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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불가리아에서 온 친구와 함께 인사동 찻집 '귀천'에 들러 모과차를 한 잔 마셨다.

겨울에 마시면 목이 따뜻해지는 차를, 시원하게 해서 여름에 먹으니 또 그대로 좋다. 사실은 지리도 잘 모르는 주제에 서울 구경 시켜준다고 끌고 다니며 엉뚱하게 혹사한 다리의 피로도 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찬바람 날 때쯤 한 번 풀어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던 모과에 관한 생각들이 와글거리며 기어 나왔다.

내게 모과는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이요 환상이다. 대개 맛이란 향을 따라간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구수한 향을 따라가면 청국장이 나오거나 숭늉이라도 나와야 하고, 달콤한 향을 따라가면 잘 익은 과일이 나와야 한다. 그래서 좋은 향이 구미를 당겨 좋은 맛을 찾게 한다. 그런데 이 모과라는 놈만큼은 항상 나의 후각을 조롱한다.

어차피 싱싱한 맛에 먹는 과일이라도 개성이 있고 장단점이 있다. 그래서 좀 새콤한 것이 먹고 싶을 때 귤이나 자두, 포도 같은 것을 찾게 되고, 그냥 부담 없이 단 맛이 궁할 때는 배나 푹 무른 복숭아, 혹은 수박이나 참외 같은 것이 떠오르게 된다. 그런데 도대체 모과의 향만큼은 뭐라 구분하고 나누어 취하고 버리기가 어려울 만큼 마음에 꼭 들어찬다는 얘기다.

달콤하면서도 파릇파릇 생동감이 넘치고, 또 깔끔하고 시원하면서 부드럽게 감기는 모과의 향은 도대체 무엇과 비교할 길이 없다. 바로 그래서 나는 벌써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대여섯 번은, 마치 뻔히 괴물인 줄 알면서 끌려드는 로렐라이의 뱃사람처럼 홀린 듯이 이 모과를 씹었었다.

시장에서 천 원 주면 멀쩡한 놈으로 두어 개는 얻을 수 있기에, 그리고 그만하면 공부방 하나는 모과향으로 진동하도록 만들 수가 있기에 늦가을, 오다가다 눈에 띄면 한 번씩 사곤 한다. 그런 해마다 거의 되풀이되는 일이지만, 졸립지는 않으면서도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어느 오후 모과를 코밑에 쳐박고는 이 향기를 이로 씹고 혀로 느끼고 싶은 욕망 속에서 허우적거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오렌지 향을 맡으며 오렌지를 찾는 것도 아니고, 또 무슨 열대과일 향을 맡으며 그것을 그리는 것도 아니고, 억만금이 있다한들 세상에 없는 과일을 어떻게 맛볼 것인가. 그러다보니 그 떫은맛에 대해 머릿속으로는 또렷이 알고 있으면서도 손은 어느새 과도를 찾게 되는 것이다.

수백만 개 중에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단 맛의 모과'라는 변종을 찾는다는 의식적인 망상조차 할 겨를이 없이 저지르는 짓이다. 그리고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그 떫은맛에 진저리치면서 뱉어내고, 또 다시는 모과를 먹으려 하지 않겠다는 다짐까지 어김없이 되풀이된다.

모과란 그냥은 먹을 수가 없는 열매다. 그냥 생긴 대로 웬만큼 저며서 혀끝에 대어보면, 도대체 그 향이란 어디서 나와서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알 수 없는 떫은맛에 몸서리를 치게 되어 있다. 심지어 꿀에다 잘 삭힌 모과차 한 잔을 마시고, '저건 꿀이 배어 맛이 있겠지'하는 착각에 씹어본 적도 있지만, 그마저도 골수에서 배어나오는 떫은맛 때문에 처절하게 뱉어내야만 하는 것이다.

사실, 이 모과라는 열매를 그냥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애초, 그러니까 이 열매에 대해 알게 되던 그 날부터였다.

