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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속에서도 느낄 수 있는 면발의 쫄깃함을 보며, 또 군침이 입안 가득 고여져 있다. 이 못말리는 식욕이란...
ⓒ 유영수
속이 안 좋은 사람들에게 밀가루 음식은 별로 이롭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면류(麵類)의 음식에 목숨 거는 사람들 대부분은 탈이 잘 나는 사람들이기 일쑤다.

속이 안 좋아서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탈이 잘 나는 것인지, 면류 요리가 가만히 있는 사람들 속을 뒤집고 다니는 것인지는 계란과 닭 중 어느 것이 먼저인지를 묻는 것과 다름없는 명제인 듯하다.

하지만 전날 심하게 술잔을 흔들어댄 후 쓰린 속을 풀고 싶을 때 간절히 생각나는 음식들 중에 바지락 칼국수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해장 음식하면 우선 매콤한 김치라면이나 시원한 북어국, 혹은 각자의 취향에 맞게 다양한 것들을 열거하겠지만, 의외로 바지락 칼국수를 해장하기 좋은 음식으로 꼽는 사람들이 많다.

그 이유야 당연히 바지락에서 뿜어져 나오는 특유의 시원하고 칼칼한 맛 때문일 것이다. 흔히 과음으로 인한 속을 풀기에 매콤하고 화끈한 음식들을 선호하지만, 예상을 깨고 바지락 칼국수가 해장에 좋은 음식으로 회자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굴과 홍합 다음으로 많이 채취된다는 바지락은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하고, 무엇보다 철분과 아연이 풍부해 노약자나 어린이, 임산부의 영양식으로 좋다. 또 자주 섭취하면 혈색이 좋아지고 남부럽지 않은 매끈한 피부를 가질 수 있으며, 저혈압환자들에게도 권할 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칼국수집의 또다른 감초는 김치다. 헌데 그때 그때 다른 김치맛이 조금 아쉬울 뿐이다.
ⓒ 유영수
일단 칼국수가 맛있으려면 반죽이 중요하다 할 텐데, 기계로 면을 뽑는 것과 손으로 하는 것과는 확실히 구별되는 섬세한 맛의 차이가 있다. 아무리 정성을 들여 손반죽을 했다 하더라도 마지막 작업인 면 뽑기에서 기계의 힘을 빌게 되면 손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입맛이 까다롭지 않거나 음식을 즐기는 것에 별다른 감흥을 못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허나 '꼬투리'란 별칭이 말해 주듯 필자의 입맛에는 확연한 차이가 느껴진다. 그래서 필자가 즐겨 찾는 곳은 수타면 혹은 손반죽 후 직접 썰어내는 음식점이 많다.

팥 칼국수를 해 먹을 때 어머니 일손을 덜어드리느라 준비된 반죽을 썰어 본 적이 많아 그 수고로움이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음식점의 빽빽한 일과를 고려하더라도 이 부분은 꼭 참고해야 할 대목이라 여겨진다.

ⓒ 유영수
1, 2호선 환승역으로 유명한 신도림역 인근에 손반죽 후 직접 손으로 썰어내 손님상에 내놓는 칼국수집이 있다. 작년 겨울 집사람과 도림천을 걸으며 운동을 한 후 출출한 뱃속을 달랠 만한 맛있는 뭔가가 없을까 신도림역 부근을 헤매다 우연히 발견한 곳이다.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됐지만 당시 우리 부부는 횡재한 기분이었다.

전에 살던 동작구 쪽에는 제법 맛깔스런 칼국수집이 몇 군데 있었는데, 이쪽으로 이사 온 후 변변히 맛있는 칼국수를 먹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난히 곱창집이 밀집한 구로동에는 곱창의 독주(獨走) 때문인지 음식의 다변화가 이뤄지지 않아 늘 아쉬워하던 차였다.

정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상 음식 또한 한 사람 양씩 따로 내어오는 것보다는 커다란 냄비나 그릇 등에 푸짐하게 담아낸 후 덜어먹는 것에 왠지 점수를 더 후하게 주게 된다. 그래서 김치찌개보다는 김치전골이 더 먹음직스러워 보이고, 칼국수 또한 커다란 대접에 넘치도록 풍성히 담아져 나온 것을 국자로 덜어먹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똑같은 조리법으로 만들어낸 칼국수라도 혼자 가서 1인분씩 담아주는 그릇에 먹는 것과 두 사람 이상이 가서 큰 대접의 그것을 나눠먹는 느낌은 또 다르다. 어렸을 때부터 '콩 한 쪽도 나눠먹어야 한다'며 형제애를 강조하신 어머님의 가르침 때문이라 하면 논리의 비약일까.

