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08 16:43최종 업데이트 23.12.08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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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은 이태원을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각자에게 이태원은 어떤 의미인지, 참사 이후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기억해 왔는지, 앞으로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이 기록이 또 다른 이야기를 여는 마중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지난여름, 일곱 명의 기록단이 아홉 명의 인터뷰이를 인터뷰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일곱 명의 기록단을 역으로 인터뷰했습니다.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은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이태원과 참사의 의미를 폭넓게 그리고자 합니다. - 기자말

 

지난 2022년 11월 16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국화꽃을 든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기도하고 있다. ⓒ 권우성


#5 곽범조씨의 이야기를 들은 노호태씨의 이야기

단골 손님으로서 쌓은 신뢰

호태씨는 매년 이태원을 찾았다. 참사 당시에도 친구들과 함께 이태원에서 핼러윈을 즐기고 있었다. 술을 마셔 취한 상태였지만, 그날의 기억은 또렷하다. 시끄럽게 울리던 음악 소리가 문득 그쳤고, 어둡던 실내는 난데없이 밝아졌다. 호태씨는 회상한다. 그 골목에 있었던 게 나였을지 모른다고. 때문에 그날 이후를 살아가는 마음은 전과 같지 않다. 그토록 사랑하는 놀이터를 잃은 것만 같은 기분도 어쩔 수 없다.

"저는 힘들지 않고 괜찮아요. 그런데 그날 이후로 이태원에서 놀았던 기억은 없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그냥 묵묵히 지나치게 되더라고요. 보통 이태원만의 자유로운 느낌을 좇아서 갔는데 이제 그런 느낌이 잘 안 나기도 하고, 또 그런 일을 목격했는데 다시 와서 노는 제 모습이 보기 좋지 않은 것 같아서요. 인터뷰하러 간 게 그날 이후 처음이었어요."

섹터 118. 호태씨는 참사 당시 머물렀던 가게를 오랜만에 방문했다. 휴무일에 일부러 시간을 낸 범조씨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호태님이 연락을 주셨을 때 엄청 기분 좋게 받았어요." 그동안 모든 인터뷰를 거절해 온 범조씨지만, 단골 손님인 호태씨의 제안만큼은 기꺼이 응했다. 정치적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는 당부를 전했고, 호태씨 또한 거듭 약속했다. 그리고 그 이전에 두 사람이 쌓은 신뢰가 이미 두터웠다.

"섹터는 제가 행사를 준비하면서 공간을 알아보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어요. 국악 공연을 하고 싶었는데, 섹터가 원래 힙합 라운지라 대관을 승인하기 어려울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범조님이 선뜻 오케이 해 주시고, 당일에도 엄청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러고 나서 종종 놀러갔던 거죠. 그래서 저한테는 소중하고 감사한 분인데, 참사가 일어나고 나니까 안타까운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이곳이 어려워질 게 기정사실처럼 보였으니까."

숫자로 표현되지 않는 이야기

참사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매출이 회복되더라도 더는 영업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무거운 책임을 짊어지기도 한다. 호태씨는 기록단 활동을 통해 그 낱낱의 삶을 구체적으로 그리게 되었다. 어린 직원들부터 챙기며 그들의 보호자에게 먼저 전화를 돌리던 범조씨의 대처는 얼마나 성숙하던지. 그 어른스러운 모습에 감명 받으면서도, 정작 범조씨 자신은 주변 사람들과 연락을 끊고 지냈다는 이야기를 아프게 들었다.

"결국 나와 무관한 사건은 없는 것 같아요. 한 사건에 직접 영향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와 연결된 사람이 있고 그렇게 나도 연결되니까요. 저는 수학을 공부했거든요. 통계를 통해 세상을 일반화하는 사고에 익숙한데, 숫자로 표현되지 않는 이야기가 역시 많더라고요. 되게 섬세해져야 하고 훨씬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 같아요. 그만큼 무엇이든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호태씨가 기록단을 통해 희망을 느꼈던 건, 바로 그런 연대감 때문이다. 종사하는 분야가 다르더라도, 다들 비슷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편, 완성된 결과물은 기성세대에게 보여 주고 싶다. 반복되는 참사 속에서도 세상은 나아지고 있으니, 미래를 낙담하는 대신 희망을 갖고 응원을 보내 주길 바란다. 호태씨가 추가로 섭외하고 싶은 인터뷰이로 정치인을 택한 이유 역시 통한다. 전부 단단히 연결되기 위함이다.

"시민들이 원하는 걸 하는 게 정치인이잖아요. 시민들이 이런 건강한 추모 문화를 바라고, 이태원 문화가 계승되기를 바란다는 걸 정책 입안자들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계속 목소리를 내면 들려지고, 그 메시지 역시 전달된다는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으면… 어쨌든 결과물이 일단 많이 읽혔으면 좋겠네요. 아직까지 이 참사가 사람들한테 잊힌 기억이 아니고, 잊기에 너무 빠르다는 걸 일깨웠으면 좋겠어요."

