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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썰어지지 않은 저 김치돈가스의 통통한 배를 가르면 , 아삭한 김치와 함께 치즈가 흘러내린다.
ⓒ 유영수
요즘이야 동네 어디에서나 쉽게 보이는 게 돈가스전문점이고 하다못해 분식집에서도 가볍게 한 끼 식사로 즐겨찾는 메뉴가 됐다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돈가스는 데이트할 때 큰맘 먹고 분위기 내며 레스토랑에나 가야 먹어볼 수 있는 꽤 거창한 음식이었다.

돈가스전문점에서는 대부분 먹기 편하라고 주방에서 썰어서 나오기 마련이지만, 그 당시에는 '칼질 한 번 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돈가스 먹을 때 나이프와 포크를 쓰는 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양식을 먹을 때의 에티켓도 익혔는데, 예를 들면 '나이프와 포크는 바깥쪽에 있는 것부터 순서대로 사용한다'라든가 '식사 도중에는 나이프와 포크를 팔자가 되도록 놓고 식사 후에는 일자로 놓는다' 등이 그것이었다.

▲ 어린 시절 돈가스의 추억에 빠져보실 분은 가까운 돈가스전문점에 들러보시라. 새록새록 추억이 밀물처럼 몰려들 것이다.
ⓒ 유영수
또 돈가스보다는 더 고급음식인 스테이크를 주문할 때 종업원이 '어떻게 익혀 드릴까요?'라고 물을 때 레어와 미디움, 웰던 중 어느 하나를 골라 말을 해야 하는데, 이게 생각이 나지 않아 '맛있게 익혀 주세요'라고 대답하는 웃지못할 상황도 많이 발생하곤 했다.

사실 이 정도는 약과다. 예의 '칼질'이 서툴러 고기를 썰다 미팅 중 상대방 여성에게 음식물이 날아가는 해프닝도 가끔 일어났고, 에피타이저로 나오는 스프에 후추를 듬뿍 쏟아부어 곤란을 겪는 일도 종종 있었다.

이제 흔하디 흔한 음식이 돼버린 돈가스. 하지만 아직도 어린아이들에게는 물론 아련한 옛날 연인과 데이트하던 시절을 추억하는 중년들에게도 여전히 매력적인 한 끼 식사가 아닐 수 없다.

▲ 깔끔하고 정갈한 반찬들. 무심코 들른 집에서 이렇게 맛있는 식사를 하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다.
ⓒ 유영수
강서구 가양동에 있는 '양평해장국'에서는 이 돈가스를 특별한 방법으로 손님상에 내놓고 있어 호평을 받고 있다. 상호로 보건대 선지해장국이나 얼큰한 콩나물해장국 정도의 메뉴만 있을 법하지만, 이름만 차용했을 뿐 실제로는 동네 분식집에서 볼 수 있는 메뉴가 거의 다 있다.

그렇다고 맛까지 동네 분식집 수준이라고 생각하시면 큰 오산이다. 하나하나의 맛이 제법 손님을 놀라게 하는 수준급 음식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곳에서는 해장국보다 돈가스가 더 잘 팔리는 듯 보인다.

왕돈가스와 치즈돈가스, 그리고 김치돈가스 이렇게 세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으뜸은 역시 김치돈가스이다. 처음에는 돈가스에 김치를 넣어 만들었다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아 왕돈가스를 주문했는데, 동행한 사람이 먹는 것을 보니 예사로워 보이지 않아 한번 맛을 보게 되었다.

꽤 두툼해 스테이크처럼 보이는 김치돈가스 속내를 들여다보니 치즈와 함께 잘게 썰어진 김치조각이 맛있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게 아닌가. '김치야 너 왜 거기 들어가 있니?'라고 물으신다면 김치는 딱히 할 말이 없을테지만 말이다.

일단 한 입 먹어 보시라. 고소한 돈가스의 육질 사이로 씹히는 김치와 치즈의 어우러짐이 기가 막히다. 그 묘한 조화 속의 목넘김 또한 참기 힘들 정도로 맛깔스럽다.

▲ 보기만 해도 침샘을 다시 자극하는 예쁜 색깔의 호박수프. 그 맛이 정말 일품이다.
ⓒ 유영수
먹는 얘기를 하면서 흥분하다 보니 에피타이저로 나오는 스프를 건너뛰는 실수를 범한 듯하다. 이 집에서 돈가스를 먹기 전 나오는 스프는 특별하다.

호박을 넣어 만든 스프의 맛은 부드럽고 달달하며 색감 또한 아름답다. 그래서인지 입안에 제대로 감긴다. 원래 호박을 안 좋아하는 기자의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며 자주 생각나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치즈돈가스나 왕돈가스도 물론 맛있지만, 왕돈가스는 명칭에서 '왕'자를 빼야하지 않을까 싶다. 진정한 왕돈가스의 양을 기대한 손님은 실망하기 십상이며 '뭐야 이거 접시만 왕이잖아'라는 푸념이 나올 만하기 때문이다.

