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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청년유니온은 '고객님 10분만 쉬어도 될까요?'라는 주제로 9월부터 매주 콜센터 노동자의 근무환경 개선과 감정노동에 대한 인식전환을 위한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콜센터 노동 사례를 모아서 사례집을 발간할 예정이다. 릴레이 인터뷰는 콜센터 노동자의 사례집 발간을 위해 시작됐다. 콜센터 노동자 릴레이 인터뷰 연재를 통해 많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를 바란다.... 기자 주

콜센터 감정 노동자 처우개선 서명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들
▲ 콜센터 감정 노동자 처우개선 캠페인 콜센터 감정 노동자 처우개선 서명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들
ⓒ 부산청년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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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게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못 배운 사람이 이런데서 일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네가 말하면 아냐? 이런데 와 봤냐?'라고들 하는 것 같아요. 한 번은 목소리도 점잖은 분이 '전화를 걸었는데, 내가 욕을 했더니 그 여자가 끊었다'며 아무렇지 않게 저한테 얘기해요. 그래서 '저희들이 욕을 꼭 들어야 하는 입장이냐'고 여쭤봤죠. 그랬더니 '당연히 내가 욕을 하면 너네는 꼭 들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거예요. 저희가 욕 들으려고 거기 앉아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30대 초반의 여성인 A씨가 대리운전 콜센터 일을 시작한 지도 1년이 되었다. 그 전에 일하던 콜센터가 폐업해 한 달 정도 쉬다가 다시 이 일을 시작했다. 원래는 낮에 일을 하면서 아르바이트로 대리운전 콜센터 일을 시작했다. 지금은 콜센터 업무가 전업이 됐다. 그래도 같이 일하는 직원들보다 월급도 조금 더 받을 정도로 곧잘 해낸다. 아마도 적성에 맞는 것 같다.

하루에 A씨가 받는 전화는 500통. 1분에 2~3통 정도를 받으며 간단한 인사와 위치 확인, 경유지, 도착지를 확인한다. 배차해야 할 위치를 찾는 게 힘들지만 다 알아들을 만큼 베테랑이다. 술자리를 좋아한다는 그녀는 그 때문인지 술 취한 분들의 이야기를 잘 알아듣는 것 같다며 우스갯소리를 한다. 

콜을 많이 받으면 보너스를 준다. 대신 위치를 잘못 알아듣고 대리운전 기사를 보내면 월급이 깎이는 식이다. 술 취한 고객을 상대하다 보니 그런 경우가 많다. 술 취한 고객들과 '지금 위치가 어디세요?' '** 여기 말씀이신가요?'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왜 말을 잘 못 알아듣냐?'고 시비도 붙고, '아가씨~ '하면서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만나게 된다.

"하루에 3~4번은 클레임을 받아요. 주차를 이상하게 했다거나 주차를 안 해줬다거나 잔돈을 안 줬다는 것 같은 이유로 말이죠. 운전기사한테는 말을 못하고 괜히 전화해서 얘기하는 거예요. 왜 기사한테 직접 말을 못하는지 모르겠어요. 기사한테 말을 못하고 전화해서 상담원에게 따지듯 욕을 해요. 기사에게 말하면 다 해결될 일을 말이죠. 요구하면 다 해주는 건데, 그래서 요구하시면 다 되는 건데 요구하시라고 말해요."

상담원이 잘못한 일이 아닌데 콜센터에서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시 당한다. 그러시면 안 된다고 대응이라도 하려고 하면, 상담원인데 왜 고분고분하지 않냐고 되레 따진다. 사람들은 콜센터 직원에게 일방적 친절만을 요구한다.

상담원의 패기란 제목으로 화제가 되었던 동영상 중 하나. 출처 - http://youtu.be/HcWasfXD6eM
▲ '대리운전 상담녀의 패기' 동영상 일부 상담원의 패기란 제목으로 화제가 되었던 동영상 중 하나. 출처 - http://youtu.be/HcWasfXD6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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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전화번호를 적어놨어요"     

"처음에는 기억이 계속 나서 전화번호를 적어놨었어요. 그만두면 전화해서 그대로 욕해줘야지 하고 말이죠. 그러면서 그 사람이 했던 말도 다 적어 놓아요. 하지만 이제는 적응돼서 쉽게 잊어요. 그러든가 말든가 신경 안 쓰는 거죠."

콜센터에서 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고객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상처를 받았다. 상처가 된 고객의 통화내용을 기록하며 소심한 복수를 꿈꾸던 A씨였지만 일을 계속하다 보니 생존의 노하우를 터득하게 됐다. 경력 1년차인 A씨는 이제 고객들의 부당함에도 당당히 응대하는 수준이다. 성추행, 폭언에 또박또박 따지고 들면 '아가씨 이름이 뭐냐'고 고객이 묻는다.

"제 이름이요? '김수한무거북이와두루미입니다'하고 전화를 끊어요. 위치확인을 위해 이것저것 묻다가 보면 '네가 말하면 아냐, 이런데 와 봤냐'라고 하면서 무시하죠. 전 '고객님보다 많이 가봤는데요'하고 말하죠. 욕하는 고객에게는 '욕하실 거면 끊어요'하고 전화도 먼저 끊어 버리려고 해요. 회사 측이 누가 전화를 받았는지 알 수 없는 프로그램을 쓰고 있기 때문에 가능해요. 그렇지 않으면 못할 말이죠."

이제는 웬만한 말들에 상처를 받지 않을 만큼 감정이 무뎌졌다고 생각하다가도 밀려오는 서러움은 어쩔 수 없다. 회사에서도 이른바 '진상고객'이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다. 어떤 회사는 상습적으로 폭언을 하거나 성추행을 하는 고객리스트를 만들어서 사전에 차단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녀가 일하는 회사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

"비오는 날 일요일에 배차가 안 되는데 그걸 이해 못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서 '돈 없는 사람이 이런 일 하는 거 아니냐. 그러니까 돈이 없지. 그러니까 대리운전하지'라고 해요. 학교에서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얘기하는데, 그렇게 얘기하고 그런 취급을 당하면 좀 그래요. 대학 나와서 대리 운전할 수도 있고 퇴직해서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못 배워서도 아니고 할 수 있는 일이 그 일 밖에 없어서 대리운전을 하는 것도, 상담원을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사람들의 의식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과도한 서비스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문제인 거죠. 손님은 왕이다 같은 생각 말이에요. 그런 걸 요구하는 문화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 기업들은 고객 만족을 넘어, 고객 감동을 실현하겠다고 한다. 여기에 "직원 만족을 넘어, 직원 감동을 실현하겠다"도 함께해야 하지 않을까? 콜센터 노동자가 원하는 더 나은 환경, 소비자가 원하는 더 나은 서비스, 회사의 이익. 그 균형은 어디일까?


태그:#감정노동자, #콜센터, #상담원, #부산청년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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