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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읽으라고 골라준 책은 늦게 읽는데 내가 고른 책은 금방 읽는 것이 참 신기하단 말이야."

자기가 보고 싶은 책에 대한 요구를 아이는 이렇게 하고 있었다. 둘째의 마음을 사로잡은 책은 '로얄드 달'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 내가 권하는 책 대신 스스로 고른 이 책을 삼일 만에 뚝딱! 느낌을 빼곡히 적은 아이는 책을 토대로 퀴즈까지 만들어 풀어보라고 채근하더니 며칠 후, 작가의 다른 책을 스스로 골랐다. 제가 고른 책이 어지간히 재미있었나 보다.

ⓒ 우리교육
아이와 내가 고르는 책은 자주 어긋나고 아이가 고르는 책은 영 마뜩찮을 때가 많다. 그러나 이젠 아이가 고르는 책이 별로다 싶어도 대충 보고 제쳐 두진 않는다. 아이와 <찰리와 쵸콜릿 공장>을 계기로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책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들 책읽기에 대한 그동안의 생각을 수정하였음도 물론이다.

좋은 책의 기준은 무엇일까? 아이들의 책읽기에 부모나 선생님의 역할은? 이런 중에 만나게 된 <그림책을 읽자, 아이들을 읽자>는 아이들 책읽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있다.

<그림책을 읽자, 아이들을 읽자>는 한 초등학교 교사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과정과 결과를 기록한 글이다. 책 속에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현장이 고스란히 담겨있는데 만나는 이야기들이 감동적이다. 어른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것을 찾아낼 줄 아는 아이들의 세계가 맑고 순수하다.

이 책 속에는 선생님과 곱고 맑은 아이들이 그림책 하나로 주고받는 마음, 그 감동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어떤 이야기, 어떤 감동들일까?

저마다 다른 무늬의 아이들

그림책을 보면서 아이들이 쏟아내는 마음속 이야기는 나에게 숱한 배움이었다. 모두 비슷비슷해 보이는 아이들은 마음속에 저마다 다른 무늬를 지니고 있었고, 그걸 조심스레 꺼내 나에게 보여 줄 때면 아이 한 명 한 명이 얼마나 귀하게 보였는지 모른다. 그저 아이들 이야기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주며 아픈 상처는 따뜻한 손길로 쓸어 주고, 슬픈 이야기에는 같이 눈물을 흘려주는 일. 그렇게 나는 그림책 한 권을 들고 아이들 마음 곁으로 조금씩 다가가게 되었다. - 여는 글 중에서

아이들은 모두 저마다 빛깔을 하고 있다. 저자 최은희 선생님은 이런 아이들 마음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림책을 읽어주지만 '책'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동안 조용히 하라고 한다든지 일방적으로 선생님 말을 앞세우지도 않는다.

아이를 자신의 무릎에 앉혀 그림책을 읽어주는 동안 아이들이 함께 참여하게 한다. 아이들은 같은 장면을 보고 저마다 다른 목소리로 말한다. 이런 것들이 저자를 감동시키고 저자를 배우게 한다.

'강아지 똥은 냄새가 나도 민들레꽃을 피웠다. 나도 받아쓰기는 못하지만 나도 쓸모가 있다. 우리 친구들도'

어느 날 <강아지똥>을 읽어 준 후 느낌을 적어보라고 하자 언제나 외톨이였던 고은이가 이렇게 적었다. 한글을 쓰고 읽는 것도 서툴렀던 고은이였고 언제나 혼자 겉돌던 아이였는데, 고은이의 이 글은 선생님과 아이들을 감동시켰으며 선생님은 별 세 개와 함께 한 달 동안 고은이의 글을 교실 뒤에 걸었다. 이것으로도 감동을 주체할 수 없던 선생님은 최고상으로 고은이를 업어준다. 선생님은 감동해 교실 두 바퀴를 돌고 있다.

이날부터 고은이는 눈에 띄게 달라진다. 맞춤법이 서툴지만 일기를 정성들여 쓰고 글 쓰는 시간에는 진지하고 자신감이 가득했다. 어느 때는 따뜻하게 땀이 묻은 귤 한 개를 책상에 슬쩍 갖다 두기도 하였다.

