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가 없으면 노동조합은 반드시 져요"

[인터뷰] 조합주의 속에서 국적-지역-산별을 넘어선 연대를 말하다

등록 2024.03.25 14:08수정 2024.03.25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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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투쟁 현장에서 자주 보이는 단어가 있다. '단결' '투쟁' '연대'다. 그중 단결과 투쟁은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에 비해, '연대'는 필수로 여겨지기보다는 '있으면 좋은 것' 혹은 '받으면 좋지만 내가 하기엔 부담스러운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있으면 매우 좋으나 없어도 된다는 일종의 '보너스' 취급을 받는다. 실제로 노동운동계에선 '조합주의'가 만연하다는 자조 섞인 비판도 있다. 하나의 노동조합이 자기 노동조합의 이해관계에만 관심 있고 다른 노동조합에 전혀 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시와 자조의 대상이 돼 가는 '연대'를 다시 꽃피우는 존재들이 있다. 경상북도 구미에 위치한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은 2년 전 화재로 공장이 불타면서 공장이 청산을 선언했다. 210여 명 중 11명의 노동자가 남아서 평택에 있는 '쌍둥이 회사'로의 고용승계를 요구하고 있다. 구미와 평택, 가깝지 않은 거리에 노동조합은 평택 투쟁을 고민했다. 그때,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가 나타났다. 자신들이 대신 선전전을 할 테니 구미의 투쟁을 잘하라고 했다.

비슷한 사례가 5년 전에도 있었다. 전국에 흩어져있는 톨게이트 수납원 노동조합원들이 투쟁 속에 힘든 시간을 겪고 있었다. 매일 전쟁 같은 일상을 보내느라 막상 경상북도 김천에 위치한 도로공사 본사엔 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때, 아사히비정규직지회가 나타나서 '우리가 대신 선전전을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두 사례는 연결돼 있다. 지역을 넘나들고 업종을 뛰어넘는 연대다. 심지어 인터뷰 속에서 이는 국적을 초월한 연대와도 연결돼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이상규 지회장(2월 14일),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 이청우 활동가(2월 22일),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오수일 수석부지회장(2월 22일)을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했다(괄호 안은 인터뷰 날짜).

[PART. 1]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이상규 지회장
"직접 겪어보니 연대 없이 승리할 수 없어... 연대는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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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니토옵티칼 앞에서 발언하는 이상규 지회장 평택 니토옵티칼 공장 선전전 중 이상규 지회장이 고용승계하라는 취지로 발언하고 있다. ⓒ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2021년 5월에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도 투쟁을 했어요. 투쟁 참여 인원이 4000명쯤 됐고 다들 의지가 컸어요. 저도 자신감 넘쳤고요. 공장부지 안에 천막 수십 개를 치고 53일 정도 파업 투쟁했어요.

그런데 결국 이기진 못했어요. 투쟁이 다 끝난 후에 평가를 했는데, 이기지 못한 원인으로 두 가지가 꼽혔어요. 하나는 코로나 때문에 다수 집결이 어려운 상황, 다른 하나는 이전에 연대를 다니지 않아서 연대가 거의 없었던 것. 직접 겪어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아무리 의지가 넘치고 조합원이 많아도 연대 없이는 노동조합이 회사 못 이겨요.

그 후로 연대를 열심히 다녀요. 다른 노동조합도 연대가 필요할 테니까. 우리도 언젠가 다시 투쟁하면 이들의 연대가 필요하니까. 노동자가 회사를 상대로 싸울 때 연대는 큰 도움이 되는 게 아니에요. 필수에요. 연대가 없으면 노동조합은 반드시 져요.


"감당할 수 있는 만큼 합니다"

저희는 공장이 당진에 있어요. 당진에서 평택 니토옵티칼까지 차로 40분 정도 걸려요. 매주 한 번 가요. 피켓이랑 현수막은 저희가 직접 제작한 거고요. 품이 좀 들긴 하지만 너무 힘들진 않아요. 일주일에 한 번이니까요.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하고 있어요.

