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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자도 남쪽 섬 끝자락의 모습
ⓒ 박상건

▲ 하루에 세번 다니는 철부선이 선착장으로 들어서는 모습
ⓒ 박상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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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서서히 저물고 있다. 세월은 영원한 시간 속의 나그네이다. 그 시간 속의 나그네가 되어 서해 작은 섬, 효자도에 머물다 왔다. 효자도는 충청남도 보령시에 소속된 섬이다. 안면도 영목포구에서 남쪽으로 약 2km, 대천에서는 북으로 8.7Km 지점에 있다. 사람이 붐비는 앞 섬 원산도와는 달리 사계절 평온하고 아주 깨끗한 섬이다.

효자도는 원산도와 0.8km의 좁은 수로를 끼고 마주 보고 서 있다. 물이 들어오고 나갈 때 마치 계곡물이 흘러가는 모양처럼 조류가 매우 빠른 곳에 위치한다.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서 있는 느낌이다.

그곳을 거슬러 가는 철부선. 출렁이는 배에서 다정히 바지락을 까는 노부부, 배를 고치는 해머소리, 이제 마악 그물을 털러 나가려는 듯 엔진 소리를 뿜어 올리는 중년의 어부....이런 저런 풍경을 바라보면서 1시간 30분 정도면 걸어서 다 돌아볼 수 있는 섬 효자도. 1.34㎢ 면적에, 해안선 길이가 5.4㎞의 작은 섬이지만 섬 안의 풍경은 그대로 한 폭의 풍경화이다.

작은 섬이니 구릉 역시 해발고도 47m 높이가 최고봉이다. 여느 마을 뒷동산처럼 그만그만한 작은 구릉과 논밭이 아기자기하게 펼쳐져 있다. 아주 평온한 어느 농촌에 들어온 듯 착각을 갖게 한다. 논두렁을 걸어가는 데 북쪽 구릉에 아담한 교회가 있고, 맞은 편 구릉에는 오래 된 팽나무 아래 흑염소 두 마리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일단 풍경이 만점인 섬이다.

▲ 포구의 어선에서 소라와 비자락을 다듬는 노부부의 모습이 따뜻해 보인다
ⓒ 박상건

▲ 섬 안의 들판 풍경
ⓒ 박상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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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효자도라고 불렀을까? 그 유래는 몇 가지 설이 있지만 마을 사람들은 효자가 많아서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실제 마을에는 효자를 기리는 비석이 서 있다. 100여 년 전 최순혁씨를 기리는 비석인데, 비문에는 가난한 시절 최씨가 부친이 사경을 헤맬 때 자신의 허벅지살을 도려내어 아버지를 봉양했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

사랑스럽고 맛깔스러운 섬

보령시에 따르면, 효자도라고 부르기 훨씬 이전에 ‘소자미’라고도 불렀다고 전한다. 작을 소(小), 사랑 자(慈) 맛미(味) 자를 딴 뜻이다. ‘소자미’도 이 섬에 언성맞춤인 이름이다. 작은 섬의 모양새와 특징을 그대로 표현했다. 효심과 인심이 좋고 갖가지 맛있는 특산물이 나오는 섬이니 제격이지 않는가.

그럼 요즈음에도 효자가 많을까? 집집마다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섬을 돌아보는 동안 때마침 이장이 안내 방송을 하고 있었다. “주민 여러분~ 오늘은 목욕하는 날입니다. 연로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나와 목욕탕과 찜질방을 많이 이용해주십시오~”. 효자도는 지난 봄에 목욕탕, 찜질방, 체력단련장을 만들었다.

특히 마을길이 구석구석까지 잘 닦여져 있다. 어른들은 전동휠체어와 수쿠터를 타고 다닌다. 문명으로부터 먼 섬이지만 사는 일만큼은, 또 어른에 대한 공양만큼은 최고인 듯 했다. 그런 사실을 목격한 것만으로도 나그네의 발걸음은 퍽 즐겁고 행복한 일이었다.

▲ 50 마리의 낙지와 이를 잡은 주름진 아낙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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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자도에 태어나 한 평생을 살아온 편길자(66)가 배를 기다리며 해바리기를 하고 있다
ⓒ 박상건

강태공의 사랑 듬뿍 받는 섬

효자도에는 45가구에 200여명이 산다. 마을 이름도 풍경만큼 인심만큼 아기자기하다. 선착장이 있는 아랫말, 방조제가 있는 웃말, 해수욕장이 있는 명덕, 푸른 모래밭인 녹사지, 제일 남쪽의 남촌, 그 다음은 중리, 그 위에 상리마을 등 7개 마을이다.

