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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신병교육대대 수료식 장면
 제1신병교육대대 수료식 장면
ⓒ 최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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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4일 신병 교육대대에서 아들의 교육 수료식이 있었다. 치킨, 초콜릿, 회, 크림, 영양제 등 아들이 편지로 주문한 준비물을 챙겨 제17보병사단으로 향했다. 이번 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씨란다. 한파특보라는 일기예보 탓에 바짝 긴장했지만, 다행히 날이 맑아 그리 춥지는 않았다.

각 제대별로 면회장이 나뉘어 있어 물품은 사단 입구에 있는 면회실에 맡기고 수료식장으로 들어갔다. 스탠드를 꽉 메운 훈련병 가족과 친지들 앞에 군복을 입고 나타난 아들들을 보며 힘찬 박수를 보냈다. 입소 후 첫 면회이기 때문에 군복을 입은 아들의 모습은 처음 보았을 것이다. 지난 달 사복 차림으로 한 입소식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아들들은 진짜 군인 아저씨가 돼 나타났다. 절도 있는 몸짓과 언어를 구사했다. 그들의 동작에서 5주간 훈련의 흔적이 보였다.

식전행사로 17사단 군악대의 연주가 있었다. 빨간색 유니폼에 어울리게 강렬한 군악을 선보였다. 율동을 곁들인 군악대의 연주를 들으며 '군이 딱딱한 이미지를 강조하기보다 친근감 있게 다가올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억압과 통제가 최선이 아니라 열고 터놓으면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는 이야기다.

부모 생각에 견딜 수 있었다는 훈련병

5주간 훈련을 마치고 이등병  계급장을 단 병사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5주간 훈련을 마치고 이등병 계급장을 단 병사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 최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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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식사, 상장 수여에 이어 계급장 수여가 있었다. 작대기 하나인 이등병 계급장은 부모가 직접 달아줄 수 있었다. 5주간의 힘든 훈련을 마치고, 계급장을 단 이등병들은 얼싸안고 서로를 격려했다. 이 모습은 어떤 장면보다 보기 좋았다. 아들을 군에 보낸 부모만이 느낄 수 있는 순간이랄까.

그런데 나는 깜짝 놀랐다. 5주 만에 본 아들의 피부가 몰라보게 깨끗해졌기 때문이다. 아들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여드름과 전쟁을 치렀다. 그 전쟁은 입대 전까지 계속됐다. 신기해서 아들에게 이유를 묻자 "규칙적인 생활을 해서 그런가 봐"라며 흐뭇해했다. 피부과에서는 "입대하게 되면 여드름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했다. 덕분에 나도 '군에 가면 당연히 그렇게 되나 보다'라며 걱정했는데, 보송보송한 피부로 변한 아들을 보니 기분이 참 좋았다.

수료식 중 '마음의 편지'라는 행사도 있었다. 훈련병 대표가 나와 부모에게 전하는 편지를 낭독하는 자리였다. 연단에 나선 훈련병 대표는 "산에 오를 때는 주저앉고 싶었지만, 부모님을 생각하며 견뎠다"고 했다. '자식은 부모의 말을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그 훈련병의 말을 듣다 보니 부모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이어 '번개용사의 다짐' '사단장의 인사말' '사단가 제창' '구호제창'을 끝으로 30여 분만에 수료식이 끝났다.

오전 11시 30분, 수료식을 마치고 면회실로 이동했다. 면회장 안에는 전자레인지가 놓여 있었고, 옆 건물 번개회관에는 10여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방이 마련돼 있었다. 저렴한 가격으로 피자, 햄버거 같은 음식도 살 수 있었다. '무거운데 바라바리 음식을 장만해오지 않아도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는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면회장에는 커피나 빵을 파는 카페까지 있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하지만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 1분 1초가 아까웠다. 후회는 접어두고 싸온 음식 보따리를 풀었다. 아들은 화답하듯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규칙적인 생활이 익숙해졌어요"

5주 만에 만난 아들과 소곤소곤
 5주 만에 만난 아들과 소곤소곤
ⓒ 최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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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일 힘들고 아쉬운 게 뭐였어?

