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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장을 보러 갔었다. 세상에서 제일 피곤한 일이 아내와 옷 고르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나지만, 그나마 시장을 보는 일은 참을 만하다. 별로 즐기지 않는 음식들은 재료 구매 단계에서부터 미리 잘라낼 수도 있고, 이왕이면 좋아하는 반찬거리나 군것질거리를 은근슬쩍 끼워 넣는 수단도 부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아내 뒤에서 쇼핑 카트를 밀면서 한참 이곳저곳 내 입맛에 맞을 만한 것들이 없나 엉뚱한 곳만 살펴보다가 아내가 팔을 잡아끄는 대로 한쪽으로 끌려갔다. 그곳에서는 꽃게를 팔고 있었다.

"어머, 진짜 싱싱하다."

'싱싱하다'는 표현을 붙이는 것이 꺼림칙할 만큼 게들은 팔팔했다. 그저 횟집 어항 속의 생선처럼 숨만 쉬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당장이라도 뛰쳐나와 바다를 향해 줄달음칠 것처럼 사지, 아니 팔지(八枝)에 뻗치는 근력이 왕성했다.

"오늘 꽃게탕 끓여 먹을까?"

아내가 팔뚝을 잡아채며 물었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솟을 것 같은 모양도 매력적이었지만,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았다. 벌써 꽃게장수는 꽤 실한 놈 두 마리를 저울 위에 올려놓으며 빨리 사 갈 것을 종용하고 있었고, 저울에 찍히는 액수는 삼천 원 남짓했다.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빗발치는 포화 속에서 목숨을 걸고 잡아야 했다고 할 만큼 귀했던 꽃게를 이렇게 싼값에 먹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로 감격스러워서 나도 냉큼 동의를 해버렸다. 꽃게장수는 후다닥 꽃게 두 마리를 포장하고 가격표를 붙여서 카트에 던져 넣었고, 우리는 횡재라도 한 것처럼 가뿐한 걸음을 옮겼다.

"야, 몇 달 전만 해도 이거 되게 귀했거든. 이것 때문에 바다에서 전투도 벌어졌잖아. 그런데 값이 많이 내렸네."
"그러게. 그리고 굉장히 신선하지?"
"응, 그런데 너 이거 끓일 줄은 아는 거지?"
"물론이지."

물론이라는 말에 그저 마음 푹 놓고 있었지만, 꽃게탕 끓이기보다도 더 중요한 '다듬기'라는 공정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는 신경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냉장고와 선반 이곳 저곳에 장바구니를 풀어 대충 정리하고는 TV를 켜고 앉으려는 순간이었다.

"은식씨, 꽃게 다듬어 줘야지."
"뭘 다듬어?"
"꽃게 껍데기도 벗기고 다듬어 줘야 끓이지."

그제서야 생각하니 그놈을 산 채로 끓일 수는 없었다. 당장 먹기에도 불편하겠지만, 애초에 뒤집어쓰고 있던 톱밥도 씻어내야 할 것이니 다듬긴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일어나 씽크대 앞으로 가서 꽃게 봉지를 풀어놓았다. 차멀미라도 했는지, 죽은 듯이 늘어져 있던 것들이 설거지통의 물 속에 담그자 새삼 다리들을 흔들어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야, 이거 어떻게 죽이냐?"
"글세... 아까 아저씨는 이거 수돗물에 담가 놓으면 기가 좀 죽을 거라고 했거든."
"그래? 그럼 잠깐 담가두지 뭐."

아내가 밥을 짓고 다른 반찬들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TV뉴스를 보면서 꽃게들의 기가 죽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뉴스가 끝나고 또 볼 만한 프로그램이 없나 리모콘으로 이곳 저곳을 뒤적이는 사이 시장기가 느껴졌고, 아무래도 꽃게를 다듬어 치우고 좀 씻은 다음 밥 먹을 준비를 해야겠다 싶었다.

"꽃게들 좀 진정 됐어?"
"글세, 그런가보네. 지금 다듬어 줘. 그래야 저녁 먹지"
"알았어."

