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여름이면 누구나 떠나는 휴가. 아버지가 승용차를 몰고, 어머니가 옆에 앉고, 아이들은 뒤에서 재잘거리는 모습이 눈에 선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휴가 시기 누구나 예상하듯 고속도로는 밀리고, 애써 도착한 바다와 계곡은 미어터지죠.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운전한데다 자가용 주차하느라 힘쓰고 나면 아버지의 피로도는 급상승. 게다가 돌아오는 길은 희한하게도 갈 때보다 더 밀리고, 짜증지수가 다시 올라가고 휴가의 즐거움은 흔적없이 사라집니다. 올해는 이런 휴가형태를 바꿔보는 게 어떨까요. 대중교통과 자전거를 이용한 친환경 휴가. 승용차론 절대 느낄 수 없는 새로운 세계를 여러분들에게 안내합니다. <편집자주>
@IMG1@기차여행 하면 생각나는 게 몇 가지 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나른한 풍경, 왠지 희망이 불끈 솟게 만드는 우렁찬 기적소리, 그리고 기차를 쏙 빼닮은 김밥.당시 기차 안에서 파는 김밥은 무슨 신비의 묘약을 넣었는지 희한하게 맛이 좋았다. 먼 곳으로 떠난다는 들뜬 기분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실내의 요란스런 분위기가 좋아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당시 즐겨 타던 기차는 비둘기호였다. 명절 때가 되면 보급열차가 나오기도 했는데, 역시 등급은 비둘기호 등급이었다. 이곳 열차 안에는 양 손에 보자기를 들고 들보에 아기를 멘 어머니나 앙앙 우는 아이들이 있었고, 허리가 잔뜩 휜 할머니가 오가곤 했다. 한쪽에선 화투판이 벌어지기도 했다.그런 요란스러움은 어느 샌가 사라졌고, 이젠 목소리를 조금만 높여도 승무원이 다가와서 '주위 분들을 생각해서…'라고 주의를 주는 시대가 됐다.그런데 참 오랜만에 시끌벅적한 기차풍경을 보게 됐다. 지난달 27일 서울역에서 강원도 정선까지 가는 MTB열차 안에서 본 풍경이다.'요란뻑적지근' 기차, 이게 얼마만이야@IMG2@@IMG3@이날 나는 정선 MTB열차를 타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출근하기 위해, 또는 휴가를 가기 위해 길게 늘어선 승용차들. "나는 기차 타고 정선 간다~!" 자전거를 타고 승용차 행렬 옆을 지나며 속으로 소리쳤다.출발 10분 전 도착. 빨갛게 색칠한 전용칸 두 개를 매단 정선 MTB열차는 무척 튀었다. 열차도 튀었지만 알록달록 옷을 입은 MTB족들도 튀기는 마찬가지. 멋진 고글에 안전모를 쓰고 전용신발을 신은 그들은 반바지 아래 잘 빠진(?) 다리를 드러낸 채 열심히 자전거를 싣고 있었다."여기 사진 좀 찍어주세요.""배고픈 사람 여기 와, 도시락 싸왔어.""어디서 먹지? 좌석 사이에서 먹으면 비좁을 텐데.""그냥 전용칸 가서 맨 바닥에 앉아서 먹으면 되지. 뭐가 걱정이야.""가선 뭘 먹는 거야?""정선에 갔으면 당연히 곤드레밥과 콧등치기국수를 먹어야지."아, 이 기차의 요란스러움. 과연 몇 년 만인가. 몇 해 전 옛 기분을 내 보려고 무궁화호 안에서 친구들과 화투패를 돌리다 차장의 제지로 그만둔 일이 문득 떠올랐다.기차에 탄 사람은 대략 10명 안팎. 오전 7시 12분 출발한 기차가 청량리역에 오전 7시 39분 도착하자 20명 정도가 더 탔다. 이렇게 정선행 MTB열차를 탄 사람은 모두 30여명. '한강자전거회', '잔차외인부대', '산마루',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들' 등 여러 동호회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공교롭게도 KBS 2TV <무한지대 큐>팀도 이날 여행을 촬영하기 위해 함께 타고 있었다.먼 여행을 떠나는 이들의 들뜬 마음과 연출을 부탁하는 방송팀의 요구가 맞물려 객실은 시끌벅적했다. 