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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에서 2009년 세제개편안을 발표하였다.

 

이 세제개편안은 민생안정·지속성장·과세정상화·건전재정 등을 4대 중점 추진 방향으로 표명하고 있다. 그런데, 속내를 보면 이번 세제개편안의 가장 큰 목표는 건전재정, 즉 세수증대이다. 이는 세제개편안 보도자료의 마지막에 이번 세제개편으로 총 10.5조의 세수증대 효과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2008년 세제개편안의 핵심은 소득세 및 법인세율 인하, 종부세 완화 등 부자감세이다. 그런데, 이번 세제개편안에서는 총 10.5조원의 세수증대 중 고소득자 및 대기업에게 귀착되는 비중이 OECD 기준으로 90.6%, 지난해 분류방식 기준으로 79.6%라며 '부자증세'임을 강조하고 있다. 보도자료를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1년만에 '부자감세' 정권에서 '부자증세' 정권으로 탈바꿈한 셈이고, 이는 2008년 '부자감세' 세제개편안이 잘못된 것임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쨌든 2008년의 부자감세로 2010년에 약20조원의 세수감소가 예상되었는데, 이로써 반 정도는 회복된 셈이다. 이번 세제개편안에서 2008년에 앞뒤 안 재고 '무식하게' 밀어붙인 감세의 피해를 줄이고자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보이지만, 아무래도 역부족인 듯하고 군데군데 헛발질도 보인다.

 

부자감세에서 부자증세로... 군데군데 헛발질

 

연봉 1억원 초과 근로자에 대하여 연50만원의 근로소득세액공제를 폐지하고, 근로소득공제율을 5%에서 1%로 축소한 점은 부자증세로 인정할 만한 부분이다. 또한, 과표 100억원 초과 기업에 대한 최저한세율 인상도 대기업의 세부담 증가로 인정될 수 있는 부분이다. 임시투자세액공제 제도 일몰 종료 역시 그 혜택의 대부분을 대기업이 누렸던 부분이니 이 역시 대기업에게 주로 세부담이 돌아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부자증세로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은 여기까지이다.

 

부동산 양도 후 2개월 이내에 자진신고할 경우 10%의 세액공제한 부분이 폐지된 것에 대하여 서민, 중산층은 이미 1세대1주택 비과세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에 피해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논리적 비약이다. 강남 아파트 1채를 팔면 지방 아파트 여러 채를 살 수 있다. 9억원짜리 강남 아파트 1채를 가진 사람은 1세대1주택 비과세혜택을 받지만, 2억원짜리 지방 아파트 2채를 가진 사람은 양도소득세를 내야 하므로 양도소득세 예정신고세액공제 폐지로 세부담이 증가한다. 9억원짜리 강남 아파트 1채를 가진 사람과 2억원짜리 지방 아파트 2채를 가진 사람 중 누가 더 서민층에 가까운가? 게다가 1세대 소유자가 모두 비과세혜택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3주택 이상 다주택자에 대한 전세보증금에 대하여 소득세를 과세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옳은 방향이다. 그러나, 임대관련 발생 이자를 비용으로 공제하므로 대출을 끼고 임대주택을 취득하는 경우 소득세 부과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용량 냉장고, TV, 에어컨, 세탁기에 대하여 5%의 개별소비세를 부과하는 것도 주요한 증세안 중 하나이다. 대용량 가전제품은 주로 고소득자가 구입하므로 이 역시 부자증세라고 할지 모르지만, 요즈음 중상층 중 소비성향이 높은 계층은 대형 PDP TV와 양문형 대형 냉장고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음식업 등 서비스업을 영위하는 자영업자 역시 대형 TV와 에어컨을 보유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를 부자증세로 인정하기는 곤란한 부분이다.

 

그 이외에 증세로 연결되는 세제개편안은 주로 성인대상 영리학원, 수의사 애완동물 진료, 미용성형 수술에 대한 부가가치세 과세, 중고자동차와 유흥주점에 대한 의제매입세액공제 축소 또는 제외 등과 같이 주로 부가가치세 관련 부분이다. 그 방향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부가가치세와 같은 일반소비세의 증세를 부자증세로 볼 수는 없다. 또한, 이처럼 디테일한 부분까지 건드리며 증세를 하고자 하는 노력이 가엽기(?) 까지 여겨진다.

 

반쪼가리 부자증세... 재정 폐해 회복에는 역부족

 

한편, 부자증세로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을 보면, 소득세의 경우 주로 고소득 근로소득자를 대상으로 세부담을 증가시켜 고소득 자영업자는 사실상 증세대상에서 제외되었고, 법인세의 경우도 최저한세율 적용 대상 기업과 임시투자세액공제 대상 기업에 국한하여 세부담이 증가되었다. 따라서, 고소득자와 대기업 중 일부만을 대상으로 하였다는 점에서 '반쪼가리 부자증세'이며, 근로소득자와 자영업자 사이에 형평성 시비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불공정 부자증세'인 셈이다.

 

이번 세제개편안은 2008년 세제개편안의 무분별한 부자감세로 인한 재정압박의 폐해를 줄이는 데 중점을 두었다. 따라서, 중소기업 가업상속공제 요건 완화, SOC채권 이자소득 분리과세 일몰 연장 등과 같이 몇 가지 헛발질이 보이기는 하지만, 과거의 세제개편안에 비해 전체적인 흐름에서 가혹한 비판을 내릴 만큼 한심한 수준은 아니다.

 

다만, '반쪼가리 부자증세'라는 점에서 2008년의 전면적인 부자감세가 초래할 재정적 폐해를 회복하기에는 너무나도 역부족이다. 그리고,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복잡하게 해결하려는 미련함에 한숨이 나올 뿐이다. 마치 뭣 모르고 큰 사고를 쳐놓고는 그  결과가 두려워 이것 저것 핑계를 대며 사실을 숨기려는 미숙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지금의 재정위기는 '부자감세 - 삽질예산 확대'의 결과이다. 그렇다면, 과거 부자감세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를 되돌리는 것이 현명하고 성숙한 어른의 모습일 것이다. 과거의 잘못을 숨기고자 이것 저것 사소한 것만 건드려 보았자 몸과 마음만 피곤하고 재정위기의 불씨는 그대로 살아남아 계속 괴롭힐 것이다.


태그:#부자감세, #세제개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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