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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곶은 동해에서 가장 해가 먼저 뜨는 곳이다. 그 옛날 고기잡이 나간 남편을 기다리던 간절곶은 이제 희망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는 곳이다.
▲ 저 먼 바다를 향한 아낙의 염원이 어린 간절곶 간절곶은 동해에서 가장 해가 먼저 뜨는 곳이다. 그 옛날 고기잡이 나간 남편을 기다리던 간절곶은 이제 희망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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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가을엔 단풍이 단풍답지 않다고 한다. 날씨가 가물어서 그렇단다.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니 푸른 잎은 붉은 치마 갈아입고서’라는 노래도 있지만 단풍은 가을바람으로만 오는 것은 아닌가 보다. 가을비 내리는 어느 가을날 우리는 단풍놀이에 나섰다. 산길을 달리는 안개 서린 차방밖으론 붉은 단풍으로 환히 밝았다. 가을바람이 놓치고간 잎새마다 단풍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맑은 날엔 붐비는 관광객으로 버스로 오어사까지 들어갈 수가 없다고 했지만 이 날은 관광버스가 그렇게 많지 않아 절 앞마당까지 버스로 들어갈 수 있어 좋았다. 차에서 내리자 단풍으로 불타는 운제산과 오어사가 눈앞에 나타났다. 오어지 연못 속 맑은 물 속에는 붉은 산 그림자가 비치고 있었다.

원효와 혜공이 이 오오지에서 낚시로 물고기를 잡아 살려주는 놀이를 하다가 마지막 남은 물고기를 서로 자기 고기라 했다고 오어사란 절이름을 얻게 되었다. 말갛게 고운 단풍으로 물들었다.
▲ 오어사 절 앞의 오어지 연못 원효와 혜공이 이 오오지에서 낚시로 물고기를 잡아 살려주는 놀이를 하다가 마지막 남은 물고기를 서로 자기 고기라 했다고 오어사란 절이름을 얻게 되었다. 말갛게 고운 단풍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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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어사는 혜공과 원효의 전설이 깃든 절이다.
▲ 오어사 대웅전 오어사는 혜공과 원효의 전설이 깃든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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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어사. 신라 때의 고승 원효와 혜공이 심심풀이로 낚시로 고기를 잡은 다음 그 고기를 살려주는 내기를 했는데 마지막에 한 마리가 남았다고 한다. 그때 혜공과 원효는 서로 ‘내 고기’라고 해서 오어사란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고승의 법력을 찬양하는 설화이겠지만 고승이란 분들이 어떻게 생명을 가지고 놀이를 했을 것인가. 비슷한 이야기는 진묵대사에게서도 전한다.

천렵을 즐기던 동네 불량배가 진묵대사에게 솥에서 삶은 물고기를 먹으라고 행패를 부리자 진묵대사는 솥을 들어서 통째로 마셨다고 한다. 그런 다음 바지춤을 내리고 변을 보자 물 속에서 고기가 살아나 헤엄을 치며 가더란 이야기다. 살아서 헤엄쳐 가는 고기 가운데 지느러미가 없는 물고기가 있어 살펴보았더니 그 고기의 지너르미가 솥바닥에 눌어붙어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는 원효도 혜공도 진묵의 법력에 TKO하고 만다. 진묵은 석가의 후신이란 말이 민간에 전하는 것을 보면 진묵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한 것을 알 수 있다.

오어사 유물관 안에서는 혜공과 원효의 그림자가 맞아 주었다. 삭발한 원효의 초상화가 있지만 사실 원효는 스님이라기보다는 재가 신자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젊은 나이에 요석공주와 사랑을 나누고 그 뒤로는 삭발을 하지 않고 스스로 소성거사로 자처하였다고 하지 않는가.

재가 신자라고 해서 출가승보다 못한 것이 아님은 인도의 유마거사나 중국의 방거사, 한국의 부설거사가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석가의 머리제자도 대적하지 못했던 유마거사, 백만장자의 그 많은 재산을 마다하고 재가 수도로 온 가족이 성불한 방거사, 역시 온 가족이 성불한 부설거사의 설화에서 불교의 방향을 생각해 본다.

