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픽사베이
또다시 교내 시험 중 부정행위가 접수됐다. 교실 내 동급생이 감독관에게 신고한 것이다. 종료령이 울렸는데도 펜을 놓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규정에 따라 종료 3분 전에 답안지 교체가 불가하다는 안내와 함께 시험 종료가 임박했음을 알리는데, 안내 방송을 놓친 모양이다.
온전히 그 친구에게 귀책 사유가 있으므로, 학교는 규정에 따라 조치하면 된다. 자백으로 사실 확인이 끝났으니, 조만간 학업성적관리위원회가 열릴 테고 해당 시험 과목은 0점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조금 가혹하다 싶지만, 규정대로 처리하는 게 학교로선 뒤탈이 없다.
부정행위 관련 규정은 수능의 그것과 거의 똑같다. 굳이 다른 게 있다면, 수능과 달리 문제지의 표지가 없어 배부 뒤 첫 페이지의 문제를 시작종이 울리기 전에 흘깃 훑어볼 수 있다는 것 정도다. 답안지를 문제지 위에 올려 보지 못하게 하지만 완벽하게 막을 순 없다.
스마트폰이나 스마트워치를 소지하는 경우는 말할 것 없고, 책상 안에 시험 과목 관련 교과서나 공책이 들어 있는 경우도 부정행위다. 시작종이 울리기 전에 펜을 들어도 안 되고, 도중에 화장실에 가는 것도 금지된다. 수학 영역 시험 때 연습장을 꺼내 푸는 것도 안 된다.
전자기기 소지 사실이 나중에 발각되면 당일 치른 모든 시험이 0점 처리된다는 규정도 있다. 부정행위는 아니지만, 컴퓨터용 수성 사인펜을 사용하지 않거나 서술형 답안을 연필 또는 빨간색 볼펜으로 적은 경우에도 0점을 받게 된다. 학교에서 이토록 촘촘하고 엄격한 규정은 찾기 힘들다.
커닝보다 성적 강박에 시달리게 한 사회가 더 나쁘다
시험 때는 친구도 없다. 1~2점 차이로 등급이 갈리는 한 줄 세우기 경쟁에서 친구는 수많은 경쟁자 중 한 사람일 뿐이다. 감독관의 눈엔 별 게 아니다 싶은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부정행위 아니냐며 신고한다. 수험생으로서 그로 인해 관계가 소원해지는 건 차후 문제다.
부정의 반대말은 공정이다. 시험에 대입하면, 정해진 규정을 어긋남 없이 지킨다는 뜻이다. 사용할 볼펜의 색깔까지 지정해 놓을 만큼 지나치다 싶은 규정도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당연시된다. 공정에 대한 가치가 강조될수록 규정은 더욱 세세해지고 엄격해진다.
규정의 교육적 의미와 영향 따위를 따져볼 겨를조차 없다. 일부 교사들조차 야멸차고 맹목적이라고 해도 '공정하게' 순위를 매기려면 불가피하다고 여긴다. 시험을 통해 계량화된 점수로 아이의 역량을 판단할 수 없다고 성토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며 이내 고개를 떨군다.
이 와중에 커닝하다 들킨 '간 큰' 아이가 적발됐다. 걸리면 0점 처리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내신 등급을 위해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을까. 그의 낯빛에는 성적 강박에 따른 불안과 초조로 가득하다. 조마조마하며 커닝 페이퍼를 만들었을 그가 되레 가엾다는 생각마저 든다.
손에 장갑을 끼거나 책상 위에 손수건을 올려놓은 채 응시하는 아이들이 종종 눈에 띈다. 긴장하면 손바닥과 얼굴 등에 땀이 흐른다고 하소연한다. 예전엔 수능 시험장에서나 볼 수 있었는데, 요즘 들어선 교내 시험에서도 흔히 보이는 풍경이다. 내신이 수능만큼 중요해져서다.
꼼꼼한 규정과 깐깐한 감독에 몽니 부릴 일은 아니다. 다만, 이것이 과연 공정한 경쟁을 위한 것인지, 나아가 교육의 본령에 부합하는지 자문해 봐야 할 때다. 시험 한 방으로 인생이 결정되는 후진적인 사회 구조는 방치한 채, 시험의 공정성에만 매몰되는 건 몰상식한 처사다.
커닝은 나쁜 짓이다. 그러나 아이들을 십여 년 동안 성적 강박에 시달리게 만든 사회는 더 나쁘다. 종일 손에서 장갑을 벗지 못하는 아이와 신용카드 크기의 포스트잇에 교과서 내용을 옮겨놓은 아이, 친구가 커닝했다고 스스럼없이 신고하는 아이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포개진다.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의 가치관이 학교 교육을 짓누르는 이 강퍅한 사회가 아이들을 병들게 하고 있다. 쇠고기 부위별로 품평하듯 애먼 아이들을 등급으로 갈라치는 게 과연 교육일 수 있을까. '1등급 학생'이라고 불리는 게 소원이라는 한 아이의 말이 그저 참담할 따름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8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공유하기
서로 부정행위를 신고하는 교실, 시험 때는 친구도 없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