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23 20:24최종 업데이트 24.02.2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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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3년 차, 대한민국은 괜찮은가? 저출생, 경기침체 등 한국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국내외적으로 높다. <오마이뉴스>는 창간 24주년 기획으로 2024 대한민국의 현재를 살펴보고 오늘의 위기를 진단하며 내일의 해법을 모색한다. [편집자말]

명절을 앞둔 6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한 과일가게에 사과가 진열돼 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사과, 배 등의 가격이 작년 설 성수기보다 각각 10.7%, 19.2% 높다. ⓒ 연합뉴스

 
설 명절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얼떨떨하다. 무서운 가격 때문에 엄두도 내지 못했던 과일들, 어떻게든 제상에 구색이라고 갖춰야 한다는 조바심이 있었다. 대형마트에서 3개에 4만 원 넘는 사과를 재래시장에서 개당 8000원 주고 샀다. 곶감도 비싸고 포 하나도 2000∼3000원은 오른 것 같다.

명절 아침상에 오른 화제는 정치도 자식 취업 문제도 아닌 물가였다. 팔순을 훌쩍 넘긴 노모는 간단하게 정리했다. '세상이 그런 걸 어쩌나? 그래도 애들 데리고 열심히 살아야지.'


과일값이 오른 건 기상이변으로 작황이 안 좋은 탓도 있을 것이다. 환율과 국제 곡물가 상승이 물가에 악영향을 준 것도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어떻게 된 게 몇 달간 내리는 것 한번 없이 자고 나면 계속 오르기만 하는지 화가 난다.

누군가는 사과 한 개 8000원에 무슨 엄살이 그리 심하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주머니가 얇을수록 고물가의 고통은 커질 수밖에 없다. 치솟는 물가에 맨몸으로 엄동설한에 내몰리는 낭패감. 이번 설 명절이 그랬다. 비단 나만 그럴까? 그것만도 아닌 것 같다.

민생, 국민의 생활이나 생계가 말이 아니다. 자영업자는 자영업자대로 장사가 안된다고 난리고, 소비자는 물가가 너무 많이 올라 살기 팍팍하다고 난리다.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화두도 민생이고, 민생 안정을 최우선에 두겠다는 대통령의 다짐이 날마다 방송을 탄다.

그러나 정치권이나 대통령의 민생 안정 약속은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국민들과 눈도 맞추지 않는 독백이고 총선을 앞두고 표를 얻으려는 얄팍한 꼼수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약속했던 그 많은 내수 활성화 공약이 일부라도 지켜졌더라면, 물가 안정 호언이 조금이라도 효과를 발휘했다면 국민의 삶이 이렇게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과일값 걱정해야 했던 설 명절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부산시청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열한 번째, 부산이 활짝 여는 지방시대'에서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는 대통령이 민생 경제를 위해 소통하겠다고 마련한 자리다. 하지만 횟수를 거듭할수록 논란만 생겨날 뿐 물가안정이나 내수 경기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지난 13일 부산시청에서 '부산이 활짝 여는 지방시대'라는 부제를 단 민생토론회만 해도 그렇다.

대통령은 진정한 지방시대를 체감할 수 있도록 일자리 인재 생활 환경을 연계한 '지방시대 3대 민생패키지'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여당이 추진 중인 김포 등 서울 편입을 통한 메가시티 구상과의 이해충돌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러니 여당은 메가시티 공약으로 수도권 표를 모으고, 대통령은 지방을 돌며 총선에 뛰어들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 아닌가?

대통령이 수차례 언급한 저출산 대책도 의문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다 할 수 없는 인구절벽 위기다. 뜬금없지만 우리 사회의 불필요한 과잉 경쟁을 개선하는 것이 대통령이 제시한 저출산 해법이다.

출산 휴가를 늘리고 다자녀 가정에 주택 등 각종 혜택을 주는 것도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제도의 보완은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라 할 수 없다. 결혼도 벅찬 젊은이들에게 다자녀 혜택은 너무 먼 이야기다.

다자녀 가정에 주거를 지원하고 신생아 특례대출로 은행 문턱을 낮추는 것도 필요하지만 순서가 틀렸다. 청년이 노동으로 삶을 지탱하고 결혼으로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저출산 대책의 기본 중 기본이다.

