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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떡볶이 1인분이면 꼬르륵 거리는 뱃속의 요동을 잠시 잠재울 수 있다. 헌데 뒤에 보이는 튀김의 유혹도 벗어나기 힘들다
ⓒ 유영수
아침 평균기온이 영하 5도 정도를 유지하고 얼마 전엔 첫눈이 제대로 내려 빙판길 출근대란까지 경험한 본격적인 겨울 즈음이다. 이럴 때 길가에는 각종 포장마차가 제각각 다른 메뉴를 들고 손님을 끌기 위해 요란한 준비를 한다.

겨울철 길거리표 대표 간식거리라 할 붕어빵과 군고구마 장수는 물론 지하철 역 입구에서 간단히 소주 한 잔을 털어 넣으며 안주 삼아 먹기 좋은 닭꼬치류까지. 이외에도 요즘 한창 뜨고 있는 녹차 호떡과 어묵 포장마차도 빼놓을 수 없다.

▲ 퇴근길 출출한 배를 달래주는 분식 포장마차 안은 늘 손님들로 북적댄다.
ⓒ 유영수
하지만 겨울철은 물론 사시사철 서민들의 뜨거운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 여러 간식거리를 싼 값에 먹을 수 있는 '분식 포장마차'가 그것. 뜨끈한 어묵 국물을 곁들여 떡볶이 한 접시 비워 내면 칼바람에 얼었던 몸과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구로구 남구로역 인근에 위치한 '분식 포장마차'에서는 거창한 간판이나 상호도 찾아볼 수 없다. 다른 곳에 비해 규모가 그리 크지도 않으며 특색 있는 메뉴를 선보이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거기에 딱히 좋아 보이는 입지를 점하고 있지도 않음에도 이곳에는 늘 단골 손님들로 넘쳐난다. 무엇이 이리도 이 동네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것일까.

▲ 펄펄 끓는 순대를 잽싸게 썰어내는 주인장. 고개 들고 한번 웃어보시라 했지만 쑥스러웠는지 살며시 웃기만 한다.
ⓒ 유영수
결론부터 말하자면 식재료를 좋은 것으로 써서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는 것과 당장의 이익보단 손님과의 교감을 중시하는 주인장의 넉넉한 인심이 그 이유라 하겠다.

▲ 이 장면은 결코 연출된 것이 아니다. 실제 거스름돈과 포장해 가는 음식물을 건네주는 상황을 담아낸 사진일 뿐이다.
ⓒ 유영수
1인분에 고작 1~2천 원 정도 하는 포장마차에서 좋은 식재료를 써봤자 얼마나 좋겠냐고 반문하신다면 선입견을 깨셔도 좋을 듯싶다. 이 집의 대표 메뉴라 할 오징어튀김을 예로 들어보자.

기자의 경우도 우연히 이곳 앞을 지나다 너무 맛있어 보이는 오징어튀김을 먹어 보고 반해 이집의 단골이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보통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판매하는 오징어튀김이란 싱싱하지 않은 것은 물론 그 두께 또한 얇기 때문에 오징어의 맛을 느끼기란 어렵다.

물론 단가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밀가루만 잔뜩 입혀 튀겨낸 이런 오징어튀김은 '밀가루범벅'이라 할 정도로 썩 유쾌하지 않은 음식이다. 헌데 네 개에 천 원씩 하는 이 포장마차의 오징어튀김은 재료부터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보름에 한 번씩 주인장이 직접 인천까지 차를 몰고 가 단골집에서 대량으로 구매해 온 후, 냉동해 놓았다 하루 쓸 양만 가져와 재료로 쓴다는 오징어. 그 굵고 싱싱한 오징어의 상태는 연재기사 전편에서 다룬 신림역 '오첨지'의 그것과 견줘도 전혀 손색 없을 정도로 훌륭해 보였다.

▲ 한 눈에 봐도 도톰하고 싱싱한 오징어를 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 유영수
대부분 분식형 포장마차에 들러 요기를 하는 이들을 보면 퇴근길에 잠시 출출함을 채우려는 직장인들과 아예 한끼 식사를 하려는 이들로 나눠져 있다. 떡볶이 한 접시에 순대나 튀김 1인분까지 먹으면 대식가를 제외하곤 대충 한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다.

떡볶이를 워낙 좋아하는 기자의 경우도 '방앗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참새처럼' 약속이나 모임이 없는 날은 퇴근길에 꼭 들러 요기를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볼 수 있는 상황인데 사람들은 대개 떡볶이를 먹을까 순대나 튀김을 먹을까 고민한다.