▲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는 왕돈가스. 접시는 상당히 크지만 정작 돈가스의 크기는 왕이라고 하기엔 서운한 감이 없지않아 있는 게 사실이다.
ⓒ 유영수
물론 양이 적은 편은 아니지만 요즘 시중에서 제법 많이 보이는 거대한 왕돈가스와는 차원이 다르기에 하는 말이다.

▲ 돈가스 접시에 담아져 나오는 양배추 써는 솜씨는 이 집 주인장의 작품이었다.
ⓒ 유영수
여기서 잠깐. 예전에 식당에서 다년간 아르바이트를 해봤고 패스트푸드점을 운영한 경력을 갖고 있는 기자는 이곳의 돈가스에 곁들여 나오는 양배추를 논하지 않고 갈 수 없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양배추 같은 야채류는 얼마나 가늘게 썰어내느냐에 따라 그 맛이 다르게 느껴진다.

어차피 똑같은 양배추인데 조금 굵다고 다른 맛이 나겠느냐고 하신다면 천만의 말씀. 그 질감에 따라 음미할 수 있는 맛은 천지차다. 그런 연유로 보통 식당에서는 주방인력이 새로 오면 양배추 한 통을 썰어보게 하거나 감자 한 박스를 건네고 20분 안에 껍질을 다 벗겨보라는 식으로 그 사람의 실력을 테스트해보곤 하는 것이다.

헌데 여기 돈가스에 썰어져 나온 양배추가 예사롭지 않다는 게 기자의 눈에 포착된 것이다. 적당히 얇게 썰어진 양배추는 한 눈에 보기에도 주방장의 칼솜씨를 짐작하게 만들고, 아삭하게 씹히는 그 질감은 미식가의 입맛을 사로잡을 만하다.

그래서 바로 주방으로 달려가 그 주인공을 만나보았다. 범상치 않은 칼솜씨의 주인공은 바로 사장님이었다.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다소 긴장한 듯 보이는 이 분에게 양배추 써는 모습을 좀 보여달라 부탁하니, 잠시 쑥스러워 하다 이내 그 화려한 칼놀림으로 가늘고 먹음직스런 양배추를 썰어낸다.

이 집에서 먹어봐야 할 또 다른 메뉴를 추천한다면 그건 바로 '동태찌개'다. 돈가스 얘기를 한참 하다 동태찌개를 논하자니 조금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잘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그건 선입견일 뿐이다.

▲ 시원하고 얼큰한 맛을 자랑하는 동태찌개. 약간 알이 작은 동태가 아쉬운 대목일 뿐이다.
ⓒ 유영수
실제로 동행한 사람 한 명과 함께 둘이서 동태찌개 2인분과 왕돈가스 1인분을 주문해 모두 먹어치운 적이 있었는데, 그 부적절해 보이는 조합도 썩 괜찮은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역시 편견은 편견 그 자체일 뿐이다. 양이 조금 과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깨끗이 비워진 그릇들을 보며 나 자신도 놀라움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 이 푸짐한 식탁을 보라. 동태찌개 2인분과 돈가스를 둘이 모두 먹어치웠단 말씀.
ⓒ 유영수
동태찌개가 맛있으려면 뭐니뭐니해도 비린내가 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 집의 동태찌개에서는 비린내는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얼큰하면서도 시원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재료로 쓰이는 동태 또한 생태의 그것에 가까울 정도로 싱싱해 보이지만, 너무 잘아 보이는 동태토막이 아쉬울 뿐이다. 1인분에 조그만 토막 네 개를 넣을 것을 차라리 굵은 놈으로 두 토막 넣더라도, 큼지막한 것을 쓰는 게 보기에나 먹기에 더 나을 듯싶다.

▲ 동태살은 싱싱하고 곁들여 넣어진 야채의 맛 또한 향긋하고 부드럽게 느껴진다.
ⓒ 유영수
참고로 부대찌개 또한 그 쓰이는 재료나 맛이 일품이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메뉴를 소개하면 헛갈릴 수도 있을 터라 여기에서 이 식당에 대한 소개는 접으려 한다.

손쉽게 할인마트에서도 재어놓은 돈가스를 사다 간식으로 먹기도 하는 요즘, 여자친구와 데이트하며 부끄러워 손도 못 잡은 채 명동거리를 거닐다 먹었던, 그 시절 돈가스 맛이 무척이나 그리워진다.

덧붙이는 글 | 강서구 가양동 소재

맛있는 음식과 멋스런 풍경사진을 테마로 하는 제 개인홈피 '멀리서 바라보다 뜨겁게 사랑하기(http://blog.naver.com/grajiyou)'에도 올려 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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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고 대자연을 누리며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서울에서 평생 살다 제주에서 1년 반,포항에서 3년 반 동안 자연과 더불어 지내며 대자연 속에서 깊은 치유의 경험을 했습니다. 인생 후반부에 소명으로 받은 '상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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