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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나스닥(Nasdaq) 시장이 동요하고 있다. 그 동안 투자대상 1호로 꼽히던 첨단산업 주에 대한 열기가 냉각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후 다소간의 반등세를 나타내긴 했으나 기본적으로 이전의 열기를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하겠다.

이는 그간 과열되었던 나스닥 시장에 상당한 정도로 의존하고 있던 미국의 경기활황이 이제 일정한 한계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울한 전망으로까지 연결되고 있는 상황이다.

나스닥의 변동추이와 거의 맥락을 같이 하고 있는 한국의 코스닥(Kosdaq)은 그러면 어떤 미래를 가지고 있는가가 문제되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는 한국사회의 향후 생존방식과 직결되어 있다시피 하다는 점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스닥에 상장한 한국의 e-machines는 9달라에서 시작하여 계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전반적인 나스닥 시장 하강세의 영향을 받은 결과이기도 하지만, 이른바 벤처 첨단 주(株)의 장래를 그대로 낙관할 수만은 없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이텍크 산업분야에 대한 주가가 급격하게 치솟아 오르는 가운데, 이들 분야의 주가가 고평가되고 있다는 진단이 나돌고 이와 함께, 인플레의 가능성으로 해서 이자율 상승이 예상되고 있는 상황이 나스닥 시장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미연방준비은행의 그린스팬은 계속되는 미국경기의 활황에 따른 인플레의 가능성으로 해서 이자율 변화를 시사하는 발언을 해왔다는 점에서 이자율 상승과는 적대관계에 있는 증시가 주춤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리하여 고평가의 최고시점을 통과해버리고 나면 급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으로 해서 투자자들이 나스닥 시장에서 급격하게 퇴장하여, 수익율은 낮지만 보다 안전한 채권 쪽으로 집단이동하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었다.

이와 함께 그간 저평가된 전통적 산업분야의 주식을 대량으로 구입하여 투기적 운용으로 수익을 올려왔던 헷지펀드인 타이거 매니지먼트가 자진 퇴출하기로 결정, 헷지펀드 롱 텀 매니지먼트의 파산이래 단기투자시장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 것도 주목할 요인이었다.

일명 타이거 펀드는 첨단산업분야에만 집중하고 있는 주식시장의 움직임에 대하여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타이거 펀드의 줄리안 로버트슨 회장은 그의 퇴임사에서 전통적인 산업분야의 주식은 그 기업의 건실한 역사와 성장이 뒤받침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외면하고 아직 검증되지 않은 첨단산업분야에 대해서만 집중하는 투자는 주식시장 전체를 비이성적으로 운용되게 하며 수급의 불균형을 가져와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러한 타이거 펀드의 퇴장은 급격하게 불안정해져가고 있는 주식시장의 장래에 대한 전망을 일정하게 반영하고 있는 사례의 하나라고 하겠다.

주식투자에 있어서 고수익은 기본적으로 위험도가 높고, 위험도가 높을 수록 주식시장의 안정성은 보장할 수 없는 모순에 빠진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고도의 투기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나스닥의 계속되는 하락세는 투기성향의 주식시장이 그 성장의 한계에 봉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움직임으로 이해되고 있다.

나스닥의 하락세는 한국만이 아니라 아시아 각국의 증시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쳐 대체적인 하락세 경향을 주도했고 이로써 전세계 증시의 동향에도 민감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이미 OPEC에서는 첨단증시의 과열과 거품가능성에 대하여 최근 잇달아 경고한 바 있으며 이는 증시 전반에 일단 관망세를 유지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형편이다.

첨단산업분야 내지는 인터넷트 산업분야가 최근 상승세를 타면서 투자의 최적대상으로 주목되었지만, 과도한 투기가 몰리면서 가격하락을 스스로 부채질한 셈이라고 하겠다.

한국의 경우에도 코스닥 시장의 과열이 최근 들어 다소 냉각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수급의 불균형으로 인한 가격하락과 함께 거품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가세를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벤처기업이 힘을 얻고 새로운 산업분야를 개척함으로써 경제생활의 구조를 바꾸어 나가는 흐름은 하나의 시대적 조류이지만, 전통적인 제조업분야가 이로써 약화될 경우 그 경제적 파장은 만만치 않다.

그런 의미에서 나스닥이든 코스닥이든 과잉팽창을 보일 경우 경제의 기본구조에 파행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어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뭐가 한번 떴다하면 모두 그리로 한꺼번에 몰리는 사회적 습성이 한국경제의 올바른 성장을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코스닥의 이상열기는 사실 바람직 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고도의 투기적 성향으로 유지되는 이러한 증시들이 한 사회의 경제생활을 지배해나간다는 점도 결코 긍정적인 일이라고 할 수 없다. 이른바 카지노 자본주의가 한 사회의 중심을 지배하는 것은 그 사회의 윤리나 정치 모두를 타락시키는 일이 되며, 일확천금의 환상을 유포시켜 건강하게 땀을 흘리고 수고하는 작업을 멸시하는 잘못된 풍조와 함께, 이렇게 벌어들인 돈의 타락한 지출을 부추기게 되도록 되어 있다.

가령 한참 공부해야 할 한국의 젊은이들이 증시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소식은 그런 의미에서 국가적으로 적지 않은 손실이 아닐 수 없다. 한 사회의 경제가 카지노적 리듬에 맞추어 움직이는 것은 그 미래를 위해서 극복되어야 할 일이다. 경제생활에 돈의 흐름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증시는 불가결할 것이다.

그러나 그 증시가 한 사회의 경제를 투기적으로 장악하게 되는 것은 증시 성립의 본래의 의도와도 배치될 뿐만이 아니라 그 사회의 운명에도 아름답지 못한 결과를 남기게 될 뿐이다.

증시위기를 막기 위해 외국인 매매동향 정보제공을 일단 잠정 중단하기로 한 얼마 전 코스닥의 결정은 한국증시의 기본적인 종속성과 불안정을 보여주는 예이다. 이런 식으로 증시불안에 시달리는 나라는 사회적 신뢰도가 근본적으로 약한 사회일 수밖에 없다.

정치가 사회적 신뢰도를 망가뜨리고 있는 판국에 증시불안마저 이에 가세하고 있다는 것은 이 사회의 불행이다. 한국사회는 정치와 경제 모두가 다 투기판이 되어가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도박에 일단 손대면 빠져 나오기 어렵다. 한국은 지금 그런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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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기자는 경희대 교수를 역임, 현재 조선학, 생태문명, 정치윤리, 세계문명사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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