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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의 자장면 한 그릇 어때요?
ⓒ 이종찬
입학, 졸업, 생일 때 먹었던 추억의 자장면 한 그릇

자장면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까? 우리나라 사람 치고 자장면에 얽힌 추억 한 토막쯤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도 있을까? 예나 지금이나, 늙은이나 젊은이나 어린아이나, 식도락가나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이나, 누구나 즐겨 찾는 음식이 자장면이다. 아마 우리나라 음식 중 자장면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음식도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하긴, 요즈음 사람들이야 끼니 한 끼 때울만한 마땅한 음식이 떠오르지 않을 때나, 급히 끼니를 때워야 할 때 즐겨 시켜먹는 음식이 자장면이다. 하지만 그 옛날 입가에 시커먼 자장을 잔뜩 묻혀가며 볼 터지게 먹었던 추억의 자장면은 생일이나 입학식, 졸업식 등 특별한 날에나 먹을 수 있는 으뜸가는 음식이었다.

자장면은 특별한 밑반찬도 그리 필요치 않다. 노오란 단무지와 양파 몇 조각에 식초와 까아만 춘장만 쬐끔 있으면 그저 쓰윽쓱 비벼서 한 입 가득 집어넣으면 그만이다. 자장면은 언뜻 보기에는 검은 빛깔 때문에 별 맛이 없어 보이지만 막상 입에 넣으면 혀 끝에 착착 달라붙는 쫄깃한 검은 면발과 춘장 특유의 향긋한 맛이 기막히다.

자장면의 인기가 오죽 좋았으면 한때 TV에서 한 개그맨이 자장면을 배달하기 위해 제주 마라도 앞바다로 배를 타고 나가 '자장면 시키신 분?' 하고 외치는 광고까지 있었겠는가. 자장면의 맛이 오죽 좋았으면 한때 '오빠' 하며 나를 애인처럼 따르던 그 여자가 자장면 곱빼기 한 그릇을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뚝딱 먹어 치웠겠는가.

▲ 큰딸 푸름이의 성화에 못이겨 배달시킨 자장면 두 그릇
ⓒ 이종찬

▲ 자장면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까?
ⓒ 이종찬
우리나라 자장면의 원조는 인천 차이나타운 '공화춘'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기는 자장면의 역사는 얼마나 되었을까. 사람들이 흔히 '짜장면'이라고 부르는 자장면의 고향은 중국 산동지방이다. 백과사전에 자장면은 "돼지고기와 양파, 생강 등을 다져 중국된장과 함께 볶아 국수 위에 얹은 한국요리"라고 적혀 있다.

우리나라에 자장면이 처음 선보인 것은 1883년 인천항이 개항할 때다. 그때 인천항을 통해 우리나라로 흘러 들어온 중국노동자들은 끼니를 때우기 위해 볶은 춘장에 국수를 비벼 먹었다. 바로 그 음식이 우리나라 자장면의 원조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때 중국 노동자들이 먹은 자장면은 춘장을 많이 넣지 않아 색깔이 희끄무레했다.

그 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장면을 즐겨 찾게 되면서 우리 입맛에 맞게 바뀐 것이 지금의 자장면이다. 다시 말하자면 자장면을 우리나라에 처음 퍼뜨린 사람들은 우리나라에 뿌리 내리고 살았던 화교들이라는 것이다. 이는 인천 차이나타운 '공화춘'이라는 식당에서 우리 입맛에 맞는 자장면이 처음 만들어진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자장면의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을까. 자장면의 중국식 글자는 '작장면'(炸醬麵)'이다. '작장'(炸醬)은 '장을 불에 튀기다'라는 뜻이다. '작장면'을 중국식 발음으로 부르자면 '자장미엔' 혹은 '짜장미엔'이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 말로 자장면이라 고쳐 부를 때 짜장면이라 부르기도 했다는 것.

▲ 우리 나라 음식 중 자장면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음식도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 이종찬

▲ 자장면은 특별한 밑반찬도 그리 필요치 않다
ⓒ 이종찬
춘장은 중불에서 오래 끓이고 삶은 국수는 식용유 뿌려야 제 맛

자장면의 종류도 많다. 큼직하게 썬 감자와 양파를 듬뿍 넣고 국물을 부은 옛날 자장면에서부터 맛국물를 넣지 않고 여러 재료와 자장만을 볶아 면 위에 따로 부어 먹는 '간자장', 돼지고기와 닭고기, 새우, 전복, 죽순, 표고버섯, 해삼 중 세 가지 재료를 넣은 '삼선자장', 고추기름을 부어 매운 맛이 강한 '사천자장', '유니자장', '유슬자장' 등이 그것들이다.

그중 우리가 흔히 먹는 자장면은 양파와 양배추, 돼지고기, 고추, 대파, 생강, 마늘, 춘장, 국수로 만든다. 먼저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넉넉히 두르고 다진 생강과 마늘을 볶다가 향이 나면 사각지게 썬 돼지고기를 넣어 센불에서 빠르게 섞으면서 볶는다. 이어 돼지고기가 다 익었다 싶으면 미리 송송 썰어둔 채소를 넣고 함께 볶는다.

이때 중국된장인 춘장은 다른 프라이팬에 볶아야 한다. 춘장은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넉넉히 두른 뒤 센불에서 볶다가 설탕을 넣는다. 다 볶은 춘장은 고기와 채소 볶은 팬에 넣어 고루 섞은 다음 물을 붓고 다시 끓인다. 춘장 맛이 우러나면 녹말물을 넣어 끈적하게 볶은 다음 불에서 내려 금방 삶은 뜨거운 국수에 끼얹으면 끝.