수돗물이 독약도 아닌 다음에야 그 십 여분 사이에 꽃게가 죽었을 리는 없었다. 그래서 아주 가뿐한 마음은 아니었지만, 나는 눈 딱 감고 순식간에 해치워버릴 기세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 순간까지만 해도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 줄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손을 집어넣어 그 중에서도 좀 커 보이던 한 놈을 집어올린 순간, 나도 별 수 없이 기겁을 하고 사지를 흔들어대고야 말았다.

"우... 우... 우왓."

설거지통은 정말 얼핏 보기에는 잠잠했다. 그러나 내가 손을 대는 순간 두 놈은 기가 죽기는커녕 각성제라도 먹은 것처럼 활개를 치기 시작했고, 내가 물 묻은 두 손을 가슴팍에 파묻어 모으고 얼굴은 한참을 일그러뜨린 채 넋을 놓고 있는 동안에도 저희들끼리 몸을 부딪히며 달그락거리고 있었다.

"이거, 내일 끓일까?"

닭이라도 잡는 듯한 소리에 돌아본 아내는 설거지통 속을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정말 그러고 싶었다. 그 순간이라도 모면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하루를 더 기다리면 저 흉칙한 놈들이 과연 죽을까? 절대 그럴 것 같지도 않았다.

원래 물 속에 사는 놈들을 익사시킬 수도 없고, 굶겨 죽일 수도 없고, 저 놈들을 도대체 어떻게 죽인단 말인가? 더구나 알량한 자존심이란 항상 지켜봐야 궁색할 만한 순간에만 가슴을 치받기 마련인지, 이 순간에 물러서면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할 것 같은 오기가 솟았다.

"아냐, 이거 하루 묵히면 얘들 살 빠진단 말이야. 지금 다듬어 줄게."

비장한 마음으로 고무장갑을 꼈다. 아무래도 저것과 내 손 사이에 한 꺼풀의 간격을 두는 것이 마음 편할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영화 속 킬러들이 끼는 장갑도, 지문을 남기지 말자는 이유 외에 희생물과의 사이에서 이런 심리적인 공간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한 마리를 잡아들었다. 다른 한 놈이 집게발로 붙잡고 늘어졌지만, 이왕에 독한 마음을 먹은 터에 옆에 놓여 있던 식칼을 집어들어 칼등으로 쳐내리자 간단히 해결이 되었다.

"다음은 어떻게 해야 되냐?"
"저기 배 쪽에 열렸다 닫혔다 하는 거 있지? 그래, 그거를 잡고 뒤로 올려서 윗껍데기를 다 벗겨내야 돼."
"응, 이거?"

아내가 가르쳐주는 대로 껍데기를 잡아 벗기려고 하자 게는 한층 격렬하게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어떻게 살아보겠다는 반항도 아닌, 아파 죽겠다는 몸부림이었을 것이니 또 그만큼 격렬했다. 그리고 그 기세에 눌려 잡은 손가락의 위치가 엉거주춤해서 그랬겠지만, 마음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게딱지는 들릴 듯 말 듯하면서 쉽게 떼어지지 않았다.

"야, 야, 이거 잘... 안 되는데?"

얼굴은 있는 대로 일그러뜨린 채, 사정이라도 하듯 중얼거렸고 아내는 '이렇게 해봐' 하면서 껍데기 머리 부분을 쥐고 있는 내 손가락에 자기 손을 겹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아, 아야. 야, 여기 가시 있단 말이야."

아내가 덮어 쥔 곳에는 꽃게 껍데기의 날카로운 곳이 몇 군데 있었다. 그곳에 아내가 힘을 주자 내 손가락이 눌려 조금 통증이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아픈 것 이상으로 목소리가 올라갈 수밖에 없었고, 나는 '놔, 놔, 내가 할게'하며 아내의 손을 털어 내고는, 다시 한 번 힘을 주기 시작했다.

짜증을 한 번 내고 나니까 마음이 좀더 무뎌졌을까, 아까보다는 훨씬 가벼운 힘으로도 껍데기가 '쩌억' 소리를 내며 벗겨졌다. 아마 손을 밀쳐진 아내도 잠시 무안했으리라만, 쉽지 않아 보이던 그 힘겨운 껍데기 벗기기가 성공한 희열에 묻어 넘어간 듯했다.