진묵대사는 가짜 승려는 산으로 들어가고 진짜 승려는 들로 내려올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소태산 박중빈은 이 예언을 이룬 것일까. 그는 머리를 기른채로 봉래산에 들어가서 교법을 만든 뒤에 삭발하고 세속으로 돌아왔다. 산중의 불교를 개혁해서 시중의 불교로 만들고자 한 의지가 돋보인다. 만해도 용성도 불교개혁의 깃발을 올렸지만 아직도 불교 개혁은 요원한가 보다. 이 나라 절집 높은 터엔 산신령이 버티고 있지 않은가.

사하문인협회 회원 26명이 가을 문학기행을 하였다. 가을비 속에서 추억은 더욱 아름답게 자리 잡았다.
▲ 골굴사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사하문인들 사하문인협회 회원 26명이 가을 문학기행을 하였다. 가을비 속에서 추억은 더욱 아름답게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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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함월산의 골굴사는 한국의 둔황 석굴이란 별칭을 얻었다. 관음암 곁에 자리 잡은 여근석, 바로 곁에는 남근석이 불끈 솟아 있다. 고등종교인 불교의 절집에 성기를 신앙하는 원시종교의 모습이 도사리고 있다.
▲ 골굴사의 여근석 경주 함월산의 골굴사는 한국의 둔황 석굴이란 별칭을 얻었다. 관음암 곁에 자리 잡은 여근석, 바로 곁에는 남근석이 불끈 솟아 있다. 고등종교인 불교의 절집에 성기를 신앙하는 원시종교의 모습이 도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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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 정몽주 생가터 가까이 버스로 스치고 지나갈 수밖에 없는 아쉬운 마음으로 골굴사에 닿았다. 골굴사는 함월산 불교 유적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6세기 무렵 신라시대 서역에서 온 광유성인 일행이 약반전산에 12개 석굴을 만들어 불상을 모신 인공석굴이다. 한국의 돈황석굴이라고 자랑한다.

여러해 전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전에 이 절을 찾았을 적에는 절집은 한 두 채 밖에 안 보였는데 지금은 일주문을 비롯해서 선무도 대학에 이르기까지 큰 건축물이 너무 많이 들어서 석굴로서의 위상을 잃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골굴사 중앙에는 여근석과 남근석이 자리잡고 오가는 사람들의 비손을 받고 있어 불교가 아닌 원시적인 성기 신앙까지 공존하고 있음을 본다.

감은사 3층 석탑은 언제 봐도 위용이 당당하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인의 기상이 느껴진다.
▲ 감은사 터 3층 석탑 감은사 3층 석탑은 언제 봐도 위용이 당당하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인의 기상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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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대왕의 수중왕릉, 대왕암. 죽어서 동해의 용왕이 된 문무왕. 그는 거센 파도에 몸을 내맡기고 조국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동해바다 위로 용이 되어 날고 있다.
▲ 대왕암 문무대왕의 수중왕릉, 대왕암. 죽어서 동해의 용왕이 된 문무왕. 그는 거센 파도에 몸을 내맡기고 조국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동해바다 위로 용이 되어 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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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터에 우뚝 솟은 3층 석탑은 언제봐도 늠늠하다. 동해 바다를 향하여 그 웅장한 위용을 한껏 뽐내고 있다. 찬 바람만 이는 빈 절터를 두 개의 탑만이 쓸쓸하게 지키도록 이렇게 놓아 주어야 하는 것일까. 불국사처럼 복원되는 그날을 기다려 본다.

동해바다 대왕암에는 거센 파도가 휘몰아친다. 죽어서 용이 된 대왕께서 몸부림 치는 것일까. 때리고 부수는 파도속에서도 대왕암 바윗돌은 변함이 없다. 대왕암을 나와 바닷가 횟집에서 회 덧밥에다 천년약속으로 반주를 즐기니 우정 또한 두터워진다. 창문에 어리는 푸른 소나무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울산시 북구 정자 삼거리, 언덕위에 소담스러운 소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끈다. 유포라니 버들포구란 말인가. 만고충신 박제상이 볼모로 잡혀간 왕자와 왕제를 구하기 위해 이곳을 통하여 왜국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낭군을 기다린 그의 부인이 서서 망부석 되어 섰다. 석보, 왜구의 잦은 침략을 막기 위해 돌로 보를 쌓았다. 둘레 880m, 높이 1.2m라고 하니 마을을 지킬 정도의 작은 성이었나 보다. 아마도 왜구는 좀도둑 수준이었나 보다.

