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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00원짜리 콩나물 해장국 드셔 보세요
ⓒ 이종찬
술 마신 뒷날, 속풀이용으로 즐겨 찾는 콩나물 해장국. 그 시원하고도 담백한 맛의 고향은 전라북도 전주다. 예전에는 그 기막힌 맛을 보기 위해 일부러 차를 타고 전주까지 가야만 했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전주에서 만드는 그 오묘한 맛의 콩나물 해장국을 쉬이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예로부터 콩나물 해장국은 애주가들의 속을 풀어주는 술국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애주가들의 콩나물 해장국에 대한 그 지독한 사랑은 지금도 거의 변함없는 듯하다. 아니, 애주가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곳곳의 독특한 맛을 찾아 다니는 미식가들이 쓴 책에도 콩나물 해장국은 거의 빠지지 않고 소개되어 있다.

허준이 쓴 <동의보감>에도 "콩나물은 독이 없고 맛이 달며 오장과 위의 맺힘을 풀어준다"라고 적혀 있다. 이는 곧 콩나물이 사람의 몸에 있는 열을 잠재우고 수분대사를 원활히 해준다는 그 말이다. 즉, 콩나물이 사람의 몸 속에 쌓여있는 중금속이나 알코올 등 나쁜 기운을 땀으로 나오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콩나물 해장국의 핵은 뭐니뭐니 해도 시원하고 담백한 국물맛이다. 국물맛이 깔끔하고 개운하지 않은 콩나물 해장국은 앙꼬 없는 찐빵이나 다름없다. 그런 까닭에 콩나물 해장국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마다 여러 재료를 이용해 독특한 국물맛을 내는 나름의 숨은 비법이 있다.

▲ 경남 마산 부림시장 골목에 있는 <전북콩나물해장국> 집
ⓒ 이종찬

▲ 이 집에 들어가 식탁에 앉으면 제일 먼저 슝늉이 한 그릇 나온다
ⓒ 이종찬
지난 19일(토) 점심 때 찾은 '전북 콩나물 해장국'은 콩나물 국밥의 국물맛이 끝내주는 식당이다. 경남 마산시 부림시장 골목에 있는 이 자그마한 식당은 식당이라기보다는 가정집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5평 남짓한 이 식당은 주방 앞에 여러 명이 앉아 먹을 수 있는 긴 식탁 하나와 4개의 식탁이 두 줄로 놓여 있을 뿐이다.

언뜻 보기에도 허름하고 비좁기 짝이 없다. 손님 대여섯 명만 들어와도 금세 앉을 자리가 없어 여기 저기 기웃거려야 할 지경이다. 그래서 그런지 찾아오는 손님도 별로 없다. 가끔 이 집을 찾는 사람들 또한 부림시장에서 일하는 장꾼들뿐이다. 근데도 주방에서 일하는 두 명의 아주머니의 손길은 더없이 바쁘기만 하다.

"손님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뭘 그리 바쁘게 설치십니까?"
"우리 집은 찾아오는 손님보다 배달이 훨씬 더 많아예. 특히나 음식을 주문하는 사람들이 시장사람들이 돼나서 빨리 배달하지 않으모 난리가 나지예."
"요즈음 물가도 비싼데, 콩나물 해장국 한 그릇에 3500원씩 받아 가지고 남는 게 어디 있습니까?"
"물가를 빤히 알고 있는 시장사람들한테 턱없이 비싸게 받다가는 이 바닥에서 쫓겨나기 십상이지예."


십여년 전부터 다른 곳에서 콩나물 해장국을 팔다가 1년 전 이곳으로 옮겨왔다는 '전북 콩나물 해장국' 집 주인 연홍순(44)씨. 누룽지를 끓인 물부터 한 대접 내는 연씨에게 고향이 전주냐고 묻자 연씨는 '그런 거는 왜 자꾸 물어쌓는교?' 라며 '콩나물 해장국은 식으면 맛이 없다'며 빨리 먹으라는 손 시늉부터 한다.

▲ 예닐곱 가지 반찬과 함께 나오는 콩나물 해장국
ⓒ 이종찬

▲ 까만 뚝배기가 넘치도록 담긴 콩나물 해장국
ⓒ 이종찬
강된장과 파래무침, 파김치 등 예닐곱 가지의 반찬과 함께 나온 콩나물 해장국. 바글바글 끓고 있는 콩나물 해장국에서는 매콤하면서도 구수한 내음이 허연 김과 함께 마구 피어오른다. 뚝배기가 철철 넘치도록 담긴 그 콩나물 해장국은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금세 입 속에 침이 가득 고인다.

수북히 담긴 콩나물. 그 콩나물 위에 맛갈스럽게 얹힌 다진 마늘과 다진 대파, 고춧가루. 허연 김을 무럭무럭 피워올리는 뜨거운 뚝배기 옆에는 새우젓갈과 함께 생계란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저 생계란과 새우젓갈을 곁들여 먹어야 콩나물 해장국의 진맛을 느낄 수 있다는 투다.

