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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더 테레사라는 인물에 대한 말을 오래 전부터 수없이 들어왔다. 훌륭한 봉사자이고 헌신자임도 익히 들어왔다. 시간이 흘러 마음이 달라져서일까. 어떤 인물인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졌다. 솔직히 이것이 책을 읽게 된 계기이다. 독서 동기인 셈이다.

<소박한 기적>이란 제목도 마음에 몹시 끌렸다. 나의 호기심을 한층 자극했다. 표제 자체가 역설이기 때문이다. 기적이란 결코 소박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선입견에서일 것이다. 내용을 살펴본 뒤에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소박하다고도 할 수 있는 기적 모음이었다.

지은이 문다켈이 평범한 사람이라는 점도 나의 호감을 샀다. 인도에서 봉사자로 일하다가 마더 테레사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이것을 글로 표현하고자 한 지극히 범상한 사람이어서다.

책의 구성도 현란하지 않다. 장·절·항·목 따위를 구분하지 않는다. ‘성장의 길’을 비롯해 ‘마지막 입맞춤’까지 스무개의 간단한 글로 채워진다. 반면 내용은 우리의 정신 세계를 한차원 높여준다. 아마 이것도 늘 읽어야 할 책으로 선택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소박한 기적>은 마더 테레사의 일대기를 간략히 기록한 전기다. 평생 인도의 소외당한 사람을 도우면서 보낸 삶의 시간에는 그녀만이 간직한 아름다운 흔적이 스며 있다. 읽을수록 희생을 통한 고귀한 봉사의 냄새는 겹겹이 묻어난다. 열정도 느껴진다. 힘도 솟는다.

마더 테레사는 1910년 마케도니아(당시 유고슬라비아의 일부) 아드리아 해변 스코플례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세계인의 주목을 한몸에 받은 인물이다. 그녀가 가난한 사람의 대모가 되는 과정이 무척 궁금했다. 세번을 읽고 이제 글을 쓰고 있지만 사실은 더 읽고 싶다. 아니 아직도 읽고 있는지도 모른다. 읽기를 좀 달리하고 있을 뿐이다. 감동 받은 부분을 펴놓고 한참동안 거듭 음미하면서 쓰고 있으니까.

마더 테레사는 행동으로 말한다. 실천주의자인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처럼 말이다. 본문 시작하기 바로 앞쪽에는 아녜스(마더 테레사의 세례명), 언니인 아가, 오빠인 라자르 등 세사람의 사진이 있다. 사진 아래에는 마더 테레사의 어머니인 드라나필(거룩한 어머니:‘드라나’는 어머니,‘필’은 거룩의 뜻)의 성품을 엿볼 수 있는 글이 실려 있다. 이는 마더 테레사의 좋은 교육 환경을 말해 준다.

“마더 테레사의 어머니는 힘든 가운데도 가난한 사람과 가진 것을 함께 나눌 때 커다란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 고통 받는 사람을 위로하고 도와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가르쳐 주시고 몸소 모범을 보이셨다. ‘얘들아, 누군가에게 좋은 일을 할 때는 말없이 하여라. 바닷물 속에 돌을 던지듯 말이다.’마더 테레사의 첫 배움은 어머니의 무릎에서 시작되었다(18쪽).”

드라나필은 실천주의자의 원조격인 셈이다. 좋은 일은 소리 없이하라는 것이다. 마더 테레사는 어머니하면 ‘거룩하다’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고도 할 정도이다. 딸의 입장에서 어머니가 자신이 닮고 싶은 대상이라면 이보다 더 훌륭한 교육적인 모델이 있을까.

어머니를 닮은 딸의 구체적인 모습도 보인다. 수련 수녀의 실수를 칭찬으로 전환시키는 묘한 선행 부분은 압권이다. 인도의 빈민가에서 봉사 활동 시절 있었던 한 토막의 이야기이다. 임종을 앞둔 환자의 배설물에 당황하던 수련 수녀의 실수를 감싸 안으며, 행동으로 가르치던 마더 테레사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움의 절정 바로 그것이다.

