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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 처갓집은 모시로 유명한 충남 한산의, 그야말로 한산한 어느 산기슭 마을 속에 숨어 있다. 크지 않은 야산에 의지한 십여 채의 농가들이 나물 뜯는 여자들처럼 이리저리 입을 모으고 있는 그 마을은, 멀리서 보면 집집마다 심어진 감나무가 제법 그득하다. 그 나무마다 감이 꽃처럼 붉어가던 작년 가을에 나는 장인 장모가 될 분들께 첫 인사를 드리러 갔었다.

그 마을이 눈에 들어올 무렵, 처갓집 들어가는 마지막 굽이를 돌기 전 한 번 더 졸라맨 넥타이 때문인지 핏기운이 이마 위 어디선가 뭉쳐 뛰어대고 있었고, 진땀인지 식은땀인지 모를 끈적한 것이 포도상자와 아내의 손을 잡은 두 손바닥 안에서 흐르고 있었다.

말로만 대충 들었지만, 서울에서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공부를 하던 도중 돌아가신 선친의 유의에 따라 대가족과 가산을 지키기 위해 내키지 않는 낙향을 해야 했다는 장인의 이력이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

환갑이 넘도록 삭았다고는 해도, 그 세상과 시절에 대한 원망이 어느 구석엔가 살아남았을 것이 분명한 그 분. 아직 뚜렷이 당신 딸을 먹여 살릴 대책도 마련하지 못한 나는 어떤 질문을 받고 또 어떤 대답을 해야 할 것인가, 지레 아득했다.

그렇게, 면접장에 들어가면서 쓸데없는 교과서 어느 구석을 외우는 수험생처럼 나는 속으로 뭔가를 끝없이 되짚어가며 대문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현관을 열고 맞이하는 장인 장모께 인사를 드리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절을 올렸다.

대단할 것은 없어도 그 시절 서울 학교물 먹을 만큼은 번창했던 가세가, 또 내가 들어 알고 있는 시절들과 사연들 속에 풍화되어 차분히 내려앉은 얌전한 시골집. 아내와 장모가 저녁 준비를 위해 부엌으로 나간 시간 동안, 넓지 않은 방 안에 아직 낮이었지만 밝지 않은 자투리 햇빛 속에서 나는 장인과 서먹한 대면을 하고 있었다.

"양친은 다 계시고?"
"예, 다 건강히 계십니다. 그리고 시골집에는 할머니도 계십니다."
"할머니? 할머니는 연세가 워찌 되는디?"
"팔순이 되셨습니다."

""본관이 워디라고 혔지?"
"예, 경주 김갑니다."
"응, 경주 김가. 가만있자... 저기 우리 친구가 경주 김가가 있거든. 그 친구 이름이 뭐더라..."
"아, 예."

소리와 맥박은 있으되 나누어지는 정서나 의미가 없는 손놀음처럼, 나와 장인은 장단맞추기를 하고 있었다. 그 분도 뭔가 피해가고, 돌아가며, 또 뭔가를 탐색하는 과정이었겠거니와 나로서는 막막하게 무거운 공기를 헤쳐놓기 위해 절박하기까지 한 댓거리였다.

실제로는 한 십여 분 되었으리라만, 느껴지기로는 한 시간쯤 되었을까. 가계와 성씨와 이름과, 또 학교와 지역에 관한 사실들이 훑어지고, 이윽고 무색무취한 화제들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렇게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던 장단맞추기마저 끊어지려는 묵직한 순간에 내가 용기를 내서 한 마디를 먼저 던졌다.

"들어오다 보니까 마을이 참 좋던데요."
"좋긴, 무엇을."
"아담한 것이..."
긴장을 하다보면 쓸데없는 것에 마음이 많이 쓰인다. '아담하다'는 말을 뱉어놓고도, 혹 동네가 궁벽하다는 불평으로 들리지 않았을까 지레 긴장을 하게 된 것이다.
"참, 동네 자리가 크진 않지만 풍족해 보이고... 참 예쁜 것 같습니다. 들어오는데 감이 온통 빨갛게 익은 것도 그렇구요..."

감나무 칭찬을 한참 하는 동안 장모와 아내가 밥상을 맞잡고 들어왔고, 꼭 꽃등을 켠 것 같다는 둥, 푸근한 인심이 느껴진다는 둥 주저리 주저리 이어지는 동네 칭찬을 내내 듣던 장인이 한 마디로 마무리했다.
"이 지역 주작물은 쌀이지."

그리고 수저를 들었다. 하기야 애초에 관상용으로 심은 것도 아닌 감이 무엇 그리 중요하겠는가, 찻집도 아닌 다음에야.

어쨌거나 다행히도 얼굴을 붉히거나 민망해할 이야기는 없었다는 안도 속에서 그렇게 조금 이른 저녁을 먹고, 길을 나섰다. 서울까지 다시 먼 길을 달려야 했다. 다시 절을 올리고, '다시 뵙겠습니다'하고 나선 현관문. 거기엔 웬 종이상자 두 개가 정성껏 묶여 있었다.

"이거 감인디, 가져가."
"예? 감이요?"
"응, 어른들도 좀 갖다 드리고."
그제서야 내다본 마당의 감나무가 어쩐지 휑했다. 장모님은 밥상이 물러나고, 안방에서 다시 얼마간 어색한 대화가 흐르는 동안 마당의 감나무를 훑어내렸고, 정성껏 두 상자를 포장한 것이었다.

나중에 아내에게 들으니, 밥상 들고 나는 동안 '감이 참 예쁘네요'하는 소리가 두 번 세 번 들렸다고 한다. 그래서 장모님은 김서방 좋아하는 감 좀 챙기자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제서야 싸놓은 감을 풀어놓을 길도 없었고, 그대로 두 상자를 챙겨들고 집을 나서야 했다. 그리고 뭉게뭉게 긴장이 풀어지는 노곤함과, 그제서야 제 혈색이 돌아오는 목덜미 뒤쪽으로 얼핏 정감이 솟는 것을 느끼며 발길이 멀어졌고, 한나절 새 허전해진 처갓집 감나무와 길게 목을 뽑고 내다보는 두 어른의 얼굴이, 동네 발그레한 감들의 점묘화 속으로 차차 묻혀갔다.

그 가을과 겨울을 넘겨, 올 봄에 우리는 결혼을 했다. 처갓집이 그리 가깝지는 않은 곳이라 그 뒤로 한 너댓 번 밖에는 들르지 못했지만, 그 때마다 감에서 마늘로, 양파로, 김치로 이어지는 꾸러미는 다 감당할 수 없어 누나 집으로, 심지어는 시골의 친가집을 통해 이모네 고모네 집으로까지 흘러들고 있다.

지난여름 비에 감이 많이 떨어졌다. 경황이 없어 제대로 맛을 보지는 못했지만, 한 달쯤 전에 들렀을 때도 꽤 익은 것들이 있었는데. 다음 주쯤 내려가도 먹을 것이 남아있을지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김은식의 홈페이지 : http://www.kes.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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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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