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02 07:15최종 업데이트 24.02.02 08:39
  • 본문듣기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동작구 숭실대학교 한경직기념관에서 열린 ‘함께하는 대학생의 미래’를 주제로 대학생들과 간담회에 참석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유성호

 
"그 사람들은 저를 대통령님의 아바타라고 그러지 않았나요? 제가 아바타면은 당무개입이 아니지 않나요?"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의 어법은 난해하다. 본인은 대통령의 아바타도 아니고, 대통령의 당무개입도 없었다는 걸 강조하려 했지만 앞뒤 인과 관계가 맞지 않다 보니 무슨 주장을 하려는지 선뜻 알아듣기 힘들다. 줄곧 아바타가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다가, 대통령의 당무개입 논란이 생기자, '야당이 아바타라고 부르고 있으니 당무개입이 아니지 않느냐(?)'라고 하는 건 논리를 꼬아 만든 말장난에 불과하다. 


아바타는 가상 게임에서 쓰이는 용어로, '허수아비'와 '꼭두각시'로 대체해서 쓸 수 있는 말이다. 한동훈 위원장에게 '대통령의 아바타'라는 곱지 않는 별명이 붙은 건 검사 시절부터 함께 해왔고, 법무부 장관 시절에는 대통령을 대신해 야당과 정쟁의 최전선에 서온 이력 때문이다. 김기현 전 대표가 낙마하고 그가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인받는 과정도 국민 여론이나 당원의 뜻이라기보다는 대통령이 분신같이 부릴 수 있는 사람을 차출했다는 것이 국민 일반의 시선이다.

물론 대통령의 아바타가 아니라는 걸 보여줄 기회가 있긴 했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을 두고 "국민들이 걱정하실만한 부분이 있다"라며 대통령실과 다른 목소리를 냈던 한 위원장. 대통령과 갈등이 수습되자 "김건희 여사의 사과를 얘기한 적 있던가?"라며 태도를 바꿨다. 홀로서기는 실패했고, 대통령 아바타라는 이미지는 공고해졌다.

아바타라면 당무 개입이 아니다? 검찰식 말장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가진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오찬에서 창밖을 보며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2024.1.29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연합뉴스

 
지난달 21일, 한 위원장이 김경율 국민의힘 비대위원을 마포을에 공천하겠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대통령실이 '공천이 아닌 사천'이라는 이유를 들어 한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에 대해 한동훈 위원장은 지난달 22일 기자들의 질문에 "제가 사퇴 요구를 거절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말하기 어렵다"라고 답변했다.

이는 사실상 전날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나 사퇴 요구를 받았다는 보도를 확인 시켜주는 발언이었다. 총선을 앞두고 (표면적으로) '사천'을 이유로 대통령실에서 사퇴를 요구한 사실은 대통령의 부인할 수 없는 당무개입이다. '대통령 아바타'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역시 대통령 당무개입과 하등 관계가 없다. 또 당무개입을 판단할 권한도 한 위원장에게 있지 않다. 20대 총선 당시 정무수석을 통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천개입에 대해 법원은 징역 2년형을 선고했다. 검사로서 '당무개입'의 요건을 누구보다 훤히 알고 있을 한 위원장 아닌가. 아바타라는 비난을 차용해 당무개입이 아니라니, 대통령 감싸기가 참 억지스럽다.

총선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한 위원장이 펼쳐는 차기 국회의 청사진은 보이지 않는다. 철도 지하화 등 공약이 없진 않지만 당장 눈에 들어오는 건 '86세대 척결론'이다. 또한 국희의원 수를 줄이고 국회의원이 금고형 이상 형을 받을 경우 세비 반납을 법으로 강제하겠다고 한다. 논란이 있을 수 있다. 1/300의 권력을 1/250로 의원수를 줄이면 권력은 오히려 커진다. 금고형 이상 확정시 세비 반납을 강제하겠다는 것도 위헌 소지가 있어서 실현 가능성을 따져봐야 한다. 그런데도 민주당에게 이 제안을 받을지 말지 선택하라는 건 독선이고 홀로 옳다는 아집이다.

