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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철학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무도에서의 철학은 강호를 장악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고 싶어 하는 무인이라면 진정으로 삼고 싶어 하는 교과서다.

"대체 무기란 상스럽지 못한 연장이다. 사람을 해치므로 무인은 이런 것을 싫어하고 미워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무도의 경지를 개척하는 사람은 이런 것을 사용하지 않는다.

승리하고도 명예롭게 생각하는 무인은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는 무인이다.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는 무인은 도처에서 인심을 잃게 되니 진정한 무인이라 말할 수 없다."

1956년 진보도방의 강령에는 이런 것이 있었다. '책임 있는 혁신 정치, 수탈 없는 계획 경제.' 맞는 말이었다. 강령의 신선함만큼 진보도방은 1945년 공산치사 헌영게릴라좌발(박헌영)의 조선공산도방과 남조선노동공방이 중점을 둔 '공산주의권'을 죽이고 '사회민주주의권' 색채로 진화된 발전적인 도방이었다. 한국의 진보무림권좌는 민족자주와 민중해방을 위해 폭압정권과 맞서 투쟁해 온 결과물인 거였다.

진보도방이라는 이름이 걸 맞는 조직 패러다임으로 자생적으로 탄생한 진보도방은 그해의 태왕위 쟁투에서 집권도방인 절대부패방이자 이름만 자유도방인, 절대태왕 독재천하 승만박사신공을 압박하는 성과를 얻는다. 승만박사신공과 팥빙수령 기붕꽉찬곳간공(이기붕)은 이때 진보지랑 봉암민심군자(조봉암)의 폭발적인 '민중안착권'에 위기감을 느끼고 바짝 긴장한다.

그러나 백성의 마음이 곧 천심이라는 단순한 논리를 힘으로만 억압하려 했던 이들 비무도인들의 뱀의 혓바닥 같은 긴장은, 후일 진보도방의 맹주인 진보지랑 봉암민심군자에 대한 강호 진출을 원천 봉쇄하는 자객 출몰 제거의 기폭제가 되었으니, 역사의 큰 인물을 무대 밖에서 희생시킨 절대부패 자유도방의 몰락은 하늘의 명령으로 생각하여 정당했다.

무도의 본질을 윤색시킨 '백성허리조임권'과 '깡패동원권'만으로 영구집권 하려던 자유도방의 생리에 위기를 느낀 당시 무림의 부패 대명사 자유도방이, 본격적으로 진보도방의 빨간 깃발이 북조선도방과 비슷하다는 '생떼작전권'을 구사하여 탄압한 거다. 백성들이 절대부패 자유도방의 도반들과 수련생들이 남발하는 물리력에 지치다 못해 처절하게 죽어가던 시기였다.

하여 3대 태왕위에서 압도적인 권법과 도력으로 만백성을 교화시키며 선전했던 백성안착권의 기수 진보지랑이 의금부에 하옥되고, 그것도 모자라 '빨간색넥타이권'이라는 간자로 몰아 희생시키니, 우리 역사에서 진정한 진보 무림의 참도인 한 사람이 어처구니없게 사라진 거였다. 진보지랑은 그 해 태왕위 백성 투표에서 무려 216만 표를 획득하며 백성의 지도자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었다. 1959년 참으로 안타까운 현대무림사의 일대 비극이 있었다.

당시의 진보도방은 책임 있는 혁신 무림 정치와 도력도 아닌 힘과 계급에 의한 수탈이 없는 자유로운 진보 무림의 아름다운 경제 체제를 외쳤다. 그리고 양분되어 있는 한반도 무림계를 당시 집권도방과 경무정통방(청와아방궁의 전신)이 주창하던 북진통일이 아닌 평화적인 무림의 질서 있는 통일(즉 평화통일)을 하자고 주창하였다. 그러던 이 나라 최초의 참다운 진보의 가치 무림 정치가 땅에 묻힌 지 오래, 우리나라의 진보 무림은 1988년 백두난발 기완가열찬공(백기완)이 '민중의 도방'이라는 사회주의 진보도방을 건설하기까지 오랜 세월을 희생하며 아파왔다.

민중 민주주의의 도력을 실현하려던 기완가열찬공의 무도실험은 빈민천사 정구천신대방(제정구)의 한겨레민주방을 거쳐, 1990년에 이를우째공, 재오철방, 낙중열혈장이 연대하고 지금의 출사도인 경기찰방 문수출사공 등의 70년대 학생운동 세력인 열혈청년들이 본격적인 무림정치에 뛰어들며, 지방선거에서 서서히 그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1992년 기완공의 태왕위 도전(1.1%, 24만 표)으로 무림정치세력화의 길을 연 진보도방은 1997년 민중삼장 영길도랑(권영길)의 '국민승리21'이 태왕위에 도전 1.2%(306,026표)를 득표하며 진보무림정치에 초석을 다졌다.

