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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신 8월 18일 저녁, 늦은 시간까지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고 온 고3 딸아이가 이런 이야기를 저에게 들려 줍니다.

 

"엄마, 제가 지금 집에 오는데요, 어떤 아줌마가 막 김대중 대통령을 욕하는 거 있죠?"

"아니, 뭐라고 욕을 하던데?"

"김대중 대통령은 빨갱이라고요, 또 숨겨둔 재산이 얼마나 많을지는 알 수도 없고, 김대중대통령 속은 누구도 알 수 없다면서 아주 잘 죽은거라고 이야기하던데요~"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그 아줌마한테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렇지 않아도 어떤 할아버지가 '아줌마, 무슨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해요' 말하니까, 그 아줌마는 오히려 할아버지한테 '아저씨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끼어 들지말라'고 오히려 화를 내던데요?"

"그래...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것이 진실인양 막무가내로 우기는 사람한테는 당할 재간이 없지. 하지만 언젠가는 그 아줌마도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오해가 풀릴 때가 있을 거야."

 

그렇게 말을 했지만 저의 마음은 참으로 씁쓸하기만 합니다. 

 

광신도라고 손가락질할지 모르지만...

 

저는 1987년 대통령선거에 처음 대통령선거에 참여하던 때부터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될 때까지 3번 모두 김대중 대통령에게 투표를 했습니다.

 

아직도 김대중 대통령을 빨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런 저에게 광신도라고 손가락질을 할지 몰라도, 지금까지 저는 그분에 대한 믿음이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김대중 대통령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지지한다는 말은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못했습니다.

 

주변에는 김대중 대통령을 바라볼 때 잘못된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으며, 김대중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싸잡아서 '광신도'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으니까요.

 

그런 사람들과 '당신이 틀렸네, 내가 옳다'라고 말싸움을 벌이는 것이 오히려 김대중 대통령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또 다른 반발만 불러 일으킨다는 사실 또한 저는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1982년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야간대학교에 입학한 저는 그 당시까지도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가끔 신문에서, 그리고 뉴스에서 '김대중'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뿐이었습니다.

 

그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전두환 정권에 의하여 광주사태를 뒤에서 배후조종한 내란음모죄로 사형선고를 언도받고, 미국에 망명중이었습니다.

 

사돈어른을 통해 알게 된 김대중

 

1984년 무렵, 서울 종로에 있는 관공서 앞 사무용품 가게에서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후 6시면 학교에 공부하러 정신없이 달려가곤 했습니다. 셋째언니의 시아버님께서 종로의 사무용품가게에 자주 놀러 오시곤 했었습니다.

 

당신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하시고 편하게 이름을 부르고, 사돈처녀의 이름조차도 아무렇지도 않게 "명라~"하고 불러 주시던 그 사돈어른께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였습니다.

 

그분은 김대중 대통령의 젊은 시절부터서 미국으로 망명하게 된 과정까지의 이야기를 저에게 곧잘 들려 주시곤 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전 부인인 차용애씨 이야기에서부터, 김대중 대통령보다 집안도 학벌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이희호씨가 김대중씨와 결혼한 이야기까지. 그때 저는 처음으로 김대중 부인의 이름이 이희호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분명히 이겼는데도 부정선거로 대통령직을 도둑맞았다는 이야기, 김대중씨를 살해하려는 의도적인 교통사고 때문에 다리를 다쳤다는 이야기, 그리고 일본에서 박정희 정부로부터 납치당하고 바다에 빠져 죽을 뻔했을 때 미국의 도움으로 무사히 살아났다는 이야기, 전두환 일당이 김대중씨와 아무 상관도 없는 광주사태 배후자로 붙잡아다가 사형선고를 내렸는데 미국의 도움으로 지금은 망명생활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 그리고 노벨평화상 후보에도 여러번 올랐지만 안타깝게 노벨평화상은 아직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사돈어른이 저에게 들려 주신 이야기는 소설보다 흥미진진했습니다.

