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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돼지불백과 함께 볶은 양념게장. 독특한 방법 만큼이나 맛 또한 오묘함을 지니고 있다.
ⓒ 유영수
대부분 직장인들은 매일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오늘은 또 뭘로 한 끼를 때울까?'라는 고민에 휩싸이게 된다. 심지어는 출근하면서부터 오늘의 점심메뉴를 어떤 걸로 정할지를 놓고 갈등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항상 먹는 것이 거기서 거기고 특별히 입맛을 당길만한 메뉴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기분 좋고 맛있게 먹어야 할 점심식사 메뉴선정이 하나의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셈인 것이다.

▲ 깔끔하고 정갈한 반찬들. 오른쪽 아래에 있는 것이 갈치젓갈인데 처음 먹어본 내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 유영수
강서구 방화동에 자리한 '신촌 기사식당'에서는 이런 고민 따윈 전혀 할 필요가 없다. 차림표에 나와 있는 메뉴가 하나하나 모두 훌륭한 성찬으로 느껴질 정도로 모두 맛깔스럽고 푸짐하기 때문이다.

해물잡탕과 게장백반, 돼지불백과 동태찌개 그리고 우렁된장찌개 이 다섯 가지가 이곳 식사메뉴 전부다. 일반 기사식당에 비해 가짓수는 얼마 안 되는 편이지만 음식 하나하나를 먹어보면 뭐 하나 버릴 것이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그 중 그나마 조금 덜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우렁된장찌개다. 그렇다고 맛없는 정도는 아니지만 이 식당의 명성에 비하면 그냥 다른 곳에서 내놓은 그것과 별반 다를 것 없을 정도의 평범한 맛을 지니고 있다.

▲ 돼지불백을 먹을 때 곁들여 나온 반찬들. 상추도 눈치보지 않고 맘껏 먹을 수 있으나 식후 찾아오는 졸음운전을 주의해야 한다.
ⓒ 유영수
그 외 네 가지 메뉴는 하나같이 모두 손님에게 황홀한 식사시간을 제공한다. 먼저 돼지불백의 맛 속으로 퐁당 빠져보자.

미리 냄비에 분량만큼 담은 양념된 돼지고기를 휴대용 가스레인지 위에 얹어놓고 불을 켠다. 지글지글 맛있는 소리를 내며 익기 시작하면 집게로 살살 뒤집어 가며 골고루 익혀주면 된다.

이제 천천히 음미할 시간. 곁들여 나온 싱싱한 상추에 고기 한 두 점을 얹고 마늘과 양념된장을 올려주면 군침이 자연스레 입안에 고이게 된다. 달작지근하면서도 입에 착착 달라붙는 맛이 가히 일품이라 하겠다. 당연히 공기밥은 양껏 퍼 담아 올 수 있으므로 대식가들도 양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여기서 주인장이 알려주는 '돼지불백 맛있게 먹는 색다른 요령' 한 가지. 주문할 때 비벼 먹을 거라고 미리 말을 하면, 양푼에 밥을 내어오고 여기에 잘 익힌 돼지불백과 잘게 찢어놓은 상추를 넣어 쓱싹 비벼주면 훌륭한 '불고기덮밥'이 완성된다.

▲ 맛있게 익어가는 돼지불백. 한 가지 아쉽다면 파를 따로 넣지 않아서인지 보는 맛을 조금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음식은 먹는 맛 못지않게 보이는 것 또한 중요하지 않을까.
ⓒ 유영수
평소 해물탕을 즐겨먹는 내게는 늘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 보통 2~3명 정도 같이 식사를 하거나 반주를 곁들여 술자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해물탕이건만 혹시 여건상 혼자 식사를 하는 경우엔 쉽게 맛보기 힘든 게 또한 이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걱정 붙들어 매시라. 혼자서도 해물잡탕을 먹을 수 있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내용물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속살이 꽉 찬 게와 탱탱하게 살이 오른 새우며 많은 양이 돋보이는 홍합, 거기에 조개까지 해물탕에 들어가는 재료는 거의 다 포진하고 있다.

▲ 푸짐한 해산물이 들어있는 해물잡탕이 맛있게 끓고 있다. 색감이 잘 표현되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 유영수
만약 두 사람이 해물잡탕을 주문하면 웬만한 해물탕 전문점에서 2만 원 정도 하는 小자 양만큼 먹을 수 있는 넉넉한 양이다. 여성 분들은 3명이 먹어도 충분할 만큼 푸짐하다. 혹시 여러 명이 같이 식사를 할 경우엔 해물잡탕과 돼지불백 혹은 돼지불백과 게장백반을 따로 시켜 나눠 먹어도 괜찮다. 워낙 푸짐한 양이 제공되므로 각각의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여길 찾아 식사를 할 때마다 느끼는 생각 한 가지. 만약 회사 근처에 이런 식당이 하나쯤 있다면 회식자리로 애용해도 괜찮겠다는 아니 훌륭하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회식을 꼭 고기집이나 근사한 요릿집 혹은 횟집에서 해야 한다는 편견은 이제 버리자.

