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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가을이 금세 지나갔습니다. 나뭇가지에 힘겹게 버티던 이파리가 죄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냈습니다. 나무는 잎이 진 자리에 눈을 만들어, 혹독한 겨울을 견뎌낼 것입니다. 기세등등한 풀들도 씨를 만들고선 힘을 잃고, 기력이 떨어졌습니다. 떨어진 풀씨는 새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봄을 기약할 것입니다. 자연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를 합니다.

올 김장은 즐기면서 색다르게

우리 텃밭에도 자리가 비었습니다. 봄부터 부지런을 떨며 가꿔 거둔 것들로 풍요로웠습니다. 고추, 고구마, 토란, 참마, 야콘, 들깨, 서리태 등 이것저것 거둬들이느라 해가 무척 짧았습니다.

거둬들인 것들은 친지들과 나눠먹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주말이면 일속에 파묻혀 지내는 고단함이 없지 않았지만요.

며칠 전, 일찍 퇴근한 아내와 채소밭을 둘러보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8월 중순경 파종하고 말경에 옮겨심은 우리 배추가 잘 자랐습니다.
▲ 배추밭 8월 중순경 파종하고 말경에 옮겨심은 우리 배추가 잘 자랐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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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텃밭농사도 끝이네요. 당신, 수고 많았어요. 우린 진짜를 먹고, 그리고 나누고 또 나누고."
"이제 마지막 일거리인 김장이 문제네."
"김장거리를 이렇게 가꿔놨는데, 담그는 게 대수예요. 사돈댁이랑 같이 하면 힘들지 않아요. 올핸 아들, 며느리, 사돈네랑 김장축제 하죠. 내가 사부인께 함께하자고 말씀드렸어요."
"사돈네랑 김장축제라?"
"여럿이 함께 즐기면서 하면 축제지, 다른 게 축제예요."

뭐든 힘들다고 하면 힘들기 짝이 없습니다. 김장계획을 세우면서 맘먹기에 따라서는 고된 일도 즐기면서 하면 새삼 행복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올해는 새 가족이 된 며느리와 그의 친정 식구를 초대해 김장을 함께 할 계획을 세운 아내 생각이 기발합니다. 아내 말마따나 축제처럼 한다니 기특하기도 하구요.

우리 김장 거리는 가꿔서... 사돈댁이랑

우리는 해마다 김장거리를 넉넉하게 심습니다. 올해는 배추 250포기 남짓 심었습니다. 배추에 벌레구멍이 숭숭 뚫리고, 다소 상품성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내가 가꿔먹는 것이라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무는 고라니가 해코지를 해서 애를 먹었습니다. 처음 자랄 땐 괜찮았는데, 녀석들이 왔다간 뒤로 피해를 봤습니다. 다행히 녀석들도 양심이 있어, 다는 먹지 않고 남겨둔 게 있어 김장거리로는 충분했습니다.

텃밭에 갓, 배추, 쪽파, 무 등을 심었습니다.
▲ 채소밭 텃밭에 갓, 배추, 쪽파, 무 등을 심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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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소로 쓰일 청갓, 붉은갓도 알맞게 자랐습니다. 쪽파도 소담하게 올라왔습니다. 우리 고장 특산물인 순무도 밑동이 통통해졌고 보랏빛 튼실한 기쁨을 주었습니다. 총각무는 미리 담가먹었습니다. 김장하는 날을 잡으며 채소밭을 둘러보는 아내는 기쁨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올해도 우리가 가꾼 것을 바로 뽑아 맛있게 담가보자고요. 이번 기회에 사돈네 식구들과 친밀함을 유지하는 계기도 삼구요."

아내는 김장계획을 세우며 '소통의 기쁨, 나누는 행복'이라는 주제를 걸었습니다. 그럴듯합니다. 김장하기 하루 전날, 아내는 이웃집 아주머니들과 함께 배추 100여 포기를 뽑아 절였습니다. 무도 깨끗이 씻고 갓, 쪽파 손질도 끝냈습니다.

