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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바위 이름이 뭐였지? 왜 있잖아. 지난번에 갔던 그 북한산 바위. 그때는 다리도 아프고 참 힘들었는데 이상하게 생각나네. 조금 많이 지나서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 엄마도 첨에는 그랬나?"

 

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지난 주 일요일(2일) 산에 다녀온 후 3일 동안 다리도 아프고 무엇을 하기도 힘들다며 원망, 원망하던 그 '웬수 같은 산행'을 딸이 이렇게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러니 내 어찌 쾌재를 부르지 않으랴!

 

 

토요일(1일)까지 나도 남편도 좀 많이 바빴다. 때문에 날마다 고속도로가 휴가 차량으로 난리를 치렀다느니, 해수욕장에는 시원함을 만끽하려는 사람들로 출렁인다는 등의 뉴스를 들어도 '휴가 갈 때'가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그러다가 일을 모두 끝낸 토요일 오후에야 우리가족이 해마다 휴가를 가던 7월 말~8월 초라는 것을 비로소 실감한 것이다.

 

'몇 시간씩 차 밀리고 복작대며 멀리 갈 것 있어? 북한산 산행이나 하자고 할까? 사람들이 휴가 떠나서 그만큼 사람들도 적을 거니까 산행초보인 우리 가족이 가기에 딱 좋은데…그런데 선뜻 간다고 할까?…'

 

마음은 자꾸 북한산으로, 가족들에게 언제든 꼭 보여주고 싶은 사모바위와 비봉능선으로 향했다. 바닷가나 유원지로의 휴가는 산행의 맛을 알기 전의 일이지, 이제 내게 가장 좋은 여행지는 산이라 틈만 나면 산을 향했고, 여건이 허락된다면 매일 산에 가고 싶을 만큼 산행에 푹 빠져 지낸 몇 달간이라 오직 북한산 비봉능선으로만 마음이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난 "이틀 후면 큰 애 캠프도 있고 가게 이사 땜에 바쁘니까 이번 휴가는 간단하게 하루 일정으로 산행하는 것이 어떨까?" 제의했다. 산행초보인 가족들이 지레 겁을 먹을까. "시원한 바람과 계곡이 있고 서울시와 우리 사는 고양시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라고 비봉능선을 자랑자랑하면서. 다행히 남편도 아이들도 선뜻 '산행'에 동의했다.

 

산행대장은 얼마 전 초보딱지를 뗀 나. '구기분소->승가사->사모바위->승가봉->청수동암문->대남문'에 이르는 비봉능선을 탄 후 문수사에 잠깐 들렀다 태고사쪽 계곡을 끼고 하산하리라. 산행지도를 몇 번이나 그리며 모든 일을 미루고 일찍 잠을 청했건만, 가족들에게 비봉능선을 보여줄 수 있다는 설렘 때문인지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지난주 일요일 7시 무렵, 등산복 차림의 우리가족은 구기동을 향하는 버스를 탔다. 얼마 전부터 조심스럽게 산행을 시작한 남편도 아이들도 우리 가족만의 산행을 내심 기대하고 설레는 눈치였다.

 

구기분소 부근 해장국집에서 아침으로 해장국 2인분을 시켰다. 청소년이 둘이나 있는 가족이 해장국 2인분을 시켜 나눠먹겠다는 것이 해장국집 주인으로선 마뜩치 않았나 보다. 뚝배기를 우리 앞에 내려놓고 김치 등의 반찬을 모두 내려놓는 틈틈 우리 부부의 행색을 거듭 살피더니 결국 국물까지 닥닥 긁어 해치운 우리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더 달라고 하셨으면 더 드릴 수 있었는데…."

"아니 모자라지 않았는데요. 아이들과 사모바위 쪽에 갈 거거든요. 평소 먹는 양보다 50~70%만 채워야지 그렇지 않고 배부르게 양껏 먹으면 산에 오르기도 힘들고, 또 산에서 큰 볼일을 보고 싶으면 그땐 어떻게 해요. 우리에겐 이 정도가 딱 좋은 걸요."

 

한 레인저(국립공원관리자)가 쓴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는 말한다. 산행을 앞두고 자신의 평소 식사량 70%만 먹으라고. 배부르게 아침을 먹고 산행을 한 사람들의 배설물로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내로라하는 산들마다 산행 시작 지점부터 30분~1시간 거리에는 악취가 진동한단다. 이 배설물들은 레인저들이 삽을 들고 다니며 일일이 묻는단다.

 

똥파리들이 날아다니는 것은 분명 사람들이 배설한 것 때문일 거다. 나 역시 산행 중 누군가의 배설물 옆을 지나며 어쩔 수 없는 생리임에도 눈살을 찌푸린 적이 몇 번 있다. 이후 배를 가득 채우지 않는다. 이런 내 설명에 식당주인은 "처음 알았다"며 활짝 웃었다.

