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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긋하고 구수한 쑥국 한 그릇 드세요
ⓒ 이종찬
푸드덕 찬바람을 털어내고 아침마다 한 쌍의 새가 날아와선 창문을 열라 보챈다 그래, 겨우내 움추린 내 몸 안에 봄이 오고 있음이야 나는 이 아침에 쑥국을 끓여 먹는다 버려진 둔덕에서도 밟힐수록 눈 밟힌 쑥이지, 아마.

쑥쑥 목구멍을 타고 국물로 흘러들어와 햇빛 한 아름 불러들이고 있음이야 아, 맛있다! 생기나게 하는 이 초봄의 쑥국 맛, 들녘에서 먼저 눈 비비고 깨어나 꽃샘추위로 고독을 달군 이 향긋한 내음이며 차가운 빗물이랑 해와 달과의 고적한 기억을 갇춘, 혹은 그 견고한 사랑을 풀어내는 쑥국 맛 참 맛있다! -김길나 '쑥국' 모두


지금, 가까운 들녘에 나가보면 곳곳에 밟히는 게 파아란 쑥이다. 마치 어린 쑥들이 '어서 날 캐 가주' 하며 마구 어리광을 부리는 것만 같다. 여기저기 고개를 삐쭘히 내밀고 빼곡히 올라오는 어린 쑥을 바라보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진종일 캐고 싶다. 쑥을 캘 칼이 없어도, 쑥을 담을 바구니가 없어도 좋다.

그저 밭둑에 퍼질러 앉아 손으로 봄내음 물씬 풍기는 쑥을 뜯으며, 그 쑥을 키워내는 봄 들판의 향기론 흙내음을 코끝 싸하도록 맡고 싶다. 저만치 밭둑에 옹기종기 앉아 밭고랑을 일구며 씨를 뿌리고 있는 아낙네들처럼 봄볕에 까맣게 그을리고 싶다. 이대로 쑥내음에 흠뻑 젖다가 마침내 봄이 되어버리고 싶다.

▲ 요즈음에는 쑥을 캐는 아낙네의 모습을 보기도 그리 쉽지 않다
ⓒ 이종찬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봄이 오는 들판 곳곳에는 바구니 가득 쑥을 캐는 아낙네들의 모습이 아주 흔했다. 그 아낙네들 곁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냉이, 달롱개(달래)를 캐고 있는 꼬마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봄날 뭉게구름처럼 예쁘게 피어나곤 했다. 달롱개 뿌리를 캐느라 논둑을 깊숙히 파다가 논주인에게 논둑 다 뭉갠다고 혼이 나는 모습도 자주 보이곤 했다.

어릴 적 나는 들판에 쑥쑥 올라오는 쑥을 따라 봄이 오는 줄 알았다. 그 쑥을 캐서 향긋하고도 구수한 쑥국을 먹어야 마을 앞 개나리와 앞산의 진달래가 앞 다투어 피어나는 줄 알았다. 그때 우리 마을사람들이 쑥털털이라 부르는 쑥버무리를 먹어야 지난 겨울방학 때 꼭꼭 밟아놓은 보리가 연초록 대를 쑥쑥 밀어올려 보리풍년이 드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눈을 몇 번이나 비비며 들녘 이곳 저곳을 살펴보아도 옹기종기 모여 앉아 쑥을 캐는 아낙네들의 모습이 쉬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그 아낙네들 곁에서 냉이와 달롱개를 캐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는 더더욱 찾기 어렵다. 쑥은 저리도 쑥쑥 자라 사람들을 애타게 부르고 있지만 사람들은 눈도 깜짝하지 않는 것만 같다.

그만큼 먹고 살기가 좋아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들판에 흔히 자라는 쑥 따위의 풀들은 이제 먹지 않아도 먹거리가 남아돌기 때문일까. 하긴,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끼니 한 끼를 떼우는 것이 일종의 화두였다. 특히 오뉴월 보릿고개가 다가오는 사월이면 보리수확을 할 때까지 한 톨의 양식이라도 아껴야만 했다.