절여 씻어놓은 배추와 무. 우리가 농사지은 소중한 것들입니다.
▲ 김장거리 절여 씻어놓은 배추와 무. 우리가 농사지은 소중한 것들입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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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허리야!"

엄살을 부리면서도 얼굴 표정은 환합니다. 힘든 일을 하고 난 뒤에 보람을 느끼는 표정이랄까요. 아내는 며느리에게 손전화를 합니다.

"너희 잘 있지? 친정 어머니께 김장거리 충분하니까 김치통 많이 가져오시라구 해."
"그래도 돼요? 저희 어머니께서 따로 준비하실 것 있으면 말씀하시라던데요?"
"우리가 다 준비했는데, 고춧가루, 새우젓, 생새우…. 참, 깐 마늘이나 생강, 액젓 있으면 조금 가져오시면 좋겠다. 그건 우리가 농사짓지 않은 거라서."
"네. 그리고요, 저희 부모님은 일찍 출발하고, 언니네도 좀 늦는데요. 저희 때문에 번거롭게 해서 죄송해요."

아내는 별소리를 다한다고 합니다. 이참에 우리 두 가족이 우의를 다지고 함께 축제처럼 재미나게 즐기면서 하자며 며느리를 안심시킵니다. 사실, 김장을 담그는 일은 고단하고 힘든 일이라 합니다. 하지만 손수 담가 겨울부터 봄까지 김칫거리 걱정 없이 넉넉히 두고 먹을 수 있는 재미는 힘든 일을 뛰어넘습니다.

지금이야 상품화된 김치를 사먹거나 또 편리성을 추구하여 절임배추로 쉽게 김장을 하기도 하지만, 예전만 해도 초겨울 김장은 빠뜨려서는 안 될 소중한 우리네 겨우살이 준비였던 것이지요. 김장 문화는 이웃들이 오순도순 모여 함께 일하고, 또 나누는 우리 민족의 미풍양속으로 정겨운 일이었습니다.

오순도순 김장

이웃, 사돈댁가족과 함께 오순도순 모여 김장을 하였습니다. 축제처럼요.
▲ 김장축제 이웃, 사돈댁가족과 함께 오순도순 모여 김장을 하였습니다. 축제처럼요.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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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람들 사이에는 사돈지간은 참 어렵고 조심스럽다고 합니다. 그래 '사돈네 안방 같다'라는 속담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멀다고 느껴지는 사돈지간도 자식을 나눠가진 사이라는 점에서 보면 얼마든지 가깝게 지낼 수 있는 가족입니다. 내 자식과 가족을 이루는 새 식구의 가족은 아주 가까운 친척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돈댁이랑 김장하기로 한 날, 아내는 이른 새벽부터 김장준비로 부산합니다. 처음 김장을 하는 우리 새댁 며느리는 무엇을 할지 이리저리 바쁘기만 합니다.

"넌, 순무를 나박나박 썰고, 그걸 끝내면 채칼로 무채를 썰면 어떨까?"
"네, 잘해 볼게요. 다하면 또 뭐하죠?"
"음. 그러고선 너희 친정 부모님 오시면 김장 버무리지."

아내가 손조심하라며 칼질 시범을 보입니다. 며느리도 따라 차근차근합니다. 고부간의 모습이 정겹습니다.

"어머니, 저희 부모님 오시면 일 많이 시키세요."
"네 시아버지는 너희 아버지 모시고 등산할 생각이시던데…."
"안 돼요. 저희 아버진 김장일 잘하셔요. 평소 어머니 부엌일 잘 도와드리거든요."
"그래? 두고 보자구나!"

친정 부모님께서도 스스럼없이 일할 수 있다는 며느리 말에 아내도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나도 잔꾀부리지 말고 팔을 걷어붙여야 할 성싶습니다.