 

산행 중 아이들이 그 집 해장국 타령을 몇 번 했다. "오늘은 다른 곳으로 내려갈 거지만 다음에는 그쪽으로 내려가면서 꼭 배부르게 먹게 해 주마" 약속했다. 이렇게 말하는 동안 내 입속에도 침이 고였다. 나도 다시 한 번 배부르게 먹고 싶을 만큼 맛있는 해장국이었다.

 

구기분소를 출발하여 승가사로 향하는 길은 가족 산행으로 좋다. 길도 그리 험하지 않거니와 쉴 수 있는 의자도 드문드문 있어 산행초보들도 쉽게 갈 수 있는 길이다(차를 타고 승가사 턱 밑까지 갈 수 있는 길도 있지만). 남편과 아이들은 버들치가 노는 계곡 앞에서 버들치 꼬리를 따라다니며 발걸음을 쉽게 떼질 못했다.

 

다릅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산초나무, 누리장나무, 물푸레나무, 물오리나무 등이 북한산 구기계곡에서 만날 수 있는 나무들이다. 청미래와 머루 넝쿨도 드문드문, 구기분소 중간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갈라져 나가는 대남문 가는 길에는 생강나무가 참 많은데 바로 이웃한 승가사 계곡 길에는 생강나무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 나무는 말이야. 잎을 물에 담그면 파란 물이 나온다고 하여 물푸레나무라네. 이름 참 예쁘지?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옛날 사람들은 이 물푸레나무로 바위를 쪼갰다는 거야."

"에이 거짓말! 어떻게 나무로 바위를 쪼개?"

"볼래? 이런 바위틈에 물푸레나무 조각을 끼워 넣고 뜨거운 물을 부으면 나무가 급격하게 팽창, 바위를 툭 잘라낼 만큼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한다네. 물푸레나무는 팽창력이 그 어떤 나무보다 강하대."

 

마침 커다란 바위 옆을 지나며 바위틈에 손가락을 슬쩍 밀어 넣고 설명을 해도 아이들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눈치다. 나무로 바위를 쪼갠다는 사실이 얼마나 신기한가! 실은 나도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믿는 쪽이다. 기술이든 음식이든 적재적소에 맞게 가려 쓰고 그에 맞는 요리법 등을 터득한 조상들의 지혜들은 얼마나 감동스러운가!

 

그렇게 만나고 싶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보던 누리장나무는 요즘에야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향이 얼마나 진한지 꽃을 등지고 한참을 걸었는데도 꽃을 옷에 문질러 향을 묻히고 온 듯 코끝에 닿는 향이 여전히 진하다. 잎맥에 냄새를 풍기는 특수한 조직이 발달, 누린내를 풍긴다하여 '누리장'이란 이름이 붙었다나?

 

 

평소 책이나 인터넷에서 얻은 것들을 아이들에게 들려주며 두런두런 걷는 사이 어느새 승가사. 승가사는 통일신라 때 창건된 천년고찰로 비구니 사찰이다. '구기리마애여래좌상(보물 제215호)'과 '승가대사상(보물 제1000호)'의 문화재가 있다. 있다. 맑은 날 범종각에서 과천까지 보일만큼 전망이 좋은 곳이다. 대웅전 뒤로 사모바위 윗부분이 아스라이 보인다.

 

갈 때마다 많은 사람들로 붐볐던 사모바위에는 내 예상대로 사람들이 다른 때보다 훨씬 적어 우리가족 산행에 딱 좋다 싶었다. 산행초보에게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도 부담이 된다. 느린 내가 다른 사람들의 앞을 방해하는 것 같고, 높은 바위를 오르는 것도 힘든데 다른 사람의 시선도 부담스럽다. 또 누가 앞에서 오면 지레 겁을 먹고 비켜주기 바쁘기 때문이다.

 

사모바위 부근에서 점심을 먹은 후 사모바위를 지나 능선 산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사모바위를 최종 목표로 알았던 아이들은 바위를 기어오르며, 능선 아래 까마득하게 펼쳐진 풍경들을 내려다보며 "한 발짝만 잘못 떼면 저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건가?"라며 벌벌 떤다. 그러면서도 바위 오르는 것을 재미있어 하고 능선의 시원한 바람을 즐기는 눈치다.

 

지나온 바위투성이 능선을 뒤돌아보며 자기들이 지나온 길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우리가 저 길을 정말 지나온 거야?" 자꾸 물었다. 산바람이 이렇게 시원한 줄 몰랐다며 가슴을 툭 내밀었다. 너무 설렌단다. 신기하단다. 자신들이 대견스럽다며 숫제 나를 놓고 도망치듯 달려들 갔다.

