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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붉은색 넥타이'를 풀었다. 여야가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 등 쟁정법안 협상을 타결 지은 지 이틀 만이다.

8일 오전 여의도 한나라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홍준표 원내대표는 주황색 바탕에 붉은 문양이 새겨진 넥타이를 매고 모습을 나타냈다. 비록 붉은색 계열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진한 빨간색 넥타이보다는 한 단계 낮아진, 부드러운 느낌의 색감이다.

"성이 홍가라서... 내복도 빨간색만 입는다"

여야가 체결한 쟁점 법안 합의 결과를 놓고 한라나당이 내홍에 빠진 가운데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오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홍준표 원내대표가 참석하여 활짝 웃고 있다.
 여야가 체결한 쟁점 법안 합의 결과를 놓고 한라나당이 내홍에 빠진 가운데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오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홍준표 원내대표가 참석하여 활짝 웃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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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에 대한 홍준표 원내대표의 '집착'은 유별나다.
1996년 정계 입문 이래 13년 동안 줄곧 붉은색 넥타이만을 고집하고 있다. 당직자회의나 TV 토론회,  유세장 등 공식 석상에 매번 똑같은 넥타이만 매고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의 장롱 속엔 붉은색 계열 넥타이만 45개가 걸려 있다고 한다. 심지어 겨울 내복 등 속옷까지 빨간색이다.

빨간 넥타이를 고집하는 이유를 물으면 "성(姓)이 홍가라서 빨간 넥타이를 맨다. 내복도 빨간색만 입는다"고 농담으로 받아넘긴다. 홍 원내대표가 붉은색을 고집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러시아에선 붉은색이 정의와 순수를 상징한다. 정의(Justice)와 순수(Purity)의 첫 글자가 '준표'의 이니셜이기도 하다. 맑고 곧은 정치를 해보자는 뜻에서 매기 시작했다."

사실 붉은색은 혁명, 진보, 좌파, 선동, 단결 등의 이미지가 강하다. 붉은색은 1792년 프랑스 혁명에 나선 자코뱅당원들에 의해 자유의 상징이 됐고, 1907년 러시아에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상징이 됐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붉은색'은 또 다른 의미로 친숙하다. 2002년 광화문을 붉게 물들였던 '붉은 악마'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수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한나라당에서 붉은색은 낯설고 거북하다. 그래서 한나라당의 상징색은 '안정감'을 강조하는 파란색이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연찬회 등에서 파란색 트레이닝복을 맞춰 입곤 한다. 파란색 물결 속에서 홍 원내대표의 붉은 넥타이는 늘 '홍일점'이 된다. 그러나 홍 원내대표는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다.

오히려 그는 정치적 기로에 선 결단의 시기나 정치적 운명을 건 승부에 나설 때일수록 붉은 넥타이에 더 강한 집착을 보였다. 박근혜 전 대표가 중요한 순간에 '전투복'인 바지 정장 차림으로 갈아입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2006년 한나라당 서울시장 경선에서도,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홍 원내대표는 붉은색 넥타이를 깃발마냥 힘차게 펄럭였다. 특히 대선후보 경선에서 홍 원내대표와 '호형호제' 사이면서도 경쟁자였던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의 상징색인 푸른색 계통의 넥타이와 셔츠를 선호했던 것과 묘한 대비를 이루기도 했다.

홍 원내대표는 20여일 동안 계속된 야당과의 쟁점법안 협상에 나서면서도 어김없이 붉은색 넥타이를 맸다. 연일 TV 화면에 비친 그의 붉은색 넥타이는 전투에 나서는 군인의 비장함을 연상시켰다.

'사퇴론'에 휩싸인 '붉은 넥타이'

길고 긴 여아 쟁점법안 협상이 우여곡절 끝에 타결 된 뒤, 홍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안 대 민주당안이) 6대 4 정도로 반영됐다"며 "(점수로 치면) 80점"이라고 자평했다. 평소 "여야 협상이 '6대 4' 정도로 되면 잘된 협상"이라고 말해왔던 그에게 이번 협상은 썩 잘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만족스러운 것도 아니었던 셈이다.