"사부인 손맛에 올 김장은 더 맛있을 것 같네요"

김장하기에 날씨가 참 좋습니다. 수돗가에 평상을 놓고 일을 벌이니 일이 훨씬 한갓집니다. 아내가 이웃집 아주머니들과 함께 김장 준비를 착착할 즈음, 사돈네 식구들이 도착했습니다. 며느리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 친정 부모님께 뛰어가 반갑게 맞이합니다.

며느리와 며느리 친정아버지가 무채를 썹니다. 아버지와 딸의 모습이 정겹습니다.
▲ 무채 썰기 며느리와 며느리 친정아버지가 무채를 썹니다. 아버지와 딸의 모습이 정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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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돈, 사부인, 아내가 함께 야채를 썰고 있습니다.
▲ 김장에 쓸 야채 준비 사돈, 사부인, 아내가 함께 야채를 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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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예상대로 사돈은 앞치마를 두르시고 도마 위에 무를 올려놓고 채를 썰기 시작합니다. 채칼로 무를 써는 딸을 도와주려는 마음인 듯합니다. 사부인과 아내도 손발이 척척 맞습니다. 한참 양념준비를 끝내고, 이제 김치소를 버무릴 차례입니다. 이 일은 아내와 사돈이 나서기로 했습니다.

사돈과 아내가 함께 김장김치에 들어갈 소를 버무립니다.
▲ 김장소 버무리기 사돈과 아내가 함께 김장김치에 들어갈 소를 버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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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깔나는 김장소가 만들어졌습니다.
▲ 김장소 맛깔나는 김장소가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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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에 고춧가루 물을 들이고 여기에 각종 야채와 새우젓, 생새우, 갖은 양념을 넣어 버무립니다. 사부인께서 특별히 준비한 홍시를 넣으니 감칠맛을 더해줍니다. 이 사람 저 사람 간을 보면서 서로 김치소가 아주 맛있다고 합니다. 이제 빙 둘러 앉아 절인배추에 김치소를 넣는 일만 남았습니다. 모두가 열심입니다. 김치 색깔도 보기 좋습니다. 나는 맛깔스런 김치를 보니 막걸리 생각이 납니다.

"여보, 돼지고기 수육에 김치 걸쳐 막걸리 한 잔 어떨까?"

출출할 때가 되었습니다. 내가 주문한 막걸리 소리에 모두 입맛을 다십니다. 미리 준비한 따뜻한 고기에 김치를 싸서 먹는 막걸리 맛이 참 좋습니다. 막걸리 기운에 힘든 줄도 모르고 일이 마무리 되어갑니다.

이제 아내가 솜씨를 발휘한 사돈네 순무김치를 담습니다. 우리 고장 특산품이니까 특별히 정성을 다합니다. 사돈댁에서 준비해온 김치통에도 김장김치를 꾹꾹 눌러 담습니다. 우리와 아들 내외 몫은 땅속에 묻은 김장독에 가득 담았습니다. 아내와 사부인이 이야기를 나눕니다.

"사부인, 저희가 너무 많이 가져가는 것은 아닌가요? 별로 도와드린 일도 없고 번거롭게만 한 것 같은데…."
"아닙니다. 사부인 손맛에 올 김장김치 맛이 더 좋은 것 같은데요."

사돈댁에 보낼 김치통입니다.
▲ 김치통 사돈댁에 보낼 김치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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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네랑 우리가 먹을 김치독입니다. 겨우내 소중한 먹을거리입니다.
▲ 김치독 아들네랑 우리가 먹을 김치독입니다. 겨우내 소중한 먹을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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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돈끼리 나누는 대화가 듣기 좋다며 이웃집 아주머니들이 부러워합니다. 우리 며느리 얼굴에도 함박 웃음꽃이 가득합니다. 새살림을 시작하는 자기도 겨우살이 준비를 끝내 마음이 흡족한 듯 말입니다. 웃음 띤 우리 새 며늘아기 얼굴이 참 예쁩니다.

덧붙이는 글 | 김장 응모글입니다.



태그:#김장, #김장축제, #김장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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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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