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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째 사과 키우는 농가의 소원 "가격 싸도 좋으니 올해는 제발..."

[기후재앙 농업위기 시대 농민들의 목소리를 담다] 최왕진 보은사과발전협의회장

등록 2024.03.21 10:19수정 2024.03.2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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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사과발전협의회 최왕진 회장과 부인이 막바지 사과 가지치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 보은사람들

 
과거 농사는 가을철 수확을 하면 이듬해 고추모 이식이나 모내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농한기를 보냈다. 12월부터 2월까지 동면기를 보내며 9개월간 농사일하느라 힘들었던 몸을 쉬며 에너지를 충전했다.

그러나 최근의 농업은 농한기가 없다. 굳이 있다면 12월 한 달 정도. 모가 자라는 논이나 콩·팥이 차지하는 밭에 푸른기가 없을 뿐 농민들은 이듬해 더 나은 농산물을 수확하고 소득을 얻기 위해 교육도 받고 현장실습도 하고 과수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거름도 내고 나무 밑동이 터지지 않도록 페인팅 작업을 하는 등 본격 농사를 위한 준비작업을 한다.

동면 없는 시기를 보내며 막바지 사과나무 가지치기를 하는 최왕진(55, 삼승 천남3리) 충북 보은사과발전협의회장을 지난 2월 말 현장에서 만났다. 부부가 함께 늦게까지 사과나무를 살피면서가지를 잘라내고 있었다.

"수년째 계속되는 냉해... 온전한 사과 한 알 얻기 힘들었다"

최왕진 회장은 올해 사과에 거는 기대가 더욱 간절했다.

"다른 작물도 마찬가지지만 그동안 사과농가는 수년째 계속되는 냉해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냉해피해로 사과 열매를 얻지 못했는데 손에 잡을 정도의 적은 물량마저 햇빛 데임현상, 고온다습으로 인한 탄저병 때문에 온전한 사과 한 알 얻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내다 팔 사과가 없으니 자재비도 갚지 못해 대출을 받는 농민도 있습니다. 다달이 월급이 나오는 게 아닌 농민들은 올해 사과 농사를 짓기 위해 또 대출을 받고 있는 현실에 한숨만 나옵니다. (출하하는 사과) 가격이 좀 싸게 나와도 좋으니까 올해는 냉해 피해 등 큰 재해가 제발 없길 바랍니다."


최왕진 회장은 농민들이 동상해 피해 방지를 위한 방상팬, 미세살수장치 등에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방상팬은 기름을 때서 바람개비를 돌려 서리가 과수나무에 앉지 못하도록 하는 시스템인데, 면세 적용이 안돼 농가 부담이 커서 설치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또 미세살수장치는 관정지하수를 퍼올려 나무에 뿌리는 것인데, 만약 지하수 부족으로 물이 올라오지 못할 경우 그대로 얼어버려 재해가 더 커질 수 있어 이 또한 안심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많은 농가에선 촘촘하게 짜인 망을 설치한다고 했다. 망은 햇빛 차단이 돼서 햇빛데임도 줄이고, 과일을 쪼아먹는 조수피해를 막고, 서리가 과수나무에 앉는 것을 막는 작용도 있단다.

최 회장은 기상이변을 일찍부터 체감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과거엔 늦게 수확하는 부사는 당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종종 이른 서리가 내린 후 수확했으나 지금은 11월 4·5일 늦어도 10일 안쪽으로 수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 늦으면 얼어서 저장성이 없고 품질이 떨어져 빨리 수확해야 한다는 것.

전지작업도 동해 피해가 커서 겨울에는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최 회장은 12월 중에 전지작업을 했는데 전지한 나무의 단면이 얼면서 피해를 많이 봤다고 한다. 그래서 이젠 구정 지난 뒤 영하 5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고 상온도 영상 5·6도 정도 되는 시기가 돼야 전지작업을 한다고 덧붙였다.

"가격 싸도 좋으니 올해는 피해 없길"

고온다습으로 인한 탄저병 피해 확산도 이상기후 영향이라고 최 회장은 진단했다.

고온기에 장마까지 겹치면서 지난해엔 홍로사과에서 탄저병이 확산되며 수확을 거의 포기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농사짓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최 회장은 농작물재해보험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피해항목에 냉해는 포함됐는데 탄저병은 피해가 큰 병인데도 적용대상이 아니라 농가가 피해를 입고 있다며 농작물재해보험 보상에 탄저병 항목이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냉해의 보험 적용을 위해서는 초기 현장조사뿐만 아니라 수확 직전 과수원 전체를 조사해 실제 피해상황을 반영한 보험이 적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농민들은 냉해를 입은 경우 과일이 달려도 따내지 않고 그대로 달아두는데, 이는 이듬해 사과 농사를 위한 것이라고. 정상과로 성장하지 못해 판매하기 어려운 기형과인데도 과일을 달아놓은 외형만 보고 보험적용시 차감한다며, 농민들이 억울하게 피해를 것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최 회장은 자연재해로 인한 어려움 외에 인력 확보의 어려움도 크다고 밝혔다. 또 정부는 물가를 농산물로 잡고 있어 생산량이 부족해 가격이 오르면 득달같이 수입해서 가격 하락을 유인한다고 하소연했다. 가격이 싸면 시중에 풀릴 물량을 격리해 가격을 지지해줘야 하는데, 이때는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이율배반적인 정책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통단계의 문제점도 토로했다. 설 명절에 백화점 등에서 사과 한 개가 1만 원이었던 것이 방송에서도 나왔는데, 소비자 가격이 1만 원이면 생산자인 농민이 받는 수취가격은 1/3정도에 불과하다. 생산자→청과시장 도매인→중간도매인→일반 가게→소비자 과정을 거치면서 단계별로 마진이 붙어 소비자 가격이 높아지는 것인데, 소비자나 일반인들은 농민이 1만 원을 받는 것으로 착각한다며 억울함으로 토로했다.

수년째 냉해 피해를 입는 사과 농가를 위해, 올해는 가격이 좀 싸도 좋으니까 제발 피해를 입지 않으면 좋겠다는 최왕진 회장. 그는 당도 높고 맛 좋기로 유명한 삼승사과의 선구자였던 아버지에 이어 2대째 1만여 평의 사과 과수원을 운영하고 있다. 부인 김수호(50)씨와 슬하의 1남2녀를 두고 있다.

한편 보운군에선 2022년 520호가 475㏊에서 총 8521톤을 생산했으며, 2023년도는 현재 집계중이다.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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