▲ 지금 자라는 어린 쑥을 캐서 쑥국을 끓여야 향긋하고 맛이 좋다
ⓒ 이종찬
그 무렵, 들녘 곳곳에 지천으로 널린 게 쑥이었다. 쑥은 가난한 사람들의 끼니를 때워주는 중요한 양식이었다. 쌀은커녕 보리쌀도 모자라 끼니 때마다 쑥을 섞은 쑥밥을 해먹기도 하고, 보리쌀에 쑥을 넣은 보리쑥죽을 끓여먹기도 했다. 어디 그뿐이랴. 방앗간에서 보리쌀을 찧을 때 나오는 딩기(겨)에 쑥을 버무려 쑥떡이나 쑥털털이를 만들어 끼니를 때우곤 했다.

예로부터 쑥은 우리 민족의 삶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중요한 먹거리이자 훌륭한 약재였다. 한방에서 쑥은 '애엽'(艾葉)이라 하여 한약재에도 빠지지 않고 들어가며, 뜸의 재료로도 널리 이용했고 지금도 이용하고 있다. 쑥을 말려 뭉쳐서 혈자리에 놓고 태우면 쑥의 온기가 혈자리를 타고 들어가 몸 속의 병을 치료하게 한다는 것이다.

옛 의서 <본초강목>에 따르면 쑥의 성질은 "날 것은 차고, 말린 것은 열하다"며 "음력 3월 초와 5월 초에 잎을 뜯어 햇볕에 말리는데 오래 묵은 것이라야 약으로 쓸 수 있다" 고 되어 있다. 그런 까닭에 쑥은 사람의 몸을 따뜻하게 하고 피를 멈추게 하는 것은 물론 몸이 약하고 차서 오는 여성의 냉증, 월경불순 등에 특히 좋다고 한다.

▲ 들깨가루에 쑥을 버무려 잘 끓인 쑥국
ⓒ 이종찬
어디 그뿐인가. 쑥은 위가 약해져 소화불량에 자주 걸리는 사람이나 찬 것만 먹으면 설사를 하는 사람(소음인)에게 좋은 음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평소에도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이나 얼굴이 붉고 혈압이 있는 사람(소양인)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이같은 소양인의 경우에는 쑥국이 제격이다. 왜? 말린 쑥은 성질이 따뜻하지만 날 것을 곧바로 끓여먹는 쑥은 성질이 차기 때문이다.

쑥국은 뭐니뭐니 해도 지금 새로 돋아나는 어린 쑥을 캐서 곧바로 국을 끓여먹는 것이 향긋하고 구수하다. 특히 요즈음 돋아나는 어린 쑥에는 비타민A와 C, 철분 등이 많이 들어있고 쌉쌀한 맛까지 느껴지기 때문에 맛이 아주 좋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 조상들이 봄철 잃어버린 입맛을 돋구는데 쑥만한 게 없다고 했지 않겠는가.

쑥국을 끓이는 법은 아주 간단하다. 다른 음식처럼 그다지 많은 재료도 들지 않는다. 그저 어린 쑥(음식은 정성이 반이라 했으므로 들녘에 나가 직접 캔 어린 쑥이라면 더욱 좋다)과 모시조개, 된장, 들깨가루, 멸치 다싯물, 갖은 양념재료만 있으면 그만이다. 만약 들깨가루를 구하기 힘들다면 콩국수를 할 때 쓰는 콩가루를 써도 된다.

쑥국을 끓이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어린 쑥을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 뒤 들깨가루를 뿌려 버무려야 한다. 이때 쑥국의 향긋하고 담백한 맛을 즐기려면 쑥에 들깨가루를, 구수하면서도 진한 국물맛을 즐기려면 쑥에 콩가루를 섞는 것이 좋다. 그리고 미리 끓여둔 다싯물에 쑥과 조갯살을 넣고 센불에서 팔팔 끓인 뒤 갖은 양념을 넣고 한번 더 살짝 끓여 간을 맞추면 끝.