 

 

그러나 이런 설렘은 잠시. 문수봉을 우회하는 너덜길을 오르며 힘들어 하던 남편과 딸은 우회지점인 대남문에 주저앉아 "더 이상 못가겠다. 어지럽다"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당신은 산에 자주 와서 안 힘들지만 우린 오늘이 겨우 3번째잖아! 이런 우릴 끌고 와?"

"휴가가 아니라 완전 극기 훈련이네! 내 친구 Y는 바다에서 메시지 왔는데! H는 축제장에서 해운대 영화 본다는데 난 이게 뭐야? 누구누구는 엄청 좋겠다! 다시는 산에 안 따라온다!"

 

원망이 쏟아진다. 졸지에 난 개구리 올챙잇적 생각 못한, 오만한 개구리가 되고 말았다. 평소 운동을 즐기는 아들은 둘과 나를 번갈아 보면서 빙긋빙긋 웃을 뿐이다. 결국 들르려던 문수사에 들르지 못하고 태고사 쪽을 향해 하산을 시작했다. 산을 내려오는 동안에도 원망은 드문드문 계속된다. 내게도 짜증나는 너덜길이다. 하지만 난 속으로 꾹꾹 눌러 참았다.

 

내려오는 동안 지난 가을 비봉 능선 산행이 생각났다. 사모바위와 비봉능선은 산행에 있어선 내게 첫사랑과 같은 존재라 항상 그리운 곳이다. 그때 비봉능선을 가보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산행의 재미를 알았을까? 지난 가을 이후 30여 차례에 가까운 산행을 하면서 시시때때로 그리운, 생각하는 것만으로 그저 설레는 비봉능선길인 것이다.

 

내가 '난 절대 오를 수 없으리라' 바라만 보던 사모바위와 비봉능선으로 얼떨결에 끌려간(?) 것은 지난해 11월 23일. 북한산 정상 아찔한 능선에서, 한 발짝만 잘못 떼어도 굴러 떨어질 듯 아슬아슬한 바위에서 움쩍달싹도 못할 만큼 겁에 질려서 "초보인 내생각도 않고 하필 왜 이 길로 오자고 해서"라는 원망을 함께 간 사람에게 쏟아 부었다.

 

 

다시는 힘들게 산에 가지 않으리라 다짐 다짐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참 웃기게도 하룻밤을 꼬박 천 길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는 악몽에 시달릴 만큼 힘들었던 그 길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다시 가고 싶어졌다. 그렇게 나의 산행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내가 아는 한 사모바위·비봉능선은 초보들이 산행의 맛을 제대로 알기에 딱 좋은 길이다. 정상과 능선의 탁트인 시원함과 그다지 험하지 않은 바위를 오른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때문에 난 이제 막 산행을 시작한 내 가족이 나처럼 비봉능선에서 산행의 의미와 재미를 가질 수 있기를, 그리하여 자주 가족 산행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 길을 택했던 것이다. 또한 내 아이들이 세상의 그 어떤 재미보다 산행의 재미를 좀 더 일찍 터득하기를 또한 간절히 바라면서.

 

산행은 5시 조금 넘어 끝났다. 고추장 삼겹살을 배부르게 먹으면서 가족들의 원망은 조금 사그라졌다. 하지만 하산 중에 발을 다친 딸은 사흘간을 끙끙 앓으며 "다시는 산에 가지 않겠다"며 툴툴댔다. 그런 딸이 가족 중 가장 먼저 비봉능선과 사모바위를 그리워하며 다시 가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니 내 어찌 기쁘지 않으랴! 

 

지금 북한산에는 누리장나무가 꽃을 가득 피워 올리고 있다. 늦가을에 다시 가면 누리장나무는 빨간 꽃받침 위에 까만 씨앗이 가득 든 열매를 우리가족에게 환하게 보여 줄 것이다. 생명의 질서와 순환을 볼 수 있기에, 삶의 위안과 용기를 얻을 수 있기에 난 산을 좋아한다. 우리 아이들도 산에서 생명의 질서와 삶의 지혜, 용기를 터득했으면 좋겠다.

 

"버들치 놀던 그 곳 옆에 엄청 많은 꽃을 피웠던 그 나무 기억나지? 누리장나무 말이야. 그 나무는 가을에 까만 열매를 만들어. 그런데 열매를 좀처럼 열지 않다가 첫눈이 오면 열매를 탁 터뜨려 열매 속 까만 씨앗들을 눈 위에 까맣게 퍼뜨린단다. 왜 그럴까? 눈이 녹으면서 씨앗이 물 따라 멀리멀리 퍼질 수 있기 때문이야. 식물들 사는 것이 참 신기하지? 가을에 가면 누리장나무가 예쁜 열매를 조록조록 매달고 있을 거야. 그때 다시 한 번 가볼까?"

덧붙이는 글 | '2009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
북한산 비봉능선 산행은 8월 2일에 했습니다. 


태그:#휴가, #북한산, #비봉능선, #사모바위,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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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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