"2박 3일 숙영을 했는데, 텐트에서 잤어. 15km 주간행군하고 오후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한 30km 야간행군이 정말 힘들었어. 완전 군장까지 다 매고, 소총을 드니까 진짜 무겁더라. 다들 발에 물집이 생기고 뒤꿈치도 까졌는데, 나는 발 뒤만 조금 까졌어. 근데 견딜 만 했어. 불침번이라고 해서 밤에 일어나 보초를 섰는데, 매일 하진 않고 돌아가면서 했어. 잠자는 것도 이 정도면 괜찮겠다 싶더라고. 화생방 훈련 때는 라섹을 했거나, 색맹인 경우는 모두 제외해줬어. 근데 정말 아쉬운 건 간식을 자주 못 먹는다는 거야. 폼 클렌징 못 쓰는 것도 좀 아쉬워."

- 훈련은 어땠어? 잘 따라갔어?
"훈련병 278명 중에서 46등 했어. 근데 우리 반에 5등 한 사람도 있더라고. 사격은 20발 쏴서 12발을 맞춰야 하는데, 처음에는 9발 맞춰서 불합격하고 재사격 했을 때는 14발 맞췄어. 신교대 조교도 뽑는데, 나도 최종 후보에 오르긴 올랐어. 근데 '키도, 덩치도 큰 사람이 조교를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그냥 신교대 조교가 되겠다는 생각을 접었어."

- 전투모가 베레모로 바뀌었는데 어때?
"보기는 좋은데, 챙이 없어서 아쉬워. 햇빛을 가릴 수 있으면 좋겠는데. 하하."

- 자대가 확정됐잖아. 11월 22일에 '제○○○○부대 ○○ 해안감시대로 분류됐다'고 문자가 왔던데?
"나는 일반보병이 아니라 해안감시대원이야. 주특기는 감시장비운용지. 자대는 주말 종교활동 때 자주 지나쳤던 곳인데, 여기서 조금만 올라가면 돼. 25일부터 제2신병교육대대에서 3주 동안 후반기 교육받고 자대로 배치될 거야. 앞으로 3주는 휴가, 면회, 외출, 외박이 안 돼. 신병교육대대가 17사단이라고 해서 자대가 전부 17사단 안에서 배치되는 게 아니야. 61사단, 2군지사, 수방사 등 다양하더라고."

-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같은 건 없어?
"23일날 우리 생활관에 대대장이 직접 인터넷에 등록된 편지들을 들고 오셨어. 엄청 자상하시더라고. 엄마가 쓴 글도 봤대. 엄마 보고 글 잘 쓴다고 하던데? 하하. 운이 좋게도 중학교 선배 형이랑 같은 생활관을 썼어. 참 신기하더라, 이런 곳에서 선배를 만나다니…. 신교대에 있는 동안 일기를 썼는데, 야간 훈련하는 날은 못 쓰니까 꾸준하게 쓴 건 아니야. 좀 안정이 되면 다시 써야지."

- 군 생활의 장점을 꼽는다면?
"밥이 진짜 잘 나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제시간에 딱딱 줘. 가끔 양이 적거나 반찬이 다 떨어질 때도 있지만, 거의 좋게 나와. 엄마는 만날 밥 주는 시간이 달랐잖아. 19명이 생활관을 같이 썼는데, 20살이 5명이고 나머지는 다 21살, 22살이야. 나이 차이가 거의 없는 형들과 생활하니 말이 잘 통했어. 거의 다 친하게 지냈지. 이제 규칙적인 생활이 익숙해졌어."

우리집 '올해의 베스트 뉴스'는 이미 정해졌다

우리 가족 2011 베스트를 장식할 장면  남편, 아들과 찰칵
 우리 가족 2011 베스트를 장식할 장면 남편, 아들과 찰칵
ⓒ 최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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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 머릿속은 온통 군대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세계적인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샘혼은 "경험담이 없다면 다 말장난"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아들이 말해준 군 생활은 타인을 통해 듣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나는 아들에게 직접 들은 내용을 내가 지도하는 아이들에게 해줬더니, 수업시간마다 군대이야기를 해달라고 아우성이다. 다행히도 이번 면회 때 챙겨온 '이야기 보따리'가 풍성해 다행이다.

지난 25일, 제2신병교육대대 중대장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이곳에서는 군에 부여된 전투 수행임무를 즉각적으로 완수할 수 있도록 전투프로를 양성, 배출하기 위한 부대입니다. 11월 25일부터 12월 16일까지, 3주간 전투 프로가 되기 위한 교육훈련을 받고 보직된 부대로 전입할 것입니다."

연말이라 각종 매체에서는 '올해의 사건' '올해의 인물' '나의 베스트' 등을 선정하고 있다. 2011년 우리집 베스트 뉴스는 무엇일까? 당연 나와 남편이 '이등병 부모'가 됐다는 소식일 것이다.


태그:#첫 면회, #제1신병 교육대대수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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