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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13일 박원순 캠프는 침울했다. 박원순 후보가 단일화된 이후 처음으로 나경원 후보에게 지지율에서 역전을 당했다. <서울신문>과 엠브레인에서 10월 13일 조사한 발표에 따르면 박원순 후보 44.5%, 나경원 후보 47.6%었다. 항상 10% 이상 차이 나던 지지율이 처음으로 역전된 것이다. 그 원인으로 전략의 부재, TV토론 등 수많은 원인이 지적되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민노당 이정희 대표가 사퇴한 걸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에게만 '상임'선대위원장 자리를 준 것에 대한 항의의 차원으로 이정희 대표가 박원순캠프에서 사퇴한 시기가 극히 밀접함에도, 이정희 대표의 행보가 지지율에 영향을 준 것이라고 판단하는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민노당과 이정희 대표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비난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민노당과 이정희 대표에게는 뼈아픈 그야말로 '깃털같이 가벼운 존재감'이었다.

반대로 나경원 후보의 지지율 역전에 가장 큰 비판을 받은 것은 민주당이었다. <한겨레>는 2011년 10월 9일 칼럼 '수성도 편승도 아니다'라는 칼럼을 시작으로 민주당의 무력감에 대해서 비판했다. 또한 <시사인>은 214호에서 느슨한 야권연대에 대해 주로 민주당을 비판하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기성언론뿐만 아니라 SNS에서도 민주당의 무기력함에 대한 비판이 주류를 이루었다. 역설적이게도 민주당에 대한 비판이 민주당이 야권의 핵심임을 다시 한 번 증명해준 셈이었다.

그리고 서울시장 선거에서 진보진영의 비협조에도 불구하고 박원순 후보가 당선됨으로서 민노당과 이정희 대표의 가벼운 존재감은 확실하게 정해졌다. 사실상 서울시장 선거에서의 승리로 민주당과 시민사회단체만 연합한다면 진보진영이 배제되더라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게 증명된 것이었다. 이 구도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 때에 성립한 이후의 선거에서 여러 번 검증되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통합진보당의 최대의 과제는 '시민단체+민주당'만으로도 승리할 수 있다는 공식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과 이정희 대표의 가벼운 존재감은 통합진보당 합당과정에서도 극복하지 못한다. 지지율은 양당구도가 정착되면서 오히려 추락했다.

통합 전인 지난해 11월 24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정기조사 당시 민노당 지지율인 4.8%이었다. 하지만 통한 이후에 통합진보당의 지지율은 3.2%이다(2012년 2월 1일 <시사인> 조사). 그리고 이후에도 지지율은 여전히 정체상태이다.

<한겨레>와 KOSOI가 조사한 최근의 여론조사는(2012년 2월 27일자) 더욱 절박한 통합진보당의 처지를 나타낸다. 우선 선거 이슈가 통합진보당에게 좋지 않다. 총선에서 가장 공감하는 이슈가 '이명박 정부의 여당을 심판하는 선거'라고 대답한 사람이 49.2%, '야당을 심판하는 선거' 29.2%, '모름·무응답'이 21.6%었다. 80%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번 선거에 '심판론'에 입각한 투표를 하고 있다.

현 정권을 비난하는 50%의 사람들은 반드시 승리하기 위해서 가능성 있는 세력을 지지하게 된다. 사표방지심리가 발동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통합진보당에 지지는 민주통합당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야당을 심판하는 선거라고 규정한 30%의 국민들은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견고한 보수층들일 확률이 높다. 박근혜 대표의 부동의 지지율 30%, 이명박 대통령의 거의 무너지지 않는 국정 지지율 30%와 동일한 사람들일 확률이 높을만큼 통합진보당이 지지를 얻기는 불가능하다.

통합진보당이 끌어드릴 수 있는 사람은 21.6%의 사실상 무당파로 추정되는 사람들이지만 무당파는 이슈에 약하다. 10명 중 8명이 공감하는 심판론 이상가는 이슈는 존재할 수가 없다. 당연히 무당파도 양당 중 한 곳에 투표할 확률이 높다. 사실상 통합진보당이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없다.

통합진보당에게 고민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통합진보당이 민주통합당과 차별화할 여지도 없다는 것이다. 통합민주당이 좌클릭을 하면서 통합진보당과의 정책은 거의 구분이 불가능해졌다. 그나마 확실히 차이가 나는 한미FTA에 대한 입장 차이에서는 통합민주당의 안이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한겨레>-KOSOI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미FTA에 대한 응답에서 통합진보당이 입장처럼 '폐기해야 한다'고 응답한 견해는 11.0%였다. 반대로 민주통합당의 입장인 '폐기해선 안 되고 재협상 해야 한다'라는 입장이 54.5%였다. 한미FTA로 차별화 해보기에는 국민여론이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2월 1일 조사 이후에 근 한 달 만에 실시한 2월 27일 조사에서도 통합진보당은 3.1%의 지지율을 기록했다는것이다. 한마디로 지지율이 정체되어있다. 사실 통합진보당의 유일한 돌파구는 시민사회와의 통합이었다. 통합진보당과 시민사회세력이 하나의 세력을 이루어 독자세력화를 하는 것이다.

실제로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선으로 시민사회는 조직만 없을 뿐 상당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했다. 서울시장이라는 상징성을 감안했을 때 박원순 시장이 진보통합당으로 입당하고 많은 시민사회세력이 참여했다면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진보통합당이라는 3강 구도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그게 가능했다면 진보통합당은 민주통합당에게 대등한 교섭자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원순 시장은 2월 23일 민주통합당에 입당했다. 박원순 캠프를 지원하던 사람들 흔히 말하는 박원순 사단들도 민주당과의 교감 속에 총선에 출마했다. 사실상 시민사회단체와 민주당의 연합이 완성된 것이다. 서울시장 후보와 여론조사에서도 증명되었듯이 이런 구도 하에서는 통합진보당은 변수조차도 되지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통합진보당의 유시민 공동대표가 주장했던 사표론이 가장 먹히기 좋은 구도이다.

통합진보당이 갈 수 있는 다른 길이 있었다. 양당구도의 재편을 예상하면서 진보신당처럼 진보의 깊은 가치를 품고 다음 세상을 기다리는 것이다. 현실의 영향력은 잃겠지만 미래에 자산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은 세상에 나오는 길을 택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은 영향력을 얻는데 실패했다.

통합진보당이 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만 남은 것 같다. 하나는 총선에 독자출마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정당 지지율과 양당구도 속에서는 심상정, 이정희, 유시민 공동대표들 조차 지역구에서 의석을 얻기는 힘들 것이다. 비례대표 저지조항조차 극복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드는 실정인 것이다. 아마 아무런 의미없는 전패의 상처만 남을 확률이 높다.

두 번째 방법은 민주당과의 협상을 해서 통 큰 양보로 진보의 순수성과 대의를 보여주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뿌리만 남으면 언젠가는 꽃은 필 수 있다. 하지만 성급히 꽃을 피우려다가는 뿌리조차 얼어죽을 뿐이다.


태그:#통합진보당, #서울시장선거, #통합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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