나는 그렇게 강아지 똥을 통해 한 아이를 얻게 되었다. 선생이 아이들 가슴에 작은 빛 하나 내주는 것보다 더 보람된 일이 어디 있으랴.

마흔 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함께 책을 보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사실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책 한권으로 사람의 삶이 금세 바뀐다면 그것 또한 우스운 일일 게다. 어쩌면 책 한권을 읽는다는 것은 앞이 보이지 않는 아득한 길에 발자국 하나 찍는 일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무심코 찍은 발자국 하나하나가 길을 만들고, 그래서 세월이 흐른 뒤 돌아보면 너른 길이 되어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책을 읽어주는 게 어른들 몫이 아닌가 싶다. 지금 당장은 아무런 변화가 없더라도 더디게 가고 있다고 믿으며 기다려 주는 여유가 책 읽어주는 어른에게 필요한 자세다.-책 속에서


책을 통하여 만나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이렇다. 읽어주는 그림책은 매번 다르고 그 그림책을 통하여 아이들이 얻는 감동이나 느낌도 모두 다르지만 이처럼 책을 통하여 선생님과 아이들이 마음을 열고 나누는 감동은 이 책을 읽는 내내 목울대를 뜨겁게 한다.

선생님이 읽어주는 그림책을 통하여 아이들은 살아가면서 제일 소중한 것들을 배운다. 친구들과 화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고 친한 친구에게까지 말 못하고 꼭꼭 감추고만 있던 상처까지 고백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과정들이 꾸미지 않은 이야기로 이 책 속 안에서 진솔하게 펼쳐지고 있다.

그 교실에 꼭 한번 가서 아이들에 섞이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선생님이 읽어주는 그림책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렇게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마음을 헤아리면서 그림책을 읽어줄 수 있다면 아이들이 책과 멀어지는 일은 없으리라. 그림책을 통하여 마음 열고 맘껏 안아줄 수 있다면 아이들은 소중한 꽃으로 피어나리라.

저자 최은희는 누구?

열다섯 살까지 충북 청풍에서 영혼을 살찌우며 살았습니다. 공주교대에서 공부를 했고, 1990년에는 <오월 문학상>을 받으며 시인으로 등단해 <노둣돌>과 <삶의 문학> 등에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공교육 안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천안 거산초등학교에서, 가르치는 기쁨을 한껏 느끼며 십육 년 선생 생활 가운데 가장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교육 교사아카데미에서 국어교육과 그림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공주교대에서 아동문학을 가르치며 미래의 선생님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감동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아이들 책읽기 지도에 대한 실질적인 도움의 글을 틈틈이 적어 두었다. 아이들 책읽기에 관심을 둔 사람들에게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시인인 저자의 감성을 엿볼 수 있는 아름다운 단어와 문장들 또한 읽는 재미가 좋다.

참, 책을 읽으며 얻는 것이 또 있다. 그림책을 읽은 다음 아이들이 느낀 점을 글이나 일기로 표현, 책에 실었는데 맞춤법도 틀리고 문장도 다듬어지지 않은 채로 실었다. 그런데 이 서툰 글들이 하나하나 얼마나 진솔하고 기발하던지. 다양한 아이들의 세계를 한 번에 풍성하게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아이들의 세계와 마음을 읽는데 좋은 참고가 되어 줄 것이다.

책을 읽다가 선생님과 아이들의 마음나눔에 목울대가 뜨거워지더니 나도 모르는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감동적인 소설도 아니고 자신의 체험을 글로 적은 것도 아닌, 언뜻 보면 아이들에게 한 선생님이 그림책을 읽어주는 이야기에 불과한 이런 책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리다니, 마른 가슴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한 이 감동을 어찌 잊으랴. 책을 읽는 사람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감동으로 목울대가 울컥하다가 아이들이 끝도 없이 쏟아내는 기발하고 어이없는 재잘거림에 픽픽 웃기를 되풀이하면서 읽은 책이었다.

덧붙이는 글 | <그림책을 읽자, 아이들을 읽자>

-최은희 지음/우리교육/2006.3.20/1만 5000원


그림책을 읽자 아이들을 읽자 - 마음을 여는 그림책 읽기

최은희 지음, 에듀니티(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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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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