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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여름, 나는 내성발톱 때문에 엄지발가락 수술을 했었다. 빨갛게 부었다 가라 앉았다를 반복했던 발가락은 단화를 신고 등하교 하는 사이, 이내 노랗게 곪았고 결국엔 걷기조차 힘든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 어린 마음으로는 이걸 아버지에게 보여주면 괜히 혼이 날 것만 같았고, 이러다 낫겠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다 결국 집에서 내 발을 보신 아버지가 깜짝 놀라 병원에 데려가셨고, 그날 바로 나는 수술대에 눕게 되었다.

이렇다 할 큰 수술을 해 보지 않았던 나에게는 그날의 수술실 공기마저 생생하다. 발톱의 절반을 도려낸 수술이었는데 아직까지도 내 오른쪽 엄지발가락에는 수술자국이 있다. 회복 기간 동안에는 불쾌한 통증 때문에 나는 괜시리 화가 나기도, 억울하기도 했었더랬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러 열다섯 소녀는 얼마 전 이별을 경험한 '취업준비생'이 되었다. 요즘 나에게 필요한 것은 10년 전 나를 병원으로 이끌던 아버지의 손이다. 언젠가 괜찮아지겠지 하면서 하루하루 버티고 있지만 곧 노랗게 곪을 것만 같다. 어느 날은 취업 스트레스며 이별의 아픔이며 잠잠하다가도 돌연 발갛게 붓곤 한다.

'이번 겨울은 너무 힘들구나' 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가만보니 이것은 나만이 겪고 있는 일이 아닐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추측이 든다. 보통의 이십 대 중반에게 사랑과 취업은 가장 큰 키워드이다. 발톱은 자라나는 것을 보면서 곧 나아지겠구나 예측이 가능하지만 사랑과 취업은 우리에게 어떠한 것도 귀띔해주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는 하루하루 단화에 발을 구겨 넣고 걸어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렇게 아프면서도 알고 있다. 생경했던 내 발가락의 수술자국이 지금은 내 몸의 일부가 된 것처럼, 지금 우리 젊은 날의 진통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어렴풋한 자국만 남기고 우리의 일부가 되어있을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고름을 짜주지 않고 방치해두면 썩어서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우리는 마음 속에서 농익어 가고 있는 고름을 짜주고 약을 발라주면서 회복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병원에 가고, 수술을 하고, 약을 바르는 것 조차 사치로 느끼게 만드는 현실이 나는 서럽다.

지금으로부터 또 다시 십년이 흐른 후 나는 지금의 생채기를 내 몸의 일부로 만들었을지 결국 썩혀서 잘라내어 버렸을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나도, 대부분의 젊은이들도 충분히 위로 받고, 그 위로로서 상처가 나아가는 동안의 고통을 인내해 나가길 원한다.

요즘 '힐링'이 우리 사회의 대세이다. 사람들이 이것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 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자신들의 고통을 참기만 하고 제대로 치유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우리에게 각자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충분한 여유를 주어야 한다.

나는 지금 이 순간 나의 아픔을 제대로 위로 받고 싶은 마음 그리고 이 글을 통해서 나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공감으로서 조금이나마 위안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의 십년 전 수술을 떠올려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나의 수술 이야기' 응모글입니다.



태그:#수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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