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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장애아'라고 하면 '불쌍하다' '안 됐다' 등의 말이 따라붙곤 합니다. 하지만 여기, '행복하다' '네 덕분에 산다'며 미소 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입니다. 사회의 편견을 딛고 한 걸음 한 걸음 사랑으로 사는 그들. <오마이뉴스>와 사회복지법인 밀알복지재단(www.miral.org)이 이들을 만나러 갑니다. [편집자말]
결혼 4년 만에 얻은 귀한 아들 현호를 강인한 눈물로 키워내고 있는 엄마, 박향숙(41)씨
 결혼 4년 만에 얻은 귀한 아들 현호를 강인한 눈물로 키워내고 있는 엄마, 박향숙(41)씨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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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만의 폭염이 한반도를 달궜던 지난 8월 8일. 말복이 지났다고는 했지만, 바람 한 점 없는 하늘에는 아침부터 뜨거운 태양이 세상을 익힐 것 같은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혹독한 폭염. 휠체어를 타야 하는 뇌성마비 장애인 현호(17·고1)와 어머니(박향숙·41)가 흘릴 땀을 생각하니 문득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이 원망스러워졌다.

현호의 집은 경기도 의왕시 오정동 주택가에 있는 매입임대주택(기초생활수급자나 한부모 가족, 월평균소득의 50% 미만인 저소득층의 안정적 주거를 위한 공공임대주택). 택배일을 하는 아빠(박광철·48)의 100여만 원 남짓 수입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는 집이지만 5천만 원의 대출까지 얻어 무리하게 입주한 것은 몸이 불편한 현호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세 아들들을 위해서였다.

"애들이 넷이나 되고 현호의 몸이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작은 집에서 사는 게 더 힘들더라고요. 여섯 식구가 화장실 하나를 쓰다 보면 불편한 게 하나둘이 아니거든요. 현호를 위해서라도 목욕탕이 크고 넓은 집이 필요했어요."

현호를 위해 넓은 집으로 이사 온 건 좋은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다가구 주택이다 보니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현호는 3층까지 불편한 몸을 난간에 의지하며 기다시피 계단을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사 오기 전에 현호한테 물어봤어요. 엘리베이터가 없는데 어떡할까 하고요. 현호도 좁은 집이 싫었던지 가자고 하더라구요. 엄마 도움 없이 올라올 테니 이사를 가자고요. 동생들도 형을 도와주면 되니까 이사를 가자고 했고요. 그래서 이리로 왔어요."

뒤늦게 얻은 아들, 그 아이는 아팠습니다

현호는 결혼 4년 만에 얻은 귀한 아들이다. 기다리던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엄마는 뛸 듯이 기뻤다. 아이가 늦는다고 볼멘소리를 하시던 시아버지 앞에서도 더 이상 죄인이 아니었다. 더구나 쌍둥이라니 기쁨도 두 배였다. 당연히 남편도 기뻐했다. 부부는 기다리던 아이니만큼 건강하게 낳아 훌륭한 아이로 키우자고 약속했다.

비교적 순탄한 임신 기간. 쌍둥이라 그런지 때로 배가 뭉치고 아파오기도 했다. 하지만 향숙씨는 임신을 핑계로 몸을 사리지는 않았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일도 하는 것이 순산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임신 8개월 만에 조산 위기를 맞게 됐다.

"수술하기 전에 의사가 아이 심장소리를 들려주며 '큰 아이 심장소리입니다' '작은 아이 심장소리입니다'라고 했어요. 수술만 하면 두 아이를 안고 집으로 가겠지 했지요. 그런데 수술실에서 '보호자도 없는데... 산모는 어떻게 해?'라고 하는 간호사들의 이야기가 들리더라고요. 그때까지도 몰랐어요."

향숙씨는 병실을 지키고 있던 남편이 잠깐 할머니 이사를 도와드리러 간 사이 분만을 했다. 갑작스럽게 잡힌 수술 일정 때문에 미처 남편에게 알릴 겨를도 없이 수술을 한 것이다.

아이를 낳고 나니 할머니 이사를 도와드리러 갔던 남편이 돌아왔다. 신생아실에서 두 아이를 보고 왔다는 남편은 큰 아이가 조금 아프지만, 곧 나아질 것이니 아무 걱정 말라며 위로를 했다.

"아이가 아프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수술 자리가 아물지 않아서 움직이면 안 된다고 말렸지만, 배를 끓어 안고 아기를 보러 갔어요. 그 작은 것이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코에 호스를 끼고 있는데 얼마나 안타까운지 눈물이 절로 나오더라고요. 하지만 그때까지도 인큐베이터에서 며칠 치료받으면 좋아질 줄 알았어요."