▲ 순대를 먹으면 떡볶이가, 떡볶이를 주문하면 튀김이 자꾸 어른거리는데 이 중에서 한 가지만 먹어야 한다면 사람으로서 참 못할 짓이다.
ⓒ 유영수
둘 다 먹고는 싶은데 그러자니 제대로 한끼 식사하는 값과 별반 차이가 없는데다 양도 꽤 많으니 말이다. 이럴 때 이집 주인장은 간단히 손님들의 고민을 해결해 준다. '떡볶이 천원 어치랑 순대 천원 어치, 이렇게만 드세요'

장사하는 입장에서 이렇게 권유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눈 앞의 몇 푼보다는 단골손님과의 정리를 생각하는 주인장의 마음씨, 그 정직함 때문에 이곳은 오히려 더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포장마차에서 발견할 수 없는 이집만의 특징이 또 하나 있다. 남자 손님, 그것도 혼자 오는 사람들을 유독 많이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아가씨 같은 예쁜 용모와 누구에게나 푸근한 웃음으로 환대하는 친절한 주인장 때문일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 어색하게 웃고 있는 단골손님 이규민씨. 야근하기 전 요깃거리로는 떡볶이가 딱이라고 한다.
ⓒ 유영수
인근 회사에서 근무하는 단골 손님 이규민(24. 구로3동)씨에게 이곳을 자주 찾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쑥쓰러워하며 인터뷰를 잠시 주저하던 그는 용기를 내어 질문에 답하기 시작한다. '제 얼굴도 진짜 나오는 거에요?'라는 물음과 함께.

"당연히 떡볶이가 맛있으니까 오는 거구요, 거기에 눈에 뻔히 보이는 장삿속 차리지 않고 푸짐하게 인심 쓰는 예쁜 주인 아줌마도 한몫 단단히 하시는 거죠. 뭐."

야근하기 전 떡볶이 한 그릇에 오징어와 고구마, 야채와 김말이까지 종류별로 하나씩 튀김 천원 어치까지 떡볶이 국물에 묻혀 먹으면, 속이 다 든든해진다고 그는 말한다.

초등학교 아니 그때는 국민학교였었다. 그 어릴 때부터 30여 년간 쉼없이 '가장 즐겨먹는 음식 베스트 5' 안에 항상 들어있던 떡볶이. 기자는 어릴 때 떡볶이 국물을 요술쟁이라고 생각했었다.

매콤하고 달짝지근한 그 국물에는 어떤 것을 넣어도 그 나름의 맛을 잃지 않으면서 잘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라면사리나 순대, 각종 튀김은 물론 식은밥과 삶은 달걀까지. 지금 딱 떠오르진 않지만 그외에도 거의 모든 음식들도 떡볶이 국물과 결합해 훌륭한 맛을 유지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순대나 튀김 류의 느끼한 것들은 매콤한 떡볶이 국물 맛으로 인해 어느 정도 느끼함을 탈피하고 담백하게 입맛을 살려주기도 한다. 헌데 그 당시 초등학교 앞 떡볶이 가게에서 사먹던 떡볶이 맛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별다른 양념 맛을 느낄 수 없을 정도였기에 간장 종지를 마련해 두고 떡볶이를 거기에 찍어 먹었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30여 년간의 떡볶이 애호가로서 추억하건대 어린 시절 누나들이 자금을 대고 기자는 심부름을 하며 얻어 먹을 수 있었던 상도동 골목길 떡볶이집의 그 맛이 최고였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기자의 머릿속에도 그 가게 위치와 푸근한 인상의 주인 아주머니 얼굴, 그리고 떡볶이에 넣어 섞어도 바삭바삭함을 잃지 않았던 야끼만두까지 모두 생생하게 떠올려진다.

ⓒ 유영수
이 포장마차의 떡볶이 맛에 대해 언급하려다 곁길로 한참 새나간 듯하다. 기자의 집 근처인 대림동과 구로동 일대의 떡볶이 가게를 거의 모두 섭렵해 본 결과, 이 포장마차의 떡볶이 맛은 최고라고 하기엔 조금 모자람이 있어 보인다. 물론 기자의 주관적인 판단일 뿐이지만.

친언니가 운영하는 방앗간에서 공수해 온다는 떡볶이 떡은 물론 쫄깃쫄깃한 쌀떡이다. 여기에 나름의 경험으로 배합한 떡볶이 양념을 넣어 만든 떡볶이 맛은 꽤 훌륭하다. 다만 매콤한 맛의 떡볶이에 익숙해진 아니 길들여진 기자에겐 약간 서운한 구석이 남아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이곳을 방문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이집만의 떡볶이 맛에 중독되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떡볶이는 한창 펄펄 끓을 때의 맛과 손님이 잠시 끊겨 팔리지 않고 퍼져 있는 상태의 그것은 천지차이의 맛을 보이기 때문에 항상 똑같은 맛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입맛이 까다로운 편인 기자의 경우 방금 새 떡볶이용 떡을 넣고 고추장과 함께 버무리기 시작했을 때는 조금 시간을 두고 기다렸다가 양념이 제대로 떡에 버무려졌을 때쯤 먹기도 한다.

▲ 밤길을 걷다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포장마차는 그 불빛만으로도 사람들을 배고픔에 푹 빠지게 한다
ⓒ 유영수
대로변 좁은 인도 위에 즐비하게 늘어서 행인들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는 포장마차. 허나 대부분의 서민들은 그 포장마차 안에서 하루의 피로를 풀며 주린 배를 달래고 작지만 소중한 추억들을 만들어 가곤 한다. 이제 또 한 해를 보내야 하는 세밑. 누나들 심부름을 하며 떡볶이를 얻어 먹었던 그 어린시절이 간절히 그리워지는 건 왜일까.

덧붙이는 글 | 구로구 구로5동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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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고 대자연을 누리며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서울에서 평생 살다 제주에서 1년 반,포항에서 3년 반 동안 자연과 더불어 지내며 대자연 속에서 깊은 치유의 경험을 했습니다. 인생 후반부에 소명으로 받은 '상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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