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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 바다로 계곡으로 이 더위를 식히기 위해 여행을 떠나되, 되도록이면 방학을 뜻 있게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 7월 9일 방학을 좀더 알차게 보내고 싶어하는 몇몇 뜻 있는 친구들과 '역사의 현장'을 찾아 떠났다.

여행을 떠난 곳은 프랑스 혁명과 비견되는 우리나라의 시민봉기, 근대의 시원점 동학유적지 현장이다. 좀더 뜻 있는 여행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동학 유적지를 걸어서 가기로 걷기로 했다.

처음 도착한 곳은 백산(백산 봉기터), 이곳은 넓은 들판에 홀로 솟아 있는 높이 47m의 작은 산이다. 비문의 글을 보면 농민군이 서면 백산(白山)이고, 앉으면 죽산(竹山)이라고 했다. 얼마나 많은 농민들이 모였으면 그 작은 산을 백산이라 하였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창을 들고 서 있었으면 죽산이라고 했을까.

백산에는 정자가 하나 있었다. 그 정자에 올라가니 사방이 다 보여 모임을 갖기에 적당한 장소였다. 거기서 전봉준은 넓은 들판을 바라보며 나라의 앞날을 염려했을 것이고, 농민의 아픔을 걱정했을 것이었다.

고택
ⓒ 양철모


한참을 걸으니 전봉준 고택이 나왔다. 전봉준의 고택을 보고서야 아,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방은 4사람 정도가 누울 정도였고, 방 안에는 그가 남긴 한 장의 사진, 죽음의 형장으로 끌려가는 의연한 모습의 얼굴을 확대한 사진이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조금 걸으니 전봉준의 묘, 민중의 선봉자의 묘, 잘 가꾸어진 소박한 묘와 비문에는 그의 업적이 잘 나타나 있었다. 그 옆에는 전봉준 아버지인 (고부군수 조병갑에게 죽음을 당한) 전창혁의 묘가 있었는데 그 묘는 제초작업도 전혀 안된 을씨년스러운 묘였다. 사연을 알아보니 그 묘는 5공시절 전두한이 임의대로 전봉준 아비묘를 세운 것이라 그 지역분들은 그 묘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 양철모


황토현 이 곳의 땅은 붉다. 마치 수없이 많은 농민의 피가 되어 이 땅에 뿌려진 것과 같이 농민의 숨이 이 땅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었다. 그 곳은 활력의 땅이었고 역사의 땅이었다.

황토현에는 동학운동 기념관과 전봉준 장군의 동상이 있었다. 한창 진행중인 황토현의 유적지화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많은 볼 만한 자료와 재미가 더해져 역사의식을 바로 세울 수 있는 뜻깊은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1894년 시작된 농민봉기는 호남인이 주도하였던 반외세의 자주독립과 반봉건의 민주화를 주창하여 이 나라의 근대화를 이루려는 역사적 움직임이었다.

비록 일본의 제국주의의 노골적인 침략행위로 좌절되어 끝나버렸지만 우리 역사의 앞날을 분명히 제시했고 그 정신이 계승 발전되었다. 이 정신은 의병항쟁, 독립운동, 광주학생운동으로 이어진다.

무더운 여름 방학의 계절이다. 피서지로의 여행도 좋지만 한번쯤 자신의 고장의 역사가 숨쉬고 있는 곳을 찾아가 역사인식을 갖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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