분만 시 삼킨 양수가 폐로 넘어가 심각한 신생아 폐렴이 와 있는데다 5분간 무호흡 상태에 있었던 현호. 병원에서는 이미 70% 정도의 뇌성마비 가능성을 이야기했지만 현호 아빠는 아내가 받을 충격을 생각해 말하지 않았다. 

"날짜가 지나도 아이가 좋아지질 않는 거예요. 그래서 남편에게 다그쳐 물었더니 다 털어놓으면서 펑펑 울더라고요. 저도 남편을 붙잡고 펑펑 울었지요. 하지만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처음에 아기가 위험하다고 할 때 기도했데요. 평생 누워만 있어도 좋으니 살려만 달라고요. 살아서 부모 곁에 있게만 해 달라고요. 그러니 장애가 있지만 우리 곁에 남겨주셨으니 감사하며 사랑하고 살자고 하더라고요." 

현호는 20일 만에 퇴원했다. 엄마는 뇌성마비 가능성을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6개월쯤 되니 현호의 상태가 쌍둥이 동생 현준이와 확연하게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함께 태어난 현준이가 앉고, 기고, 서고, 걷는 동안 현호는 누운 몸을 일으킬 줄 몰랐다.

장애 안고 태어난 현호, 웃음을 만들었습니다

뇌성마비 장애인 박현호 학생과 엄마 박향숙씨
 뇌성마비 장애인 박현호 학생과 엄마 박향숙씨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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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은 겹쳐서 오는 것인지 때마침 불어 닥친 IMF 한파는 현호 아빠의 사업을 무너뜨렸다. 기우는 가세에 쌍둥이를 키우는 것조차 어려워 둘째 현준이는 외할머니에게 맡겨 키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때문에 엄마는 둘째 현준이에게 늘 미안하다. 장애를 가진 형 때문에 늘 많은 것을 양보하거나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남편의 사업실패 때문에 현호를 데리고 병원에 가 볼 경제적 여유도 없었고요. 장애가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지 못했어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 그저 기도에만 매달렸지요."

집에서 가까운 병원을 다니며 소극적인 치료를 하던 향숙씨는 다른 엄마를 통해 전문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신촌 세브란스 병원을 알게 되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아들의 장애와 사회적 편견에 맞서 싸우는 장애아의 엄마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전문적인 치료를 받기 시작하니 그전에는 모르고 있던 정보들을 접하게 되더라고요. 저소득층 장애인들에게 주어지는 의료 혜택 같은 것도 모르고 있었거든요. 그런 도움이 없었다면 아이를 이만큼 키우기 어려웠을 거예요."

세브란스 병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는 한 줄기 희망이 싹텄다. '전문적인 치료를 받다 보면 장애를 극복하고 비장애인과 다름없는 아이로 자라지 않을까'라는 욕심이 생긴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현호를 업고 병원에 다녔어요. 의왕에서 900번 버스를 타고 구로공단역에 내려서 지하철을 타고 다시 택시를 타고... 휠체어를 타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잖아요. 막내 임신 9개월까지 현호를 업고 치료하러 다니다가 병원에서 또 조산할 수 있다고 말려서 중단했어요."

아무리 강한 엄마라지만 임신 9개월인 상태에서 다섯 살짜리 아이를 업고 다녔으니 무리가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그러나 더 힘든 것은 육체적 피로가 아니었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비장애인들의 차가운 시선. 그것이야말로 깊은 상처며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현호와 지하철을 탔는데, 내릴 때가 돼 현호를 업고 일어섰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앉았던 자리에 앉으려던 사람이 손으로 의자를 싹싹 털더라고요. 우리 몸에 뭐 더러운 것이 묻어 있었던 것처럼... 보는 데서 그러는데 정말 슬프더라고요. 비장애인들의 시선과 선입견이 정말 우리를 힘들게 해요. 벌 받을 이야기지만 그런 모든 것들이 너무 힘들어서 현호와 함께 지하철에 뛰어들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어요. 이런 세상을 현호가 어떻게 살아갈까 절망스럽고... 제가 언제까지나 현호 곁을 지켜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잖아요."

씩씩한 현호 엄마 눈에 살짝 눈물이 맺힌다. 엄마도 아들의 장애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시기. 세상 사람들의 편견은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육체적 고단함보다 몇 배는 더 커다란 무게로 그녀를 짓눌렀던 것이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현관이 소란스럽다. 캠프 갔던 현호가 돌아온 것이다. 3층을 기어올라 오다시피한 현호가 함박웃음으로 엄마에게 인사를 한다.