"은식아. 이거 냄새 한 번 맡아봐. 좋지?"
"우와아. 냄새 되게 좋다."
"이게 모과라는 거거든? 생긴 건 못생겼어도 이렇게 냄새가 좋아. 그런데 이거 먹어도 맛있을 것 같지?"
"응"
"그럼 조금만 먹어볼까?"

이런 것이 대략 우리 어머니의 자연학습이다. 물론, 과도로 손톱만큼 잘라낸 모과 조각을 혀 끝에 대자마자 나는 침을 퉤퉤 뱉으며 오만가지 상을 찌푸렸고, 어머니는 거보라는 듯이 깔깔 웃으며 설명을 마무리했다.

"이건 이렇게 냄새는 좋지만, 맛은 떫어. 그래서 그냥은 못 먹고, 꿀에다 재워놨다가 차를 끓이거나 술을 담거나 하는 거야."

이런 식의 어설픈 자연학습이 이루어지던 시절, 기껏해야 초등학교 이삼 학년이었을 나에게 모과차니 모과주니 하는 것들이 의미가 있었을 리도 없거니와 모과란 내가 어디서 구해다 깎아먹을 종류의 열매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굳이 청하지도 않은 맛까지 보여주며 어머니는 그런 설명을 했던 것일까?

며칠 전이었다. 오랜만에 마주앉은 어머니와 이런저런 얘기 끝에 모과 얘기가 나왔다.
"은식아. 그 <맛있는 추억>이라는 연재는 언제까지 하는 거냐?"
"글쎄, 욕심이지만 찬바람 불 때까지는 하고 싶어."
"찬바람 불 때까지는 왜?"
"찬바람 불면, 모과차에 대해서 꼭 한번 써볼려구요. 나는 이 모과를 그냥 먹으면 떫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 냄새가 너무 좋아서, '이런 향이 나는 것에서 어떻게 떫은맛이 날 수가 있을까'하면서 씹었다가 깜짝 놀라서 뱉고, 또 씹었다가 뱉고 한 게 벌써 열 번은 되거든. 그래서 그 얘기를 한 번 써 볼려구요."

그랬더니 다른 때 같았으면 줄거리를 들으며 '응, 그래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하면서 웃었을 어머니가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래, 맞어 맞어. 나두 그걸 '먹으면 떫지'하면서도 꼭 한번씩 먹어보게 되더라구. 나두 한 열댓 번은 혀에 대봤을 거야"

그제서야 슬그머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십 여 년 전, 나에게 모과의 향과 맛에 대해 가르치던 그 날도 사실은 어머니 평생에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모과에 칼끝을 댔던 그 열댓 번 중의 한 번이었던 것은 아닐까? 다만 그 날은 자연학습을 빙자해 당신의 혀가 아니라 나의 혀에 갖다대었을 뿐인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세대를 넘어 꿈꾸고, 또 절망하게 하는 모과의 맛. 가끔 맛이 가득 들어 온통 터져 만발한 액포가 육질을 투명하게 만든 사과를 먹으면서 '모과의 향으로 과일을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모과향을 다시 한번만 맡게 된다면 그것으로 입막음하고 끝낼 수 없는 환상이다.

그래서 혹시 모과의 향을 그 육질로 배어들게 할 수만 있다면, 괜히 '다리 열 개 달린 닭'이나 '인체장기 가진 돼지'같은 징그러운 얘기 대신 유전공학자들이 한번 고려해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떠오른다.

문득 올려본 하늘이 높아서 신음하듯 '가을이구나' 하는 순간, 반사적으로 목덜미는 바람의 청량감을 가늠하고 후각은 환상처럼 모과향을 떠올린다. 어쩌면 모과를 닮아서, 딱히 거창할 일도 없으면서 억제할 수 없는 상쾌함 때문에 마음이 떠다니는 가을이 오고 있다. 올 모과는 괜히 모셔놨다가 또 떫은맛에 몸서리치지 말고, 일찌감치 재워 두었다가 겨울에 차로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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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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