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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쭉한 추어탕 한 수저에 갓 담근 겉절이 하나 올려 입 안에 넣으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 유영수
요즘처럼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계절이면 유난히 머릿속을 맴도는 음식이 몇 가지 있다. 그 중에서도 한 그릇 깨끗하게 비우고 나면 뱃속은 물론 마음까지 든든해지는 추어탕을 빼놓을 수 없다.

원래 추어탕 하면 '남원추어탕'을 으뜸으로 꼽기 마련인데, 정작 처갓집을 남원에 두고 있는 나는 결혼 5년차였던 작년까지도 처가에서 추어탕을 먹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던 차에 작년 추석에 명절을 쇠러 처가에 간 김에 장모님에게 '추어탕이 먹고 싶은데, 왜 한 번도 안 해 주시느냐?'고 물어보고 나서, 그 이후로 몇 번 남원추어탕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장모님께서는 꽤 입맛 까다로운 막내사위가 추어탕을 좋아하지 않을 거라 지레짐작을 하셨던 것이고, 더구나 추어탕을 끓여내는 것 자체가 간단치 않은 작업이라 더 그러셨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튼 그 이후로 장모님표 추어탕과 처외숙모님표 추어탕을 번갈아 시식할 수 있게 돼 추어탕의 깊은 맛에 푹 빠져들게 되었다.

보통 추어탕 하면 추어탕만 전문으로 파는 아주 커다란 음식점에서 먹는 것이 더 맛있을 거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가정식백반을 주로 파는 작은 식당에서 정말 제대로 추어탕을 손님에게 맛보이는 곳이 있어 소개하려 한다.

▲ 가정에서 어머님이 차려 주시는 정성스런 음식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말 그대로 '가정식백반'의 진수를 보여주는 음식들이다.
ⓒ 유영수
가끔 업무차 들리게 되는 광명시의 한적한 동네에 위치한 도로변의 이 식당에 들르게 된 것은 백반을 먹기 위해서였다. 특별히 메뉴 고르느라 고민할 필요 없이 국 한 가지에 몇 가지 반찬을 맛볼 수 있는 백반이 점심식사로는 가장 무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심코 주문한 백반이 시쳇말로 '장난이 아닌' 것이었다. 속이 시원하게 풀리는 북어국은 말할 것도 없고, 반찬으로 나온 음식 하나하나가 모두 입에 딱 맞는 것이 아닌가.

▲ 이렇게 정갈하고 맛난 음식을 삼천오천원에 맛볼 수 있다는 건 분명 복받은 사람만 가능한 게 아닐까?
ⓒ 유영수
내 연재기사 제호의 '꼬투리'는 괜스레 붙은 것이 아니다. 그만큼 맛을 잘 아는 것은 물론 까다로운 식성 또한 예사롭지 않기에 불린 것인데, 그런 내 입맛에 모든 음식이 맞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백반에는 요일별로 다른 국과 매일 여섯 가지의 찬이 딸려 나오는데, 계속 바뀌는 국과 반찬들은 모두 정성스럽고 맛깔스러움을 지니고 있었다. 헌데 중요한 것은 이 여섯 가지의 찬 중에 닭볶음탕이나 제육볶음 그리고 오징어볶음처럼 별미로 먹을 만한 특식메뉴가 한 가지씩 곁들여 나온다는 것이다.

▲ 보고만 있어도 침이 꼴깍 넘어가게 하는 도토리묵
ⓒ 유영수
▲ 여기 이 닭도리탕 하나면 밥 한 공기 충분히 비우고도 남는다.
ⓒ 유영수


















그 중에서도 '닭볶음탕'의 맛은 가히 예술이라 아니할 수 없다. 닭으로 만든 음식은 뭐든지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 가운데서 닭볶음탕은 특히 내 입맛을 항상 당기는 음식 중 하나다.

살포시 그 속살을 드러내는 닭고기의 부드러움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입안에 넣으면 살살 녹아버리는 통감자의 맛은 '끝내준다'는 표현 외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게 만들어 버린다. 거기에 얼큰한 국물을 밥공기에 살짝 얹은 후 한 술 떠먹기라도 하면 온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착각에 빠질 수밖에 없다.