수면 아래에서만 맴돌던 진보 무림의 혁신정치가 본격적으로 제도권의 문을 박차고 들어선 것은, 1995년 결성된 민주노총이 가세한 2000년 이후였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안다. 한국노총이 썩은 집권 무림의 정치권과 결탁하고 재벌경제인들의 암묵적인 지원을 받는 것에 반발하여 어용으로 규정하고 탄생한 민주노총은, 초기의 우여곡절을 털고 일어나 2000년대를 지나면서부터는 오히려 한국노총을 리드하는 노동무림계의 파워 집단으로 자리매김한다. 

특히 강호의 이름난 노동 무림들인 금속노조, 철도노조, 공공운수노조, 건설노조 등 강성 노동 무림의 비호대권그룹은 비민주적인 노동 운동에 한계를 느끼고 정치 공방의 도방 살림 차리기를 주도했다. 하여 당시 국민승리21과 재야 노동계의 좌장 그룹, 그리고 대표적인 진보 시민운동가들이 주축이 된 1만여 명의 인원으로 새로운 혁신 진보 무림의 도방을 차리니, 바로 통합진보도방의 전신인 '민주노동자방'이다.

2003년에는 고심하던 전국농민회무림인총연맹(전농무림)이 민주노동자방에 참가, 농촌 지역에도 노동 강호의 뿌리를 내리며 확대된 민노방은 2004년 총선에서 전국에 121명의 지역구 후보와 16명의 비례대표후보를 출마시켜 지역구에서 2명이 그리고 정당득표에서도 13%를 얻으며, 비례의원 8명을 배출하게 된다. 그리하여 도합 10명이 무림의회의 원내에 진출하며 드디어 보수무림계의 두터운 문을 열어젖혔던 거다.

그러나 진보주의 공방인 민주노동자방은 민주무림노총과 전농무림, 그리고 각종 단위 노조들의 협력이 기반 되어야만 무도의 본질이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또한 진보주의 정당의 아킬레스건이다. 전체 대한민주노동무림의 노동자의 11%에 불과한 무림노조의 '조직집단권'의 도력을 심화하지 않는 한, 노동운동의 한계가 명확하듯이 진보정당의 한계도 거기까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진보무림공방의 존립기반은 노동무림계 파워그룹인데, 노동 무림의 실권자들의 참여가 저조하다면 진보공방의 확장성도 더딜 것은 자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부의 분열이다. NL이라는 강성노동권이 정당 내부를 장악하고 있든, PD라는 온건노동상이 견제하며 줄다리기를 하고 있든 백성들은 알 바 없다. 그러나 자기들 공방 내 사범들의 무림체계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갈라서기도 했던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강함과 온유가 질서 있게 결합되어 시너지를 만드는 힘이 무도의 핵이다.

그동안의 성장을 발판으로 이번 총선에서 진보도방은 무림의회에서 13석을 획득했다. 비록 20석 이상에게 주어지는 원내 무림단체권 점령에는 실패했지만 괜찮았다. 그러더니 사단이 났다. 가장 도덕적이어야 할 진보도방의 도반들 사이에 도인주의가 없던 것이 크나 큰 이유였다. 진보 무림의 역사에서 내부의 분열과 반목은 진보 무림정치의 발전을 방해하고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물이다. 백성의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도 항상 투쟁과 거리 행사라는 모토가 짙게 깔려 있는 국가 정책의 브레이크 도방이라는 부정적인 인식 탓도 있다.

견해가 다른 무림의 세력들이 연대할 때는 반드시 민주화된 여론의 수렴이 중요하다. 그러나 다양한 견해는 진보도방의 모든 과제들을 좌지우지하는 일부의 강성세력들(흔히 '경기동부연합권'의 사용자라고 일컸는)에 의해 묵살되고, 도방의 중심체계는 헐겁다 못해 해체되어 있었단다. 그러니 대표는 어용이고 비례대표 투표에서의 대규모 비리도 가능했던 것이리라. 그러나 국민들이 통합진보방의 공권에 실망하는 것은 특정한 '종북세력권'이 도방의 실권을 좌지우지한다는 기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 이후 진보도방에서 보여주는 일련의 그림들이 도무지 제3세력으로 자리매김한 정통도방의 행태로 모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성과 화합보다는 상대에 대한 공격과 깡패들보다 더한 폭력 행사, 자잘못이나 따지며 제 목소리를 높여 이익이나 취하려는 그들의 모습에서, 진보 무림의 본질은커녕 우리나라 기성정치도방들의 구태보다 더한 악취를 느끼기 때문이다.