자천타천으로 사회자가 된 한 참가자가 일어나서 이날 행사의 의의를 밝혔고, 나머지 참가자들은 우렁찬 박수로 화답했다. 나는 맨 앞자리에서 책을 보다가 졸다가 하면서 시간을 보냈지만, 요란스런 분위기는 한동안 이어졌다.기차와 동강이 함께 달린다@IMG4@마침내 실내가 조금 조용해졌다 싶은 순간 갑자기 창밖으로 비경이 펼쳐졌다. 천하장사의 어깨처럼 떡 벌어진 절벽이 옆에 버티고 있었고, 그 아래론 굽이굽이 휘어진 강이 기차와 함께 달리고 있었다. 동강이었다.기차는 동강과 함께 달리다 때론 강을 가로지르기도 하면서 보조를 맞춰 달렸다. 유려하게 흐르는 동강은 거북이, 가쁜 숨을 내쉬면서 달리는 기차는 토끼가 된 경주였다. 눈이 황홀해지는 순간. '여기가 바로 영화 <라디오스타>의 무대가 된 영월 땅이지.'태백선을 타고 탄부역-연하역-석항역을 지나 목적지인 예미역에 도착했다. 오전 11시 12분. 여기서부터 정선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이동한다. 거리는 대략 45㎞. 동강을 끼고 달리는 동강 코스는 95% 이상이 포장도로라 굳이 MTB가 아니어도 쉽게 탈 수 있다. 나는 20인치 바퀴 자전거를 싣고 왔다.쉬는 시간 포함해서 타는 시간은 대략 4시간. 동강 바로 옆에서 달리기 때문에 풍경이 멋있고, 가리왕산을 타면서 언덕 구간 체험도 할 수 있다. '아우라지 코스', '가리왕산 코스', '민둥산 순환 코스', '새비대, 두위봉 코스', '함백산 코스', '닭이봉 코스' 중에서 가장 쉬운 코스지만 그래도 만만히 볼 구간은 아니다.자! 출발이다.땀으로 젖은 몸, 동굴 바람으로 말리고 @IMG5@햇빛이 쨍쨍 비치는 날씨. 물을 잔뜩 마시게 될 것 같다. 예미역에서 잠시 찻길을 따라 달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명의 주민들이 모인 곳을 지나치게 된다. 잔차부대원들이 인사를 하자 주민들이 손을 흔들고 박수를 친다. 이들은 전투를 앞둔 부대원들을 위로하는 위문부대다.곧 언덕구간이 시작됐다. 평지 구간에서 기세 좋게 달리던 이들이 뒤로 처지기 시작한다. 몸이 풀리기도 전에 나타난 약 3㎞의 언덕 구간에 참가자들의 숨소리가 거칠어진다.놀라운 점은 일행 중 40~50대가 다수라는 사실. 그 중에서도 아줌마 참가자들의 기세가 대단했다. 젊은 사람들과 40~50대 중년 남성들이 처지는 가운데 이들은 앞머리에서 열심을 페달을 밟았다. 오래지 않아 고성터널이 나타났다. 이 터널은 폐쇄된 곳으로 지금은 차가 다닐 수 없다. 입구에서 잠시 쉬며, 터널 통과 요령을 들었다."터널이 내리막인데, 안에 들어가면 상당히 어둡습니다. 게다가 바닥이 우둘투둘해 타고 가다 보면 넘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구간은 내려가 걸어갑니다. 아셨죠."용이 입을 벌린 것처럼 긴 터널 속은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언덕을 올라오느라 땀을 흠뻑 흘린 사람들은 터널 속에서 냉방욕을 제대로 즐겼다. 터널 중간 중간 위에선 물이 똑똑 떨어진다. 사람들의 발소리, 자전거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터널 속에서 공명하며 울려 퍼진다.발 담그기 싫은 동강, 샌들도 신었는데오래지 않아 터널 통과. 이제 제장마을까지 약 5㎞ 정도 쭉 내리막이다. 경사가 가팔라 제대로 속도를 즐길 수 있는 구간이지만 길이 계속 꼬부라져 있어 잠시 속도가 붙는다 싶으면 브레이크를 잡아야 한다. 하지만 조금 길이 펴지면 이내 속도는 40㎞ 이상으로 올라간다.바람이 시원하다. 모자가 날아갈 것 같아, 한쪽 손으로 꾹 눌렀다. 야호다. 언덕을 오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내리막의 기쁨. 자전거도 그 기분을 아는지 신나게 내리꽂는다. 속도가 워낙 빠르니 페달은 헛돈다. 돌리고 있는 페달은 그냥 모양일 뿐이다.마침내 평지에 도착했다. 다 내려오니 누군가 무용담을 이야기한다."