자장면 맛내기 하나. 춘장을 센불에서 볶을 때 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며, 설탕을 넣은 뒤에는 중불에서 오래 볶아야 춘장 특유의 맛이 배어난다. 그리고 면발이 굵은 국수를 삶을 때에도 끓는 물에 소금을 조금 넣어 포옥 삶다가 국수가 익었다 싶으면 냄비에서 얼른 건져내 식용유를 조금 뿌려두어야 쫄깃한 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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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오란 단무지와 양파 몇 조각에 식초와 까아만 춘장만 쬐끔 있으면 그저 쓰윽쓱 비벼서 한 입 가득 집어넣으면 그만이다
ⓒ 이종찬
"아빠가 되가꼬 큰딸 소원 하나 못 들어줘?"

"아빠! 배 고파."
"그래서?"
"자장면 한 그릇도 배달시켜 줘?"
"갑자기 웬 자장면 타령? 짜파게티나 만들어줄까?"
"오늘은 중국집에서 파는 그 자장면이 먹고 싶어."
"그 참!"
"큰딸이 먹고 싶다는데 아빠가 되가꼬 그 소원도 하나 못 들어 줘?"


지난 12일(일) 저녁 6시. 큰딸 푸름이가 자장면이 먹고 싶다고 으름장을 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큰딸 푸름이의 말을 그냥 지나치는 말로 여겼다. 근데, 거의 2~3분 간격으로 '배고프다, 그 집 자장면이 맛있다, 요즈음 자장면 먹어본 지가 몇 달 되었다'는 둥 계속해서 자장면타령을 늘어놓았다.

내가 "요즈음 TV를 보니까 중국집에서 파는 자장면에 화학조미료가 엄청 많이 들었대. 언제 시간이 나면 아빠가 직접 자장면을 만들어줄게"라며 푸름이를 달랬지만 "아빠, 그럼 지금 당장 만들어 줘" 하며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추근댔다. 할 수 없었다. 자장면으로 저녁을 때울 수밖에.

하긴, 나 또한 자장면을 먹어본 지도 꽤 되었다. 게다가 <오마이뉴스>에 '음식사냥 맛사냥'을 연재하면서도 지금까지 어릴 때 추억이 깃든 그 자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도 하지 않았다. 옳커니, 싶었다. 오랜만에 자장면을 먹으며 옛 추억도 더듬고, 큰딸과 자장면에 얽힌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었다.

▲ 우리 나라에 자장면이 처음 선보인 것은 1883년 인천항이 개항할 때다
ⓒ 이종찬

▲ 춘장을 센불에서 볶을 때 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며, 설탕을 넣은 뒤에는 중불에서 오래 볶아야 춘장 특유의 맛이 배어난다
ⓒ 이종찬
맞선 딱지 놓을 때 시켜먹던 그 시커먼 자장면

저녁 6시30분. 이윽고 시커먼 자장면 두 그릇이 집으로 배달되어 왔다. 내가 "빛나는 어떡하지?" 하자 큰딸 푸름이가 "빛나는 장유(김해) 이모집에 갔으니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올 걸" 했다. 내가 다시 "너도 이모집 가지?" 하니까 푸름이가 하는 말이 가관이다. "아빠! 왜 내가 자장면 시켜달라고 한 줄 알아? 빛나 그게 이모집에서 자장면 시켜먹었다고 자랑을 했거든".

"히야~ 정말 맛있겠다."
"많이 먹어?"
"아빠도."
"아까 아빠가 왜 자장면을 너한테 안 시켜주려고 한 줄 알아?"
"화학조미료 때문이라고 했잖아?"

"그게 아니고. 아빠가 총각이었을 때, 맞선을 보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 여자한테는 중국집에 데리고 가서 자장면을 사 줬거든."
"아니 왜?"
"제 딴에는 공주처럼 이쁘게 차리고 나왔지만 자장면을 먹으면 어쩔 수 없이 입가에 시커먼 자장면이 묻게 되잖아? 그때는 그게 맞선 딱지를 놓는 유일한 방법이었거든."
"그럼, 나도 오늘 아빠한테 딱지 맞았네."
"당연하지."

"아빠! 근데, 자장면 위에 계란은 왜 반 개씩 올려놔?"
"척 보면 몰라. 첫째는 자장면이 검으니까 희고 노란 계란 반쪽을 올려 예쁘게 보이기 위해서고, 둘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장면을 제대로 씹지도 않고 삼키니까 위에 부담이 되잖아. 계란 노른자가 위의 부담을 줄여주거든. 그러니까 자장면이나 냉면 등을 먹을 때에는 계란을 먼저 먹는 것이 건강에 좋아."


▲ 자장면 위에 계란은 왜 반 개씩 올려놔?
ⓒ 이종찬
자장면, 하면 누구나 행복한 옛 추억 몇 개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는 자장면, 하면 1960년대 끝자락 내가 초등학교 3~4학년 때 학교 바로 앞에 꼭 하나 있았던 그 '평화반점'이 떠오른다. 나 몰래 그 중국집에서 가서 자장면 곱빼기를 맛나게 먹던 그 동무, 지금도 그 동무가 한없이 얄밉다.

덧붙이는 글 | ※ 그동안 독자 여러분의 수많은 사랑을 받았던 <음식사냥 맛사냥>은 100회로 끝을 냅니다. 이어 새로운 음식연재 <맛이 있는 풍경>을 선보이고자 합니다. 애독자 여러분의 더 큰 사랑과 따가운 채찍질 기다립니다

※이 기사는 '시골아이', '시민의신문', '유포터', '씨앤비'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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