 덮쳐 종종 큰 사고를 일으킨다.

오늘의 마지막 악당이자, 가장 생소한, 그리고 가장 불규칙한 녀석을 소개한다. 바로 '기상해일'이다.

2008년 5월 4일 충남 보령, 잔잔하던 바다에서 갑자기 높은 물결이 발생하며 인근 해안에 있던 9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에는 '이상 파랑'으로 표현하는 등 원인조차 쉽게 설명되지 않았지만, 현재는 발생 기작을 이해하고 기상청에서 예측 모델까지 운영하고 있다.

중국 내륙에서 급속히 발달한 저기압이 우리나라로 매우 빠르게 이동하며 접근하는 과정에서 서해안에 '급격한 기압 변동(일명 기압점프)'이 발생하고, 이 기압 변동으로 인해 해수면에서 물결이 발생한다. 이 물결의 진행 속도와 저기압의 이동 속도가 일치하면 공명을 이루게 되고, 그렇게 저기압이 들어올려 높아진 해수면이 떠밀려 오다 해안에 부딪치며 일순간 해수면이 치솟는다.

다행히도 현재는 기상해일의 발생 가능성을 예보하고 있으니, 봄철 서해안을 방문하기 전에는 반드시 예보문을 확인하도록 하자.

봄철 발생하는 위험 기상 네 가지를 살펴보았다. 여전히 봄이 파스텔톤으로 보이는지는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비를 충분히 한다면 로맨틱한 악당으로부터 '모두의 봄'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싸움을 위한 무기고는 바로 기상청의 '날씨누리' 홈페이지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참고하는 동네예보를 넘어, 하루 수차례 발표되는 '날씨 해설'을 읽어보자. 메뉴에서 날씨-기상특보-통보문을 차례로 선택하고, [해설]을 찾으면 된다. 6시간(초단기), 3일(단기), 10일(중기) 날씨 해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클릭 몇 번만 하면 여러분 스스로를,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줄 예보로 철저히 무장할 수 있고, 주변에 아는 척도 할 수 있다!

봄의 위험성을 열심히 논했지만, 그래도 봄에는 괜시리 설레는 마음을 어쩔 수 없다. 모두에게 기상재해가 없는 행복한 봄이 되길 바란다.
#봄 #날씨 #기상청 #위험기상 #재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상청 총괄예보관실과 국가기상슈퍼컴퓨터센터를 거쳐, 현재는.. 현재는.. 영업용 화물차를 운전하는 노마드 인생. 그거 아시죠? 운전하는 동안, 샤워할 때 만큼이나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나온다는 것!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4. 4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5. 5 하이브-민희진 사태, 결국 '이게' 문제였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