쟁점법안 처리를 둘러싸고 3개 교섭단체 원내대표가 모여 막판 회담을 열기로 한 2일 오후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선진과창조모임 대화채널이 문국현 선진과창조모임 신임 원내대표로 바뀐 데 대해 불만을 표출하며 같이 협상테이블에 앉는 것을 거부하자 문 대표와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가 곤혹스런 표정을 하고 있다.
 쟁점법안 처리를 둘러싸고 3개 교섭단체 원내대표가 모여 막판 회담을 열기로 한 2일 오후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선진과창조모임 대화채널이 문국현 선진과창조모임 신임 원내대표로 바뀐 데 대해 불만을 표출하며 같이 협상테이블에 앉는 것을 거부하자 문 대표와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가 곤혹스런 표정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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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내에서는 쟁점법안 협상 후폭풍이 몰아쳤다. 협상 결과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당장 홍준표 원내대표를 겨냥한 지도부 책임론이 제기됐다. 사퇴 압박이다. '홍준표 사퇴론'은 이명박계를 중심으로 터져 나왔다. "청와대 의중이 반영된 목소리"라는 해석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청와대는 협상 타결 직후 "갈 길이 바쁜데 안타깝다, 이명박 대통령도 같은 심정일 것"(이동관 대변인)이라며 유감을 표했다.

172석 거대 여당 원내사령탑인 홍준표 원내대표가 청와대나 이명박계를 중심으로 한 여권 핵심들과 다른 행보를 보이며 대립각을 세운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청와대가 적극 부인하고 있는 개각에 대해 홍 원내대표는 여전히 추진해야한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다. 또 여권 내에서 대운하 사전 포석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4대강 정비 사업'과 관련해서도 "대운하는 폐기된 사업"이라 강조하고 있다. 

그는 친이명박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자신에 대한 사퇴론에 대해서도 못마땅한 눈치다. 한 측근은 "(민주당의) 자해정치에 맞서 이렇게라도 국회를 정상화시켰다는 데 방점을 찍어야 한다"며 "철없는 사람들의 무책임한 주장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어쩌면 청와대 및 친이계를 중심으로 한 여권 핵심들의 '내란'을 진압하기 위해 홍 원내대표가 풀어놓았던 붉은 넥타이를 다시 한번 '불끈' 동여매야 할 때가 오지 않을까?

이명박과 오세훈, 그리고 강만수의 '녹색 넥타이'

또 한 명의 'MB맨'이 넥타이를 '불끈' 동여맸다. 그런데 이번엔 붉은색이 아니라 녹색이다.

지난 6일 한승수 국무총리는 정부 중앙청사에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등 각 부처 장관들과 함께 합동 브리핑을 열고 '녹색뉴딜' 사업을 발표했다. 4년간 4대강 살리기 등 36개 사업에 50조원을 투입해 일자리 96만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한승수 총리는 짧게 인사말을 한 뒤 퇴장하고, 강만수 장관을 비롯한 각 부처 장관들이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그런데 유독 강만수 장관의 넥타이 색깔이 눈에 띄었다. 진한 녹색 넥타이를 매고 나온 것.

원래 강만수 장관의 '트레이드 마크'는 파란색이다.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 경제1분과 간사였던 강 장관은 짙은 파란색 셔츠를 즐겨 있업다. 스스로도 "파란색 계열 4개와 흰색 2개의 셔츠를 번갈아 입어서 파란색 셔츠를 많이 입는 것처럼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 뿐만 아니라 다른 인수위원들도 의도적이든 아니든 파란색 패션을 자주 선보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당시 한나라당 상징색인 파란색이나 하늘색 넥타이와 머플러를 애용했다는 점에서 인수위원들도 이 대통령의 스타일에 맞춰진 듯한 모습을 연출한 것 아니냐는 '설화'를 낳기도 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6일 오전 세종로 정부중앙철사 별관 브리핑실에서 열린 '녹색뉴딜사업 추진방안 발표' 기자회견 도중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6일 오전 세종로 정부중앙철사 별관 브리핑실에서 열린 '녹색뉴딜사업 추진방안 발표' 기자회견 도중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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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장관이 합동 브리핑에 녹색 넥타이를 매고 나타난 것은 '녹색뉴딜' 사업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녹색뉴딜' 사업은 신재생 녹색에너지, 녹색 성장, 그린 오션과 녹색 경제 등을 연상케 한다.
지난해 10월 경남 창원에서 개막한 제10차 람사르협약 당사국총회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도 습지와 녹색성장을 상징하는 녹색 넥타이를 맸다. 당시 이 대통령은 "정부는 이번 총회를 계기로 습지를 보전하고 가꾸는 일에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약속한 뒤, "녹색성장을 강조하기 위해 특별히 그린 넥타이를 매고 나왔다"고 말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녹색 넥타이는 오세훈 서울시장과도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2006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강금실 전 법무장관의 보라색 스카프에 맞서 오 시장은 환경운동 경력과 '환경 시장'의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캠페인 내내 녹색 넥타이를 고집했다.