살을 맞대고 '껴울리는' 경험

참사 이후를 살아가는 건 호태씨도 마찬가지다. 이제 삼십대에 접어든 호태씨는 잘 산다는 게 무엇인지 고민이 많다. 올해 초에는 이태원과 가까운 해방촌에서 미디어 사업을 시작했다. 물리적인 공간을 매개로 사람들이 연결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고, 지금도 매달 다양한 모임을 열고 있다. 앞으로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주제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를 꾸준히 마련하는 게 호태씨의 목표 중 하나다.

"회사 이름인 '껴울림'은 공명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이에요. 각기 다른 물체가 같은 주파수로 울리는 게 공명이잖아요. 그렇듯 이 세상에 공명을 만들고 싶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물론 메시지를 전하는 모든 매체를 미디어라 하지만, 어떤 콘텐츠를 중심으로 하기보다 살을 맞대고 껴울리는 경험 그 자체를 핵심으로 하는 거죠. 사실, 이태원 참사를 통해서 논의할 수 있는 공동체적인 가치가 많기 때문에 이곳에서 계속 공론장을 진행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껴울림이 위치한 해방촌도 호태씨에게 뜻깊다. 동네 한 바퀴를 걷다 보면,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가게를 만날 수 있다. 그 매력에 빠진 호태씨는 특색 있는 사업장을 차려 이 마을과 실컷 껴울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애정을 키우던 시기, 때마침 버스 정류장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에 신청했다. 용산FM의 존재도 그렇게 알게 되었다. 원래도 인터뷰 활동에 관심이 많았지만, 시민 주도로 진행되는 기획이라는 점에서 더욱 호기심이 들었다.

"방송국이나 시민 단체에서 하는 것에 비해 훨씬 창의적인 시도잖아요. 공동체 미디어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았고, 껴울림도 해방촌에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안 그래도 주변 상인분들이랑 친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돌아다니면서 인사도 드리고 그러는데, 다들 이 지역이 잘 되길 바라기 때문에 반갑게 맞아 주시는 것 같아요. 상점이든 식당이든 정말 진심으로 자기 하는 일에 자부심 느끼는 분들도 많고요."

마지막으로, 호태씨가 떠올린 키워드는 믿음이다. 각자도생하기보다 서로 믿을 수 있는 사회는 어떻게 가능할까. 그런 믿음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호태씨는 껴울림을 통해 고민을 이어 가고자 한다.

"개개인 사이에서도 그렇고, 공공기관을 향해서도 그렇고 신뢰가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모두 국가적 재난이잖아요. 구조적인 문제로 발생했으니까. 그렇게 집단에 대한 불신, 이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나타나고 있는데, 어떻게 우리 사회가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6 선샤인, 정승씨님의 이야기를 들은 심나연, 홍다예씨의 이야기

두 사람이기에 가능했던 인터뷰 

나연씨와 다예씨는 팀을 이루어 역할을 분담했다. 인터뷰이를 만나면, 나연씨가 질문을 던지고 다예씨가 그 옆에서 카메라를 잡았다. 두 사람은 다큐멘터리 영상 제작을 염두에 두고 기획을 시작했다. 저녁쯤 만나 의견을 나누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겼다. 촬영을 위해 이태원을 찾는 일도 많았다. 그렇게 모든 과정을 함께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 우정은 현재 진행형이다.

"비슷한 나이대 사람들을 만나 친해지고 싶었어요. 어떤 이유로 참사에 대해 마음을 쓰게 되었는지 나눌 때, 다들 정말 다양한 배경에서 관심을 갖는구나 다행이다 싶었죠. 그리고 다예님을 찍어 놨어요. 인터뷰를 어떻게 진행할지 꽤 오래 이야기했어요. 각자 제시하는 방향이 다를 때도 있어서 맞춰야 했거든요. 사실, 이렇게 일하는 게 익숙하지 않았어요. 다예님이랑 같이 안 했으면 어려웠을 것 같아요." (심나연)

인터뷰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친구와 수다떨듯 친근했고, 그만큼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같은 세대로서 공유하는 감각이 있었을까. 나연씨와 다예씨는 인터뷰이에 대한 책임감도 강하게 느꼈다. 결과물이 나오면 누구에게 보여 주고 싶은지 묻자, 두 사람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지목했다. "샤인님, 승연님." 당신들 덕분에 완성할 수 있었다고. 기꺼이 이야기를 들려준 인터뷰이에게 먼저 소식을 알리고 싶었다.