“언젠가 한 수련 수녀가 니르말 흐리다이(가난한 사람을 위한 임종자의 집)에 있는 화장실에 갔다가 거의 토할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달아나 버렸다. 마더 테레사는 수녀를 비난하지 않았다. 수녀도 예수님을 위해 무엇이든 하고 어떤 고통이라도 달게 받겠다는 결심을 단단히 하고 수녀원에 들어온 사람이었다. 마더 테레사는 수녀를 비난하는 대신 팔을 걷어붙이고 빗자루와 양동이를 가져와서 화장실을 깔끔히 씻어냈다. 젊은 수련 수녀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놀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다음 마더 테레사에게 다가갔다. 용서를 청하기 위해서리라. 수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마더 테레사는 다정하게 말했다.‘괜찮아요, 수녀님. 걱정하지 마세요. 그것을 보고 구역질이 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지요. 예수님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각오했더라도 말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행동이 말보다 큰 소리를 낸다’이것이 마더 테레사의 철학이다. 수련생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마더 테레사의 위로하는 말이 아니라 신속하고 시기적절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가정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기억하는 것은 부모의 충고가 아니라 모범이 되는 행동이다. 수련 수녀는 나중에 사랑의 선교회 총장이 되었다. 그녀는 그날 마더 테레사로부터 배운 교훈을 결코 잊지 않았고, 다른 사람이 피하는 힘들고 어려운 일, 더러운 일을 기꺼이 맡아서 처리하곤 했다(89쪽).”


수련생이 흔히 저지를 수 있는 일이겠지만 마더 테레사는 이것을 사랑으로 녹여 주셨다. 실제로 이는 야단치는 것보다 몇 배의 교육 효과를 낳았다. 뒷날 젊은 수녀는 훌륭한 지도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마더 테레사의 교육 방법은 세상의 모든 교육자나 지도자가 본받아야 할 점이라 생각한다. 왜? 자식이나 학생이 잘못하면 주먹부터 올라간다지 않는가.

수녀들의 생활은 힘든 게 사실이라고 한다. 고된 일상 속에서도 그들에게 필요한 용기·영감·동기를 주는 것은 기도라고 한다. 매일 미사가 끝난 뒤 온 마음으로 낭송한다는 성프란체스코의 아름다운 기도를 한번 들어본다.

“주님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 살다 죽어가는 전 세계의 가난한 사람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손으로써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우리의 이해와 사랑으로써 그들에게 기쁨과 평화를 주소서. 주여,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128-129쪽).”

이는 나의 눈이 오랫동안 멈춘 곳이다. 몇 번이고 보고 읽고 음미하고를 반복하던 내용이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평화와 안식을 느낄 수 있는 말일 것이다. 어쩌면 수녀들에게 봉사생활에 용기·영감·동기 등을 주고도 남았을 것 같다. 가만히 주시하고 있노라면 눈시울이 자연 아래로 향하면서 두 손이 모아질 대목이다. 가톨릭 신자라면, 아니 아니면 어떤가? 힘든 일 어려운 일이 우리 앞에 닥쳤을 때, 기도문으로 써도 좋을 것이다.

일흔 살의 마더 테레사가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응답한 20가지 내용도 주목해 볼 만하다.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한다. 잠시 귀 기울여 본다.

“인생은 기회다. 그것을 활용하라. 인생은 아름다움이다. 그것을 찬미하라. 인생은 축복이다. 그것을 맛보라. 인생은 꿈이다. 그것을 실현하라. 인생은 도전이다. 거기에 맞서라. 인생은 의무다. 그것을 실천하라. 인생은 게임이다. 그것을 즐겨라. 인생은 값지다. 그것을 보살펴라. 인생은 부다. 그것을 간직하라. 인생은 사랑이다. 그것을 누려라. 인생은 신비다. 그것을 깨우쳐라. 인생은 약속이다. 그것을 지켜라. 인생은 슬픔이다. 그것을 극복하라. 인생은 노래다. 그것을 노래하라. 인생은 투쟁이다. 그것을 받아들여라. 인생은 비극이다. 그것을 껴안아라. 인생은 모험이다. 그것을 감행하라. 인생은 생명이다. 그것을 소중히 여겨라. 인생은 행운이다. 그것을 만들라. 인생은 너무나 값진 것이다. 그것을 망치지 마라(182쪽).”

