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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소 폐쇄에 '우울 위험' 노동자들... "정의로운 전환을"

[330 충남행진 연속기고 3] 기후시계의 날카로운 바늘, 발전노동자 정신 건강 위협한다

등록 2024.03.18 14:55수정 2024.03.18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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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사무국장(우측에서 두 번째) ⓒ 정진영

 
2021년 10월 15일, 삼천포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가 어린 딸과 아내를 두고 세상을 떠났다. 2028년 폐쇄되어 LNG발전소로 전환될 예정인 남동발전 삼천포발전본부 6호기에서 경상정비 전기팀으로 근무해온 고인은 동료들과 함께 이직을 준비해 왔다.

하지만 일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3개월 쪼개기 계약과 임금 착복으로 최저 임금 수준의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가장으로서 버티기 힘든 무게였다. 앞날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었다면 삶을 이어갈 수 있었겠지만 정부는 기후위기에 대한 대책으로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를 말하면서도 노동자들이 어디로 가야하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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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포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의 극단적 선택에 대한 기자회견을 진행 중인 노동자들 ⓒ 정의로운전환을위한 충남노동자행진 추진위원회

 
그로부터 1년여 후, 2022년 9월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 사무실의 공기가 무겁다. 하동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고용불안과 정신 건강 실태 조사 결과가 발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토크 콘서트의 형식으로 진행된 자리에서 석탄발전 노동자들은 비통한 표정이었다.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애써 참는 이도 있었다.

실태조사에서 약 89%의 노동자들이 기후위기가 심각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기후위기의 주범인 석탄화력발전소가 빠르게 폐쇄되어야 한다는 것을 대부분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43.6%의 노동자가 발전소 폐쇄만 생각하면 미래에 대한 걱정이 가득하다고 답했고 50점 이하면 우울 위험이 높은 WHO-5 지수에서는 33.8점을 나타내었다. 직업 불안정성은 14.9로 코로나19시기 자영업자의 11.8보다 더 높게 나왔다.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전국 59기의 석탄발전소 중 노후된 28기가 2036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쇄된다. 독일의 기후환경 싱크 탱크인 클라이밋 애널리틱스는 1.5℃ 파리협정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한국에서 석탄화력발전소가 2029년까지 전면 퇴출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여전히 기후시계의 날카로운 바늘이 석탄화력발전소를 향하고 있지만 바늘 끝에 매달려 있는 1만5천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읽는 정부와 지자체는 2024년 현재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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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에서 진행된 하동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고용불안과 정신 건강 실태 조사 결과 발표 ⓒ 정의로운전환을위한 충남노동자행진 추진위원회

 
2010년대 중후반 경남의 조선업은 업계 불황으로 1만 명이 실직을 당했다. 고용 불안은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만큼 준비하고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 그 피해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왔었다. 하지만 정확한 실직자 수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경남도는 우왕좌왕했고 몇 억 지원으로 하는 시늉만 냈다. 그 결과 조선업의 중심 도시였던 통영은 경남에서 지난 10년간 인구 감소율이 가장 큰 도시가 되었고 경남 지역 경제는 먹구름이 드리워졌으며, 조선업의 구조조정으로 경남의 자살률은 눈에 띄게 높아졌다.

경남을 먹여살렸던 조선업의 몰락은 국제 시장의 변동성에 따른 것이지만 발전 산업의 고용위기는 정부 정책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더욱더 정부가 책임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시혜나 떡고물 차원의 대책으로 사회적 타살을 방관하고 지방소멸을 부추기는 구태를 답습하지 않으려면 노동자와 지역을 전환의 주체로 세우고 적극적인 소통부터 시작해야 한다.

3월 30일, 충남 태안에서 열리는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충남노동자행진에 탈석탄 기후활동가들이 간다. 전국의 석탄발전소 총 59기 중 절반에 해당하는 29기가 충남에 위치하고 있다. 충남에서 2036년까지 폐쇄되는 석탄발전소는 14기다. 전국 두 번째로 석탄발전소가 많은 경남에서도 2026년부터 2031년까지 순차적으로 폐쇄될 석탄발전소 10기가 있다.

우리는 충남에서 단 한 명의 해고도 없는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깃발을 든다. 탈석탄에 따른 고용 대책도, 기후위기 대책도 없이 뒷짐지고 서 있는 정부야말로 기후지체의 주범이라고 생각한다면, 늘 그래왔듯 직업훈련, 취업알선으로 시늉만 내는 정부 대책으로 파생된 지역경제 위기가 안 그래도 기후위기로 살 길 막막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더 암울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면, 주저없이 툴툴 털고 일어나 태안으로 향하는 길에 몸을 실을 일이다. 가서 우리의 연대가 가장 빠르고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의 포석임을 어깨걸고 보여줄 일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정진영씨는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사무국장입니다.
#기후위기 #기후정의 #산업전환 #석탄화력발전 #정의로운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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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발전은 멈춰도, 우리 삶은 멈출 수 없다! 누구도 홀로 남겨지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충남의 노동자와 시민들이 함께 모여 330 충남행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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