"자, 됐지?"
"응, 이젠 네 조각으로 잘라 줘."
"네 조각?"
"응"
"야, 이거 씻어줄 테니까 그냥 끓여. 먹을 때 잘라서 먹으면 되잖아."
"안돼. 잘라야 돼."

아내가 완강히 버티지 않았더라도, 어차피 자르긴 했어야 했다. 껍데기만 간신히 벗은 꽃게가 통째로 들어앉은 꽃게탕은 나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알았어. 도마 줘."

나는 눈치 없이 유리 도마를 놓는 아내에게 다시 눈을 흘기며 내 손으로 나무 도마를 깔았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가련한 꽃게를 눕혔다. 벗겨진 게딱지에 살점과 내장까지 묻어나간 뒤 아까보다는 기력이 많이 떨어진 듯도 했지만, 여전히 마지막 죽을 힘을 다해 도마를 긁어대며 버르적거리고 있었다. 나는 육중한 식칼을 잡고 머리께 까지 치켜들었다가 힘껏 내리쳤다. 단칼에, 단칼에 끝장을 내야 한다.

'퍽' 소리와 함께 식칼은 무시무시하게 내리쳐져 도마 가운데 꽂혀버렸지만, 꽃게는 아직 반동강이 나지 않았다. 한 절반쯤 잘려진 채 더욱 휘저어대는 다리. 이제는 달리 어쩔 수도 없었다. 입가에는 '으으으'하는 신음을 흘리며 나는 칼날 위아래로 힘을 옮겨가며 게와 도마를 한꺼번에 다져 눌렀고, 결국 꽃게는 속살까지 꽤 풀어헤쳐지는 고통과 수모를 겪어가며 반 동강이 나고 말았다.

그리고 내친 김에 마찬가지 소동을 벌여가며 그 반 토막을 다시 반으로 잘라내 네 조각을 만들었고, 칼끝으로 긁어내려 수돗물에 한 번 씻어냈다. 그리고 냄비 속에 친절히 들어앉힌 뒤, 장작이라도 몇 단 쪼갠 듯한 피곤한 얼굴로 씩씩거리며 TV 앞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아내는, '수고했어, 수고했어'를 연발했고, 꽃게는, 내가 그 토막살해소동의 정신적 피로를 채 다 추스르기도 전에 그것을 죽이고 조각 내느라 들인 수고에 비하면 그야말로 순식간에 한 냄비의 찌개가 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혹시 미적거리고 수저를 들지 않으면 또 불쌍해 보일 것 같기도 해서 부지런히 떠먹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아까 그렇게 씨름을 하면서 치를 떨었던 것을 생각하면 입에 넣지 못할 법도 했는데, 생각보다 내 비위가 강했는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면, 직접 사냥이라도 해 온 짐승을 시식하는 듯한 등등한 기세가 오히려 입맛을 돋구었는지도 모른다.

익으면서, 거무튀튀하던 게딱지에는 이름처럼 빨간 꽃이 피었고, 서툰 칼질에 삐져나와 뭉개지던 미끌미끌한 속살자락은 하얗게 여물어 있었다. 칼 대신 수저를 들고 마주한 꽃게는 또 언제 그리 억세게 굴었느냐는 듯 다소곳하고 먹음직했다.

뒤늦게 어머니에게 들으니, 산 꽃게는 냉동실에 한동안 넣어 '얼려 죽인' 다음에 다듬는 방법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산 꽃게랑 씨름할 걱정은 없겠지만, 곰곰 생각하면 또 걱정이 태산이다. 앞으로 살다보면 생선 배 가를 일이 왜 없겠으며, 닭이나 오리 따위를 잡을 일은 또 왜 없겠는가.

잡고 죽이고 다듬어서 포장하는 과정까지 돈으로 사 버릇하다보니 이제야 실감하는 '포식의 비용'이란 이렇게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 나이 서른이 먹어서야 산 재료 다듬는 첫 경험을 하고는, 국민학생 시절 군대 갈 걱정하듯 가슴이 막막하다.

덧붙이는 글 | 김은식의 홈페이지 : http://www.kes.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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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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