86세대 척결론도 그렇다. 86세대가 후 세대를 위해 물러나야 한다는 건 일정 부분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그러나 86세대 전체를 악마화하고, '자객공천'을 통해서 이들을 심판하겠다는 건 동의할 수 없다. 더구나 자객공천으로 거론된 인물들이 참신하고 새로운 인물들도 아니다.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의혹에 연루된 전 장관, 부친 부동산 투기 의혹에 의원직을 사퇴했던 인물, 검찰 개혁의 갈등에서 검찰의 논리만 옹호한 인물들을 대거 내세우는 건 미래를 위한 비전 제시라 보기 힘들다.

'여의도 사투리'를 쓰지 않겠다던 한 위원장의 사고와 어투는 예전 공안 검찰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다. 군사독재 시절 운동권 척결을 위해 정권과 검경이 하루가 멀다않고 대책회의를 하던 오래된 풍경이 한 위원장에게서 보인다. 야당이 아니라 피의자, 선의의 경쟁 상대가 아니라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며, 오로지 옳은 건 본인이다. 그러나 '86세대 척결'이 아니라 '검찰독재 청산'이 급하고, 한 위원장의 '공안 검찰적 사고'가 '여의도 사투리'보다도 더 낡았다는 여론이, 윤석열 대통령 부정 평가만큼 많은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검찰의 언어, 대통령 하나로도 숨 막힐 지경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10일 오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부산 당원과의 만남에서 셀카를 찍고 있다. ⓒ 연합뉴스

 
한 위원장이 여의도의 언어보다는 서초동(검찰)의 언어에 더 익숙해 보이는 모습은 또 있다. 지난달 10일 부산을 방문한 자리에서 "부산 근무 시절 사직에서 롯데 야구를 봤다" 발언에 <오마이뉴스>가 〈"'문재인정부 좌천 때 저녁에 사직구장에서 야구 관람했다"했지만 그때는 코로나로 무관중〉이라는 부제를 달아 기사화했다. 민주당이 '한 비대위원장이 야구를 봤다는 시기는 코로나 팬더믹으로 무관중 경기'였다고 지적하자 국민의힘은 한 위원장의 봉다리 응원 사진을 공개했는데, 이 사진 또한 2008년 사진이라는 논란에 휩싸였다는 내용이다.

이에 한 위원장은 지난달 19일 자신의 발언을 비판한 <오마이뉴스> 기사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사직'에서 야구를 봤다는 걸 '사직구장'에서 야구를 관람했다고 보도한 것으로 인해 "심각하게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라고 주장하며, 이를 바로 잡고자 한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사직구장서 본 거 아니다? 한동훈의 황당한 정정보도 신청https://omn.kr/278ue)

한 위원장의 최초 발언에 '사직'을 '사직구장'이라고 오해할 여지가 있었다면, 국민의힘에서는 봉다리 응원사진을 내걸기보다는 보충 설명을 해야 했다. 시기도 맞지 않는 사진을 내걸어 또다시 논란이 불거지자 '언제 사직구장이라 했느냐'고 언중위에 제소하는 건 본인의 말은 틀려서도, 부정당해서도 안 된다는 검찰식 결벽주의에 가깝다.

그러나 검찰은 결벽을 주장할 만큼 깨끗하거나 완전하지 않다. 지난달 10일 한 위원장의 부산 방문에서의 발언은 '우리가 남이가'식의 호소 과잉에서 비롯된 촌극일 뿐이다. 

한 위원장이 소위 '여의도 사투리'가 구리다 생각하면 안 써도 된다. 그러나 그에게서 엿보이는 검찰의 사고와 검찰의 언어는 불편하다. 대통령의 아바타가 아님도, 대통령의 당무개입 아님도 증명해내지 못하면서 '아바타라면 당무개입이 아니다'라는 주장은 5천만 명이 쓰는 문법과는 맞지 않다.

86세대 척결을 외치면서 물러났던 사람과 물러나야 할 사람들을 자객공천하는 건 나라를 살리자는 비전의 제시가 아니라, '운동권 소탕'이라면 무슨 일이던 합리화하던 군사독재시대 검찰의 모습이다. '사직'을 '사직구장'이라고 쓴 기사가 그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야구장 응원 모습을 공개한 국민의힘은 '명예훼손 유도'라고 봐야 되는 것 아닌가?

정부 산하기관부터 장·차관까지 검찰 출신이 득세하고 검찰 논리가 횡행한다. 한동훈 위원장이 계속 정치를 하려면 검찰의 사고와 언어에서 벗어나야 한다.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의 생각과 언어만으로도 국민들은 이미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9,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