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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번 달도 용돈 계좌로 넣었어."
"알겠다."

친정엄마와의 전화통화가 끝났다. 언제나처럼 짧게. 직장 다니느라 아이들을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있는데 그 대가로 매달 통장에 용돈을 넣어드린다. 내 입장에선 용돈인지, 월급인지 좀 구분하긴 그렇지만, 엄마는 노동의 대가를 받으시는 거니까, 월급이 맞을지도 모른다. 매달 나의 월급날이 엄마 월급날이기도 하니까.

사람 심리가 참 묘한게, 매일 고생하시는 엄마를 가까이 지켜보면서 '내가 더 잘 해드려야지' 하다가도 막상 용돈 드리는 날이 되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건 뭘까. '사랑하는 손주들 봐주시는 건데 너무 용돈이 센거 아냐?'부터 시작해서, '아, 나도 먹고 살기 힘든데, 엄마가 좀 이해해주시면 안 되나' 이런 생각까지 든다.

친정엄마가 내 속내를 알면 야속하다고 여기실지도 모르지만, 솔직한 내 심정은 애도 잘 봐주시면서 용돈도 덜 드리고 싶은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용돈을 줄이고 싶은 이유 때문에 시작한 인터뷰만은 아니다. 손주 봐주시는 엄마의 마음을 좀 듣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먼저 친정엄마와의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기자(?)로서 사전 준비가 필요했다. 그래서 같은 직장의 애를 친정엄마나 시어머니한테 맡기고 회사를 다니고 있는 여직원들을 만나 현황분석에 들어갔다. 너는 얼마나 드리느냐, 부수적으로 따로 챙겨드리는게 있느냐, 하루 몇시간이나 돌봐주시느냐 등등 비슷한 처지의 여직원들에게서 정보를 얻었다.

보통 어머니들은 아침 일찍 집으로 오셔서 출근 준비할 동안 아이를 돌봐주시고, 또 퇴근하기 전까지 돌봐주시고는 돌아가시는 게 대부분이다. 집이 거리가 먼 경우 집에서 숙박하시고 주5일제로 일하신다. 그리고 아이 한 명당 50만 원선. 아이가 둘이면 할인이 적용되기도 하여 70~100만 원 정도이다.

나의 경우도 비슷하다. 난 아이가 둘이라서 100만 원을 챙겨드린다. 오전 9시 출근인데 엄마는 오전 7시 반 정도에 집으로 오셔서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하신다. 퇴근은 오후 6시이지만 보통 1시간 정도 늦어서 8시 넘어야 집으로 돌아온다. 엄마는 그때까지 두돌도 안 된 아이 둘을 보고 계신다.

그리고 지쳐서 집으로 돌아가신다. 혼자 몸으로 아이 둘을 돌보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엄마인 나도 아이들하고 하루 종일 있는 날은 녹초가 되니까. 그래서 늘 감사하지만, 나도 풍족하게 사는 형편이 아닌지라, 월급에서 100만 원 떼고 나면 남는 것도 없고, 거기서 세금 떼고 카드빚 내고 나면 솔직히 아무리 맞벌이라도 저금 몇푼 하기 힘든 처지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직장맘들이 대충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상황이 이런지라, 나도 어렵게 인터뷰의 첫 말문을 열었다.

'아차차, 돈 얘기 괜히 꺼냈다 싶다'

"엄마, 용돈에 만족해?"
"왜? 더달라면 더 줄라고?"

아차. 반응이 너무 싸늘하다. 돈 얘기를 괜히 꺼냈나 싶다. 하지만, 일단 시작한 거니까 끝을 내야지.

"나야 더 드리고 싶지. 근데 나두 그리 여유롭지는 않잖아."
"그러니 돈 많은 남자를 만났어야지."

아차차. 엄마는 사위까지 들먹거릴 샘인가. 엄마는 건드리기만 하면 불만이 곧 폭발할 기세다. 잘못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것 같다. 이러다가 100만 원이 아니라 150만 원까지 올려드려야 할 판. 아, 인터뷰고 뭐고 빨리 정리하자.

"엄마, 박 서방이 잘해. 애들한테도 잘하고."
"돈이 없어서 다들 고생시키잖아."

역시, 친정엄마구나. 그냥 내 편이시구나. 자신의 딸이 집에서 애나 키우고 편히 살지 못하고 남편 잘못 만나서 저리 고생을 하는구나, 라는게 엄마 마음 속에 쌓인 '화'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처녀적부터 해온 일 멈추고 싶지 않고 계속 경력 쌓으며 살고 싶은 게 내 생각이었는데,  친정엄마에게는 남편 잘못 만나 고생만 하는 팔자가 된 딸이다. 어쩐지 사위 보는 눈이 곱지 않다는 건 알았지만, 그런 미움이 있을 줄이야. 하지만 이건 내탓도 남편탓도 아니지 않는가.

누구의 탓도 아니지만, 분명한 건 내가 엄마의 꿈 하나를 빼앗았다는 사실이다. 삼남매, 자식 셋이 잘되라고 평생을 애쓰셨던 엄마. 그 세대 부모들이 다 그렇듯, 자기 지신보다는 자식의 성공을 통해 대리만족을 원하셨던 분이다. 나는 삼남매 중 학창시절 가장 공부도 잘했고 외모도 빠지지 않았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그리고 시집 잘 가는 것. 이런 명품 코스로 내가 가길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의 희망은 하나 둘 무너졌을 것이고, 시집이라도 잘 보내고 싶었겠지만, 난 죽고 못사는 남자랑 그냥 결혼을 했다. 엄마에게는 아주 귀한 딸인데, 그런 딸이 고생하는 걸 이렇게 가까이서 보고 있는 것이다. 그 마음이 얼마나 찢어졌을지 난 한 번도 헤아리지 못했다.

갑자기 말문이 막힌다. 용돈이 너무 센 거 아닌가,라고 잠시라도 생각했던 것이 너무너무 부끄럽다. 그돈은 양육비 +알파이다. 여기서 알파란 엄마의 꿈을 빼앗고 가여운 딸로 비쳐심정을 상하게 한 정신적 보상금이다. 그 보상금을 정확히 계산하기는 어려우나, 이번 기회에 내가 기준을 마련하고자 한다.

양육비는 아이 한 명당 50만 원, 그리고 친정엄마에게는 정신적 보상금으로 월급의 10%를 더 낼 것! 이 정도면 공정한 듯하다. 그래서 나도 다음달 부터는 10%를 플러스 알파 해야겠다.

생각해보면 내가 성공하자고 엄마를 희생시키고 있는지 모른다. 지금 우리 사회는 여자가 성공하기 위해서 다른 여자를 희생시켜야만 한다. 희생하는 여자는 무엇을 바라고 하는 것인가. 자식의 행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니 여자들이여, 그 희생의 대가를 정정당당히 지불하자.

"엄마, 내가 돈 많이 벌어서 비행기 태워줄게."
"그래, 그래도 챙겨주는 건 딸 밖에 없더라."

친정엄마와의 짧은 인터뷰는 이렇게 마무리 됐다.

덧붙이는 글 | <가족인터뷰> 응모글입니다.



특별기획-여행박사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하는 '가족이야기' 공모전
태그:#친정엄마, #용돈, #직장맘, #양육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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