맛있는 음식의 향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백반에 나오는 국 대신 찌개류를 주문해도 백반의 찬은 바뀌지 않는다.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그리고 순두부찌개 등도 결코 맛과 양 면에서 뒤지지 않는다.

▲ 진한 국물맛에 숟가락이 절로 가는 된장찌개
ⓒ 유영수
▲ 푸짐하게 담긴 제육볶음 너머로 간장양념한 두부와 콩나물이 보인다.
ⓒ 유영수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워낙 푸짐하고 맛있는 반찬들로 인해 밥 한 공기를 찬만으로도 비울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찌개의 3분의1 정도는 남기기 십상인 것이다.

푸짐한 양과 맛있는 음식 못지 않게 손님들을 끄는 매력은 저렴한 이 식당의 음식값일 것이다. 어디에서도 맛보기 힘든 이 정성스러운 백반을 단돈 3500원에 접수할 수 있다. 물론 주인장과 안면을 튼 후엔 추가로 공기밥도 그냥 먹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점심시간에 이곳은 항상 주변 직장인들과 인근 소규모공장의 단체손님들로 북적거린다. 이들은 대부분 각자 회사별로 마련된 수첩에 그날 식사한 인원수를 체크한 후 월말에 결제하는 방법을 이용한다.

이 식당에서 배달을 시켜먹는 사람들도 꽤 된다. 배달을 주로 하는 아주머니 한 분이 식사하는 동안 계속 문턱이 다 닳을 정도로 쉴새없이 음식쟁반을 머리에 이고 다니신다. 배달양이 너무 많아 빈 그릇은 따로 차량을 이용해 주인장이 회수해야 할 정도다.

▲ 여기 이 추어탕의 맛에 한번 빠져 보시라. 최소한 1주일에 한번은 이 생각에 잠을 못 이룰지도 모른다.
ⓒ 유영수
이곳에서 추어탕을 먹게 된 것은 한참이 지난 뒤였다. 메뉴판에 적힌 어떤 음식을 먹어봐도 항상 흡족한 편이었기에, 별 생각없이 자연스레 이곳에 들르던 어느 날이었다. 추어탕을 대표메뉴로 내세운 간판을 그제야 유심히 보게 되었고, 걸쭉하면서도 속깊은 맛을 자랑하는 진국 추어탕을 맛보게 된 것이다.

느끼하거나 뒷맛이 깔끔하지 않은 대충 끓여낸 추어탕이 아닌, 담백하면서도 개운한 뒷맛을 선사하는 제대로 된 추어탕이 이곳에 있었던 것이다. '왜 여태 이 맛을 보지 않았을까?'하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대목이었다.

▲ 주방과 홀을 책임지고 있는 세 분을 찍어보았다. 예쁘게 나오게 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환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 유영수
그 후로 왠지 속이 허하다고 느껴질 때면 어김없이 이곳의 추어탕을 먹게 되는데, 희한한 것은 두세 숟갈만 떠넣으면 벌써 배가 부르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미리 얘기한 대로 평소 식사할 때 밥 한 공기 반 정도는 먹어야 포만감을 느끼는 나도 추어탕을 먹을 땐 공기밥 한 공기를 비우는 게 힘들 만큼 이 추어탕은 사람 속을 든든하게 채워준다.

추어탕 가격 또한 주머니 사정 가벼운 직장인들에게 반가운 그것이다. 보통 제대로 맛을 내는 추어탕전문점에선 6000~7000원 정도를 지불해야 하지만, 이곳에선 5000원에 속깊은 맛의 추어탕을 만끽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곳이라도 옥에 티는 있게 마련이다. 내가 직접 맛을 본 음식 중 별반 맛있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딱 한 가지 있었으니, 그건 바로 가장 흔하면서도 제일 맛을 내기 쉬울 것 같은 '비빔밥'이었다. 그래서일까. 이곳에서 비빔밥을 먹는 손님은 별로 본 적이 없는 듯하다.

덧붙이는 글 | 광명시 광명동 소재. 02)2615-0330
일요일은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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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고 대자연을 누리며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서울에서 평생 살다 제주에서 1년 반,포항에서 3년 반 동안 자연과 더불어 지내며 대자연 속에서 깊은 치유의 경험을 했습니다. 인생 후반부에 소명으로 받은 '상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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