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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꼭 필요한 '부모의 도움'이란 과연 무엇일까? 부모라면 누구나 자신의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이길 바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교과서 공부만이 공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분야가 있고,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꿈과 소원이 있다. 아이의 장래희망이 무엇인지,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 하는지, 진정한 부모는 그것부터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일부 부모들은 아이에 대한 근본적인 것을 파악하기도 전에, 일찌감치 험악한 공부를 강요하는 모양이다. 언젠가 지나친 영재교육을 고발하는 TV 시사 프로그램을 보고, 우유병을 빠느라 바쁜 아기에게 영어 단어를 읊어주는 부모까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듯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부모들에게 '만화'는 어떤 존재일까? 당연히 '공부에 방해되는 존재'일 것이고, 꼬투리잡기 좋은 대상일 것이다. 만화 장르에 대한 이상한 기류는 어느덧 고정관념이 됐다. '아이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인식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만화는 여전히 '유치한 것'이며, '공부에 방해되는 존재'다.

'일본만화의 신'에게는 '부모님'이 있었다

알려지다시피 '일본만화의 신'이라 불리는 데즈카 오사무에게는 의학박사라는 직함도 있었다. 그는 소년 시절에, 강제로 징집된 강제수련소에서 걸린 병을 의사가 말끔히 치료하는 것을 보고, "의사는 전쟁터에서도 후방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간호사들과 노닥거릴 여유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데즈카 오사무는 결국 오사카 의대로 진학했고, 나중에 의학박사 학위까지 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만화가'와 '의사'라는 직업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그가 만화를 그리느라 학점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것을 안 의과대학 교수는 "자네는 어차피 제대로 된 의사가 되긴 어려울 것 같은데, 어설프게 환자를 죽이느니 세상을 위해 만화가가 되는 게 좋겠다"는 지적까지 했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를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때 데즈카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정말 원하는 것을 해라. 만화가 좋다면 만화가가 되려무나."

어머니의 그 한 마디는 훗날 '일본만화의 신'이 탄생하는 데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일찍부터 몸이 약한 데즈카 오사무는 따돌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림 그리기'라는 자기만의 기술을 가지려 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엄청난 양의 만화책을 사주었고, 어머니는 직접 아들의 만화를 읽어가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아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잘 하는지를 잘 아는 부모님은 아들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거기에 그치지 않고 아들이 걷고 싶어 하는 길을 믿으며 묵묵히 그 길을 지켜봐주신 것이다.

한국의 보통 부모님이었다면 어땠을까? 의과대학까지 졸업한 아들이 갑자기 만화가의 길을 걷겠다고 이야기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셨을까? 가뜩이나 학비도 비싼 의과대학인데 말이다. 아마도 그 아들은 '만화가'의 길을 걷기 위해 부모님부터 극복해야 했을 것이다.

데즈카 오사무가 지적한 '부모들의 편견'

▲ 미일 합작으로 다시 제작된 2003년 버전 <아톰> 시리즈의 한 장면이다. <우주소년 아톰>은 데즈카 오사무의 체험과 휴머니즘, 그리고 어린이에 대한 존중이 듬뿍 담긴 불후의 명작이다.
ⓒ 소니 픽쳐스
'만화의 신'에게도 편견과의 싸움은 필연적이었다. 실제로 그는 기회가 될 때마다, 부모들의 편견을 공격했다. 데즈카 오사무는 만화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완고한 눈초리에 대해 '권위적 하향식 교육'이라는 비판을 가한다. "착한 아이로 키운다"는 명목은 아이들이 즐기는 오락이 돼야 할 만화를 교육자나 학부모가 만족할 수 있는 오락으로 변질시켰다는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그의 고백이 있다. 훗날 우리나라에서는 '치맛바람'이라고 규정된 일부 학부모들의 지나친 행동이 당시 일본에서도 극심했나보다. 데즈카 오사무는 "부모라는 맹목적인 인종들은 경우에 따라 무리를 지어 단호한 강제행동을 가하며, 되는대로 지식인들의 강연을 들어가면서 다 알아듣지도 못했으면서 이해한 척한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 당시에도 학부모들의 '단호한 강제행동'은 만화에 집중됐던 것 같다. 만화 속에서 여성 캐릭터가 방에서 옷을 갈아입는 장면을 무릎 아랫부분만 묘사했을 뿐인데도, 백화점 책코너의 '양서추천위원회'로부터 악서(惡書)로 지정됐다고도 하는데, 이건 일부일 뿐이다. "한 페이지 안에 권총이 10정, 자동 소총이 2정 나왔다"거나, "쿵이나 얏 등과 같은 비명소리만 나오고 글자는 너무 없지 않느냐"는 등의 지적에 몸살을 앓았다고 한다.

