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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세월호 침몰사고' 6일째인 21일 오전 실종자 생존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 가운데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바다를 바라모며 슬픔에 잠겨 있다.
▲ '세월호 침몰' 6일째 애타는 가족들 '세월호 침몰사고' 6일째인 21일 오전 실종자 생존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 가운데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바다를 바라모며 슬픔에 잠겨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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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찾았어. 운동 한다고 했는데, 그거 안 시켜준 게 계속 마음에 걸려. 그래도  찾았으니까 다행이지."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아버지는 연달아 담배를 물었다. 그는 밤 사이 시신으로 돌아온 아들 이야기를 어딘가로 전하고 있었다. 24일 참사 9일째였다.

통화가 끝난 뒤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그는 손을 휘젓는 것으로 인터뷰를 딱 잘라 거절했다. 더 말을 붙일 수 없었다. 그는 다시 담배를 한 대 피웠다. 기자도 몇 걸음 떨어져 담배를 피웠다. 수첩에 인터뷰 거절당한 상황을 기록할 때 그가 다가왔다. 

"<오마이뉴스>라고? 무슨 말을 할 기분이 아니라서 그러니까 이해해 주시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아까 들어서 알겠지만, 어제 아들을 찾았는데 올라가지 못하고 있어요. DNA 검사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거야. 최소 24시간 걸린다는데, 그게 얼마나 걸릴 지 어떻게 알아. 옷 입고 있는 거랑 똑같은 사진도 있고, 목에 점도 똑같고, 털이 많은 것도 똑같은데...."

그는 말을 멈추고 한동안 침묵했다. "뭐가 궁금하나?" 그가 다시 물어왔을 때는 기자의 말문이 막혔다.

"힘드시겠지만, 아드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운동 하고 싶다는 아들... 한 번도 잘 해주지 못한 거 같아"

세월호 참사 실종자 가족들이 지내는 진도체육관에는 3개의 출입구가 있다. 희생자 정보가 게시돼 있는 1번 출입구는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반면 2번, 3번 출입구는 한산한 편이다. 3번 출입구는 희생자 신원확인을 위한 가족 DNA 검사실이 있다. 기자가 처음 희생자 가족 박아무개씨와 대화를 한 곳이기도 하다. 그는 "이름은 적지 말아 달라"며 단원고등학교 2학년 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가슴 아픈 사연 없는 집이 어디 있겠어? 우리 아들은 속 좀 썩였어. 나랑은 얘기도 잘 안 했고, 지 엄마 하고도 자주 싸웠지. 나 닮아 키가 작았어. 근데 운동은 좀 잘 했나봐. 중학교 때 축구를 하겠다고 했어. 안 된다고 하니까 그럼 다른 거 아무거나 체육 쪽으로 하겠다는 거야. 운동하면 돈 많이 들잖아. 맘 같아서는 시켜주고 싶었는데, 안 된다고 했어. 그때부터 나랑은 멀어진 거 같아."

그는 "그게 제일 미안해... 한 번도 잘 해주지 못한 거 같아"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더 (얘기) 못하겠으니 기자양반 이해해주쇼. 다 마음 아픈 얘기니까..."라며 다시 담배를 꺼냈다. 연달아 4개째다. 기자는 "어렵게 얘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 주변에 다른 가족들에게도 더는 인터뷰를 요청하기는 어려웠다.

이날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DNA 결과가 나오기 전이라도 희생자에게 신분증이 있거나 인상착의 연관성이 상당할 경우 가족들에게 시신을 인계하기로 방침을 변경했다.

지난 21일부터 24일까지 진도체육관과 팽목항을 오가며 세월호 침몰 현장을 취재하는 일은 기자에게도 고통이었다. 사고 6일째였던 21일 현장취재 첫날, 언론은 이미 지탄의 대상이 돼 있었다. 수차례 오보를 냈고, 유가족과 희생자 가족을 무시한 자극적인 보도로 신뢰를 잃은 상태였다. 가족들과 눈 마주치기도 쉽지 않았다.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보기도 했다. 가족들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기자는 상대 안 한다"는 얘기도 수차례 들었다.

지난 19일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전남 진도군 팽목항 부두에 방송사 카메라를 세워두는 삼각대가 줄지어 놓여 있다.
 지난 19일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전남 진도군 팽목항 부두에 방송사 카메라를 세워두는 삼각대가 줄지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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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작업 베이스캠프인 팽목항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현장에는 많은 기자들이 있었지만 누구도 쉽게 가족들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카메라 기자들은 사진 한 컷을 찍는 것도, 영상 한 장면 담는 것도 조심스러워했다. 사람들의 말처럼 그냥 가만히 있는 게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는 듯했다. 현장 상황 기사도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만 가지고 쓸 수밖에 없었다. 모두 언론 스스로 자초한 일이었다.

비극을 기록해야 하는 이유... 그리고 언론의 역할

사고 발생 일주일이 지나고 분위기는 약간씩 바뀌었다. 현장의 경쟁보도 분위기도 조금 누그러졌다. 이전보다는 취재에 응하는 가족도 늘어났다. 물론 일부 언론의 정부 발표 받아쓰기는 여전히 가족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가족들의 사연을 듣는 일도 '괜히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게 아닐까'라는 회의를 불러왔다. 하지만 이 비극을 잊지 않기 위해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도 필요했다.

사실 취재가 돼도 문제였다.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글로 옮기는 일도 감정소모가 많았다. 현장에 나와 있는 심리상담 전문가는 "기자들도 심리치료 대상"이라고 말했다. 가족들이 겪는 아픔과 비교할 수 없겠지만 기자도 아팠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랬어야 했다. 기자들도 가족과 함께 아파했다면, 특종과 단독을 좇고 자극적인 그림을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한다는 마음이었으면, 적어도 '기레기'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 구조작업이 진행중이다. 현장에서는 여전히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현장 밖에도 기자들의 역할은 남아 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너무나 당연한 말들을 나열해 본다. 사고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 참사에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 다시는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게 감시해야 한다. 더 이상 희생자 가족들과 주변에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 이 모든 것에 앞서 해야 할 한 가지.

언론은 진심이 담긴 반성문을 써야 한다.


태그:#세월호, #기레기, #세월호 참사, #단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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