언젠가 한계령에서 자전거를 타고 내려온 적이 있는데, 아 경사도 죽이더라구. 그런데 길이 구불구불하니까 내내 브레이크를 잡고 있었어. 내려오니까, 손목이 욱씬거리더라구."@IMG6@여기서부터 본격적인 동강 구간이다. 동강 옆에 붙어 있어 경치가 아름답다고 알려진 가수리 마을을 지나치게 된다. 바위나리(돌단풍) 군락지, Y자형 나무를 이어 만든 섶다리, 700여년 된 느티나무 등 근처에 볼거리가 많다.그런데 동강물이 영 시원찮다. 뿌옇게 흐린 물, 보기에도 상처 입었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가수리 휴식 장소에서 주위를 돌아보니 '도암댐 NO! 동강을 살립시다!'라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물이 깨끗했으면 강물에 한 번 뛰어들기라도 했을 텐데, 누구도 발 한 번 담글 생각을 않는다. 샌들까지 신고 나름대로 준비했던 나도 입맛만 다시며 강 주변을 어슬렁거렸다.꼬르륵꼬르륵, 앗! 정선 5일장이다!다시 출발. 경치는 좋았지만 자전거 속도가 점차 떨어지기 시작한다. 시속 25㎞, 23㎞, 21㎞, 20㎞. 평지를 달리는데 이렇게 속도가 안 나는 이유는?벌써 오후 2시가 넘었는데, 아직 우유 하나 외엔 아무 것도 먹지 않은 탓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는데. 점심을 싸온 동호회 사람들과 달리 혼자서 달랑 이곳을 찾은 나는 점심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고픈 배를 움켜잡고 좀체 속도가 나지 않는 자전거 페달을 저었다. @IMG7@오후 3시 30분경 정선 5일장 장터 입구 도착. 2일과 7일 열리는 정선 5일장은 산나물과 산약초 등이 본격적으로 나오는 봄장이 제격이다. 이때는 가리왕산 등 인근 산에서 나는 곰취·참나물·달래·냉이·씀바귀 등 갖가지 산나물들로 넘쳐난다. 여름엔 올챙이국수·찰옥수수·콧등치기국수 등이 유명하다. 이중 콧등치기 국수는 딱딱한 메밀국수가 콧등을 친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이날 장날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었던 나물은 곤드레와 취나물이었다. 정선은 곤드레를 넣어 만든 곤드레밥으로도 유명하다.시장 곳곳에선 보기에도 먹음직스런 메밀묵과 각종 국수를 팔고 있었다. 맛을 볼 수 있게 만든 시식 공간에서 메밀묵 몇 개를 집어먹었다. 몇 개를 집어먹든 말든 장사하는 분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참가자 중 한 명이 손가락을 세웠다. "메밀묵 맛 죽이는데요."배춧잎으로 만든 전도 독특했다. 부추전·감자전·파전 등 여러 전을 봤는데, 배추전이라니. 세 장을 사서 맛을 봤다. 음, 맛에 대해선 여기서 따로 논하지 않겠다.야외식당이 모여 있는 공터에서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켰다. 안주가 푸짐하다. 그릇이 넘치도록 나오는 안주. 이게 바로 시골 인심일 것이다.곤드레나물, 콧등치기국수, 배추전에 막걸리까지, 으음~@IMG8@정선 5일장은 30분이면 둘러볼 수 있다. 그다지 크지 않다. 하지만 시골장에 가서 봐야 할 게 어디 갖가지 물건들이겠는가. 도시에선 볼 수 없는 시골의 정이겠지.정선장에 가면 물건이 얼마나 많나, 얼마나 장이 큰지 적은지 확인하기보다 천천히 상인들 이야기도 들어보고 말도 한 번씩 걸어볼 일이다. 천천히, 느긋하게…. 정선 5일장은 느림으로 둘러볼 때 제 맛을 느낄 수 있다.참, 마지막 깜짝 정보 하나. 영화 <봄날은 간다>에 남다른 애착이 있는 분들은 정선버스터미널에 꼭 가볼 일이다. 유지태와 이영애가 나무의자에 앉아서 버스를 기다리던 영화 속 풍경을 볼 수 있다.@BOX1@

태그:#자전거, #MTB, #열차, #정선, #동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