"너무 재미있었어. 나 내년에도 또 갈 거야."

뇌성마비 장애인치고는 비교적 발음이 정확한 현호. 이 정도 의사소통이 되니 일반학교에서 통합교육을 받는데 큰 지장이 없고, 노래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현호가 네 살에 말문이 트이면서 노래를 하더라고요. 말은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노래는 신기하게도 정확하게 부르는 거예요. 무엇보다도 현호가 노래를 하면서 행복해하니까 그게 고마웠어요. 지금은 변성기가 와서 쉬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 <남자에 자격>에 나왔던 에반젤리 장애인 합창단 단원이었어요."

자신의 이야기를 하자 크게 웃는 현호. 어느새 다가와 엄마 등에 기대고 무릎에 머리를 누이며 사랑을 표시한다. 그 몸짓 속에 엄마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애정이 담겨 있다.

"우리 현호 머리 많이 자란 거보니 캠프 가서 야한 생각 많이 했나 보구나."
"안 했어."
"안 하긴 뭘. 머리가 많이 자랐구만. 야한 생각 몇 번 했니?"
"그래 형, 야한 생각 했지?"
"아이 정말 안 했다니까."
"하하하, 호호호"

현호가 집에 오니 좀 전까지 조용했던 집안에 왁자한 웃음이 번진다. 현호가 만들어 준 웃음이다.

외로웠던 동생도 웃음을 찾았습니다

현호의 막내동생 박현서(12) 학생. 장애인 형을 잘 이해하고 도와주는 착한 동생이다.
 현호의 막내동생 박현서(12) 학생. 장애인 형을 잘 이해하고 도와주는 착한 동생이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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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호를 낳아 열일곱이 되도록 키우기까지 엄마는 자신의 모든 시간과 정성을 쏟았다. 그러는 동안 현호의 쌍둥이 동생 현준이(17·고1)와 세 살 터울의 현빈이(14·중1) 다섯 살 터울의 현서(12·초6)는 어떻게 키웠는지 모르게 자라버렸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고 크는 나무가 어디 있을까. 현호에게 매달리다보니 다른 아이들에게 미처 손이 갈 사이가 없었고 그래서 동생들이 애정결핍증상을 보이기도 했다.

"둘째 현준이는 외할머니가 7살까지 키웠고 셋째 현빈이나 막내 현서는 같이 살았지만, 한 번도 업어주질 못했어요. 엄마 등도 엄마의 관심도 언제나 현호였지요. 현빈이를 놀이방에 맡겨두고 현호 병원에 다닐 때였는데 하루는 현빈이가 울면서 그러더라고요. 자기도 다른 엄마들 아이처럼 빨리 데려가 달라고요. 친구들은 모두 엄마 손잡고 집에 갔는데 어린 것이 놀이방에 혼자 남았으니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까요. 지금도 그 눈망울이 잊혀지지 않아요."

다행히도 동생들의 애정결핍증상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엄마가 생각을 바꾼 탓이다.

"현호 7살 때 장애 판정을 받고부터 현호의 치료에만 매달렸어요. 이렇게 하다보면 어느 날엔가는 말도 하고 정상적으로 걷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희망도 가졌고요. 하지만 그건 제 욕심이었어요. 장애는 치료되는 것이 아니고 평생 함께 가는 것인데 치료할 수 있다는 헛된 희망에 매달려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어요. 그러는 동안 남편과 다른 세 아이들이 슬프고 아파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장애를 가진 아이 못지않게 부모와 형제에게도 전문적인 케어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엄마는 장애아를 키우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해 건강이 좋지 못하고 아빠들은 그런 아내가 못마땅해 밖으로 도는 경우가 많다. 다른 자녀들 역시 엄마의 손길이 닿지 못하다 보니 결핍과 소외로 인한 스트레스가 적지 않아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장애인가족의 건강한 삶을 위해 가족여행이나 가족 치료 등을 권하지만 경제적인 여유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제안이 아닐 수 없다. 현호 엄마 역시 가족치료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지만 현호를 포함한 네 아이와 살아가는 것만도 버거운 형편으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몇 년 전에 어느 복지 단체의 지원을 받아 처음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어요. 생각해보니 현호 낳고 우리 여섯 식구 한 번도 여행을 간 적이 없더라고요. 여행을 계기로 가족이 더 사랑하게 됐어요. 우리 가족에겐 치유의 여행이었던 셈이죠. 정부에서도 실효성 떨어지는 전시용 과시용 정책을 만들게 아니라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가족여행이나 가족치료 프로그램을 만들어 장애인 가족에게 혜택을 주면 좋을 것 같아요. 장애인을 돌보는 가족이 건강하면 장애인 돌봄에 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그만큼 줄어들 테니까요."            