저희가 오기 전에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아래 전진)이란 단체가 먼저 평택에 왔어요. 그 덕에 옵티칼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봤죠. 전에도 상황을 듣긴 했는데, 솔직히 신경 쓰진 못했어요. 그런데 전진에서 선전전을 한다니까 자세히 찾아본 거죠. 나름 분석해보니까 고용승계가 될 수 있겠더라고요. '이거... 이길 수 있는 투쟁이다'라는 생각이 드니까 더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싶어졌고요. 회의에서 간단히 논의하고 매주 연대하는 걸로 결정했죠.

"우린 좋든 싫든 연결돼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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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니토옵티칼 앞에서 선전전하는 당진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 ⓒ 현대제철비정규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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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니토옵티칼 앞에서 선전전하는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 ⓒ 현대제철비정규지회

 
극한으로 가는 투쟁은 다 이어져 있어요. 옵티칼 투쟁이 그런 경우죠. 소수의 조합원이 외국투기자본을 상대로 열심히 싸우고 있어요. 물러날 수 없는 투쟁이에요.

노동조합들은 서로의 투쟁을 지켜봐요. '저쪽 노조 투쟁이 우리한테 도움이 되려나' 생각하기도 하고요. 노동자들도 이러는데, 회사들은 어떻겠어요. 혹여나 노동자가 이겨서 회사한테 안 좋은 사례가 생길까봐 유심히 지켜보고 있을 거에요.

만약에 옵티칼 노조가 이길까봐 다른 외국투기기업들이 얼마나 신경쓰겠어요. 심지어 저희 현대제철 사측도 지켜보면서 자기들한테 불리한 사례가 생기는 걸 걱정할 거에요. 그리고 만약에 옵티칼 노조가 지면 '이래도 되는구나' 생각하고 나중에 똑같이 하겠죠. 그러니까 옵티칼 투쟁은 남의 일이 아니에요. 우린 연결돼 있어요. 좋든 싫든 노동자는 하나에요. 하나여야 해요.

[PART 2]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 이청우
"누군가 반드시 화답할 거라 확신했죠... 우리는 길만 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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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공장 앞 선전전을 하는 사회주의를향한전진활동가들. ⓒ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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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니토옵티칼 앞에서 선전전을 하는 이청우(왼쪽에서 네 번째)와 활동가들. ⓒ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

 
지난해 8월에 100여 명이 옵티칼에 모였어요. 투쟁을 지지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이었어요. 그때 조합원들과 간담회를 했는데, 사람들한테서 느껴지더라고요. '옵티칼 투쟁은 이길 수 있는 투쟁이다' '이 투쟁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열정을 다들 갖고 있는 게요.

그런데 서울이랑 구미는 거리가 머니까 날마다 구미로 연대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구미 공장을 지키는 것만으로 투쟁이 타결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그때 2019년 여름에 톨게이트 수납원 노동조합이 투쟁할 때 구미 아사히비정규직지회가 김천 도로공사 본사에서 대신 선전전을 한 게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평택 공장 선전전을 고민했죠. 고민 중에 확신이 들더라고요. '우리가 시작하면 분명 어디선가 누군가 화답한다. 우리는 길만 열면 된다.' 그래서 8월 말에 평택 선전전을 했어요. 그리고 예상이 맞았죠.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가 먼저 받아안았고 곧 기아자동차지부 화성지회 조합원들도 참여하겠다고 밝혔고 충남에 있는 활동가들도 조금씩 같이하고 있어요. 뿌듯했죠.

다시 그 연대를 만들 수 있을까

충남 아산에 있는 '세원테크'라는 공장에 용역이 폭력적으로 들어온 적이 있었어요. 2001년 12월의 일이에요. 그때 노동조합이 투쟁을 하니까 다 끌어내려고 온 거죠. 그게 출근시간이었는데, 소식을 들은 충남의 여러 노동조합이 통근버스를 돌렸어요. 통근버스가 출근을 안 하고 전부 세원테크로 모였어요. 다른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힘을 합쳐서 용역을 막아냈죠.

그런 연대를 사람들은 '이젠 옛날 일이지'라고 말해요. 하지만 저는 앞으로도 그런 연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래로부터의 움직임을 통해 조합주의를 벗고 달라질 수 있어요. 마치 5년 전 아사히비정규직지회와 지금의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처럼요.

