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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홈런이가 생긴 지 20주가 지났다. 지난번처럼 이번에도 남편이 출근시간을 조정해 둘이 손 꼭 잡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해 진료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는 모니터를 봤다. 아니, 이럴수가. 내 이름이 없다니…. 간호사 선생님에게 내 이름과 진료예약 시간을 말했더니 그동안 진료해주던 의사선생님이 퇴사해서 안 계신단다. 그러니 다른 의사선생님을 택하라고 했다.

나는 한동안 '어쩌지' 하며 서 있었다. 많이 뵙진 않았어도 지금껏 진료 때 만나면서 편안했고, 꽤 적응됐는데…, 아쉬웠다. 그런데 별다른 정보도 없이 다시 새 의사 선생님에게 가라니 많이 당황스럽기도 했다. 한 간호사 선생님이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나를 보고는, 새로 오신 선생님도 분만 전문의이니 한 번 만나보길 제안해 그러기로 했다.

쑥쑥 자라고 있는 홈런이

선명히 찍힌 발바닥을 보니 내가 엄마가 된다는 게 실감이 난다.
▲ 우리 아기의 발바닥 선명히 찍힌 발바닥을 보니 내가 엄마가 된다는 게 실감이 난다.
ⓒ 곽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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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만나게 된 의사선생님은 지난번 의사선생님 보다 좀 젊은 듯했으나 차가워 보였다. 진료실에 들어가 의사선생님과 마주하고 앉아, 지난번 검사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 뒤에는 초음파 사진 촬영을 하며 이것저것 설명해주셨다. 머리 크기가 어떻고, 여기 심장이 뛰고 있고, 위장의 크기, 신장의 크기, 대퇴부의 길이 등을 알려주는데 홈런이(우리 아기의 태명)는 정말 쑥쑥 자라고 있었다.

사진 촬영 동안 홈런이가 쉴 새 없이 움직여 의사선생님이 대퇴부 길이를 재는데 곤란해 하셨다. 의사선생님은 홈런이가 아주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고 했다. 촬영 동안 홈런이의 눈·코·입이 보이고 턱도 보였다. 눈을 감고 있는 것, 심지어 하품을 하듯 입을 벌리는 것도 보였다. 촬영 중 발바닥도 볼 수 있었는데, 점점 사람의 모습이 돼가는 홈런이의 모습이 신기하고 경이로웠다.

초음파 사진 촬영이 끝난 뒤 다시 의사선생님과 마주앉았다. "홈런이는 임신 주수에 맞게 잘 자라고 있다, 철분제 잘 챙겨드시라"는 말로 진료가 끝났다. 지난번까지 진료해줬던 선생님과는 진료 방식이 달랐지만, 마주앉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된다는 데 크게 만족하며 병원을 나섰다.

9월부터 지금까지 몸이 힘들었던 일이 좀 있어 홈런이의 상태가 조금 걱정되기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홈런이는 건강하다. 하긴 임신 초기였던 5·6월에도 일터에서 진행했던 행사도 많았고, 몸을 써야할 일도 많았는데 내 몸에서 떨어지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던 홈런이었으니…. 앞으로도 건강에 대한 것은 덜 염려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간호사 선생님이 진찰 소견서에 '우리 아가는 건강한 모습이에요'라고 적어줬다. 한 줄뿐인 이 문장은 매번 똑같지만, 엄마의 입장이 되고 보니 남들이 별 의미없이 던지는 한 마디도 참 행복하고 든든하다.

태동 느껴질 때면 배를 만집니다... 왜냐고요?

홈런이가 소리도 들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홈런이가 움직일 때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싶다.
 홈런이가 소리도 들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홈런이가 움직일 때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싶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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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병원에 다녀온 뒤 뭔가 느낌이 확 달라졌다. 이전에는 '잘 크고 있네, 딸인지 아들인지 궁금하네, 잘 자라고 있겠지 뭐' 하는 정도의 미적지근한 태도였는데, 이제는 실감이 났다. 병원에서 촬영하면서 홈런이가 나오는 화면을 보는데, 얼굴의 형태가 부쩍 명확해졌다.

또 매번 병원에 갈 때마다 홈런이의 심장이 잘 뛰고 있는 것을 확인했지만, 이번에 병원에서 큰 소리로 '뾱, 뾱, 뾱' 하며 뛰고 있는 홈런이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한 생명이 내 안에서 자신의 리듬대로 잘 크고 잘 지내고 있다는 게 무척 감격스러웠다. 점점 내 뱃속에서 움직임이 격해지는 이 녀석이 몹시 궁금하다. 우리의 어떤 모습을 닮아 나올지, 어떤 습관을 가지고 태어날지, 어떤 재능을 타고 나올지…. 궁금한 것 투성이다.  

