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공공전력의 민영화는 안 될 일이다

등록 2024.04.22 10:20수정 2024.04.22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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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가정(假定)'은 무의미하다고 한다. 시간은 비가역이고 역사가 시간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가 역사를 알고 공부하는 것은 역사가 품고 있는 교훈 때문이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에 연결된다. 단순 반복 재생은 아니지만 원인과 결과의 상관관계로 묶여 있다. 과거의 사건은 시간이 흘러 사라지지만 그때 내려진 결정은 오늘과 내일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친다. 그런 점에서 역사는 '생물'이다.

전기(電氣)는 현대문명을 움직이는 엔진이다. 세상을 밝히기도 하지만 현대산업에 없어서는 안 될 기본적인 힘이다. 석유·석탄 등 화석연료는 인류사 오랫동안 쓸모가 크지 않았다. 인류가 땅속 깊이 잠들어 있던 화석연료를 대량으로 채굴하기 시작한 건, 전기 생산에 유용해지면서 부터다. 함께 잠들어 있던 탄소도 방출됨에 따라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증가했고 지금의 기후 위기를 초래했다.

전기는 고대 그리스인들도 알았다. 기원전 600년 경에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탈레스는 모피에 호박 조각을 문질러 원시적인 교류 전기를 발생시켰다. 2400년에 걸친 실험 끝에 험프리 데이비가 탈레스의 마술을 전기 램프로 바꿔 놨다. 데이비의 조수였던 마이클 페러데이는 실제로 작동하는 '발전기'를 만들었다. 우리가 잘 아는 에디슨은 실험실의 전기를 상업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전력 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더불어 전력 통제를 둘러싸고 정치적 투쟁도 본격화했다. 여기서 잠깐 미국의 에너지 전쟁사를 들여다 보자. 전 세계 경제의 23%를 차지하는 미국은 글로벌 에너지 정책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미국의 에너지 시장은 '공공전력'과 '민영전력'의 치열한 각축장이었다. 결과는 '공공전력'의 참패였다. 현재 미국 전력 공급의 85%는 민영전력이다. 공공전력 실패의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됐다.

반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33년 부활한 농업노동자 운동의 지지를 받은 루즈벨트의 뉴딜 의회가 있었다. 루즈벨트는 거대한 연방 전력 지구를 건설하려 했다. 1952년 해리 트루먼은 페일리위원회를 통해 태양광 발전 미래를 약속했다. 1년 후 아이젠하워는 미국을 원자력이라는 비극적인 우회로에 올라서게 했다.

자본이 화석연료를 선호하는 건 이동의 편의성 때문이다. 이동이 편리하다는 건 중앙 집중이 용이하다는 것이다. 자본은 에너지원을 중앙 통제하고 싶어한다. 수요와 공급을 관리하면서 시장 가격을 조절하고 싶기 때문이다. 자본이 원하는 메커니즘에서 보면 '원자력'은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최적의 돌파구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화석연료에 비해 에너지 효율이 높다. 하지만 이동이 불편하고 중앙 집중이 안 된다. 자본이 선호하지 않는 이유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에너지 전환이 절실한데도 좀체 속도가 붙지 않은 건, 이러한 자본의 속성 때문일지 모른다.


현재 미국의 전력 시장은 화석연료의 경제적 비효율과 원자력 투자 실패에 따른 부담에 노출돼 있다. 화력·원자력 발전소가 줄지어 도산하고 있다. 정상적인 시장경제체제라면 화석연료와 원자력 대신 경제성 있는 에너지원으로 이동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민영전력회사를 살리기 위해 손실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시키는 것을 묵인하고 있다.

미국이 해리 트루먼의 1952년도 페일리보고서에 규정된 태양광 발전 경로를 선택했다면, 세계의 에너지 경제는 안정적이고 생태적으로 건전한 기반 위에 자리잡았을 것이다. 석유를 둘러싼 비극적인 전쟁도 발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분명한 건 지금보다 물질적으로나 건강의 측면에서나 상당히 풍요로워졌을 것이다.

미국의 에너지 전쟁사를 보면서 반면교사를 삼는다. 우리는 공공자원인 물과 전기를 공공의 테두리 안에서 잘 관리해 왔다. 지금까지 애써 지켜 온 정책을 검증되지 않은 근거로 민영화를 시도하는 것은 역사를 거스르는 일이다. 역사가 주는 금과옥조를 무시하는 나라치고 제대로 서는 나라는 없었다. 공공전력의 민영화는 안 될 일이다.
#공공전력 #민영화 #해리트루먼 #플래닛03 #화석연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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