▲ 두 사람이 해물잡탕과 돼지불백 1인분씩 시켜먹는 것도 좋은 방법. 해물잡탕 1인분은 둘이 먹어도 될만큼 푸짐한 양을 자랑하고, 돼지불백 또한 그 못지않다. 사진 속 돼지불백의 양은 조금 먹다 찍은 것이므로 참고하시라.
ⓒ 유영수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에 저렴하면서도 맛있고 푸짐하게, 서로 얼굴을 맞대고 고민을 털어놓으며 술 한 잔 기울인다면 사회생활에서 얻는 스트레스도 잠시 털어버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제 이 식당의 대표메뉴라 할 '게장백반'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게장을 좋아하기는 해도 '그걸로 어떻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을까?'하고 의구심을 지닌 게 사실이다. 아무래도 밥을 먹을 땐 국물이 있는 찌개 종류를 먹어야 든든하다는 고루한 생각 때문이었을까.

▲ 해물잡탕에 들어있는 싱싱한 게를 보라. 꽉 찬 속살이 빨리 잡수시라고 유혹하고 있는 듯하다.
ⓒ 유영수
아무튼 그러한 연유로 이 집에서 가장 맛있다고 소문난 게장백반을 외면한 채 계속 다른 메뉴만 탐닉하다, 결정적인 계기를 맞아 이 주인공을 만나게 됐다. 식사를 하면서 잠시 옆 테이블을 둘러보는데, 아니 이게 웬 황당한 시츄에이션이란 말인가.

불 위에서 잘 익어가고 있는 안 그래도 맛있는 돼지불백 냄비에, 갑자기 테이블 위에 있던 게장을 쏟아붓는 것이었다. '저 사람들 참 희한하게 식사하네'하며 잠시 지켜보는데 주인장이 옆에서 참견을 한다.

"저렇게 해서 드시면 게장양념이 돼지불백과 어우러져 오묘한 맛을 낸답니다."

이 대목에서 '옳거니!'하며 무릎을 치게 된다. 다음에 여기 오면 꼭 저렇게 해서 먹어보리라. 역시 식도락가에겐 어느 정도의 식탐(食耽)과 호기심은 미덕으로 통하기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 입에서 살살 녹는 양념게장. 싱싱한 속살을 한 입 배어물면 달아난 입맛을 바로 찾을 수 있을 정도다.
ⓒ 유영수
그래서 며칠 후 이곳에서 예의 그 유명하다는 게장백반과 조우하게 된다. 당연히 돼지불백과 함께 게장백반을 1인분씩 주문했다. 돼지불백을 익히고 있으면 벌겋게 양념이 된 게장이 한 접시 나온다. 양념게장 본연의 맛을 외면할 수 없으므로 먼저 한 입 베어 물어 본다.

입안이 얼얼해질 정도로 매콤한 맛이 강렬하게 휘몰아친다. '어, 이거 장난이 아닌데!' '와' 감탄사가 계속되고 손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분명 엄청나게 매운 맛을 내면서도 자꾸만 손이 가게 하는, 감칠맛 나는 양념이 비법인 듯하다.

이제 그 맛을 대략 음미한 후 거의 다 익어가고 있는 돼지불백 냄비에 나머지 양념게장을 모두 넣는다. 돼지불백의 양념과 양념게장의 양념이 섞이면서 맛있는 향이 코끝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우선 돼지불백이 어떤 맛으로 변모했는지 확인해 본다.

그대로의 맛도 일품이었지만 게장의 양념과 어우러진 돼지불백의 그것은 더욱 달콤한 맛으로 미식가를 유혹하고 있었다. 과연 돼지불백과 함께 볶은 게장의 맛은 어떨까. 한 입 베어물어 보니 정말 주인장의 말처럼 오묘함이 느껴진다.

처음에는 돼지불백의 고소한 양념맛이 입안을 휘젓더니 이내 양념게장의 매콤하고 짜릿한 맛이 혀끝을 자극한다. 정말 예술이다.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아주 독특하면서도 맛이 좋아 다음날 그리고 그 다음날도 이 맛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을 정도다. 양념게장을 좋아하는 식구가 있다면 포장해 가는 것도 좋을 듯하다.

▲ 돼지불백에 볶은 게장도 게장이지만 나는 이 볶음밥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 유영수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하시면 큰 오산이다. 돼지고기와 게장을 그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깔끔하게 비운 냄비에는 양념이 남아있다. 이 양념이 엑기스다. 그냥 버리기엔 너무 아깝지 않는가. 밥을 한 공기 정도 더 퍼와 여기에 붓는다. 친절한 주인장이 잘게 찢어놓은 상추와 고소한 참기름을 넣어준다.

살짝 약하게 불을 틀어놓고 잘 비빈 후 한 입 떠먹어 보니 이 맛이 또 기가 막히다. 닭갈비나 해물찜을 먹은 후 그 양념으로 비벼주는 맛에 비할 바가 아니다. 특히 밥을 먹다 입안에서 간혹 씹히게 되는 게 껍데기의 맛조차 고소함과 매콤함이 스며들어 예사로이 넘길 수 없는 맛을 낸다.

이날 참 오지게 먹고 배 두드리며 식당 문을 나설 수 있었다. 돼지불백과 게장백반, 거기에 남은 양념으로 볶은 밥. 진정 강추하고 싶은 메뉴다.

한 가지 음식이라도 소홀함 없이 정성껏 맛있게 대접하는 주인장의 마음이, 서울 외곽에 위치한 식당이라는 단점을 이겨내고 멀리서도 많은 이들이 찾아들게 만드는 비결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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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고 대자연을 누리며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서울에서 평생 살다 제주에서 1년 반,포항에서 3년 반 동안 자연과 더불어 지내며 대자연 속에서 깊은 치유의 경험을 했습니다. 인생 후반부에 소명으로 받은 '상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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