▲ 쑥국은 금방 버무린 파김치와 함께 먹어야 더욱 향긋한 맛을 즐길 수 있다
ⓒ 이종찬
맛 더하기 하나. 향긋하면서도 약간 쌉쌀한 쑥맛과 된장의 깊은 맛이 나는 쑥국을 제대로 즐기려면 모시조개 국물을 쓰지 않고 멸치 다싯물에 된장과 모시조개살만 넣어 끓이는 것이 좋다. 하지만 어젯밤 술을 많이 마셔 속이 쓰릴 때는 멸치 다싯물과 모시조개 국물을 반반씩 섞으면 시원한 맛까지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

맛 더하기 둘. 향긋하고 감칠맛 나는 쑥국을 한 냄비 끓이고도 쑥이 조금 남았다면 아이들 간식용으로 쑥버무리도 한번 만들어 보자. 쑥버무리를 만드는 방법은 쑥국보다 더 간단하다. 씻어 물기를 뺀 쑥에 쌀가루와 소금을 약간 뿌려 버무린 뒤 찜통에 넣어 푹 찌기만 하면 그만. 이때 아이들의 입맛을 위해 설탕을 조금 넣으면 맛이 더욱 좋다.

쑥국을 끓일 때 특히 주의할 점은 너무 오래 끓이지 말라는 것이다. 쑥국을 마치 곰국 끓이듯이 중간불에서 오래 끓이면 쑥의 빛깔이 누렇게 변한다. 국에 든 쑥의 빛깔이 누렇게 변하면 언뜻 보기에도 입맛이 툭 떨어지지만 쑥국 본래의 맛 또한 사라진다. 그러므로 파아란 빛을 띤 쑥국을 제대로 끓이려면 센 불에서 재빨리 끓여내는 것이 조리의 지혜.

▲ 쑥국도 먹고 건강도 챙기고
ⓒ 이종찬
사월도 점점 깊어간다. 낮도 점점 더 길어진다. 조금 더 지나면 어린 쑥도 웃자라 쑥국을 끓여먹을 수가 없다. 이러한 때 퇴근길에 잠시 가까운 들녘이나 강변에 나가 해 떨어질 때까지 쑥을 캐자. 그리하여 오늘 저녁이나 내일 아침 식탁에는 봄내음 물씬 풍기는 쑥국을 올려보자. 향긋한 쑥국 한 그릇에 잃어버린 입맛도 되찾고 가족들의 건강도 다시 한번 챙겨보자.

깔끔한 맛 즐기려면 쑥에 들깨가루 묻혀야
향긋하고 구수한 쑥국 이렇게 끓이세요

▲ 향긋한 봄맛 배인 쑥국
ⓒ이종찬

재료/어린 쑥, 모시조개, 들깨가루, 된장, 국물멸치, 잔파, 마늘, 집간장

1. 냄비에 국물멸치를 넣고 다싯물을 우려낸다.

2. 어린 쑥을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 뒤 들깨가루를 솔솔 뿌려 살짝 버무려 둔다.

3. 옅은 소금물에 담가 해감을 미리 내뱉게 한 모시조개를 깨끗이 씻은 뒤 냄비에 담고 찬물을 부어 팔팔 끓인다.

4. 입이 벌어진 모시조개의 살점을 빼내고, 맑은 국물은 면보에 걸러둔다.

5. 멸치 다싯물에 모시조개 국물을 섞은 뒤 된장을 풀어 팔팔 끓이다가 들깨가루를 묻힌 어린 쑥과 모시조개살을 넣고 다시 한소끔 끓인다.

3. 쑥국이 끓으면 다진 마늘과 3~4cm 길이로 썬 잔파를 넣고, 다시 한번 살짝 끓인 뒤 집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맛 더하기/어린 쑥에 콩가루를 묻혀도 국물맛이 고소하며, 들깨가루와 콩가루를 반반씩 섞어도 감칠맛이 뛰어나다. / 이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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