데즈카 오사무는 그에 대해 "현상에 대한 비판은 있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이 왜 만화를 보는지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는다"라는 뼈있는 한마디를 남긴다. 그가 생각한 '좋은 만화'는 학부모나 교육자들을 만족시키는 만화가 아니라 어린이들을 만족시키는 만화였다. 부모와 교사, 평론가가 '정말 좋은 만화'라고 추천한 만화는 아이들의 외면을 당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는 사실이 그의 한 마디를 뒷받침하는 것 같다.

데즈카 오사무는 아이들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상대"라고 했다. "우리도 우리들의 부모님에게는 그런 존재였을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자신 역시 아이들의 나이에 가까운 신인 만화가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고 고백했다. 그는 아이들을 아이들로만 바라보지 않으며, <우주소년 아톰>에서처럼 '죽음'같은 진지한 이야기까지 같이 나누려 했다. 아이들을 분명한 인격체로 대하면서, 인간이라면 언젠가는 고민하게 될 중요한 삶의 주제들에 대해 보다 자연스럽게 안내한 것이다.

당신도 <우주소년 아톰>에 열광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 데즈카 오사무의 <사파이어 왕자>, 원제는 <리본의 기사>다. 필자의 주변에도 이 만화를 이야기하시는 어른들이 많다.
ⓒ 후지 TV, 무시 프로덕션
만화를 그렇게도 무시하는 어른들이지만, 사실 우리 어른들은 요즘 아이들보다 더 많은 만화를 보면서 자랐다. 그들의 어린 시절에는 <우주소년 아톰>과 <사파이어 왕자>, <마징가 Z>와 <밀림의 왕자 레오> 등, 정말 다양한 만화들이 있었다. 지금의 30대가 된 어른들은 <동짜몽>을 보며, 꿈을 키웠던 시절이 있었다.

만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에 비해 많이 부드러워진 것 같기는 하다. 허영만 만화는 여전히 영화계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인터넷 만화를 개척한 강풀은 인기작가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과거의 잔재는 여전히 남아있다.

10여 년 전, YMCA 어머니 만화 모니터 모임은 <아기공룡 둘리>를 불량만화로 규정하고, 둘리가 ‘비교육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이 단체가 어른 중의 '일부'라는 것은 분명히 전제해야 한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은 스스로 "만화 발전에 이바지했다고 자부"한다는 것이다. <아기공룡 둘리>까지 불량만화로 지정한 화려한 과거가 있는 그들은 과연 어떻게 '만화발전에 이바지'했을까?

나는 그런 이들조차도 만화를 보고 울고 웃었을 어린 시절이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데즈카 오사무의 지적은 그런 이들에게도 여전한 의미를 갖는 것 같다. 과연 그 행동이 그 말대로 '만화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는지, 과연 '아이들을 위한 것'인지, 조금 더 고민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만화에 대한 시선을 유연하게 바꾸고 있는 어른들도 과거에 비해 많아졌다는 점에 희망을 걸고 싶다.

지금도 많은 만화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혼을 불어넣고 있을 것이다. 다양한 직함을 갖고 있던 데즈카 오사무는 "당신은 의사인가? 영화감독인가? 프로듀서인가? 만화가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꼭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나는 프로듀서나 영화감독은 아닙니다. 물론 의사는 더더욱 아니죠. 나는 만화가입니다."

지금의 어른들도 그 한마디에서 느껴지는 '혼'과 '자부심'이 담긴 만화를 보고 자란 세대들이다. 그 시절을 생각해보며, 지금의 아이들을 조금만 더 배려해 보자. <나루토>와 <원피스>가 왜 인기가 있으며, <강철의 연금술사>를 왜 그렇게들 좋아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잘 모른다면, 필자와 같이 알아가 보자. 필자는 그것을 위해 이 연재기사를 신청했다. 뜻이 있는 곳에는 늘 길이 있는 법이다. 마음을 열고 그 길을 같이 가보자.

덧붙이는 글 | 1. <옛날 만화, 요즘 만화> 코너는 만화에 대한 편견에 반박하면서, 만화가 지금까지 어떤 의미를 가졌으며, 앞으로 가질 의미는 어떤 것인지 함께 생각해보자는 목적에서 진행될 것입니다. '같이 생각해보고, 같이 느껴가는 것'입니다. 저도 모자라는 부분이 많은만큼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2. <한겨레신문>의 제 블로그에도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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