"콩나물 해장국을 만들 때 특별한 비법 같은 거라도 있나요?"
"드셔보모 알지예. 우리집은 콩나물 국밥 재료를 체인점이나 이런 데서 받지 않고 시장에서 나오는 자연 그대로의 재료를 쓰지예."
"막걸리 맛이 참 좋은데, 이 막걸리는 집에서 직접 담급니까?"
"진동에서 가져 옵니더."


연씨는 음식맛은 곧 물맛이라고 귀띔한다. 이어 다싯물을 만들 때는 제일 먼저 옥수를 붓는단다. 그리고 그 옥수에 바지락과 멸치, 다시마, 무 등을 반나절쯤 끓여 다싯물을 낸다고 한다. 옥수가 혹 생수가 아니냐고 묻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연씨는 마지못한 듯 '이른 아침에 약수터에 가서 떠오는 물'이라고 내뱉는다.

▲ 따라 나온 날 달걀을 깨뜨려 김이 무럭무럭 나는 국밥 위에 올리고 새우젓갈을 조금 넣어야 제 맛이 난다
ⓒ 이종찬

▲ 접시 위에 퍼 담아가며 먹는 그 맛이 정말 끝내준다
ⓒ 이종찬
그래서일까. 허연 김을 후후 불어가며 콩나물을 건저먹는 그 맛이 이제껏 먹어본 콩나물 해장국과는 조금 색다른 깔끔한 맛이 나는 듯도 하다. 게다가 밥알이 자작하게 들어있는 국물맛이 아주 시원하고 담백해 먹으면 먹을수록 감칠맛이 자꾸만 혀 끝을 빙그르르 맴돈다. 가끔 톡톡 쏘는 그 독특한 매운 맛과 함께.

제법 추운 겨울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콩나물 해장국을 몇 숟가락 뜨자마자 이마와 목덜미에서는 이내 땀방울이 송송송 맺힌다. 입 천장을 데어가며 뜨겁고도 매콤한 콩나물 해장국을 반쯤 먹고 나자 오전 내내 쓰리던 속이 이내 편안해지면서 개운해진다. 마치 먹구름이 가득 끼어있던 속을 티 한 점 없는 옥수로 깨끗하게 씻어낸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다.

마산 진동의 술도가에서 매일 가져온다는 막걸리맛도 그만이다. 노란 주전자에 담긴 허연 막걸리를 허연 사발에 부을 때마다 달착지근한 누룩내가 훅 풍긴다. 콩나물 해장국과 토종 막걸리. 땀 뻘뻘 흘려가며 뜨거운 국물을 떠먹다가 가끔 몸의 열기를 식히기라도 하듯이 벌컥벌컥 마시는 그 시원한 막걸리 맛이라니.

"어때예?"
"개운한 국물 맛이 정말 끝내주네요."
"점심 때 지나서 다시 한번 오이소. 그라모 아저씨한테는 특별히 국물맛을 내는 비결을 쪼매 알려드리께예."
"그러다가 제가 이 옆에 같은 콩나물 해장국집을 차리면 어떡하실려구요?"
"음식 장사는 같은 업종이 곁에 많이 있을수록 더 잘되예."


▲ 아삭아삭 씹히는 콩나물도 혀끝을 자꾸만 농락한다
ⓒ 이종찬
이제, 정말 봄이 가까이 다가왔다. 매화가 피어나고 산수유가 노란 꽃몽오리를 말고 있는 이때 겨우 내내 꽁꽁 얼어붙었던 속을 보약 같은 콩나물 해장국으로 스르르 녹여보자. 시원하고 개운한 콩나물 해장국을 먹으며 춥고 외로웠던 지난 날들을 훌훌 씻어버리고 새롭고 찬란한 봄을 맞이하자.

콩나물 해장국 이렇게 끓여야 맛깔난다
멸치, 바지락, 무, 다시마 넣고 끓여내는 다싯물이 맛의 비결

준비물/콩나물, 바지락, 국물멸치, 무, 다시마, 양파, 대파, 마늘, 집간장, 매운고추, 붉은고추, 참기름, 고춧가루, 새우젓.

1. 콩나물은 꼬리를 따지 말고 깨끗하게 씻고, 바지락은 소금물에 미리 담가 해감을 내뱉게 한다.
2. 바지락과 국물멸치, 다시마, 무, 매운고추, 양파를 넣고 다싯물을 만든다.
3. 잘 익은 김장김치를 잘게 썬다.
4. 대파와 양파를 잘게 썰고, 붉은고추는 어슷썰기하며 마늘은 다진다.
5. 다신물에 콩나물을 넣고 비릿한 내음이 가실 때까지 끓이다가 건져내 찬물에 씻어둔다.
6. 콩나물을 건져낸 다싯물에 김치와 붉은고추, 잘게 썬 양파를 넣고 잠시 끓이다가 집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7. 뚝배기에 밥을 담고 콩나물과 잘게 썬 파, 다진 마늘을 얹은 뒤 다싯물을 푸짐하게 붓고 바글바글 끓이다가 달걀을 깨뜨려 올린다.
9. 잘 끓인 콩나물 해장국 위에 고춧가루를 약간 뿌린 뒤 새우젓으로 간을 맞춘다. / 이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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