섬 안에는 1만 평의 인삼밭이 있다. 기름기가 적고 물이 잘 빠지는 토양 특성 때문에 인삼재배가 그만이란다. 또 해풍 탓에 병충해가 적어 육지의 다른 인삼 재배과정과는 달리 농약 사용량이 절반에 불과하단다. 그런가 하면 석회질 토양에 적당히 불어주는 갯바람과 물을 강하게 빨아올리는 속성이 강한 쪽파는 알이 굵고 한 뿌리에는 무려 1백여 개의 낟알을 쏟아질 정도로 생명력이 왕성하단다.

효자도 사람들은 섬인데도 이처럼 일부는 농사를 겸하는데, 쌀·보리·고구마·인삼 등이 주요 농산물이다. 나머지 대부분은 주로 어업에 종사한다. 대합, 바지락을 양식하고, 연근해에서는 멸치·꽃게·낙지, 우럭 등을 잡아 내다팔고 있다.

그래도 섬이라면 낚시하는 재미가 아니겠는가? 효자도는 다행히 조류가 빠른 탓에 낚시꾼이 많이 찾는 섬이다다. 우럭, 놀래미, 장어 낚시가 인기다. 섬 전체가 낚시터라고 해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특히 물이 빠지면 연결되는 또랑섬은 낚시인들에게 유명한 낚시 포인트이다.

바로 앞에 떠 있는 추도 월도 육도 허육도 등으로는 배낚시꾼들이 찾는다. 또 모래와 바위가 어우러진 녹사지는 낚시인들이 낚시밭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녹색 모래밭과 바위틈 사이로 우럭, 놀래미, 장어들이 아주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낙지가 이방인과 눈을 마주치는 이유는

겨울철에는 꼬막과 바지락이 많이 잡힌다. 저녁 무렵 물이 빠질 때 손전등을 들고 나가면 낙지 해삼 소라 등을 그냥 줍다시피 한다. 선착장에서 뭍으로 나가는 배를 기다리던 편길자씨(66)는 1시간에 잡은 것이라면서 양동이에 담긴 50마리의 낙지를 보여주었다.

“ 많이 잡긴 했는데...장갑을 안 끼고 잡았다니 손이 부르텄어!”라면서 주름진 손등에 뻘과 조개껍질에 긁힌 자국을 보여주었다. “그래도 돈을 살 수 있으니 행복하다”며 웃는 아낙의 얼굴에서 낙지가 그렇게 소중한 해산물로 다가선 것은 처음이다. 강아지 눈망울처럼 눈동자를 돌리던 그 낙지에 대한 기억은 효자도와 아낙을 상징하는 눈빛으로 가슴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터이다.

찬바람을 맞으며 캔 낙지의 산지가격은 아주 쌌다. 너무 싼 게 아니냐고 물었더니 “바지락은 1㎏당 2천원이고 낙지는 한 마리당 2천원이니 몇 배나 더 좋은 값을 받는 것 아니냐”며 웃던 그 아낙. 아들은 다 커서 서울 어느 공단 마을 전도사이고 딸은 전남 나주에서 쌀농사와 과수원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효자도 바닷가에는 대나무가 심어져 있다. 그것은 바지락 양식장이다. 대나무가 일정 간격으로 뻘에 박혀 있는데 씨알이 큰 것이 서식하는 곳과 캐서는 안 되는 지역을 구분하고 있단다. 이는 자원의 고갈을 스스로 막고 마을 주민들이 오래도록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자구책의 일환이다. 그래서 캐면서 씨 뿌리기를 병행하고, 1인당 20㎏씩만 캘 수 있도록 원칙을 정해두고 있다.

▲ 한쪽 팔 밖에 쓸 수 없지만 밝은 표정으로 나그네를 맞아주던 매표소 김종성씨가 표를 끊어주는 모습
ⓒ 박상건

▲ 지압에 좋고 여름 해수욕장으로 각광받는 몽돌해변
ⓒ 박상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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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도 비켜가는 숨어 있는 섬

3대째 이 마을에 살고 있는 토박이 김종성씨(59)는 매표소와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김씨에게 사는 일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옛날에는 충청도에서 알아주는 섬이었다”는 우회적인 표현으로 어려운 세상살이를 토로했다. 천수만에 대단위 간척지 사업이 진행되면서 물길이 막히고 보령에 발전소가 생기면서 생태계 파괴를 가져왔고 어족이 고갈되었던 것.

