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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전당대회가 끝난 지 1주일. 아직도 선출된 대표와 최고위원을 두고 말들이 많다. 특히 소위 빅3 지지자들이 각 인터넷매체와 당 게시판에 상대방의 과거전력을 드러내며 흠집내기를 그치지 않고 있다.

 

비록 민주당원은 아니지만, 향후 민주당의 행보에 따라 2012년 총선과 대선의 판세가 결정되기 때문에 나 역시 관심을 갖고 민주당 전당대회를 지켜보았다. 손학규 후보가 대표로 당선되자 진보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들은 탄식을 했다. 심지어 2012년의 총선과 대선은 이미 끝났다고 비관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다르다. 내가 손학규 대표를 지지해서가 아니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개정된 민주당 당헌 때문이다.

 

민주당의 당헌 개정이 갖는 의미

 

개정된 민주당 당헌 제2조(목적)에 '민주당은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 보편적 복지, 그리고 조국의 평화통일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나는 여기서 '보편적 복지'에 주목하고 있다.

 

보편적 복지는 개인의 경제적 능력에 상관없이 특정 욕구가 인정되면 누구에게나 다 복지급여를 주는 복지제도를 말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등장한 무상급식이 보편적 복지의 대표적인 예이고, 현재 시행되고 있는 보편적 복지로 볼 수 있는 제도로는 의무교육이 된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수업료 면제, 65세 이상 노인의 지하철 무임승차 등이 있다.

 

반면, 선별적 복지 또는 시혜적 복지는 소득이나 자산조사 결과 저소득층에 한하여 복지급여를 주는 제도이다.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사람에게 최저생계비 수준 이상의 생활을 보장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선별적 복지의 대표적인 예이다.

 

보편적 복지제도에서 복지는 시민권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이다. 반면, 선별적 복지에서 복지는 불쌍한 사람 도와주는 일종의 시혜로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보편적 복지를 누리는 사람은 당당한 반면, 선별적 복지급여를 받는 사람은 고개를 숙이기 마련이다. 기존 저소득층 학생에 국한된 무상급식제도에서 대상 학생들이 받는 마음의 상처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한, 보편적 복지는 전국민이 대상자가 되기 때문에 사각지대가 없는 반면, 선별적 복지에서는 소득조사 또는 자산조사가 불완전하게 이루어질 경우 광범한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사실상 고소득자인데도 소득을 탈루할 경우, 고소득자가 복지혜택을 누리게 되는 복지재정 낭비도 문제가 된다.

 

세부담 대비 복지혜택의 크기에서 보편적 복지는 일부 부유층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에게 혜택이 더 크므로 정치적 지지기반이 매우 강고하다. 반면, 선별적 복지는 사회적으로 발언권이 약한 일부 저소득층이 주로 혜택을 보므로 지지기반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현재, 전 세계에서 보편적 복지를 전면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국가를 들 수 있다. 민주당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북유럽국가와 같은 보편적 복지국가로 만들겠다고 공언하였으니 어찌 놀랄 일이 아닌가? 민주당은 사실상 유럽의 사민당 노선을 표방한 것이다.

 

진보진영의 새로운 성장론, '보편적 복지'

 

보편적 복지국가로 분류되려면 적어도 3가지는 갖추어야 한다. 무상보육 및 무상교육, 무상의료, 최저생계비 이상을 보장하는 노인연금이 그것이다.

 

무상보육과 무상교육은 태어난 가정환경에 상관없이 모든 아이들에게 동등한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도덕적 당위성 외에 21세기 지식기반경제에서 가장 큰 성장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기존 경제학 교과서의 3대 생산요소는 토지, 노동, 자본이다, 여기서, 노동은 단순한 원동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경제성장에서 사람의 역할은 원동력 제공자 또는 기계 부속물 정도로 여겨졌다. 따라서, 정부가 경제성장을 위해 할 수 있는 정책이란 금융정책을 통하여 자본축적을 돕거나, 토지 등 자연자원을 적절하게 분배 또는 통제하는 것 정도였다. 

 

그런데, 80년대 후반에 등장한 신성장론은 인적자본과 축적된 지식을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로 보고 있다. 인적자본은 개개인에 체화된 능력을 의미하고, 지식 역시 사람에 의해 축적되는 것이므로 신성장론에서는 사람이 경제성장의 중심에 서게 된다.

 

최근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학자(헤크먼과 쿠나)들이 취학전 아동에 대한 투자가 가장 효과적인 투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결국, 신성장론에서는 사람에 대한 투자가 가장 중요한 성장정책이 된다.

 

21세기의 보편적 복지는 단순한 분배의 문제가 아니라 성장의 필요조건이다. 배고프고 아픈 상태에서 좋은 인재가 키워질 수 없으며 좋은 아이디어와 지식이 축적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공정한 기회가 보장되어야 많은 인재가 배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보편적 복지는 진보진영의 새로운 성장론이 될 수 있다. 민주당은 보편적 복지를 당헌에 넣음으로써 복지와 성장을 동시에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절묘한 수다.

 

만약, 민주당이 진정성을 갖고 개정된 당헌에 따라, 보편적 복지의 최소조건인 무상보육 및 무상교육, 무상의료, 생계보장수준의 노인연금의 로드맵과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재원마련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면, 누가 당대표가 되든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한미FTA 잘 넘겨야 민주당도 승산 있다

 

그런데, 최근 한미FTA를 둘러싼 지도부 구성원 간의 입장 차이는 민주당이 보편적 복지에 대한 진정성이 있는지 의심케한다. 한미FTA는 보편적 복지와 상극이기 때문이다.

 

한미FTA는 단순히 개방이냐 폐쇄냐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정부의 정책자주권이 침해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특히, '투자자의 정부 제소권'을 보장해주는 조항은 가장 위험한 독소조항이다. 

 

투자자의 정부 제소권은 투자를 받은 나라의 정부 조치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고 판단하는 외국인 투자자가 국제분쟁해결센터와 같은 제3의 민간기구에 투자를 받은 나라의 정부를 제소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예를 들어 보자. 만약, 우리나라 정부가 사교육을 억제하는 정책을 썼을 경우 우리나라 교육사업에 투자한 미국 자본이 피해를 입었다고 제소할 수 있다. 의료분야도 위험하다. 민영의료보험의 적용을 차단한 '당연지정제'를 미국 자본이 그대로 둘 리 없다.

 

한미FTA가 이러한 독소조항을 그대로 둔 채 재협상 없이 그대로 발효된다면, 보편적 복지의 가장 중요한 분야인 교육과 의료가 외국인 투자자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므로, 우리나라의 보편적 복지는 사실상 물 건너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미FTA 재협상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은 당헌에 명시된 보편적 복지의 진정성을 시험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며칠 전, 진보정당의 핵심관계자와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내가 '이번에 민주당이 보편적 복지를 당헌에 넣었는데,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부유세를 당론으로 정하면 어떻게 될까?'라고 질문을 했다. 그의 답변은 '민주당이 그럴 리가 없지요. 만에 하나 그렇게 된다면 당장 합당해야지, 뭐하러 소수정당으로 남아 있어요?'였다.

 

이처럼 보편적 복지와 부유세는 야권의 정치지형에 지각변동을 가져올 핵폭탄이 되어가고 있다. 민주당이 장착한 핵폭탄이 터질지 불발에 그칠지 두고 볼 일이다.


태그:#민주당, #보편적 복지, #부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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