"아무래도 저희가 젊은 여성이고, 비슷하게 놀았을 거라 생각했을 것 같아요. 이태원에서, 펍에서 논다는 이야기를 자유롭게 말하기 어렵잖아요. 특히 모르는 사람들이랑 술집에서 놀았다고 하면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도 많은데, 좋았던 기억으로 말해 줬어요. 그 분위기를 잘 전하고 싶어요. 이태원에서 모르는 사람들이랑 노는 거, 술 마시는 거, 그리고 이야기 나누는 거. 그런 것들의 즐거움을 잘 전하고 싶어요." (홍다예)

이태원의 놀이 문화와 청소년

인터뷰에 앞서 나연씨와 다예씨는 소품을 준비했다. 다가오는 핼러윈을 맞아 인터뷰이 각자가 종이 가면을 만드는 장면을 담고 싶었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샤인씨가 조립한 것을 승연씨가 건네 받아 꾸미는 식으로 대체했다. 처음 의도와 달라졌지만, 의미는 새로 발견되었다. 퀴어 아티스트로서 이태원에서 드랙퀸 공연을 선보이는 샤인씨와 이태원을 즐겨 찾으며 그 문화를 만끽하는 승연씨. 두 사람의 연결이 그려졌다.

"저는 두 분이 서로 만날 일이 없는 분들이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겹치는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신경 안 쓰고 그날 하루 친구가 되는 경험을 둘 다 했다는 게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이태원에서 놀다 보면 마인드 셋이 달라진다는 이야기도요. 저도 이쪽에서 일하고 살면서 성격이 되게 많이 변했거든요. 새로운 사람 만나는 걸 별로 안 좋아했는데, 이제 새로운 사람도 많이 만나고…" (심나연)

나연씨와 다예씨는 이태원의 놀이 문화에 주목했다. 그중에서도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궁금해 섭외에 공을 들이기도 했다. 술집이나 클럽에 출입이 어려운 청소년들은 과연 이태원을 어떻게 경험하고 있을까. 인근 학교에 공문을 보내고 직접 방문해 협조를 구해도 보았지만, 아쉽게도 인터뷰이를 찾는 데 실패했다. 청소년 시절, 이태원을 선망하며 퀴어 친구들과 핼러윈 축제를 즐겼다는 샤인씨의 이야기만이 단서로 남았다.

"항상 궁금했어요. 제가 홍대 근처에 살거든요. 여기는 다 돈 쓰는 곳인데 청소년들은 어디서 놀까? 옷은 어디 가서 살까? 뭐하고 놀까? 놀이터라고 해 봤자 어른들이 취해서 돌아다니기만 하는데. 길을 걸을 때마다 초중고 학생들이 보이는 거예요. 저 친구들은 나랑 되게 다른 세상을 살겠구나. 처음 기록단에 지원할 때도 청소년 관련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청소년 미디어 교육을 오래 하기도 했고, 고등학교 기숙사 사감 일을 한 적도 있고요." (홍다예)

당사자가 아니라도 이야기할 수 있다

나연씨의 경우, 얼마 전까지 이태원의 한 식당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사무실에서는 합동 분향소가 내려다보였다. 참사 이후 일대에 온갖 현수막이 걸렸고, 나연씨의 지인은 그 광경을 '기사 댓글창'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토록 날이 선 말들을 마주했던 나연씨. 그런데 한편으로는 아무도 참사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게 이상하고 괴로웠다. 그 무렵 수강하던 시 수업에 겨우 글을 써 가자 뜻밖의 응답이 돌아왔다. 다들 누군가 이야기 꺼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듣는다는 게 기록단의 제일 큰 의미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사실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랑 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들어 보려는 시도가 이전에 있었나 싶어요. 그리고 참사에 대해 당사자성을 갖지 않는 분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어 좋았어요. 목소리 내는 걸 꺼릴 수 있잖아요. '내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런 걸 걷어내고 각자 느낀 대로 이야기하는 기회를 마련했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심나연)

나연씨 또한 그동안 느낀 혼란을 조금이나마 매듭지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 도움이 되었다. 한편 다예씨의 경우, 이태원과 다소 인연이 깊지 않다. 그럼에도 세월호 참사부터 이태원 참사까지 모두 또래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 시절 겪은 학내 미투 시위가 떠오르기도 했다. 피해자 곁에서 함께하는 움직임이 얼마나 중요하던지.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은 두 사람에게 그렇게 남았다.

"샤인님은 소수자 정체성을 지니고 이야기하는 느낌이었다면, 승연님은 이태원에서 놀던 사람으로서 이야기하는 느낌이었어요.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서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데 의미를 많이 두었던 것 같아요. 물론 유가족분들이 발언권을 크게 가져야 하는 게 맞지만, 사실 오히려 더 부담스러울 수도 있잖아요. 그럴수록 같이 연대하는 목소리가 이렇게  많아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홍다예)

- 인터뷰어 : 이상민 / 인터뷰이 : 심나연, 홍다예
이 기사는 연재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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