현호의 장애는 엄마에게도 장애가 아닐 수 없다. 오죽하면 장애를 가진 자녀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 달라는 것이 모든 장애아 부모의 동일한 바람일까. 그러나 이제 현호 엄마는 현호 엄마만으로만 살지 않기로 했다. 남편도 또 다른 세 아이들도 그녀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귀하고 사랑스러운 가족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정치인은 장애인 보면서 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캠프에서 현호가 만들어 온 솟대
 캠프에서 현호가 만들어 온 솟대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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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호 때문에 죽고 싶은 생각도 많이 했어요. 슬프고 괴로웠던 시간도 많았고요. 하지만 지금은 현호 때문에 살아요. 현호 때문에 웃고, 현호 때문에 감동하고, 현호 때문에 우리 가족이 더 단단하게 뭉치고 사랑해요. 이런 날이 올 줄 모르고 모진 마음까지 먹었던 것을 생각하면 현호에게 미안할 뿐이죠.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현호가 그룹홈(지역사회 내 소수의 장애인들이 일정한 경제적 부담을 지면서 일반 가정과 같은 가정을 이뤄 공동 생활하는 유사가정 시설)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부모나 형제의 도움 없이도 외롭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기 바라요. 부모나 형제가 언제까지나 현호 곁에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현호와 17년. 엄마는 장애가 있는 아들을 키우며 더욱 성장하고 성숙했다. 5년째 한국장애인부모회 의왕시지부 회장을 맡아 일을 하고 있는 그녀는 아들의 장애에 매달려 애면글면하기보다는 당당하게 장애인의 엄마임을 선언하고 내 아이 뿐만이 아닌 지역의 모든 장애아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활동가로 변신했다.

"정치인들은 아무래도 표를 의식하는 것 같아요. 노인 분들은 아무리 치매나 중중환자라도 투표권이 있으니까 눈치를 보면서 정책도 만들고, 혜택도 주고 그러지만 장애인들 특히 자폐장애나 지적장애의 경우 투표권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소홀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서운하고 화가 나요. 국가에서 이렇게 홀대를 하니까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의식도 바뀌지 않지요. 불쌍하니까 한번 도와준다는 식의 동정은 오히려 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상처만 주고 좌절을 안겨줄 뿐이거든요."

교육청·구청·시청·학교·정치인 등을 찾아다니며 장애인의 권익을 주장하는 것이 일상이 된 현호 엄마. 날 선 비판 속에 그동안 현호를 키우며 받았을 깊고 큰 상처가 보인다. OECD 회원국이라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전사가 되지 않고는 장애아를 키우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현호를 위해, 현호 아빠를 위해 그리고 현호의 세 동생을 위해 자신의 삶을 온전히 내 준 엄마 향숙씨. 현호를 업고 다니느라 관절이 상하고 극심한 어깨 통증에 시달리지만 불편한 곳은 없느냐는 질문에 "괜찮다"는 대답뿐이다. 장애아를 가진 엄마들 대부분은 자신의 건강에 소홀한 편이다. 아이 치료에 매달리다 보니 자신을 돌볼 시간적·경제적·정신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 자녀를 극진히 돌보다 자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엄마를 종종 본다. 엄마 잃은 아이는 마땅히 보호할 사람을 찾지 못해 시설이 맡겨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평소에 엄마 스스로의 건강도 챙겼더라면 몸이 불편한 아이를 세상에 두고 떠나는 일은 없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크다. 장애인이 있는 가정의 엄마는 엄마 이상의 엄마이다. 그래서 더 엄마의 건강이 중요한 것이다.

밝고 씩씩한 현호 엄마 때문에 더욱 활기있고 사랑이 넘치는 현호네 가족. 그런 가족을 든든히 지켜주는 현호엄마의 건강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바람이 있다면 장애인 가족지원 정책 속에 장애인부모의 건강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나와 장애인들의 엄마가 스스로 챙기지 못하는 자신의 건강을 국가가 대신 챙겨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엄마 이상의 엄마, 장애아의 엄마도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 권리를 가진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장애인가족에게 격려와 사랑을 전달해 주세요. 이 기사를 읽고 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후원하고 싶은 분들은 밀알복지재단 누리집(www.miral.org)을 통해 사랑을 실천하실 수 있습니다.



태그:#장애인, #밀알복지재단, #뇌성마비, #장애인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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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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