▲ 쫄깃한 면발과 시원한 바지락의 맛에 빠져 정신없이 먹다 사진을 찍은 탓에, 커다란 대접이 거의 다 비워져 있다.
ⓒ 유영수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 집의 바지락 칼국수에 대해 얘기해 보자. 손으로 썰어낸 쫄깃한 면발은 물론이요, 풍성하게 담겨진 바지락은 싱싱하고 쫀득쫀득한 맛을 낸다. 2월부터 4월까지가 바지락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제철이라고 하지만, 지금도 그 맛은 훌륭하다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조금 욕심을 내어 본다면 바지락 알이 더 굵었으면 하는 것이다.

가끔 찾는 이곳에는 가족 단위의 손님들이 주류를 이룬다. 주택가에 위치한 데다 대로변 상권도 아니기에 입소문을 통해 조용히 단골층을 확보한 결과다. 그런데 가끔은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들의 생일파티 장소로도 애용된다고도 한다. 보통 그 나이 또래들의 생일파티는 햄버거 가게나 분식집 혹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하게 마련이지만, 이 시원한 바지락 칼국수의 맛은 세대의 간극도 뛰어넘게 하는가 보다.

▲ 딱 다섯 개씩 나오는 왕만두. 식탐 있는 손님 두 명이서 서로 눈치보기 딱 좋을 듯하다.
ⓒ 유영수
중국집에서 자장면이나 짬뽕을 먹으며 생각나는 군만두와 분식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즐길 때면 꼭 함께 넣어 먹고 싶은 야끼만두. 이렇게 어떤 음식을 먹을 때 함께 하면 더욱 그 즐거움이 배가되는 감초같은 것들이 있다.

칼국수 전문점에서는 그 감초의 역할을 왕만두가 담당한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손님상에는 바지락 칼국수 한 대접과 왕만두 한 접시가 함께 놓여져 있다. 몇 천원의 부담이 더해지긴 하지만, 칼국수만 먹을 때와 왕만두를 곁들일 때의 만족감은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왠지 더 호사를 부린 것 같고 제대로 뭔가를 먹어줬다는 느낌을 갖게 해준다.

이 집의 왕만두는 다른 곳과 차별화된 맛이 있다. 일단 만두피가 조금 두꺼워 입에 씹히는 맛이 다르고, 만두소로 사용된 야채들도 두껍게 썰어져 독특한 맛을 간직하고 있다. 익숙치 않은 이들에겐 약간은 유쾌하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갈 수 있지만 이런 독특함에 더 이집의 왕만두에 빠져든 손님들도 많이 있다고 한다.

▲ 한 입에 넣기 힘든 크기의 왕만두는 이렇게 반을 갈라 개인접시에 옮겨놓은 후, 간장을 숟갈로 떠서 만두에 묻혀 먹는 것이 제대로 왕만두를 즐기는 방법이다.
ⓒ 유영수
바지락 칼국수 외에 이 식당에서 자주 손님들이 찾는 음식인 '닭한마리'는 별로 권하고 싶지 않은 메뉴이다. 느끼한 것을 싫어하는 편인 필자의 식성 때문이지는 몰라도, 그리 맛있게 먹지는 못했던 기억이 있어서이다. 칼국수와 왕만두의 음식 궁합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바지락 칼국수와 왕만두, 혹은 칼국수 국물에 공기밥 한 그릇 말아 먹고 뱃속이 든든해졌다면, 이제 도림천을 거쳐 안양천까지 운동 삼아 빠르게 걸어보자. 한겨울 뼛속까지 스며드는 찬바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그 바람과 함께 자연의 일부가 되어 보는 것도 꽤 즐거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구로구 신도림동 소재. 02)857-5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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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고 대자연을 누리며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서울에서 평생 살다 제주에서 1년 반,포항에서 3년 반 동안 자연과 더불어 지내며 대자연 속에서 깊은 치유의 경험을 했습니다. 인생 후반부에 소명으로 받은 '상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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