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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은 지난 주 이른바 <브라질 발견 500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그러나 이러한 공식행사와는 별도로 "또 다른 500주년"이라는 이름으로 포루투갈에 의해 약탈된 땅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토착 인디오들의 대규모 시위사태가 벌어져 국제적인 주목을 끌었다.

이들은 브라질이 "발견되었다"는 인식을 거부하면서 브라질은 서구인 포루투갈에 의해 발견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이며 그것은 발견이 아니라 "침략"이었다고 주장했다.

1500년 4월 포루투갈 인 페드로 알바레 카브랄이 인도를 목적지로 향해 가다가 표류하던 중 지금의 브라질 대륙에 상륙하게 되었고 그는 이 땅을 "테라 다 베라 크루즈", 즉 "진정한 십자가의 땅"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로써 이후 남미의 거의 대부분이 스페인의 식민영지가 되었던 것에 반해 이곳만은 포루투갈의 식민지가 되었다. 브라질은 1822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포루투갈로부터 독립을 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포루투갈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이들 브라질의 토착 인디오들은, 브라질이 500주년 기념행사를 하는 이면에는 토착 인디오들의 학살과 약탈의 역사가 짙게 깔려 있으며 이를 외면하는 브라질 500년 역사 기념행사는 역사의 왜곡이라고 강조했다.

1500년 당시 500만명에 이르던 브라질의 토착 인디오들은 지금 그 수가 줄어 겨우 33만 명에 불과한 수가 생존하고 있으며 이들의 사회경제적 처지는 매우 열악한 상태에 있다.

우선 이들 토착 인디오들은 포루투갈인들의 상륙과 함께 번진 전염병으로 무수히 죽어갔고, 금광채굴등의 강제노동에 시달려 목숨을 잃었을 뿐만이 아니라 이 과정에서 저항을 하다가 죽어가기도 했다.

브라질 당국은 이들 토착 원주민 인디오들의 시위에 대하여 강력한 저지로 맞섰으며 수십명의 시위자들이 다치고 2백명 가까운 이들 원주민들을 체포하는 등 강경대처로 일관했다.

브라질 500주년 행사는 남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서구의 침략적 식민주의 역사에 대한 반성과 비판적 극복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브라질 내의 양심적인 지식인들로부터도 거센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국부론>을 쓴 영국의 아담 스미쓰도 이러한 서구의 아메리카 대륙 침략사를 거론하면서 이것은 서구 자본주의 역사에서 중대한 부의 축적 계기를 가져다주었지만 토착 원주민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재앙의 시기가 시작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을 정도이다.

실로 포루투갈의 남아메리카 대륙 약탈은 남아메리카의 자체적인 발전의 역량을 심각하게 훼손했고, 토착 원주민 인디오들의 생명과 인권은 철저하게 짓밟혔다.

이러한 토대 위에 세워진 식민정권은 종주국 포루투갈의 이해를 위해 봉사하는 체제였으며 이는 이후 브라질 역사에 있어서 종속적인 발전경로를 결정하는 역사적 근거가 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회형성의 과정으로 인해 토착 원주민들은 최대한 브라질 정치경제의 영역에서 배제되었고, 가난한 민중들의 삶 또한 날이 갈수록 피폐해져 갔던 것이다.

미국 외교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지식인 노암 촘스키는 그의 저서, <5백년 정복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에서 서구가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하고 짓밟은 역사의 본성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으며 이로 말미암은 인간의 고통에 눈뜨고 이에 저항하지 않는 한 비극의 역사는 종지부를 찍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브라질 5백년사는 단지 브라질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서구 자본주의 팽창과정에서 벌어진 제3세계 민중들을 대상으로 한 일체의 폭력적인 역사의 실체이며, 오늘날에도 지구촌 도처에서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제국주의 체제가 관철하고 있는 정복정책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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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기자는 경희대 교수를 역임, 현재 조선학, 생태문명, 정치윤리, 세계문명사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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