홈런이가 태동을 시작한 이후 나는 배를 자주 만진다. 그리고 이번 병원에 다녀온 이후에는 더 그렇게 됐다. 처음에는 새벽녘에 한 번 정도만 있던 태동이 이제는 하루에도 몇 차례 느껴진다. 그때마다 나는 홈런이에게 대답하듯이 배를 쓰다듬고, 어떤 때에는 정말 대답을 해주기도 한다. 홈런이가 소리도 들을 수 있다고 하니, 홈런이가 움직일 때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태동이 시작되면 아기가 들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태담을 해주기로 결심했다. 점심을 먹고 오후 2시쯤 책을 집어 들고, 편하게 기대앉아 우리 신화를 읽어준다. 책을 읽으면 내 목소리를 듣고 있을 홈런이가 떠오른다. 어떤 때에는 홈런이가 정말 내 목소리를 듣고 대답하듯이 내 배를 쳐줄 때도 있다. 그럴 땐 책을 잠시 내려놓고 홈런이에게 재미있냐고 묻기도 한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쑥스러운 건지 모르겠다. 곧 익숙해지겠지.

'생명'을 위한 공부, 어디서 할 수 있나요

홈런이가 점점 커가면서 태교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이번에 태동이 시작되고 병원에서 홈런이의 얼굴을 보고나니 더 그렇다. 태담을 들려주는 것도 태교의 하나일 테지만 홈런이를 만나고 함께 자랄 때 필요한 공부를 하고 싶은 욕구가 점점 커진다. 공부하고 싶지만 공부를 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 

결혼하기 전에 '꽃피는 학교'라는 대안학교에서 발달론 연수가 있어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통전학림이라는 곳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곳에서 발달론에 기초한 아이 교육이나 아기를 키우면서 부모가 알아야 하고 실천해야 하는 교육 등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중에 아기가 생기면 꼭 참여해야지 다짐했었다. 안타깝게도 그 강좌는 이제 없어져서 책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그나마 공부한다고 간 곳이 있다. 한 친구가 '매터니티 스쿨'이라는 곳을 소개해줘 그곳에 기대를 품고 가봤고, 한 아기옷 브랜드에서 여는 음악회에도 가봤다. 내가 기대에 찬 이유는 준비물에 필기구를 준비하라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결국 그 필기구는 경품행사에 개인정보를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그 강좌를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사실 나는 실망스러웠다. 내가 기대했던 교육적 공간이 아닌 상업적인 공간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음악회는 일단 음악을 듣는 것이 목적이었고, 또 음악을 들으면서 홈런이도 꽤나 반응해줘 조금 덜 실망했지만.

정녕 내가 홈런이를 키우며 알아야 하는 것을 배울 만한 곳이 없을까. 한 생명을 낳고 키우고 함께 살아가면서, 중심으로 삼을 만한 공부는 없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달라진 내 몸... 우리, 건강하게 만나자

시어머님의 문자를 받았다. 고마움과 죄송스러움이 함께 느껴진다.
 시어머님의 문자를 받았다. 고마움과 죄송스러움이 함께 느껴진다.
ⓒ 곽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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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다녀온 다음날 아침, 시어머님이 문자를 보내셨다.

'독감 예방주사 맞았나? 안 했으면 보건소나 건강관리협회 가서 맞아라. 우리는 맞았다. 임산부는 조심해야지.'

생각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렇게나 신경써주신다. 난 독감 예방주사 맞으시라고 연락드릴 생각도 못했는데….

어머님 말씀대로 독감 예방주사를 알아봐야겠다. 하긴, 생각해보면 홈런이가 생긴 뒤부터 전에 없던 비염이 생기고, 허리도 아프고, 이제는 손마디까지 쑤시기 시작했다. 원래 건강 체질이 아니긴 했지만, 비염 증상은 몇 년 전부터 최근까지 없었고, 허리 아픈 것과 손목 아픈 것도 1년 전 이직하면서 조금 나아졌었다. 게다가, 손목은 아팠어도 손마디는 아픈 적이 없었는데 내 몸이 달라지긴 했나보다. 조금 귀찮고 예전에 한 적 없는 것이라도 홈런이를 건강하게 만나기 위해 해야지.

뱃속이 잠잠한 걸 보니 홈런이가 지금은 자고 있나 보다. 홈런이는 늘 좋은 꿈만 꾸렴. 이 세상에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살 만한 세상이야. 엄마랑 아빠랑 행복하게 살 수 있게 우리 함께 잘 해보자. 안녕.


태그:#임신, #태교, #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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