자연의 색인 '녹색'은 젊음, 승리, 성장, 조화, 신선 등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반면 '녹색 넥타이'는 욕심과 질투가 많고 운이 없어보이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면접 등에서 피해야 할 색상으로 알려져 있다. 고객의 자산을 관리하는 '증권맨'들도 색깔에 민감하다. 이들은 상승장을 의미하는 빨간색 넥타이를 선호하고, 심지어 볼펜도 빨간색만 쓴다. 반면 하락장을 연상시키는 녹색은 무조건 기피하는 현상이 있다.

"녹색 넥타이 맨다고 환경주의자 되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강만수 장관이 짙은 녹색 넥타이를 매고 기자들 앞에서 '녹색뉴딜' 사업에 대한 설명에 나섰지만, 그의 답변 어디에서도 '녹색 성장'에 대한 비전이나 정책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 마디로 친환경 에너지를 개발하는 게 아니라 전국토를 공사판으로 만들어 '삽질'에 올인하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대운하 의혹을 받고 있는 4대강 정비 사업 마저도 녹색 사업으로 위장했다.

결국 정부의 '녹색 뉴딜' 사업에 대한 여론의 호된 질타가 이어졌다. 언론은 토목 공사 등 건설 사업 등이 70% 이상을 차지하는 '녹색뉴딜' 사업에 대해 "포장만 녹색으로 위장한 회색 사업, 삽질 뉴딜"이라고 맹비판했다.

오세훈 시장은 이제 더 이상 녹색 넥타이를 매지 않는다. 지난해 6월 한 단체의 '기후변화 리더십 과정' 강단에 선 오 시장은 녹색 넥타이를 매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환경단체들이 '자칭 환경시장 오세훈' 운운하며 비판 성명을 내는 것을 볼 때면 가슴이 아픕니다. 선거 과정에서 초록 넥타이를 매고 다니며 환경을 너무 강조했나 보다, 후회도 합니다. 그래서 이제 녹색 넥타이는 부담스러워서 잘 안 맵니다."

오세훈 시장은 특히 "녹색 넥타이를 맨다고 환경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라며 "정책에 얼마나 환경 유전자가 녹아들어 내재화되는지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실제 서울시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만큼은 타 지자체나 국가 차원의 대응책에 비해 한참 앞서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대 이탈리아 명품 남성복으로 꼽히는 하이엔드 브랜드의 창시자인 스테파노 리치는 "남자가 아무리 제임스 본드 같은 얼굴에다 완벽하게 차려 입었다고 한들, 넥타이가 웃기면 스타일은 회복 불가능한 지경에 빠진다"고 했다. 이탈리아 작가 알베르토 마라비아도 "인간은 자신의 이상을 개성으로 표현하고 고유한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단 하나의 장식품을 소유한다. 이것이 바로 넥타이다"라고까지 예찬했다.

강만수 장관은 취임 직후부터 사퇴설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이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으로 지금까지 경제 수장으로 남아있다. 강 장관이 앞으로 어떤 색상의 넥타이를 매게 될지 유심히 지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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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붉은색 넥타이, #녹색 넥타이, #홍준표, #강만수, #녹색 뉴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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