대리투표, 유령투표, 시간외 투표, 투표함 미리 개봉 등의 사례는 아프리카 수단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그야말로 부패천하 자유도방의 부정투정에 버금가는 희한한 일이 21세기에 벌어진 것이다. 목적 달성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위는, 미안하지만 공산주의 무림천국의 프로파간다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종북진보파니, 자주연대파니 뭐니는 둘째로 하자. 왜냐하면 진보도방의 가치가 무림이상의 구현에 있다면 종북권이니 NL권이니는 아예 수면 하에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진보무림의 주창은 '학생무림자유투쟁운동권'의 강성윤활유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어느 정도 대 북조선무림주의 문제의 민감성에서 비껴가기는 힘들다. 보수적인 색채에서 보면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이 나라에서 진보도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무도 색채의 존재는 중요하다. 이유는 진보라는 이름은 결코 색깔론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이상적인 무도정치의 구현이라는 숙제를 대신 풀어내는 참여백성무도주의의 표본이기 때문이다.

지금 정희진보차랑이 몸담고 있는 군사들의 아집은 도방의 전체성을 지키겠다는 고육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기득권의 연연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공동 대표인 시민객장이 말한다.

"이거 전면적인 당의 재검토가 필요해요. 그리고 우리도 좀 끼워줘. 나 좀 태왕위 출전시켜줘."

옆에서 듣다가 대신 잡은 마이크로 곤욕을 치룬 심상정도 거들었다.

"이러지 말고 우리 진정하고 오랜 관행을 없애고 진보의 새 룰을 만들어 봅시다. 이거 진보지랑 봉암민심군자 보기 민망하고, 백성들 보기는 더더욱 민망하다 못해 서러워요. 백성들 다 떠났어. 마음 그거 다 떠났다구. 이제 어쩔래. 이제 어떡할래?"

두 번이나 무림의회에서 강철기갑을 휘두른 거제도포 기갑푸른수염공(강기갑)도 목에서 피를 쏟으며 오열했다.

"이것 봐요, 정희진보지랑. 이제 묵은 때를 벗기기 위해 그만 기득을 내려놓고 처음으로 다시 돌아갑시다. 이거 아주 낯부끄러운 일이에요. 우리가 이래 가지고 워째 백성들 앞으로 나서겠어요."

진상조사위의 보고서를 믿지 못하던 이정희는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나의 신공을 내려놓고 독야청청 하리라' 하며 홀연히 사라졌다. 그러자 앞서 말한 무도의 본질을 망각한 폭력의 사단이 났다.

"저는요. 불확실한 의혹은 절대로 키우지 않아요. 그리고 진보 법류술사로서의 양심을 지킬 거야요. 무림계의 양심이고 강호에서 절대로 존중되어야 할 인간에 대한 예의가 도방 내부에서 무너지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워요."

그녀의 절망은 곧 이 나라 진보 무림계의 절망이다. 그러나 진보무림정치의 절망은 다시 말해 진보무림세력의 자기 혁신을 불러와 무림 색체의 일대 변혁을 가져올 수 있으니, 썩 나쁜 일도 아니다. 전 우주를 감쌀 수 있는 절대 무공은 체계적인 자기 관리가 선행되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간단하다. 곪은 살은 도려내고 새 살이 잘 살아 오를 때가지 정성스레 약을 잘 발라주면 된다. 진보적 무도의 색체는 중요하다. 진보무도인이 현실무림정치의 녹을 먹으면 보수무림의 부패무도인들보다 더한 독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보무림의 진성무도의 이상이 온전하게만 지켜진다면, 강호는 황토만 난무하는 공간이 아닌 아름다운 푸른 초원이 자라는 될 것임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록 전 백성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지만 그 눈총도 달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가치관과 패러다임을 가진 참 가치체계의 힘을 얻는 도력이 완성된 진보무림의 공방으로 환골탈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백성들의 비판적인 안목도 어느새 바뀌어 숨통이 열릴 것이다. 진보라는 이름은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역사 발전의 합목적성에 따라 추구하는 무림의 본질 향상이자 진귀한 보배(珍寶)이기 때문이다.


태그:#이정희, #유시민, #통합진보당, #당권파, #심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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