‘사랑을 줄 줄 아는 사람’이라는 글의 일부이다. 인생이 지니는 다양한 속성을 알맞게 찾아내 만인에게 알려 준다. 일흔살 노인의 말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은 그리 많지 않다. 힘과 정열이 솟아난다. 이것이 에이즈 환자를 돕기 위한 수용소 벽에 걸린 글이라면 우리는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인생은 너무나 값진 것이다. 그것을 망치지 마라’라는 끝 구절이 유난히 빛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줄이야.

본서를 읽으면서 시종일관 필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부분은 ‘마지막 입맞춤’이란 글의 일부이다. 마더 테레사가 임종을 맞이하는 장면이다. 숱한 사람의 마지막 길을 인도해 왔던 그녀도 같은 길을 떠난다.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가 지극히 평화로와 보여서, 나도 저럴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자신이 없어 잠깐 동요한 것이다. 우리에게 준비된 죽음이 어떤 것이고 소박한 기적이 무엇인지를 동시에 깨닫게 한다.

“누군가가 불안이 가득한 소리로 외쳤다.‘수녀님이 돌아가시고 계세요.’

조엘 수녀가 곁으로 달려가 마더 테레사가 속삭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예수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자주 되뇌던 말이 혀끝에서 맴돌았지만, 말은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젤투르다 수녀가 이를 알아차리고 마음속에서 되풀이할 수 있도록 말을 받아 테레사의 귀에 들려주었다.

사람들은 마더 테레사가 스러져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가고 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잠시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과 말하고 웃고 기도도 하지 않았던가. 전에 여러 번 그랬듯이 심장박동이 정상으로 돌아와 다시 편하게 숨쉴 수 있기를 기대했다. 다시 일어나 자신들과 함께 웃고 이야기 나누기를 바랐다.

갑자기 한쪽을 제외한 건물 전체에 불이 나갔다. 집 전체가 정전이 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다음 불이 들어왔다가 다시 나갔다. 잠시 동안 어둠이 콜카타 전 지역을 덮었다. 아무도 마더 테레사 안에 있던 생명의 빛, 그녀가 만나는 모든 사람 특히 가난한 중에도 가장 가난한 사람을 따스하게 비추던 빛도 꺼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233쪽).”


나에게는 가톨릭에 관련한 생소한 말도 있었다. 이것이 독서 장애로 다가오기도 했다. 생소한 용어가 나오면 전혀 모르면 할 수 없지만 일단 언저리 의미만이라도 파악하고 계속 읽어나갔다. 모르는 부분이 점점 줄었다. 기뻤다. 다음 독자를 위해서 미리 언질을 드리고 싶어서다. 독자의 시간을 절약하시라고.

<소박한 기적>은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는 책이다. 이에서는 일부 힌두교도도 마더 테레사를 사랑의 전령사로 인정함을 보여준다. 전염병을 앓아 인도인 누구도 방관만하는 힌두교 사제 둘에게도 아낌없는 사랑의 실천을 보여준다. 힌두교도가 보는 앞에서 둘을 친절히 돌봐 주었기 때문이다.

인종과 종교를 초월해서 사람은 누구나 평화롭게 잠들 수 있는 권리가 있음도 온몸으로 가르쳐 준다. 인간이 편안히 죽을 수 있는 권리는 어떤 사람도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참다운 인권이 무엇인지도 한번 더 생각해 보게 한다.

덧붙이는 글 | T.T. 문다켈의 <소박한 기적>(황애경 옮김, 위즈덤하우스, 2005. 1. 3). 값 8800원.


소박한 기적 - 마더 테레사의 삶과 믿음

T. T. 문다켈 지음, 황애경 옮김, 위즈덤하우스(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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