간절곶,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을 친다. 그 옛날 작은 어촌이었을 적에 불꺼진 등대로 갈길을 잃고 헤매다 암초에 부딪쳐 목숨을 잃고 그 주검이 간절곶까지 떠밀려 왔다고 한다. 남편이, 아버지가, 아들이 고기잡이 나가서 주검이 되어 돌아왔을 적에 얼마나 통곡을 했을까. 지금도 동해바다 바위 위에 부서지는 파도소리엔 그들의 울음이 뒤섞여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간절곶은 이제 젊은 남녀가 사랑을 속삭이는 아름다운 마을이 되고 있다.

동해 바닷가 한 횟집에서 회덮밥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창문에 어리는 소나무의 그림자가 정말 한 폭의 동양화다.
▲ 즐거운 점심시간 동해 바닷가 한 횟집에서 회덮밥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창문에 어리는 소나무의 그림자가 정말 한 폭의 동양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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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광 바닷가, 오영수의 갯마을엔 이젠 더 이상 해순이의 슬픈 사연은 없다. 한적한 바닷가 유배살이로 설움을 삭였던 고산의 그림자도 말끔히 지워지고 있다. 그 대신 아름다운 동해 바다를 솟구치는 더 없이 맑고 빛나는 태양이 있다. 이제 기장은 ‘아침이 아름다운 고장’으로 관광객을 부르고 있다. 일광, 햇빛이다. 그 밝은 햇빛이 이제 한적한 어촌을 환히 밝히고 있다.

월내, 임랑, 일광, 죽성리 바닷가.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전설이 되었다. 조상들의 슬픈 사연을 딛고 이제 동해는 원자력 불빛을 타고 밝아오고 있다. 해순이의 후예들은 더 이상 뭇 남자의 품을 전전하지 않아도 좋다. 수많은 남자가 파도처럼 덮쳐오는 슬픔과 기쁨에 몸을 떨지 않아도 된다.

신라 충신 박제상은 왜국에 볼모로 잡혀가 있는 왕자와 왕제를 구하기 위해 자기 집에도 들리지 않고 이곳에서 곧바로 왜국으로 향했다고 한다.
▲ 만고충신 박제상이 왜국에 사신으로 출발한 곳 신라 충신 박제상은 왜국에 볼모로 잡혀가 있는 왕자와 왕제를 구하기 위해 자기 집에도 들리지 않고 이곳에서 곧바로 왜국으로 향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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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제산 오어사, 가을비 속에 불타는 단풍에 가슴을 설레었고 집채만한 하얀 파도가 밀려오는 푸른 동해에서 주먹을 불끈 쥐기도 한 사하문인들의 문학기행, 문우들의 가슴엔 어떤 글이 고이고 있었을까. 오어사, 골굴사, 감은사터, 대왕암, 유포 석보, 간절곶 바다. 그들의 가슴엔 하나 가득 추억이 자리잡았으리라.
버드나무가 많았던가. 버들포구에 있는 석보다. 보는 작은 성인데 아마도 좀 도둑 같은 왜구를 막기 위한 마을을 지키는 작은 성이었나 보다.
▲ 유포 석보 버드나무가 많았던가. 버들포구에 있는 석보다. 보는 작은 성인데 아마도 좀 도둑 같은 왜구를 막기 위한 마을을 지키는 작은 성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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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11월 둘째 토요일, 부산 사하문인협회 문우들은 가을 문학기행으로 동해 기행을 즐겼습니다. 운제산 오어사 단풍을 즐기고 동해의 간절곶 등지로 찾아가 오영수의 갯마을과 고산 윤선도의 창작의 현장에서 문학 수업을 했습니다.



태그:#사하 문인협회, #정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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