 

전남 영광이 고향이었던 사돈어른은 젊은 시절, 영광에서 공직에 근무하기도 했고 또 종친회 회장을 맡기도 하셔서 당시 정치인과 접촉이 잦았으며 국회의원 출마를 꿈꾸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김대중씨가 미국으로 망명하기 전까지는 가끔 동교동으로 찾아가 그를 만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훗날, 셋째언니의 말에 의하면 1980년 서울의 봄 시절에 언니 시댁의 가정형편이 아주 나빴던 시절이어서 다행이라고, 그 당시 웬만큼 살았더라면 언니의 시아버님은 틀림없이 김대중씨에게 정치자금이라도 갖다 주었을 거라고, 그랬더라면 당시 공무원이었던 형부도, 시동생들도 공무원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을 거라고 했습니다.

 

어쨌든 누구보다 김대중씨를 가까이에서 지켜보았기에 잘 알고 있던 사돈어른이 저에게 들려 주는 이야기들은 마치 놀라운 세상을 경험하게 하는 그런 계기가 되었습니다.

 

3번의 선거, 3번의 선택

 

그후로 저는 김대중씨에 대해서 알기 위해 스스로 노력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서 싸우느라 몇 번이나 당신의 목숨이 위태로움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한길을 향하여 나아가는 모습과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 의하여 덧씌워진 빨갱이라는 멍에가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1987년 13대 대통령선거 때 김영삼씨와의 단일후보를 이루지 못했지만, 대통령으로 김대중을 선택했습니다.

 

그후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씨와 3당합당이 있고 나서 1992년 치른 14대 대통령선거에서도 저는 김대중을 찍었습니다. 그분만큼 우리나라를 위해, 우리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해 국정을 이끌어 나갈 분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김영삼씨에게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하고 나서 정계은퇴를 했던 김대중씨가 다시 정계복귀를 선언하고 출마한 1997년 15대 대통령선거에서도 저는 망설임없이 김대중씨를 선택했습니다.

 

수구언론이, 앞선 독재정권이 덧씌워 놓은 잘못된 사실만으로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면서 김대중씨를 빨갱이라고 욕하는 사람들,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는 곧장 공산주의가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 우리나라에 대통령감이 없어서 다리를 저는 장애인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하느냐고, 세계가 부끄럽다는 사람들에게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어서 진정한 민주주의란 이런 것이라고 확실하게 보여 줄 수 있기를 마음으로 빌었습니다.

 

그런 저의 바람대로 김대중씨는 1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우리나라를 혼란속에 빠트렸던 IMF를 이겨내느라 동분서주해야 하는 그분을 보면서 좀 더 일찍, 10년만 먼저 대통령에 당선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제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겠습니다. 김대중대통령를 20년 넘게 존경하고 있다는 사실을. 3번이나 대통령으로  지지했다는 것을.

 

저에게 김대중이라는 사람을 처음 알게 해 주신 사돈어른은 지난 3월 9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5월 23일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떠나보낸 노무현 대통령에 비하면 김대중 대통령이야 30여일이 넘는 투병생활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쉽게 보내서는 안될 것만 같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노무현 대통령의 추도사에서 "노무현 대통령 당신, 죽어서도 죽지 마십시오. 우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저승에서, 나는 이승에서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민주주의를 지켜냅시다. 저승이 있는지 모르지만 저승이 있다면 거기서도 기어이 만나서 지금까지 하려다 못한 이야기를 나눕시다. 그동안 부디 저승에서라도 끝까지 국민을 지켜주십시오. 위기에 처해 있는 이 나라와 민족을 지켜주십시오"라고 이야기한 것을 보면, 김대중 대통령은 아마 지금쯤 저승에서도 노무현 대통령과 우리 국민을 걱정하느라 편안한 안식을 취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정말 이렇게 쉽게 떠나 보내서는 안 될 소중한 두분 전직 대통령을 허망하게 떠나보내야 하는 우리 국민들이 두분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두 분 대통령께서 저 하늘에서 편안한 안식을 취할 수 있도록 말이죠.

덧붙이는 글 | "김대중 대통령과 나" 응모




태그:#김대중대통령, #대통령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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