“섬이 작다 보니 당연히 바다에서 생계를 이어가야 했죠. 그래서 젊은 날에는 흑산도 연평도 등지까지 나가 15일씩 고기잡이를 하고 돌아오곤 했다”면서 “요즈음은 아낙들은 바지락과 굴, 낙지를 잡고, 남성들은 유어선(낚싯배)을 운행하거나 가두리 양식으로 생계를 잇고 있다”고 했다.

효자도 앞으로는 수시로 유람선이 다닌다. 그런데 유람선도 비켜 가는 섬이 효자도이다. 이를 바꿔 말하면 숨어 있는 섬이라는 뜻이다. 가족끼리 조용히 보내기에는 아주 좋은 섬이다. 아무 곳에서나 낚시를 할 수 있고 낙지를 잡고 조개를 캘 수 있어 더욱 좋은 섬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런 점을 착안해 집을 민박집으로 수리하는 중이다. 섬의 컨셉은 “깨끗하고 조용한 섬“이다.

아늑하면서 정겨운 것은 해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조류가 빠른 탓에 돌들이 동글동글하다. 2km의 긴 해안선이 이런 몽돌해변이다. 마을사람들은 지압에 좋다고 하여 이곳을 자주 찾아와 맨발로 걷곤 한단다. 여름에는 해수욕장으로도 그만이다. 울창한 송림이 둘러싸여 있어 산림욕을 하며 사방으로 펼쳐진 그만그만한 섬들과 오고 가는 배들의 항해를 구경할 수도 있다. 숲에는 까치와 꽁, 노루가 뛰어다닌다. 분명 때 묻지 않는 섬이다.

▲ 경비정으로 통학하는 초등생과 유치원생들이 귀가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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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자도 숲에서 바라본 원산도와 강물처럼 흐르는 해협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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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분지족의 삶을 일깨워주는 섬

효자도에는 초등학교 효자분교마저 4년 전 폐교됐다. 한 때 80여 가구에 초등학생만 200여명이었지만 지금은 중학생 1명, 초등학생 2명, 유치원 1명 등 3명의 학생이 전부이고 이 마을 교회 전도사의 딸인 유치원생 1명이 있다. 이들은 학교가 없는 탓에 맞은 편 섬 원산도로 학교를 다닌다. 재밌는 사실은 충남해경 경비정이 이들이 타고 다니는 통학수단이라는 것이다.

경비정을 타고 다니는 효자도의 학생들은 지극한 효도를 받는 어른들만큼이나 행복한 세대가 아닐까. 아이들은 아마 하나가 부족함으로써 더 큰 하나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어린 날부터는 배워가고 있는지 모른다.

여행은 나를 깨닫는 과정이다. 그런 우리네 삶이란 머무를 곳을 안 뒤에야 정함이 있다고 했고 정해진 뒤에 고요할 수 있고, 고요한 뒤에야 편안할 수 있고, 편안함 뒤에야 생각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생각한 뒤에 비로소 그 무언가를 얻는 것이리라.

그렇게 자연으로의 여행은 인간들에게 안분지족의 삶을 일깨워준다. 그래서 일직이 파스칼은“자연은 그 모든 진리를 각각 자신 속에 간직하고 있다”고 설파했을 것이다. 작아서 아름다운 섬 효자도. 한 해가 서서히 저물어가는 이즘에 다소곳이 떠 있는 작은 섬에서 나를 뒤돌아보고, 한 해를 되돌아보고 그리하여 새해의 꿈을 파도처럼 푸르게 열어보면 어떨는지.

○효자도로 가는 길
1. 승용차
- 경부고속도로(천안 IC→아산→홍성→보령(대천) 또는 →안면도(영목항)
- 서해안 고속도로(대천IC→보령) 또는 홍성→안면도(영목항)

2. 배편
- 안면도(영목)→효자도(15분 거리)
- 대천 →효자도(25분 소요)
- 하루 3회 운행(승용차 선적 가능)
- 문의: 여객선매표소(041-932-5303) 보령시청 관광과(041-930-3542)

3. 숙박
- 객실이 5개가 있는 깨끗한 민박집 있음
- 바로 앞 섬 원산도에 펜션 민박 여관 많음
- 영목항으로 나와도 숙박시설이 많음

덧붙이는 글 | <계간 섬> <섬과문화>(www.summunwha.com)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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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언론학박사, 한국기자협회 자정운동특별추진위원장, <샘이깊은물> 편집부장,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위원, 한국잡지학회장, 국립등대박물관 운영위원을 지냈다. (사)섬문화연구소장, 동국대 겸임교수. 저서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섬여행> <바다, 섬을 품다> <포구의 아침> <빈손으로 돌아와 웃다> <예비언론인을 위한 미디어글쓰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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