윤석열 정부 저출산 대책이 어떤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저임금 구조와 손쉬운 해고의 노동환경이 결혼 포기와 출산 기피의 원인이다. 최저임금 인상을 저지하고 노동시간을 늘리려는 정부에서 저출산 대책을 공언하는 건 메가시티와 지방시대를 같이 구현하겠다는 주장만큼이나 공허하다.

출산율을 높여 인구 절벽을 막는 일이 절박하다고 느낀다면 저임금과 손쉬운 해고 등 윤석열 정부의 기업 중심 노동정책부터 바꿔야 한다. 노동으로 먹고살고 결혼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회, 윤석열 정부 민생경제에서는 그런 밑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 그건 행복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단지 젊은이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노동을 해도 빚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삶은 대한민국의 적지 않은 자영업자가 처한 현실이다.

그러나 대책이라고는 싼 금리로 갈아탈 수 있는 대출 알선이고, 시장에서 어묵을 먹는 것이 자영업자 위로인 정부다. 국민의 호주머니를 채울 대책, 소비가 늘어나고 자영업자가 벌어서 빚을 갚고 살아갈 대책, 윤석열 정부에는 이런 구상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통령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1월 25일 윤석열 대통령이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제일시장을 찾아 어묵을 먹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의 경제 정책은 낙제점이다. 전 정부 탓, 세계적인 고금리 탓, 심지어 날씨 탓까지 했다. 국민들은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걱정 없이 먹고 살게 해달라고 정부를 맡긴 것이다. 차라리 코로나 팬데믹 때가 나았다는 상인들의 하소연까지 나오는 요즘이다.

25년 만에 경제성장률을 일본에 역전당한 윤석열 정부, 우리나라만 세계적 고금리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면 이런 핑계는 가당치 않다. 지금보다 더한 기상이변에도 제상에 올려놓을 과일값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국제 경쟁력도, 내수 시장도, 물가 관리도 엉망이 된 2024년 대한민국. 이게 영업사원 1호를 자처한 윤석열 대통령의 초라한 3년 차 경제 성적표다.

대통령의 민생토론회를 두고 야당에서는 총선용 행보라고 하고, 또 일부에서는 볼썽사나운 '쇼'라고 비판한다. 쇼, 맞다. 정치쇼다. 그러나 비난할 생각은 없다. 사실 정치인의 행위 대부분은 국민들에게 환심을 사서 표를 얻고 국정 동력으로 삼으려는 '쇼'적 행위다. 문제는 그 '쇼'가 국민들에게 얼마나 감동을 주고 진심을 담았는가 여부다.

11차례나 하고 있지만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는 국민들에게 박수를 받지 못했다. 진심은 보이지 않았고, 대통령 국정철학과 동떨어진 이야기에도 아무런 해명이 없다. 여당에서는 메가시티를 공약하고 대통령은 지방 시대를 열겠다고 한다. '국민과 함께'를 내세운 쇼라서 눈살이 찌푸려지는 게 아니라 저급한 정치쇼로 국민을 기만하는 속셈이 뻔히 보이기에 화가 나는 것이다.

총선이 5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야당에서는 여:야 1:1 구도가 아니라 정부·검찰·여당:야당 3:1 구도라고 한다. 김혜경 여사의 밥값 기소나 김정숙 여사의 경호원 수영강습 수사와 달리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에만 잣대를 달리하는 검찰은 충분히 총선에 뛰어들었다는 소리를 들을 만하다.

약속된 외국 순방조차 연기해 가며 민생에 전념하겠다는 대통령실의 설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렇다고 명백한 선거법 위반이 아닌 다음에야 민생토론회를 중단하라 마라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내용은 수준 미달에 진심이 느껴지지 않으니 보기 불편한 정치쇼라는 생각을 지우기는 어렵다. 총선 행보가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지만 그 의도가 무엇인지 대부분이 국민은 알고 있고 대통령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니 일에 전념해야 할 '영업사원 1호'의 성적이 좋을 리 없고 3년 차 경제 성적표가 개선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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