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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기 등록금을 당구비로 탕진했다는 불우(?)한 학우 소식은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하다. 잦은 음주로 결석을 밥 먹듯이 해서 학과장에게 불려 간다던지, 술 먹고 강의실에 들어가서 냄새 풀풀 풍기며 잤다는 무용담도 전해져 내려온다.

중고등학교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아진 자유시간, 사회적 위상의 급격한 변화는 대학생들을 새로운 여가 세계로 이끈다. 강의와 강의 사이의 공강 시간, 무언가를 하기 어려운 짜투리 시간을 보내는 방식은 다양하다. 사람마다, 그리고 시대마다.  

2009년을 살고 있는 대학생들은 어떻게 남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이를 필자의 주변 서강 대학교생들을 위주로 살펴보았다.

당구? 술? No, No, 뒷끝 없이 깔끔하게

당구와 술로 대표되던 고학번들의 놀이 문화가 있었다. 주고받는 술잔 속에 정을 키워갔고 교대하는 큐대 속에 우정이 돈독해졌다. 들인 돈과 비례하는 주량과 당구 실력은 훈장과도 같았다. 이제 이는 전설 속의 얘기들일 뿐이다. 이른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최근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는 대학가의 대표적인 여가 문화 공간은 게임방이다. 기존의 PC 방도 여전하지만 게임방은 이 수준을 뛰어넘는다. 다양한 TV 용 오락기기를 갖춘 게임방들은 어느덧 대학생 여가 시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위닝 일레븐'으로 대표되는 '플스방'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들은 당구장, 만화방 같은 전통적인 강자들을 밀어내고 있다.

"일단 당구장은 비싸요. 너무 아저씨 같은 느낌도 들고."

서강대학교 정문 앞 플스방에서 만난 박경민 (24, 2학년) 씨의 말이다. 10분 단위로 정산되는 당구장 비는 각 상권마다 차이가 있지만 1시간에 1500원 내외 하는 게임방에 비해 비싼 편이다. 특히 당구장의 경우 대부분 '물리기'라는 이름으로 일체의 비용 내기를 하기에 실제 체감하는 가격은 훨씬 부담스럽다. 

여가 시간을 깔끔하게 보내려는 최근 학생들의 경향도 주된 놀이 공간의 변화에 한몫하고 있다.

"당구나 술은 후유증이 커요. 당구는 끝나도 머리에 잔상이 남고, 술은 아무것도 못하게 되고. 비는 시간만 간단히 즐길 만한 것이 좋죠." 

조경호 (25, 3학년) 씨는 그래서 게임방을 찾는다고 설명한다. 이제 공강 시간에 막걸리를 먹고 강의에 들어갔다는 선배들의 얘기들은 더 이상 전설이 아닌 조롱거리에 불과하다. 

여심을 잡아라

예전부터 대학가 놀이 문화는 남학생들을 타깃으로 형성되었다. 유혹에 약하고 분위기에 따라 집단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짙은 남학생들이 짜투리 시간에 돈을 아낌없이 쓰기 때문이다. 여학생들이 시간을 보낼 곳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이는 남학생과 여학생의 성적 차이의 원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문화들도 서서히 바뀌어 가고 있다. 여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편의시설들이 속속들이 대학 안팎으로 들어서고 있는 중이다. 졸업을 앞둔 이승진(여, 24, 4학년)씨는 교내 커피숍의 단골 이용자다. 교내외의 다양한 커피숍을 가리지 않고 이용한다. 시간이 별로 없을 때는 테이크 아웃 전문점에서 음료를 가져와 벤치에 앉아서 휴식을 취한다. 여유가 있을 경우 직접 커피숍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 친구와 대화도 하고 밀린 과제를 하거나 공부를 하기도 한다.

"다양한 커피숍들이 있어서 좋아요. 커피숍에서 간단히 휴식을 취하고 들어가는 것이 다음 활동에도 도움이 되고."

대학가 여심을 노린 상업화는 이전부터 지속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양상이 훨씬 다양화 되고 있다. 이전 일률적인 카페 혹은 노래방 정도였던 여학생들의 놀이 공간은 확장되고 있다. 단순히 약속을 잡고 대화를 하는 공간이 아니라 거의 무한대로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에게 맞는 활동을 할 수 있는 능동적인 곳으로 커피숍이 진화해간다. 커피숍은 기능 진화와 함께 양적으로도 폭발적인 증가를 이루고 있다. 몇 년 사이 서강대학교 내 커피 전문점은 배로 증가했다. 상업 자본이 몰린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달라진 여성의 수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비단 커피숍뿐 아니라 남성들이 주로 향유했던 게임방 문화 등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게임방=플스방=축구게임'이라는 공식을 탈피해 최근 번화가에 등장하고 있는 wii 방 같이 남녀가 쉽게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이는 포켓볼 당구대를 갖춘 당구장이 늘어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럴 시간도 없어요!

취업난으로 삭막해진 대학가 풍경 역시 놀이 문화의 변화에 큰 원인을 제공한다. 한가하게 있을 시간이 없다는 위기의식이 학생들 전반적으로 팽배하다. 비교적 여유가 있는 저학년들도 놀이 문화에 잘 빠져들지 않는 이유이다. 아직 충분히 시간이 있어 보이는 저학년들이 도서관에서 자격증이나 영어 공부 등 자기계발에 열중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미 대학 들어올 때부터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워놨기에 한눈을 팔 수 없어요. 그 시간에 차라리 잠을 자죠."

21살 모 신입생의 말에서 짜투리 시간을 보는 대학생의 전반적 시각이 변모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공강 시간은 더 이상 어영부영하는 사이 시간이나 친목도모의 장(場)이 아니다. 자기 발전과 자아 성취를 위한 발판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학구열이 뜨겁다.

이는 비단 공강 시간에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다. 방과 후 여가 시간을 여러 사람들과 즐기는 모습도 과거 같지 않다. 학교에서 조금만 떨어져도 볼 수 있던 귀여운 초보 취객들, '오늘 또 놀았어'하는 자괴감 섞인 표정으로 당구장을 나서는 학생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집단 놀이 문화를 주도하는 과 활동이나 동아리 문화가 쇠퇴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남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분위기로 변하고 있다.   

달라진 공강 문화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이 존재한다. 삭막해진 대학가 분위기를 목표지향적인 인간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낸 서글픈 현실이라고 애석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자기 관리에 투철한 신세대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견해도 있다.

결국 정답은 없다. 늘어난 시간적·사회적 자유와 이를 뒷받침하는 책임, 이 둘을 이해하는 자만이 공강 시간의 승자가 될 것이다. 개인의 즐거움이 됐건, 자기 능력 계발이 됐건 말이다. 시대가 흘러도 변치 않는 공강 시간 활용의 진리이다. 

어느덧 취업준비생이 된 이동찬(26, 4학년) 씨의 말은 이를 시사한다.

"신입생 때 입학 직후에 선배가 한 말이 있어요. 주어진 시간 관리만 잘하면 1학년 때 더 배울 것은 없다고요. 근데 결국은 어영부영 보냈던 것 같아요.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아요. 그동안 재밌게 잘 놀았죠."

덧붙이는 글 | 서강대학교 온라인 저널리즘 수강생입니다



태그:#공강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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