[PART 3]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오수일
"우리도 '대신 선전전'을 받았어요... 연대는 주고받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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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공사 본사 앞 선전전을 하는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지회 조합원들 단체사진 ⓒ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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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공사 본사 앞에서 오수일 수석부지회장(왼)과 조합원이 선전전을 하고 있다. ⓒ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

 
아사히글라스는 일본 기업이에요. 2004년에 한국자회사인 'AGC화인테크노한국'을 만들어서 구미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죠. 그런데 2015년에 노조를 만들자마자 사내 하청업체 도급계약을 해지하면서 178명을 해고했어요. 지금 22명이 남아서 약 9년간 해고철회 투쟁을 하고 있죠.

구미 공장 앞에 농성장도 차리고 문화제도 하면서 열심히 투쟁하고 있어요. 일본 본사를 찾아가는 게 필요하긴 하지만, 필요하다고 일본을 계속 왔다갔다 할 수는 없죠. 고민이 컸어요. 그런데 일본에 있는 노동활동가들이 우리 대신 일본 본사 앞에서 선전전을 해줬어요. 한국의 노동자들 해고하면 안 된다고. 엄청 고맙더라고요.

'너네는 뭔데 여기서 난리야?'

2019년 여름, 톨게이트 수납원 노동자들이 투쟁했어요. 직접고용을 요구하다가 집단해고를 당해서 투쟁이 더 커졌죠. 집행부가 매일 경찰서랑 병원을 다녀야 해서 김천 도로공사 본사 앞에선 아무것도 못하고 있더라고요.

톨게이트 노동조합이랑 간담회를 했는데, 우리가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되더라고요. 일본 동지들이 우리한테 해줬던 게 생각났어요. 그래서 우리가 일주일에 한 번씩 도로공사 본사를 대신 찾아갔어요. 도로공사 건물 앞에서 투쟁가 틀고 현수막을 들었죠. 수납원 집단해고 철회하라고.

도로공사에서 경악해서 뛰쳐나오더라고요. 처음엔 몸싸움도 했어요. 현수막 뺏으려고 하고 밀치기도 했지만 우린 매주 계속했죠. 그때 도로공사 직원이 나와서 우리 조합원이랑 이런 얘기도 했어요.

"너네는 남이잖아. 쓸데없이 왜 왔어. 당사자도 아닌데 왜 왔냐고."
"우린 같은 민주노총이고 동지입니다. 남 일이 아니에요. 우리 일입니다."
"웃기는 자식이네."

이 사안은 우리 일과 같아요. 어떻게 남의 일이 되겠어요. 노동자는 하난데. 그 당시 '노동자는 하나'라는 말을 절실히 느꼈어요. 우리 대신 선전전 해줬던 일본 동지들도 그걸 느꼈기 때문에 해줬겠죠. 국적, 산별, 지역과 상관없이.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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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공사 본사 앞에서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이 투쟁을 외치고 있다. ⓒ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

 
이번에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를 보면서 뿌듯했어요. 매주 평택에서 선전전하겠다고 처음 소식 올라왔을 땐, 우리 생각이 나더라고요. 지회 차원의 동의를 얻는 게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운데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요즘 자기 노동조합만 챙기고 연대를 잘 안 하는 조합주의가 많다고들 해요. 그런데 저는 막상 자기가 그런 일을 당한 게 아니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노동조합을 처음 만들 때, 투쟁하느라 생긴 게 아닌 곳도 있잖아요. 자기가 직접 해고되고 연대 받는 투쟁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고요.

그런데 제가 당해보고 싸워보니까, 정말 하나가 되어서 싸우지 않으면 자본을 이기기란 정말 힘들어요. '이기는 투쟁'을 하기 위해선 연대가 필수에요. 노동조합이 노동조합답게 활동하기 위해선 연대하고 연대 받아야 한다고도 생각하고요.
#노동조합 #구미 #선전전 #연대 #집단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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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어렵다고 안 할 것인가'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살고 있는 이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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